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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이 21일 오전 서울시청 기자실에서 긴급회견을 열어, 오는 24일 실시되는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걸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미 대선불출마 선언을 한 바 있는 오 시장은 투표일이 3일 앞으로 다가오자, 투표율 저조를 의식해 시장직까지 거는 승부수를 띄운 것으로 풀이된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1일 오전 서울시청 기자실에서 긴급회견을 열어, 오는 24일 실시되는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걸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미 대선불출마 선언을 한 바 있는 오 시장은 투표일이 3일 앞으로 다가오자, 투표율 저조를 의식해 시장직까지 거는 승부수를 띄운 것으로 풀이된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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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모든 게 확실해졌습니다. 결국 시장직을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친환경 무상급식 반대할 때부터, 주민투표 추진할 때부터, 참 궁금했습니다. 주민투표 한다고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되는 것도 아니고, 보편적 복지의 확대를 막을 수도 없는데, 왜 안되는 일을 저리 고집하는지 저희는 이해를 못했습니다. 이제 확실히 알겠습니다. 시장직을 그만두고 싶었던 겁니다.

투표율이 33.3%를 넘지 못하면 투표함을 열지 못한다는 사실은 시장님도 잘 알고 계십니다. 정치인 오세훈을 지지한 분들이 모두 투표장에 나와도 24.8%(지난해 6.2지방선거에 서울시민이 모두 참여했다는 가정 아래, 당시 오 시장 득표율을 계산한 수치)입니다. 그런데 그분들마저 경제위기와 수해피해로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식물시장의 처지는 변함없어

조·중·동에서는 이번 주민투표에서 패배할 경우 식물시장이 된다고 우려하며 시장직을 연계할 것을 주문해 왔습니다. 그러나 설령, 불가능한 가정이지만, 주민투표에 이긴다고 할지라도 식물시장의 처지는 변함없다는 사실은 시장님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십니다.

오 시장님은 초임 시장시절 공무원 3% 의무감축이나 이번 수해와 관련 재해책임 공무원 파면 천명 등 채찍 일변도의 인사행정 정책, 그리고 행정고시 출신들만 고위공직자로 등용하는 특권인사 등으로 서울시 공무원들의 마음속 지지를 못 받아 왔습니다. 솔직히 공직사회에서 시장님에 대한 평가는 정말 냉소적이죠.

그나마 서울시의회를 안전히 장악했던 한나라당 시의원들의 배려로 지난 4년은 일해 왔습니다만 이제는 의회의 인적구성도 완전히 달라졌기에, 시장님은 어차피 일할 수 있는 손과 발이 전혀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렇다면 시민들의 지지라도 있어야 하는데, 서울시 수해대란에서도 확인되듯이 많은 시민들이 오 시장님에 대해 '행정의 기본도 못한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행여,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처럼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정치인들이 마음대로 교체하는 일에 대한 반대여론이 일어나기를 기대하실지 모르겠는데, 지금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시민들이 뽑아준 자리를 시장 스스로 그만두려 한다는 사실로 인해 시민들의 냉소는 더 깊어질 수 있음을 직시하셔야 할 겁니다.

친정인 한나라당이라도 도와주면야 어떻게든 버텨 보겠는데, 완벽한 박근혜 대선후보체제 구축, 황우여 원내대표의 무상보육 추진, 한나라당의 70% 복지기조 천명 등 한나라당 조차 오 시장님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나마 나경원 최고위원의 계백장군 발언 등 몇몇 개인적인 지원이 있다고는 하지만, 시민들 여론에서도 '오세훈 시장 그만두게 하고 서울시장 보궐선거 나오려는 시도' 정도로 평가하듯이 지금 시장님께서는 사면초가의 상황에 몰려 있습니다.

시장직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물론 용납되지는 않지만, 이해는 됩니다. 탈출구도 없어 보이고, 설령 탈출한다 할지라도 그 어떤 새로운 희망도 없어 보이는 완벽히 고립되어 있는 이 상황. 그러나 이 상황은 시장님의 복지반대철학으로 인한, 시장님 스스로 만든 감옥입니다.

조중동에만 복종해온 오세훈 서울시장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17일 오전 서울 을지로 입구에서 주민투표일을 알리는 피켓을 들고 출근하는 시민들에게 무상급식 주민투표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17일 오전 서울 을지로 입구에서 주민투표일을 알리는 피켓을 들고 출근하는 시민들에게 무상급식 주민투표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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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시의원들은 지금까지 "보편적 복지 확대정책을 추구하면, 오세훈 시장을 적극 돕겠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혀 왔습니다. 저는 작년 12월 4일 오마이뉴스 공개편지를 통해 "보편적 복지사회의 틀을 오세훈의 이름으로 만드시라! 적극 돕겠다(관련기사)"는 공개약속을 한 일도 있습니다.

우리 민주당 시의원들은 오세훈의 정치적 미래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유일한 관심은 '보육'과 '교육'을 공공이 책임지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처럼 심각한 저출산 문제를 방치하면, 우리나라가 망하기 때문입니다. 저출산 문제를 경험했던 모든 선진국은 '보육'과 '교육'을 국가가 책임지는 방식으로 해결해 왔기 때문입니다.

시장님이 친환경 무상급식 등 보편적 복지를 추구하면, 야당이 다수당인 의회의 도움까지 얻어 저출산 문제 해결과 복지사회 건설을 위한 큰 족적을 남기는 정치인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 기회를 시장님 스스로 걷어찼던 것입니다.

그리스의 재정위기는 '성급한 유로존의 가입'과 '과도한 올림픽 SOC투자' 등 무리한 세계화와 토건사업의 폐해라는 세계석학들의 호소는 도외시 한 채, "그리스를 봐라! 복지를 줄여야 한다!"는 조·중·동의 주문에만 충실히 따른 결과가 바로 오늘의 고립입니다.

돌이켜 보십시오. 이번에도 시장직을 걸라고 누가 주문했습니까? 서울시민이 했습니까? 민주당이 했습니까? 한나라당이 했습니까? 진보세력이 했습니까? 보수세력이 했습니까? 아무도 안 했습니다. 오직 보수언론 사설에서만 시장직을 걸라고 주문했습니다. 도대체, 왜, 무슨 이유로, 보수언론이 시키는 대로만 복종하는 시장이 되었습니까?

그리고 이게 보수 정치가가 할 짓입니까? 시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직분으로 도박하는 보수정치인이 세상에 누가 있었습니까? 그 어떤 상황에서도 직분의 사명에 충실함은 보수의 본질과도 같으며, 사회의 근본적 질서를 유지하려는 이러한 우직함이 바로 보수의 존립근거입니다. 이건 보수도 아닙니다. 보수도 아닌 보수언론의 퇴행적 주문에 복종해온 시장님의 자업자득의 결과가 바로 오늘의 시장직 사퇴예정 선언입니다. 이로인해 발생하는 모든 혼란의 책임은 시장님 스스로에게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해야 합니다.

버려야 할 것은 '시장직'이 아닌, 복지반대철학

시장님이 지금처럼 조중동 주문만 되뇌면서 아무리 발버둥쳐도, 보편적 복지의 대세는 막을 수 없습니다. 복지는 본래 보편적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장님의 생각처럼, 복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게, 어려운 사람 도와주는 게 아닙니다. 함께 사는 것이 복지입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르신과 젊은이가, 부자와 가난한자가 함께 살도록 만드는 것이 복지입니다. 그래서 복지는 본질적으로 보편적인 속성을 가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복지를 제대로 하려면 보편적으로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 급식문제를 고민하다보니, 친환경 무상급식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보육에 사회적 지원을 고민하다보니, 무상보육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것은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진보라서 친환경 무상급식을 하는 게 아니고, 황우여 원내대표가 보수가 아니라서 무상보육을 추진하는게 아닙니다.
복지가 본래 보편적이기에, 복지를 하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것은 세계사적 흐름입니다. 당신 혼자서 막을 수 있는게 결코 아닙니다. 그걸 막겠다는 이유로 시장직을 건다는 것은, 어차피 하기도 싫고, 성과를 낼 수도 없는, 시장직은 그만두겠다는 것 밖에는 안됩니다.

그래도 한 때, 한나라당 정치인들 중에는 꽤 괜찮은 사고를 하고 있었던, 젊은 국회의원의 면모를 기억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마지막 충고를 드립니다. 버릴 것은 시장직이 아닌, 조중동에 대한 복종심이 만든 복지반대 철학입니다. 초심으로 돌아가 보십시오. 자기 스스로 만든 감옥이기에, 스스로 벗어날 방도가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김형식 기자는 서울시 의원 입니다.



태그:#오세훈, #보편적 복지, #조중동, #서울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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