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8일 오후 백악관에서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8일 오후 백악관에서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 월스트리트저널

관련사진보기


8월 5일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 중 하나인 S&P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단계 강등시켰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덧붙이자면 S&P를 비롯한 3대 신용평가기관은 악성 부동산 파생상품들에 대해 AAA라는 터무니없는 등급을 매겼다. 리먼브러더스가 파산보호 신청을 할 당시에도 리먼에 대해 A라는 높은 신용등급을 부여하였다. 이 뿐만이 아니다. 최근 국가부채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스페인, 아일랜드에 대해서는 2009년 이전까지 AAA 등급을 부여했다. 물론 이 글은 신용평가기관의 평가 기준의 자의성이나 평가 잣대의 형평성 등을 비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최근 전 세계의 재정위기는 '복지국가'를 둘러싼 한국사회의 미래 전망에 대한 정치권의 담론 지형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줄 가능성이 있다. 대표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10일 비상점검회의에서 세계 금융시장 불안을 '미국 부채위기에 따른 글로벌 재정위기'로 규정한 뒤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며 복지지출 확대를 '복지 포퓰리즘'이라 매도하였다. 미국의 재정위기의 원인을 과도한 복지지출로 본 것이다. 이는 지난 해 무상급식 논쟁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그리스 문제를 언급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따라서 미국 재정위기의 원인이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밝히는 것은 향후 복지국가와 재정건전성 논쟁에서 적지 않은 정치적 함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이 글은 미국 재정위기의 원인을 '국가를 굶기는' 재정전략을 중심으로 역사적 맥락에서 검토하고자 한다. 

국가를 굶겨라(Starve the beast)

미국의 재정작자는 2차 세계대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이었던 1940년대에 30%에 이르렀던 것을 제외하면, 레이건 정부 시절부터 늘어나기 시작했다.
▲ 미국 GDP 대비 재정적자 미국의 재정작자는 2차 세계대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이었던 1940년대에 30%에 이르렀던 것을 제외하면, 레이건 정부 시절부터 늘어나기 시작했다.
ⓒ 새사연

관련사진보기


위의 그림은 1930년부터 현재까지 미국의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나타낸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2009년에는 GDP의 10%인 1.4조 달러, 2010년에는 8.9%의 적자를 기록하였다. 2011년에는 1.7조 달러로 10.9%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미국의 재정적자 문제는 1980년대 레이건 시절 대두되기 시작했다. '스타워즈'로 대변되는 소련과의 군비 경쟁과 천문학적인 감세정책에서 비롯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당시 재정적자는 1983년의 경우 GDP의 6%였으며 8년의 재임 기간의 평균도 4.2%로 매우 높았다.

일명 '국가를 굶기는 전략'은 레이건의 당선을 통해 본격적으로 실현되었다. 이 전략의 핵심은 감세정책을 통해서 우파가 염원하는 작은 정부와 사회복지지출 축소를 목적으로 한다. 즉, 감세정책을 통해 국가의 재정수입이 줄어들면 심각한 재정적자를 초래하게 되고 재정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궁극적으로는 사회복지지출 축소를 강제할 수 있다는 논리다. 감세정책은 근시안적인 유권자의 표심을 자극하는 유력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실패해도 위기를 통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이른바 '꽃놀이패'에 해당한다.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재정적자가 늘어날수록 재정적자 문제는 확대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사회복지지출을 축소하려는 요구가 강해지기 때문이다.

최근 재정위기 담론은 지난해 그리스에서 시작되어 남유럽 전체로, 이제는 미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금융위기를 경고하지도 못하고, 아무런 대안을 내놓지도 못하며 숨죽이고 있던 신자유주의와 보수우파의 정치적 공세가 '국가재정위기(Sovereign-debt crisis)'라는 용어를 빌려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지난 해 6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도 반영되었다. "선진국 경제는 2013년까지 재정적자를 적어도 절반으로 줄이고, 2016년까지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을 줄이거나 안정화시킬 재정계획을 공언"한다고 발표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S&P의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과 이에 따른 세계경제 불안은 보수우파의 정치적 승리의 정점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재정위기 논란은 길게는 대공황을 전후로 만들어진 미국의 뉴딜체제나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시스템을 부정하기 위한 1980년대 신자유주의 기획의 화려한 복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가깝게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국가의 역할이나 재정정책의 유효성을 부정하기 위한 정치적 시도이다.

1920년대 공황을 거쳐 탄생한 1980년대 신자유주의

대공황 직전 당시 미국에서 산업과 금융에 대한 규제가 거의 없었다. 소득세율 또한 25%로 매우 낮았으며 금융버블에 따른 천문학적인 재산가치 상승은 소수의 부자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1929년 대공황 이후, 1933년에 실업률은 25%까지 치솟았고 실질GDP는 27%나 떨어졌다. 경제적 붕괴는 자본주의 체제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만큼 심각한 사회정치적 혼란을 초래하였다. 따라서 규제되지 않는 자본주의는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자체의 존립에도 심각한 위험을 제기한다는 관점이 주류를 차지하게 되었다. 사회적 질서의 안정적 유지를 위해서 기존의 자유방임적 시각에 대한 수정을 기득권 또한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견해가 득세함에 따라 루즈벨트가 1933년 집권하게 되고, 뉴딜(New Deal)이라는 사회적 프로그램을 전개할 수 있었다. 금융시장 규제, 사회보장 및 실업보험 프로그램, 산업별 노조운동에 대한 지원, 대규모 공공고용 프로그램 등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프로그램의 일부가 미국의 뉴딜체제에 수용되었다. 따라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정부의 경제적 역할은 더욱 확대되었다. 정부의 재정지출은 1929년에 GDP의 3%에 불과했지만, 1950년대는 16%로 늘어났다.

그러나 역사의 전환점은 모두가 주지하듯이 1970년대 중반이었다. 1970년대에 두 차례 석유위기가 있었고 그 결과 물가가 급격하게 상승하였다. 당시 미국은 실업과 저성장의 비용을 무릅쓰고 물가를 잡기 위해 총수요를 억제하는 정책을 썼다. 그 결과 실업률은 1973년 4.9%에서 2년 후에는 8.5%까지 치솟았고, 1974년에 물가상승률은 11%까지 상승하였다. 이른바 물가는 상승하고 실업은 늘어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이다. 성장률 하락에 따른 이윤과 주가 하락, 그리고 실업과 인플레이션의 동반상승은 경제적 불만을 촉발하기에 충분하였다. 이와 함께 인종 갈등을 비롯하여 1960년대부터 전개되기 시작한 '문화전쟁(Culture wars)' 등으로 사회정치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다.

경제적, 사회적 혼란과 불만은 경제적 우파와 문화적 보수주의자들 간에 정치적 동맹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이들은 보수우파의 이데올로기적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싱크탱크와 대학에 막대한 돈을 지출하였고, 미디어를 통하여 보수적 프리즘으로 정치적, 경제적 사건을 대중에게 직접 해설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1980년 레이건의 대통령 당선은 1920년대로의 회귀를 꿈꾸는 보수우파의 정치적 승리를 표출하는 사건이었다. "정부는 문제에 대한 해법이 아니라, 정부가 바로 문제"라고 주장한 레이건의 당선은 정부가 경제에 유익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뉴딜의 근본 사상을 뒤엎은 것이다.

레이건은 1920년대 모델의 현대적 버전인 글로벌 신자유주의 모델을 강력히 추진했다. 그의 재임 기간 미국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70%에서 28%로 줄어들었고, 노조조직률은 23%에서 15.7%로 줄어들었다. 금융시장 탈규제, 대규모 감세, 친기업 기조에 따른 노조 공격, 높은 실업률은 불가피하게 양극화를 확대할 수밖에 없다.
 
전체 소득에서 상위 10%와 1%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공황 이후 1950~60년대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상위1%가 차지하는 비중은 1928년 18.4%를 정점으로 1976년에는 6%까지 하락하였다. 그러나 레이건 재임 마지막 해인 1988년에는 12%까지 오른 후 2008년 경제위기 직전에는 19.3%까지 오를 정도로 양극화는 확대되었다.

부시 전 미 대통령.
 부시 전 미 대통령.
ⓒ The Whitehouse

관련사진보기


레이건은 대규모 감세정책을 추진했을 뿐만 아니라, 소련과의 군비경쟁으로 천문학적인 국방비를 지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재정적자는 1976년으로 GDP의 4.2%였고, 3%를 초과한 해가 3년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1982년부터 1987년까지 연평균 재정적자는 5.9%까지 상승하였다. 대규모 감세와 천문학적인 국방비 지출의 전철을 그대로 밟은 대통령이 익히 알려진 대로 2001년 집권한 부시였다.

재정적자 원인은 복지 지출 아니라 감세와 전쟁

정부의 채무상환능력을 평가하는 대표적인 지표는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다. 동 비율의 경우 2차 세계대전 이후 100%를 초과했지만, 뉴딜체제 도입 이후 경제성장률이 부채증가율을 상회하여 지속적으로 하락하였다. 레이건이 집권하기 이전 이 비율은 25.8%까지 하락하였다. 그러나 레이건 재임 기간 거의 60% 이상 상승하여 1988년에 41%까지 상승하였다. 클린턴 시절 이 비율은 49.3%에서 34.7%로 하락하였다. 온건한 증세와 높은 성장률로 재임 기간 마지막 3년은 재정흑자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후 부시가 퇴임할 당시에는 40.3%로 증가하였다.

미국의 정부부채는 1980년대 레이건 정부와 2000년대 부시 정부 시절 늘어났다
▲ 미국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 추세 미국의 정부부채는 1980년대 레이건 정부와 2000년대 부시 정부 시절 늘어났다
ⓒ 새사연

관련사진보기


미국의 예산정책우선센터(Center on Budget and Policy Priorities)가 미국의 재정적자를 요인별로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부시 감세정책, 2008년 경기침체가 향후 10년 동안 재정적자를 초래하는 주요 요인으로 꼽혔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매년 1.3~1.4조 달러의 재정적자를 보이고 있는데, 그들의 추정에 따르면 감세와 중동전쟁이 매년 약 5000억 달러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의 재정정책이 지속되면 연방부채는 2019년 20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중 절반인 10조 달러가 부시 감세와 전쟁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업보험, 사회보장, 의료보험 등 뉴딜 복지 프로그램은 위의 재정적자 목록 그 어디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미국의 보수우파는 재정위기는 사회복지 지출이 지나치게 늘어나서 초래되었다고 주장한다. 사실과 다른 원인을 제기하는 것은 감세정책을 방어하고 그들의 일관된 기획인 국가를 굶기는 전략을 실현하기 위해서이다.

사실 재정위기에 대한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지출 감소와 수입 증가가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이것이 재정을 바라보는 보수의 균형 있는 시각이다. 그러나 부채한도 증액 협상에서 미국의 보수우파는 증세를 비롯한 재정수입 증가 방안은 전혀 고려하지는 않는다. 오직 복지지출 삭감만을 요구한다. 문제가 발생한 원인에 대해서 그릇되게 진단했기 때문에, 해법도 엉터리로 제시할 수밖에 없다. 

재정위기 해법은 유능하고 책임있는 정부

2009년 이후 미국의 재정적자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국가부채에 대한 이자지급 부담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미국의 중앙은행이 2009년 이후 제로금리 정책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부채 부담의 실질적인 지표가 정부지출 대비 지급해야 할 이자 비율이라면 미국의 재정적자는 심각한 상태는 아니라고 평가할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국가를 굶기는 전략은 1920년대 시장만능 경제모델을 현대적으로 복구하려는 미국 보수우파의 거대한 재정전략이다. 국가의 역할과 사회복지 지출을 축소하기 위해, 감세정책을 통해 의도적으로 재정위기를 초래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 재정위기가 초래되면 복지지출 삭감을 선택이 아닌 재정위기의 유일한 해법으로 강제하려는 전략이다.

향후 미국이 재정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은 어렵지 않다. 원인에 따른 처방, 이보다 현명한 경제정책이 없기 때문이다. 우선 부시 감세정책을 원점으로 되돌리고 부자와 대기업에 대해서는 증세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또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벌이고 있는 두 개의 전장에서 하루속히 철군해야 한다. 그리고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서 신자유주의 경제모델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산업정책을 통한 제조업 경쟁력 회복, 소득정책을 통한 생산성과 실질임금의 동반 상승, 금융투기에 대한 거래세를 비롯한 금융규제정책 등을 추진해야 한다.

무엇보다 노동조합과 대기업의 힘의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 국가가 균형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사회복지 지출 축소를 통한 '작은 정부'가 아니라, 시장경제에 대한 '유능하고 책임 있는 정부'의 유익한 개입을 실시해야 한다. 이러한 정책 전환은 비단 미국경제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현 정부에서 발생한 재정적자는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발생한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부유층과 대기업에 대한 감세, 4대강 사업을 비롯한 시대착오적 토목공사 지출, 남북대결에 따른 국방비 지출 확대 등은 수입과 지출 양 방면에서 재정적자를 확대시킨 주요한 요인임에 틀림없다.

GDP 대비 사회복지지출 수준이 7~8%에 불과한 우리의 현실에 '복지 포퓰리즘' 주장은 사실이라기보다는 선동에 가깝다. 따라서 미국의 재정위기의 원인을 반면교사삼아, 대규모 감세와 4대강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남북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올바른 정치가 건전한 재정을 만드는 법이다. 보수가 국가를 굶기는 전략으로 재정을 파탄 낸다면, 진보는 미래를 살찌우는 전략으로 재정을 튼튼하게 가꾸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여경훈 연구원은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연구원입니다. 이 글은 새사연 보고서 '재정위기 : 국가를 굶기는 전략'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보고서 원문은 새사연 사이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태그:#새사연, #재정위기, #복지지출, #미국
댓글

새사연은 현장 중심의 연구를 추구합니다. http://saesayon.org과 페이스북(www.facebook.com/saesayon.org)에서 더 많은 대안을 만나보세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