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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를 '아륀지'라고 발음해야 한다며 실용영어교육을 강조하면서 현 정권이 출범할 때 필자는 적지않은 기대를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전국에 나붙어 있는 엉터리 영어안내문들이 다 고쳐지고, 유치하게 만들어진 공용 영어문서들이 더는 나오지 않겠구나 하고 기대 했는데 거의 4년이 지난 지금도 별로 달라진 게 없다.
 
필자는 지난 2002년 서울 월드컵 때부터 문화부에 영문감수팀(가칭)을 신설, 모든 공용(公用) 영문을 감수하게 하라고 주요 일간신문과 인터넷을 통해서 여러 차례 권고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거쳐간 7명의 문화부장관들은 필자의 권고를 언론매체에서 한번도 본 일이 없는지, 보았어도 무시해버렸는지 모르겠지만 영문감수팀을 만들지 않았다.

영문감수팀은 고등교육을 받은 영어 원어민 몇 명만 고용하면 된다. 큰 예산이 드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어떤 문화부장관도 그런 일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외교통상부는 한미 FTA협정문 일부를 오역하고, 국사편찬위원회는 해외홍보용 영문한국사를 졸렬한 영어로 출간하고, 한 문화부장관은 부정확한 영어로 쓰여진 간판 앞에서 대통령부인과 함께 '한국방문의 해'를 선포했다. 그리고 전국 도처의 관광지에는 유치하게 제작된 영어 안내문들이 버젓이 붙어있다.

최근에 한국 여행을 다녀온 미국 클렘슨 대학교(Clemson University) 교수 한 분이 필자한테 아래와 같은 사진 석장을 보내주었다. 
 
웃기는 영어 안내문(본문에 사진 설명 들어있음)
 웃기는 영어 안내문(본문에 사진 설명 들어있음)

이 사진은 외국관광객이면 거의 빠짐없이 찾아가는 경주 불국사의 나한전 내부다. "사진촬영금지"를 PHOTO SHOOT PROHIBITION 이라고 적어놓았다. 영어를 하는 외국인들은 웃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photo는 사진, prohibition은 금지, 그리고 shoot에는 촬영이란 뜻도 있으니까 "사진촬영금지"를 정확히 번역한 것 같지만 전형적인 '콩글리쉬'다. 제대로 하려면 No Cameras Please. 또는 No Photography Please. 또는 Picture-Taking Is NOT Allowed.라고 써야 한다. 

설명은 기사 속에 들어있음
▲ 불국사 안내문 설명은 기사 속에 들어있음
ⓒ 조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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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소개 영문(설명은 기사 본문에)
 불국사 소개 영문(설명은 기사 본문에)
ⓒ 조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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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들은 불국사에 대한 한글과 영어 안내문이다. 한글안내문 윗 부분은 그 뜻이 전달되고 있지만 아랫부분은 무슨 소린지 좀 아리송하다. 영어 안내문은 문장이 복잡하고 문법도 정확하지 않다. 아랫 부분은 역시 한글을 그대로 직역해서 무슨 소린지 애매모호하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World Cultural Heritage)에 등재된 불국사와 석굴암의 영문표기는 Bulguksa와 Seokguram인데 위 사진에서 보면 Pulguksa와 Sokkuram으로 나와있다. 같은 문화재를 가리키는 이름의 로마자 철자가 두 종류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신라'의 영문 표기도 Shilla와 Silla 두 가지다. 

또 불국사 건축을 지휘한 정승 김대성의 이름도 Kim Tae-song과 Gim Dae-seong으로 각각 다르게 표기되어 있다. 영문철자를 유네스코에 등재된 대로 통일하고 문장도 영어원어민을 시켜 문법적으로 정확하고 세련되게 다시 써야할 것이다.
 
유인촌 전 문화부장관은 2009년 말 서울 청계천에서 2010-2012 VISIT KOREA YEAR라고 잘못 쓴 현판(아래 사진) 앞에서 대통령 부인과 함께 한국관광의 해를 선포했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간이 한국방문의 해라면 영문은 VISIT-KOREA YEARS 2010-2012라고 써야 옳다.

한국 방문의 해 홍보물(YEAR를 YEARS로 고쳐야)
 한국 방문의 해 홍보물(YEAR를 YEARS로 고쳐야)
ⓒ 조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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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관광지 영문 안내문은 비단 불국사 뿐만 아니리 전국 도처에 널려있다. 곧 문화부장관이 바뀔 것이라 한다. 이번엔 제발 영어 좀 하는 사람을 장관으로 임명하여 문화부에 꼭 영문 감수팀을 만들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조화유 기자는 재미 작가이며 영어교재 저술가 입니다. 한국비평문학회가 "2003년의 문제소설"로 선정한 단편소설 "다대포에서 셍긴 일"의 영어판 Heaven Knows What Happened At Dadaepo가 최근 Amazon.com에 의해 e-book으로 발간되었습니다.



태그:#문화부장관, #한국방문의 해, #불국사, #석굴암, #세계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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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후 조선일보 기자로 근무 중 대한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흉일"당선. 미국 Western Michigan University 대학원 역사학과 연구조교로 유학, 한국과 미국 관계사를 중심으로 동아시아사 연구 후 미국에 정착, "미국생활영어" 전10권을 출판. 중국, 일본서도 번역출간됨. 소설집 "전쟁과 사랑" 등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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