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발칸산맥의 험준한 바위산을 넘어

 

세르비아의 국경 도시 디미트로브그라드에서 고속도로로 연결되는 니쉬까지는 길이 좁고 구불구불하다. 발칸산맥의 험준한 산악 사이로 길이 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모라바강의 지류인 니샤바강을 따라 길이 이어지기 때문에 경치가 아주 좋다. 모라바강은 세르비아 남부 발칸산맥에서 발원해 중부지방에서 도나우강에 합류한다. 길 양옆으로는 바위산이 우뚝하고 그 사이로 도로와 강이 끝없이 이어진다.

 

디미트로브그라드에서 니쉬까지는 85㎞ 밖에 안 되는데 1시간 반이 걸린다. 니쉬는 발칸산맥 북쪽 기슭에 자리 잡은 도시로, 세르비아 동남부에서 가장 크다. 세르비아 전체에서도 베오그라드, 노비 사드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도시다. 니쉬는 전자, 기계설비, 의류, 담배 공업 등이 발달한 공업도시다. 니쉬는 또한 기독교를 공인하고,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긴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니쉬에서부터는 넓은 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것은 강을 끼고 농지가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니쉬에서 베오그라드까지는 모라바강을 따라 길이 이어진다. 그리고 이 길은 4차선 고속도로다. 속도도 110㎞까지 낼 수 있다. 니쉬에서 베오그라드까지는 240㎞다. 산술적으로 따지면 2시간 반이면 갈 거리지만, 중간 휴식시간을 감안해 세 시간은 잡아야 한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보니 마을의 지붕이 붉은색을 띠고 있다. 비잔틴 양식의 수도원과 성당에서 볼 수 있는 붉은색 말이다.

 

미하일로바치를 지나자 고속도로는 서쪽으로 방향을 튼다. 그러면서 지대가 조금은 높아진다. 미하일로비치에서 북쪽으로 계속 올라가면, 도나우강을 건너 트란실바니아의 서쪽 끝 평야지대와 만나게 된다. 베오그라드에 가까워지자 비가 오기 시작한다. 발칸은 비교적 건조한 지역이지만, 낮의 따가운 햇살 때문에 저녁이 되면 소나기가 오는 경향이 있다. 베오그라드 시내에 접어들 때쯤에는 굵은 소나기로 변해 대지를 때린다. 마지막으로 꽤나 큰 고개를 넘자 베오그라드 시내가 눈에 들어온다.

 

포스트 모던 호텔 지라(Zira)

 

시내에 들어서자 곳곳에 도로 공사가 진행중이다. 어떤 곳에는 표지판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운전사도 잠깐 길을 찾지 못한다. 한 달 전에 왔었는데 그 사이 길이 바뀌었단다. 그렇지만 운전사가 베오그라드를 비교적 잘 알고 있어 여유 있게 호텔을 찾아간다. 호텔은 베오그라드 도심 동쪽 팔리룰라 지역 루즈벨토바 거리에 있다. 호텔로 가는 길 주변은 세르비아의 700년 고도답게 오래된 건물이 즐비하다.

 

그런데 우리가 묵게 될 호텔의 이름은 지라다. 이 호텔은 아주 현대적인 '지라 쇼핑센터' 안에 자리 잡고 있다. 호텔의 외관이 전통적인 도시 베오그라드와는 다른 모습이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로비의 실내 디자인도 특이하다. 우선 현대적이면서도 단순하다. 아니 실용적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내가 이걸 리얼리스틱이라고 해야 하나 했더니, 옆에 있던 권순긍 선생이 포스트 모던이 좋겠다고 답한다.

 

수속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 보니, 이곳 역시 뭔가 다르다. 우선 창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밖의 풍경이 완벽하게 실내로 들어온다. 침대에 누워서도 밖을 완벽하게 조망할 수 있다. 침대 머리맡에는 그림이 하나 걸려 있는데 추상적이다. 방에 놓여있는 탁자와 의자 역시 단순하면서도 멋이 있다. 우리가 동유럽이나 발칸 지역의 수준을 서유럽에 비해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호텔 하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들 역시 최신의 경향을 받아들이면서 높은 문화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하기야 소피아 성당을 모방한 성 사바 성당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베오그라드 시내를 구경하기 위해 구시가지로 들어간다. 오전 일정은 성 사바 성당에서 출발, 크랄리아 밀라나 거리를 통해 구시가지를 관통한 다음, 칼레메그단으로 갈 예정이다. 그리고는 스카다리야 거리를 걸으며 베오그라드 전통의 거리 모습을 살펴보려고 한다. 이 거리는 광장을 지나 크네즈 미하일로바 대로와 연결된다. 미하일로바 대로는 칼레메그단에서 남쪽으로 뻗은 거리로, 주변에 경제와 문화를 담당하는 주요 건물이 위치하고 있다.

 

호텔에서 성 사바 성당으로 가려면 브라차르 지역으로 가야 한다. 브라차르는 구 시가지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길이 오슬로보데니야 대로인데, 그 옆 공원 안에 성 사바 성당이 있다. 이 성당은 세르비아 최초로 대주교를 지낸 성인 사바(1175-1236)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그의 유해는 1595년 성당이 세워진 자리에서 오스만 터키의 장군 시난 파샤에 의해 불태워지는 수모를 당했다. 성 사바 성당은 1935년 처음 지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으로 공사가 중단되었고, 공산주의가 시작되면서 종교에 대한 지원이 끊겨 공사는 재개되지 못했다. 그러다 공산주의 세력이 약해진 1985년에야 건축이 시작되어 1989년 돔이 완성되었다. 건축의 정신적인 완성을 의미하는 축성은 2004년에야 이루어졌고, 외적인 완성은 2007년에야 이루어졌다. 현재도 제단 등 내부 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2012년에야 모든 공사가 마무리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성당은 이스탄불에 있는 하기야 소피아 성당을 모방해 만들었다. 그러나 벽돌은 콘크리트를 사용, 외벽이 하얀색을 띠고 있다. 그리고 돔은 구리로 만들었는데 푸른 녹이 슬어 꽤나 오래된 느낌이 난다. 주변에는 잘 가꾸어진 공원이 있어 베오그라드 시민의 휴식처로도 사용된다. 성당의 정면에는 분수가 있고, 그 앞으로 난 길과 정원이 오슬로보데니야 대로까지 이어진다.

 

 

외관을 구경하고 나서 나는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아직도 공사가 진행중이다. 기둥은 비닐에 싸여 있고, 곳곳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줄을 쳐 놓았다. 저 멀리 제단도 아직 미완성이다. 다행히 왼쪽 소성당 쪽은 시민들이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개방해 놓았다. 이곳에는 앞으로 제대에 설치할 이콘화와 십자가가 안치되어 있다. 이콘 그림에는 예수상과 성모자상, 성인 사바상이 있다. 십자가에는 예수가 매달려 있는데, 그 표정이나 자세가 오히려 편안한 느낌을 준다.

 

나토군에 의한 베오그라드 공습 현장

 

성 사바 성당을 나오면 분수 왼쪽으로 학교 같은 건물이 보인다. 이것이 국립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은 1973년 새롭게 문을 열었으며, 12세기 라틴어 필사본, 키릴문자로 쓰여진 필사본, 18-19세기 인쇄본 등 귀하고 다양한 자료들을 보관하고 있다. 도서관을 보고 버스를 타니 차는 크랄리아 밀라나 거리로 들어선다. 이 거리 주변에는 정부의 주요 기관들이 밀집해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대통령궁, 의회, 정부청사가 있다.

 

그런데 이들 관청 주위에 있는 빌딩들이 일부 파괴되어 있다. 그리고 파괴된 채로 그대로 버려져 있다. 이 건물들이 나토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현장이다. 세르비아 사람들은 이 건물을 통해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진정 피해자일까? 왜 서유럽 국가 중심의 나토군이 세르비아의 수도인 베오그라드를 공격했을까? 그 원인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그 출발은 1980년 5월 티토의 죽음과 함께 불거진 민족 간의 갈등이다. 티토 사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은 불안한 동거를 해 왔다. 그러다 1990년 1월 유고슬라비아를 이끌던 공산당이 분열되었고, 그해 4월에는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에서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내놓고 자유선거를 시행했다. 그 결과 공화국의 독립을 주장하는 정당이 실권을 장악했고, 그해 8월 드디어 크로아티아에서 시민과 군대 간 충돌이 발생했다.

 

가을이 되자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 공화주의자들은 6개 국가들이 자치권을 행사하는 느슨한 연방제를 제안했다. 그러나 그 제안은 세르비아 대통령 밀로세비치에 의해 거부되었다. 1991년 6월 25일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독립을 선언했고, 슬로베니아는 10월 26일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의 전쟁은 이후로도 계속되었으며, 1995년 11월 데이튼 협정의 조인으로독립을 이룩하게 되었다.

 

나토에 의한 유고연방공화국(세르비아) 공격은 유고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추구하는 코소보를 돕기 위해 이루어졌다. 1999년 3월 24일 베오그라드와 코소보 지역에 대한 공습이 시작되었고, 공격은 6월 10일까지 계속되었다. 이때 베오그라드에서 파괴된 대표적인 건물이 국방부 청사, 유고 좌파연합 본부다. 우리가 본 것도 국방부와 그 주변 건물이다.

   

차는 구시가지를 천천히 지나면서 우리에게 베오그라드의 역사를 보여준다. 베오그라드는 1300년 경 세르비아 왕국의 수도가 되었고, 1521년부터는 오스만 터키 지배하의 행정중심지 역할을 했다. 그리고 1841년 다시 세르비아의 수도가 되었고, 1918년부터는 유고슬라비아의 수도가 되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보는 건물은 대부분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던 19세기 후반 이후 지어진 것이다.

 

 

베오그라드는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115차례나 전쟁을 겪은 것으로 되어 있다. 베오그라드는 도나우강의 남쪽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슬로베니아의 줄리앙 알프스에서 발원하는 사바강이 베오그라드에서 도나우강과 합류한다. 또 베오그라드는 유럽에서 이스탄불로 가는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그러므로 베오그라드는 육상과 수상교통의 중심지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오스트리아와 오스만 터키가 베오그라드를 차지하려고 1453년부터 각축을 벌였던 것이다.


태그:#베오그라드, #니쉬, #성 사바 성당, #유고 내전, #국방부 건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