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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의 최전성기인 '정관의 치'를 열었던 당 태종의 탁월한 용인술을 기록한 책 <정관정요(貞觀政要)>는 한·중·일을 비롯한 동아시아 역대 군주들이 통치 지침으로 삼았던 필독서다. <제왕학-정관정요에서 배우는 리더의 자격>은 일본문화와 중국고전에 정통한 야마모토 시치에이가 <정관정요> 중에서 현대사회와 조직에 적용할 만한 핵심적인 대목들을 뽑아 그 교훈과 시사점들을 알기 쉽게 풀어쓴 책이다.

이뤄 놓은 것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제왕학> 표지
 <제왕학> 표지
ⓒ 페이퍼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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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의 사망 이후 애플의 행보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스티브 잡스가 없는 애플의 미래와 세계 IT산업의 지형은 그 뒤를 잇는 '수성 리더십'의 성패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창업 체제를 어떻게 성공적인 수성(守成) 체제로 바꿀 것인가'라는 애플의 고민도 알고 보면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아버지 고종을 도와 대제국을 물려받은 당 태종 이세민도 똑같은 고민을 했다. 태종이 신하들에게 "창업과 수성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어려운가?"라고 물었을 때 황제에 대한 직언을 담당한 간의대부(諫議大夫) 위징은 이렇게 대답했다.

"창업은 그다지 어렵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천하를 얻은 후에는 마음이 교만하고 방자해지기 쉽습니다. 군주가 무리한 정책을 펼치고 사치와 향락에 빠져 과다한 노역을 종용하며 많은 세금을 물리면 나라가 피폐해지고 백성들의 생활이 도탄에 빠집니다. 왕조의 몰락은 늘 이것이 원인입니다. 이렇게 보면 수성이 더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본문 중에서)

창업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온갖 어려움을 극복한 뒤 창업에 성공하면 마음이 나태해질 수 있다. 또한 권력이 창업주 한 사람에게 집중되면 주변에 아첨하는 무리나 '예스맨'이 생기고 음성적인 권력이 등장한다. 그래서 위징은 창업보다 수성이 더 어렵다고 한 것이다.

고압적이고 엄격함이 없으면...리더는 꿈도 꾸지 마세요

이렇게 어렵고도 중요한 수성을 잘해내기 위한 첫 번째 관건은 무엇일까? 두말할 나위 없이 '조직을 이끄는 지도자가 어떻게 하느냐'일 것이다. <정관정요>는 좋은 군주가 되려면 예스맨을 멀리하고 신하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조언한다. 요컨대 '소통의 리더십'을 발휘하라는 주문이다.

그러나 귀를 여는 것은 기본일 뿐이다. <정관정요>는 수성을 위해 필요한 리더의 자격을 '군주가 지녀야 할 10가지 생각(十思)'과 '군주가 갖춰야 할 9가지 덕목(九德)'으로 일목요연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런 가르침을 가슴이 뜨끔하도록 일깨워주는 건 오히려 야마모토 시치헤이가 <제왕학>에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십사와 구덕의 반대' 사례들이다. 그 중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가지고 싶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소유하고 소비한다."
"유흥이나 놀이에 빠지면 헤어나지 못한다."
"경솔하게 시작하며, 곧 싫증을 느껴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팽개친다."
"사소한 일에 얽매여 소리 지르고 엄격함이 없다."
"업무능력이 없고 태도가 고압적이다."
"난폭하지만 마음이 유약하다."

야마모토 시치헤이는 십불사와 구부덕의 사례를 보여준 뒤 "이렇게 행동하면 리더로서는 실격이며, 심하면 인간 실격도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리더가 이 모양이면 "부하직원은 당연히 일할 의욕을 잃는다"고도 말한다. 크든 작든 한 조직의 수장이라면 가슴에 손을 얹고 위에 열거한 리더의 실격 요건들을 하나씩 되새기며 스스로를 돌아볼 일이다.

나쁜 부하를 판별하는 기준을 담은 <제왕학>

또한 <정관정요>는 바람직한 신하를 의미하는 육정(六正)과 그 반대인 육사(六邪)를 정의함으로써 리더의 자격뿐만 아니라 인재를 판별하는 기준도 제시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사악한 신하의 6가지 유형(육사)이 흥미로우면서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복지부동하는 구신(具臣), 아첨만 하는 유신(諛臣), 어진 사람을 질투하는 간신(奸臣), 사람들을 이간질하는 참신(讒臣), 권력만 믿고 전횡을 일삼는 적신(賊臣), 군주의 눈을 가려 불의에 빠지게 하는 망국지신(亡國之臣)이 바로 그들이다.

"군주의 말은 무조건 옳다 하고, 군주의 행동은 무조건 좋다하고, 은밀히 군주가 좋아하는 것을 알아내어 군주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 무조건 군주와 영합해 그저 즐기면서 이후의 폐해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유신(諛臣)이다."(본문 중에서)

육정과 육사를 조직원의 관점에서 뒤집어보면 자신이 조직을 위해 쓸모 있는 인재인지, 아니면 그 조직을 말아먹을 암적인 존재인지 점검해볼 수 있는 체크리스트가 된다. <제왕학>이 리더뿐만 아니라 조직원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이유이다. 실제로 이 책에는 리더와 관련된 부분만큼이나 '직원의 길'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이 많다.

가카와 이건희 회장님, 뜨금하지요?

<제왕학>은 현대인들이 경계해야 할 다양한 함정들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뇌물수수와 정실인사, 세습 문제에 대해서는 별도의 장에서 서술할 정도로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이 또한 7세기 당 태종이 고민했던 대목들에서부터 시작한다.

정관 2년, 태종이 신하들에게 말했다.
"짐이 생각하기에 탐욕스러운 사람은 재물을 사랑할 줄 모르는 자다. 뇌물수수가 발각되면 면직되어 봉록도, 특별대우도 한꺼번에 박탈당한다. 이런 자가 어찌 재물을 사랑한다 할 수 있겠는가? 작은 이익을 탐하다가 큰 이익을 잃는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본문 중에서)

뇌물수수에 이어지는 정실인사와 세습의 문제점들은 '과연 이것이 1400년 전에 벌어진 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요즘 우리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목격하는 사안들이다. 내곡동 땅을 둘러싼 부자간의 꼼수,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통한 삼성가의 편법 상속, 대형교회와 사학들의 세습비리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인간의 욕망과 집착이라는 것은 시대를 초월하는 것이며 7세기에 기록됐던 <정관정요>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지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덧붙이는 글 | 야마모토 시치헤이/페이퍼로드/13,500원



제왕학 - 정관정요에서 배우는 리더의 자격

야마모토 시치헤이 지음, 고경문 옮김, 페이퍼로드(2011)


태그:#제왕학, #당 태종, #정관정요, #리더의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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