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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결혼보다 이혼이 익숙한 시대다. 포털 등에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오는 연예인들의 이혼 소식은 이제 식상할 정도이고, 요즘 학교에선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한부모 아래에서 생활하는 아이들도 대여섯 중 하나 꼴이니 예전처럼 굳이 숨기고 말고 할 흠결도 아니다. 주위를 언뜻 둘러봐도 이혼한 부부들 정말 많다.

'인륜지대사'라는 결혼을 가벼이 여기는 사람이 없듯, 예나 지금이나 이혼 또한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여전히 유교적인 정서가 뿌리 깊은데다 법에서조차 1개월에서 3개월까지 별도의 숙려기간을 둘 정도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이혼율은 OECD 국가들 중 1, 2위를 다툴 만큼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배우자 간 성격 차이와 경제적 독립, 두 집안 사이의 불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지는 사회 분위기 등이 그 이유라며 다양한 분석들을 내놓고 있지만, 갈라선 후 변명거리를 찾으려는 하나 마나한 이야기일는지도 모르겠다.

썩 유쾌하지 않은 이혼 이야기를 서두에 꺼내는 이유는 우리 부부의 사는 이야기가 머지않아 결혼을 하게 될 젊은이들에게 '이혼을 예방할 수 있는' 정보가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하긴 그렇잖아도 취업과 연애, 결혼을 꿈조차 못 꾼다는 이른바 요즘 '3무' 세대들에게 우리 부부의 이 행복한 이야기가 사치스럽게 들리지나 않을지 조심스럽긴 하다.

"외모는 3년, 성격은 10년, 취미는 평생 간다"

2008년 여름, 아토피를 앓는 큰애와 갓 두 돌을 지난 둘째를 데리고 전국의 숲을 찾아 다녔습니다.
▲ 오대산 방아다리 약수터에서 2008년 여름, 아토피를 앓는 큰애와 갓 두 돌을 지난 둘째를 데리고 전국의 숲을 찾아 다녔습니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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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이라는 말이 무척 어색한 40대 초반의 젊은(?) 부부지만, 요즘 20~30대 젊은이들의 연애 풍경과 결혼관을 보노라면 낯설기만 하다.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요즘 말로 하면 '스펙'에 해당될, 비슷한 '조건'의 파트너를 찾으려는 것부터가 솔직히 놀랍다. 그들 나름대로의 '합리적 사랑법'이라고 하지만, 주판알부터 퉁기려는 그들이 과연 첫눈에 반한다는 느낌을 경험할 수 있을까.
또 '운명 같은 만남' 따위는 없다면서,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를 현실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시큰둥하게 말하는, 멋대가리라고는 하나 없는 젊은이들을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더욱이 미리 요모조모 따져봐야 나중에 이혼할 확률도 낮을 것 아니냐는 그들의 말에선 대체 배우자와의 결혼인지 장사치들의 흥정인지 헛갈릴 지경이다.

결혼은 분명 '현실'이지만 배우자를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환상'이 없다면 삶 자체가 얼마나 건조할까. 어쩌면 결혼이란 팍팍한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서로 가슴을 뛰게 하는 '환상'에 의지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만남에 앞서 '조건'을 미리 재보는 건 서로를 '간 보는' 행위로, 서로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반감시킬 수밖에 없다.

아무리 뜨겁게 결혼했다고 해도 사랑의 감정이 시간이 흐를수록 묽어지고 옅어지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결혼한 지 햇수로 12년째지만 우리 부부의 서로에 대한 '환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우리 부부는 연인이기에 앞서, 똑같은 취미를 갖고 있는 탓에 말투도, 식성도, 생각까지도 닮아버린 '동호회원'이기 때문이다.

배우자 선택 기준을 두고 '외모는 3년, 성격은 10년, 취미는 평생 간다'는 말이 있다. 살아보니 그 말이 결코 우스갯소리가 아님을 알겠다. 서로 취미가 같다는 건, 단언컨대 결혼 생활 최고의 축복이다.

나아가 그것이 배우자 선택의 절대적 기준이어야 한다고 여긴다. 우리 부부가 여러 난관을 극복하고 끝내 결혼에 골인할 수 있었던 힘이 됐을 뿐만 아니라, 지금껏 신혼 때처럼 가슴 뛰며 살아가게 만드는 끈이기 때문이다.

2009년 겨울, 야구를 끔직이 좋아하는 큰애가 돔 구장을 보고 싶다기에 오사카 교세라돔을 찾았다.
▲ 우리 가족의 첫 번째 해외여행, 일본 오사카 2009년 겨울, 야구를 끔직이 좋아하는 큰애가 돔 구장을 보고 싶다기에 오사카 교세라돔을 찾았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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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비 적립해 여행 경비로... 우리 가족은 '여행 동아리'

우리 부부, 아니 두 아이를 포함한 우리 가족은 자타가 인정하는 '여행 동아리'다. 주위에서 역마살이 끼었다고 혀를 찰 정도로 여행을 즐긴다. 조심스럽게 고백하건대, 우리 부부는 첫애 출산일 하루 전날에 가까운 거리도 아닌 섬진강으로 매화꽃 구경을 갈 정도였으니. 태어날 때부터 영문도 모른 채 부모를 따라다닌 아이도 이제는 장래 희망이 오지탐험가라고 말할 정도가 됐다.

신혼여행도 일주일 동안 배낭 메고 중국에 다녀왔다. 물론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에 기대지 않고 교통편부터 호텔까지 현지에서 직접 다 알아서 했다. 힘들고 불편하긴 했지만 부부가 함께 만들어가는 여행의 재미는 쏠쏠했다. 신혼부부라면 흔히들 간다는 괌이나 사이판, 몰디브 같은 곳은 아예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우리 가족에게 주말은 항상 '여행 중'이다. 특히 첫애 출산 전 1년 동안은 자동차 주행거리가 4만 킬로미터에 육박할 정도였다. 전국의 문화유적에서 재래시장에 이르기까지 가보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할 만큼 무던히도 돌아다녔다. 가족과 함께 전국 방방곡곡 서너 바퀴는 족히 돈 것 같다.

전국을 떠돌다 보니 시나브로 더 큰 욕심이 생겼다. 두 아이가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입학하자 우리 부부는 해외여행을 시도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문제는 적지 않은 여행 경비를 어떻게 마련하느냐는 것이었다. 해외여행의 경우 항공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인 까닭에 아이들과 어른의 여행 경비 차이가 거의 없어 그야말로 막대한 비용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아이들과 '거래'를 시도했다. 학원 대신 여행을 가자고 설득했다. 말하자면, 학교에서 학원 몫만큼 더 열심히 공부하고, 매달 학원비를 적립해 여행 경비로 쓰자는 제안이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제안하는 우리 부부도, 아이들도 조금 두려워하긴 했다. 이따금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를 못 따라가겠다는 등의 아이의 하소연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내 걱정을 씻어냈다. 영어야 필요를 느끼게 되면 언젠가는 하게 될 것이고, 되레 해외여행이 영어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크나큰 자극이 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별도로 여행 계좌를 만들어 매달 학원으로 보내졌을 돈을 꼬박꼬박 통장에 이체시켰고, 어느새 꽤 큰 목돈으로 쌓여갔다.

2010년 여름, 중국 베이징에서 여름을 보냈다.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잘 먹는 두 아이는 그야말로 '여행 체질'이다.
▲ 우리 가족의 두 번째 해외여행, 중국 베이징 2010년 여름, 중국 베이징에서 여름을 보냈다.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잘 먹는 두 아이는 그야말로 '여행 체질'이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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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에는 어떻게 살래?"... 걱정 마세요

또 우리 부부는 겁도 없이 '대형사고'를 쳤다. 세금처럼 떼이는 연금과 보장성 보험을 제외하고는 다른 저축을 해지하기로 한 것이다. 통장에 쌓인 숫자를 늘리는 것만 저축은 아니며 여행하며 깨닫고 느낀 지혜와 감동이 미래를 위한 더 소중한 저축이라고 판단한, 딴엔 대단한 결정이었다.

주위에선 철없는 짓이라며 우려했다. 대체 퇴직 후에는 어떻게 살아가려고 하느냐고, 또 두 아이의 미래는 누가 책임지느냐며 나무라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웃으며 이렇게 답한다. "세금, 연금은 물론, 과태료조차 빼먹지 않고 꼬박꼬박 낸 모범 국민인데, 노후엔 국가가 우리를 먹여살려주지 않겠어? 그래야 국가라 할 수 있지!"라며 되레 여유를 부린다.

우리 가족의 첫 번째 해외여행지는 일본이었다. 굳이 일본을 선택한 이유는 야구를 끔찍이도 좋아하는 큰애의 돔 구장을 보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기도 했지만, 두 아이가 외국에서 음식 등 낯선 환경을 얼마나 잘 버텨낼 수 있는가를 테스트하기 위한 시험 무대로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 이듬해 여름에는 중국을 다녀왔다. 물론 아이들에게도 배낭을 짊어지게 했다. 기실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은 아이들에게 고통만 안겨줄 뿐 아무런 재미를 주지 못한다. 유명 관광지와 쇼핑센터를 경주하듯 돌아다니는 바쁜 일정은 어른들조차 힘겨워하는데 하물며 아이들이야 두말할 것도 없다.

오로지 여행 가서 남는 건 유명 관광지 앞에서 찍은 사진뿐이라는 어른들의 인식은 아이들에게 전혀 통하지 않는다. 지난 여름방학 때 열흘 간 다녀온 중국 서안 여행에서 두 아이가 동시에 떠올리는 건 진시황릉도, 병마용도 아닌, 시장 뒷골목 허름한 식당에서 먹은 '수제비 닮은 느끼한 양고기 국수'였다.

행복한 결혼 생활의 보증수표는 함께할 수 있는 '취미' 

우리 가족이 주로 찾는 곳은 유명관광지가 아니라 각 고장의 시장 골목이다. 볼거리, 먹거리가 가득한 그곳을 아이들은 유난히 좋아한다.
▲ 안흥찐빵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아이들 우리 가족이 주로 찾는 곳은 유명관광지가 아니라 각 고장의 시장 골목이다. 볼거리, 먹거리가 가득한 그곳을 아이들은 유난히 좋아한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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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등록증이 나오기 전에 여권부터 손에 쥐게 된 두 아이는 그야말로 '여행 체질'이다. 생전 처음 보는 음식조차도 전혀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잘 먹었고,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불편함 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제 동네 마실 다니듯 돌아다녔다. 요즘 들어서는 아파서 병원을 다니다가도 여행을 갈 즈음이면 씻은 듯이 나을 정도다.
우리 부부의 '여행벽'은 두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염됐다. 아이들이 가장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이 <세계테마기행>이고, 가장 좋아하는 책은 다름 아닌 세계지도와 여행안내서다. 다음 여행지는 라오스, 캄보디아로 결정됐다. 그곳 현지인들 집에서 머물며 며칠간 생활해보고 싶다며 어른스럽게 말했다. 아마도 어느 방송에선가 '공정여행'에 관한 꼭지를 본 모양이다.

주위에서는 저축도 하지 않고 여행한답시고 돈만 써대는 우리 가족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조금씩 해소되고 있음을 느낀다. 부부끼리는 물론, 아이들과의 대화가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내용도 훨씬 다채로워졌고, 나아가 가족끼리 추억할 거리가 앨범의 사진처럼 차곡차곡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말했다. 반추할 추억이 많으면 삶이 즐겁고 세월 역시 더디 흐른다고. 결혼한 부부야말로 더욱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입을 것 안 입고, 먹을 것 안 먹으며 모은 통장의 늘어가는 숫자가 행복을 저절로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깨달음과, 돈과 추억을 기꺼이 맞바꿀 수 있는 용기는 '역마살이 낀' 배우자를 만난 덕분이다.

결혼 상대를 선택하는 기준이 뭐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취미'가 같은 사람이라고 답하겠다. 단언컨대, 행복한 결혼 생활의 보증 수표다. '힘들 때나 괴로울 때나,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우리 부부는 두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간다.

덧붙이는 글 | '결혼, 그 사소한 모든 것' 응모글



태그:#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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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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