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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과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는 전혀 딴판인 사람이다. 우선 두 사람의 활동 분야가 다르다. 게다가 두 사람은 서로 가깝게 어울려 지내는 사이도 아닌 것 같다. 다만 오 시장이 변호사 시절 황 교수를 위한 '난자지원모임'의 창립 발기인으로 참가했다는 기록 정도가 남아 있을 따름이다.

 

그럼에도 나는 오세훈 시장의 기자회견(21일)을 보면서 불쑥 말년의 황우석 교수를 떠올렸다. 사실 이런 내 생각은 대단히 단순하고 감각적인 느낌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단 나는 두 사람의 '면도하지 않은 얼굴'과 '오열을 참아내는 듯한 표정'이 거의 똑같다고 느낀 것이다. 두 사람은 '초췌한 얼굴'과 '처절한 슬픔'을 똑같이 매스컴과 국민에게 보여주었다.

 

5년 전 황 교수에게나 이번 오 시장에게나 나는 똑같이 의아함과 민망스러움을 느낀다. 평소에는 매스컴 앞에서 그토록 단정한 외모와 절제된 매너를 선보여 왔던 그들이 왜 면도도 하지 않고 공식석상에 나왔는지. 그리고 대관절 뭐가 슬퍼서 저리 우는 것인지. 하기야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조선일보>는 면도하지 않은 두 사람의 얼굴을 큼지막이 실어 주었다.

 

황우석과 오세훈, 둘이 너무도 똑같네

 

불과 몇 년 사이에 세계적인 명망을 얻게 된 황우석 교수에게 2005년 말 위기가 찾아들었다. 집요하고도 단호한 MBC PD들의 추적 때문이었다. 그는 회심의 반전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의 입에서 '애국'이라는 말이 빈번히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황 교수는 어느 날 갑자기 서울대 병원에 입원했다. 병원 측에서는 환자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므로 절대 안정이 필요한 상태라고 말했다. 하지만 병실의 문은 하루 한 번 어김없이 취재진에게 개방되었고 다음 날 조중동에는 면도하지 않은 초췌한 얼굴의 황 교수 사진이 대서특필되었다. 그러자 박근혜 의원을 비롯한 유력 정치인들이 그의 병실을 방문해 주기도 했다. 그는 재기에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의 돌이킬 수 없는 거짓말들이 속속 까발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딜레마에 봉착했다. 그래서 그는 속된 말로 '맞아 죽으나 굶어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식의 최종 판단을 내리지 않았나 싶다. 그는 마지막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그리고는 회견장에서 수없이 '대한민국'과 '애국'을 들먹이며 눈물을 보였다.

 

영광은 짧았고 몰락은 길었다. 과학자 황우석은 이제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국민들에게 불과 5년 사이에 '잊힌 이름'이 되고 말았다. 다만 소수의 광적인 '애국자'들에게 그는 한사코 '과학 영웅'으로 남아 있을 수는 있게 되었다.

 

촉망받던 정치인 오세훈 서울시장에게도 위기가 찾아들었다. 그것은 지방선거가 만들어 준 서울시 여소야대의 정국 때문이었다. 강남 3구의 몰표로 어렵사리 재선된 그는 여소야대의 정국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소통에 힘쓰겠노라고 말했다. 그러나 야당이 장악한 시 의회는 녹록하지 않았다.

 

과거 한나라당이 주도한 의회와 달리 야당 의원들은 시장의 실정을 혹독하게 추궁했다. '디자인 서울', '한강르네상스', '새빛 둥둥섬' 등 무모한 대형 토목사업들의 무용함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로 촉망받던 그의 여론 지지율이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게 되었다.

 

공연히 불필요한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 오세훈

 

지난 6월 그는 대학생들과의 대화에서 "사실 요즘 등록금 정말 미쳤다"며 "딸이 둘인데 모두 대학 다닐 때는 허리가 휘는 줄 알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재산이 58억 원대이고 최근에만 20억 원 정도의 재산이 불어났다는 사실도 곧장 알려졌다. 또한 두 딸 앞으로 각각 수천만 원대의 현금성 예금이 있다는 사실도 추가로 밝혀지게 되었다.

 

이것 말고도 '한나라당의 미래'였던 오세훈의 명성을 고통스럽게 균열시킨 보이지 않는 사건이 있었다. 그가 '방송에 출연하는 변호사' 시절이던 99년 보궐선거 때 DJ의 국민회의에 공천을 신청했다가 낙오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는 이를 발설한 김정길 전 행정안전부 장관을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차후 김 장관의 주장은 당시 <동아일보>의 보도 등에서 매우 신빙성 있는 근거가 확인되었다.

 

"'무상복지포퓰리즘'이 나라의 곳간을 비우고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으려 했지만, 80만 시민은 '주민투표'라는 현명한 판단을 해 주셨습니다."

 

지난 7월 오세훈 서울시장의 취임 1주년 기념 연설에는 날이 서 있었다. 그는 연설문에서 '80만 명의 주민투표' 참여를 언급하면서 "독재는 누구나 다 나쁜 줄 알고 맞서지만 국민을 현혹하는 대중영합주의는 누구도 선뜻 반대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서울시민의 선택은 실로 용기 있는 결단이었다"고 자평했다.

 

그는 "망국적 유령인 '복지포퓰리즘'을 넘어서지 않고서는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오는 8월 서울의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도약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그는 주민투표 발의에 서명한 시민 80만 명을 내세웠지만 그 중 무려 30% 이상이 무자격 또는 정체불명의 불법 서명자로 드러났다. 이는 조선시대 극히 문란했던 군정 중 '백골첨정(죽은 이에게 부과)'이나 '황구첨정(어린이에게 부과)'에 뒤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악운은 한꺼번에 들이닥친다'는 말처럼 하늘도 그를 외면했다. 이례적으로 내린 폭우는 서울시 곳곳을 침수시켰고 주택가 인근의 야산에서 사태가 일어났다. 그가 자랑했던 대형 토목공사들이 줄줄이 참혹한 형해를 드러냈다. 무엇보다도 그의 굳건한 동맹이었던 강남 지역의 외제 승용차들이 물에 처박히는 장면은 그의 가슴을 더욱 서늘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주민투표라는 승부수는 던져놓았고 그것은 돌이킬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이런 그가 차기 대선은 어렵다는 판단을 하지 않았다면 그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다. 그는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의 도움이 아쉬웠다. 얼마 전 박근혜 진영의 감세철회 검토에 대해 '한심한 일'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는 그였다. 그는 차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함으로써 시민의 주민투표 참여를 유도하는 동시에 박근혜 진영의 회심을 기대한 것처럼 보인다.

 

굶어 죽으나 맞아 죽으나 매한가지

 

하지만 불행히도 여론은 물론 박근혜 진영도 그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것은 학생 급식 주민투표와 대선 출마 여부가 무슨 관련이 된다는 것인지를 성찰하지 못한 패착이었다. 또한 만약 그가 불출마선언으로 박근혜가 움직여 주리라고 정말 기대했다면 박근혜를 몰라도 한참 몰랐다고 할 수 있겠다.

 

그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자기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지 못했다. 그는 누구보다도 자기 존중감이 컸던 엘리트 정치인이었다. 그는 국민회의에 공천 신청했다가 낙오한 것 말고는 한 번도 실패를 몰랐던 정치인이기도 했다.

 

실수를 저지른 현실과 자기 존중감이 충돌할 때 인격적 부조화가 일어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자기 정당화가 작동되어야 한다. 비록 허구일지언정 자기 책임을 면제해 주는 새로운 신념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똑똑하고 도덕적이며 옳다는 믿음을 되찾는다. 더러 이 믿음은 거짓말이 진화하는 자양분이 되며, 사람을 어리석고 부도덕한 행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그는 투표용지의 문구가 사실과 다르게 왜곡되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지 모른다. 분명히 서울시교육청의 안은 중학생의 경우 '2012년부터 1년 단위 단계적 무상급식 실시'인데 그는 투표용지에 '2012년부터 중학교 무상급식 전면실시'라고 기재해 버린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8·15경축사에서 거들어준 것이 약간의 위로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서울시민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미미해진 지가 오래다. 그러던 차에 귀뚜라미 보일러 회장이라는 사람이 나서서 난데없이 '빨갱이 몰이'를 함으로써 여론은 오히려 더 악화하였다.

 

조중동의 기대성 보도 말고는 어느 여론조사도 33.3%를 넘을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지 않았다. 하루하루 투표일이 다가왔지만 여론은 반전은커녕 불리한 쪽으로만 기울었다. 친박진영은 물론 한나라당 지도부조차 그를 경원시했다. 주민투표는 성공을 기대하기가 어려워졌다. 주민투표에 실패할 경우 어차피 내놓아야 할 시장직이었다. 

 

작은 패착은 큰 패착을 낳는 법이다. 그는 한나라당 지도부와 청와대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를 알고 있었던 것이 오히려 더 불행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한나라당 지도부와 청와대가 두려워하는 것은 서울시장의 보궐선거다. 그는 자기가 한층 단호하게 나가면 조중동의 논객들이 적극 지지해 줄 것임을 확신했다. 그는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걸었다. 그의 작은 소망대로 벌써 그는 실패하더라도 소수 '애국자'들에게 '보수 아이콘'으로 남을 것이라는 전망이 돌고 있다.

 

그는 일요일에 잠바를 걸친 채 기자회견장으로 나갔다. 황우석처럼 그는 면도를 생략했다. 그의 얼굴은 황우석처럼 정말 초췌해 보였다. 밤새 고뇌한 흔적이 역력한 것도 황우석과  같았다. 미어지는 듯하던 음성과 오열을 참아내는 듯한 그의 눈물도 황우석처럼 진정이었을 터이다.


태그:#오세훈, #황우석, #무상급식, #서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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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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