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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다행히 모두 무생물입니다.
▲ 숲에서 가져온 물건 이번엔 다행히 모두 무생물입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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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 "내가 못 살아. 도대체 이 돌들은 다 뭐야. 가방 가득 들었네."
아들 : "숲에 이상한 돌이 있어 가져왔어요."
엄마 : "또, 이 지푸라기들은 뭐고?"
아들 : "서현이가 씌워줘서 가져왔어요."

지난 20일 저녁, 퇴근 후 집에 도착했습니다. 현관문을 밀고 집에 들어서는데 방안 공기가 이상합니다. 아내 목소리가 평소와 다릅니다. 화가 단단히 난 모양입니다. 큰애가 또 숲에서 이상한 물건을 가져왔나 봅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신발을 벗고 나는 듯이 거실로 향합니다. 아내에게서 재빨리 가방을 낚아채 안을 들여다봅니다. 이상한 돌들(?)이 가득 들었습니다. 흙으로 빚은 그릇 조각 같기도 하고 기와 파편 같기도 합니다.

도대체 이런 걸 어디서 주워 모았을까요? 앞쪽에 달린 주머니를 열었습니다. 동그랗게 말린 지푸라기가 있습니다. 가방에서 수수께끼 같은 물건들을 꺼내 놓았습니다. 방안이 금세 흙바닥으로 변합니다.


큰애가 숲에서 이상한 돌(?)이라며 가방 가득 넣어온 돌들입니다.
▲ 가방속 이상한 돌 큰애가 숲에서 이상한 돌(?)이라며 가방 가득 넣어온 돌들입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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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앞쪽을 여니 지푸라기가 있습니다. 친구 서현이가 만들어준 모라자며 소중히 보관하고 있네요.
▲ 지푸라기 가방 앞쪽을 여니 지푸라기가 있습니다. 친구 서현이가 만들어준 모라자며 소중히 보관하고 있네요.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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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데려온 숲속 친구들... 개구리, 도마뱀, 도롱이벌레...

화난 아내를 뒤에 두고, 큰애에게 가져온 물건 정체가 뭐냐고 놀란 척 물었습니다. 숲에서 노는데 이상하게 생긴 돌이 있어 가져왔답니다. 수를 헤아리니 십여 개가 넘습니다.

가방을 들어보니 상당히 무겁습니다. 가져오느라 고생깨나 했겠습니다. 무거운 가방 메고 낑낑대며 집으로 걸어오는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웃음이 납니다. 반면 아내는 뿔이 단단히 났습니다.

그동안 큰애가 숲에서 가지고 온 물건들을 생각하니 참았던 화가 솟아오른 겁니다. 온갖 벌레며 나뭇가지를 집으로 옮겼으니까요. 큰애가 저지른 일을 몇 가지 추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플라스틱 음료수 통을 절반 잘라 올챙이를 담아온 일, 작은 도마뱀을 가져온 일, 무당개구리를 가져와 손으로 만진 덕분에 비누로 한참을 씻은 일, 솔방울을 가방에 한가득 담아온 일, 칼로 멋진 조각을 만든다며 나뭇가지를 한가득 담아온 일, 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린 도롱이벌레를 신기하다고 따온 일.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아내는 그때마다 어린이집에서 운영하는 '숲에 ON'반에 보낼 때 각오했던 일이라 생각하며 참았습니다. 큰소리 못 내고 조용히 일을 마무리했죠. 그런데 그날 드디어 눌러왔던 화가 폭발한 겁니다.

가방 안이 흙과 먼지 투성이입니다. 험악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릴 방법이 없습니다. 큰애가 곧 매 맞을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때 불현듯 제 머리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최근 공주에서 발견된 옻칠한 가죽갑옷이 그려집니다.

큰애가 숲속에서 이상한 돌이 있어 주워 왔답니다. 이런 호기심을 계속 키우면 훌륭한 고고학자가 되지 않을까요?
▲ 고고학적 발견(?) 큰애가 숲속에서 이상한 돌이 있어 주워 왔답니다. 이런 호기심을 계속 키우면 훌륭한 고고학자가 되지 않을까요?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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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겁결에 아들 앞에서 잘난 아빠 됐습니다

붉은색 글씨가 선명한 갑옷이 오랜 세월 잘 보존됐다 발견돼 고고학계를 흥분시킨 그 사건 말이죠. 큰애가 가져온 이상한 돌을 자세히 보니 오래된 토기 같습니다. 제가 분위기를 바꿀 요량으로 큰애에게 물었습니다.

"어디서 이런 물건을 찾았어? 오래된 토기 같은데 왜 가져왔어?"

아들은 이내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숲에서 노는데 '이상한 돌'이 있어서 가져왔어요. 똑똑한 아빠(?)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엉겁결에 아들 앞에서 잘난 아빠가 됐습니다. 그 소리 듣고 아내가 피식 웃으며 화를 거둡니다. 다행입니다. 그나저나 이 흙 조각들을 뭐라 설명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오래된 토기라 단정하기도 어렵고 고고학적 가치가 있는 물건이라고 말하기엔 제 지식이 너무 짧습니다.

정체 모를 흙 조각을 앞에 두고 이런저런 추측을 하다 다행히 핑계를 찾았습니다. 쉬는 날 아빠와 다시 그곳에 가보자 했습니다. 지금 상태로는 어떤 물건인지 단정하기 어렵다며 말이죠.

주변 지형을 살펴야 이상한 돌의 정체가 뭔지 알 수 있을 거라 말하며 위기를 넘겼습니다. 그 모습을 보던 아내는 저의 어이없는 대답에 헛웃음을 지으며 세면장으로 들어갑니다.

분위기 반전을 위해 지푸라기 모자도 씌워 봤습니다. 재빨리 둘째가 붙었습니다.
▲ 지푸라기 모자 분위기 반전을 위해 지푸라기 모자도 씌워 봤습니다. 재빨리 둘째가 붙었습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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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던 아내가 빨래를 합니다.
▲ 빨래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던 아내가 빨래를 합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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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애가 고고학자가 되려나봐"... 아내의 대답은 '물벼락'

열심히 비누를 가방에 바르고 박박 문질러 먼지 투성이 가방을 깨끗이 씻어냅니다. 제가 아내 옆에서 쭈그리고 앉아 한마디 했습니다.

"큰애가 훌륭한 고고학자가 되려나봐!"

돌아온 아내의 대답은 시원한 물벼락입니다. 얼굴에 흐르는 물방울을 손으로 훔쳐내며 저쪽 구석에서 책 읽고 있는 아들을 봅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한마디 했습니다.

'아들아! 뭘 가져와도 좋은데 한두 개만 가져와라. 이렇게 가방 가득 주워오면 이 좁은 아파트에서 어떻게 처리하겠니?'

그러고 보니 몇 주 전 아들이 플라스틱 음료수통에 담아온 도롱이벌레며 방아깨비가 사라졌네요. 아내가 버리지 않았다면 이 녀석들이 방 안 어딘가에 있다는 말인데…. 이러다 저희 집 숲속 모습과 비슷해지면 어쩌죠?

그날 아들이 주워온 이상한 돌 덕분에 온 집이 한바탕 웃었습니다. 아이들이 숲에서 즐겁게 논다니 그것만으로 고맙습니다.


태그:#숲에 ON반, #고고학자, #지푸라기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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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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