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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노회찬, 심상정 상임고문이 10일 오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 설치된 농성장에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등을 촉구하며 죽염과 물에만 의존해 29일째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진보신당 노회찬, 심상정 상임고문이 10일 오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 설치된 농성장에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등을 촉구하며 죽염과 물에만 의존해 29일째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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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14기 이주영 인턴기자(맨 오른쪽)가 지난 10일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29일째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등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진보신당 노회찬, 심상정 상임고문을 찾아 동행취재를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14기 이주영 인턴기자(맨 오른쪽)가 지난 10일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29일째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등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진보신당 노회찬, 심상정 상임고문을 찾아 동행취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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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그만 철수할까."

지난 10일 저녁, 하늘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취재를 지휘하던 선배 기자가 나긋하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동조단식과 동행취재를 무사히 마친 난 뿌듯한 마음으로 노트북을 가방에 넣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심상정, 노회찬 전 진보신당 대표와 작별의 악수를 나눴다. 단식농성장의 한 관계자가 두 분에게 우리의 동조단식 사실을 알렸다. 

"어머 정말? 그것도 몰랐네. 다음에 꼭 한 번 같이 식사해요.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따뜻한 감동이 밀려왔다. 난 숱한 음식들의 유혹을 물리쳤다. 커피 쓰나미와 도넛 포탄 등의 공격을 '분노의 타자치기'로 막아낸 것이다. 그 인내를 보상해준 것은 동조단식과 동행취재를 끝난 뒤 선배가 사준 한 그릇의 자장면이었다.

가방에서 삶은 옥수수 꺼냈다가 급히 버리다

"마지막 만찬이 될 테니 어서 먹어."

민주노총 앞으로 출발하기 전, 선배가 삶은 옥수수 두 덩어리를 건넸다. 하지만 난 단호하게 "괜찮습니다"라고 거절했다. 이날 진행될 '동조단식-동행취재'의 진정성에 흠집을 내고 싶지 않았다. 집을 나설 때 '취재가 끝날 때까지 물 이외에는 먹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한 터였다. 옥수수는 가방에 넣어두었다. 

오전 6시, 민주노총이 입주해 있는 경향신문사 앞에 도착했다. 국수, 커피, 아이스크림 등을 파는 가게가 주변에 가득했다. 가게 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가게 앞에 붙어있는 음식 사진은 정말 생생했다. 집을 나설 때 했던 다짐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심상정 전 대표는 농성장으로 가기 전에 약 1시간 정도 목욕탕에 들린다고 했다. 그동안 난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생긴다. '그래, 커피 정도는 마실 수 있겠지. 커피도 물과 흡사하니깐.' 몰래 모닝커피를 마실 생각에 어깨가 들썩거렸다.

심 전 대표가 목욕탕 안으로 들어갔다. '드디어...'라며 회심의 미소를 지을 즈음, 방해자가 나타났다. 심 전 대표를 수행하던 분이 '이리 오라'고 손짓했다. 그가 향한 곳은 '편의점'이었다. 그는 내게 음료수를 고르라고 했다.

"안 됩니다. 전 심상정 전 대표의 고행을 몸소 체험하고자 이 자리에 온 것입니다!"

머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고 시켰지만 난 주저하고 있었다. 우물쭈물 하고 있을 때 인턴 동기가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내게 말했다.

"우리 마시면 안 되는 거지?"

정신이 버쩍 들었다. 아쉬웠지만, 첫판부터 질 순 없었다. 다시 의지를 불태우며 편의점을 박차고 나왔다.

편의점으로 나를 이끌었던 분은 어디론가 가고 다시 나 홀로 남았다. 인터뷰 질문지를 꺼내려 가방 지퍼를 열었다. 순간 구수한 냄새가 코를 스쳐 갔다. 가방 안을 들여다 봤다. 가방 한 구석에서 노란 옥수수가 미끈한 자태로 누워 있었다. 나도 모르게 옥수수가 든 비닐봉지를 가방에서 꺼냈다.

"한 알 정도는 괜찮아."

옥수수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내 손은 비닐봉지의 매듭을 풀고 있었다. 그리고 내 손은 옥수수를 하나 꺼내 들었다. '어떻게 먹어야 맛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로비에서 먹으면 들킬 수도 있잖아. 화장실로 자리를 옮기자.'

난 옥수수를 안고 여자 화장실 쪽으로 향했다. 이럴 수가. 여탕 입구에서 흰색 옷차림의 여인이 신발을 신고 있었다. 심상정 전 대표였다. 난 벌거벗은 옥수수를 손에 쥐고 매표소로 향했다.

"이것들 좀 버려주실 수 있나요?"

매표소 직원은 옥수수를 휴지로 싸 휴지통에 버렸다. 슬프지만 옥수수와의 밀애는 그것으로 끝이 났다.

"단식할래 삭발할래?"... "제 미모는 소중하니까 단식!"

10일 오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29일째 단식농성을 벌이는 진보신당 심상정 상임고문이 농성장에 도착해, 한 시민이 놓아두고 간 장미꽃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10일 오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29일째 단식농성을 벌이는 진보신당 심상정 상임고문이 농성장에 도착해, 한 시민이 놓아두고 간 장미꽃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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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장에 도착했다. 여유 있을 때 화장실에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에 농성장 오른쪽에 있는 도넛가게로 향했다. 유독 이날의 도덧은 군침이 돌게 했다. 문을 열자마자 달콤한 도넛 냄새와 진한 커피 향이 나를 유혹했다.

내 눈은 진열된 도넛 쪽으로 향했다. 한입 베어 먹으면 입 안에서 쫄깃하면서도 부드럽게 녹을 것 같았다. 20m 앞에 있는 내 가방 안에 현금이 있었다. 당장 현금을 꺼내와 도넛들을 포획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모험을 감행하기엔 도넛 가게의 유리창으로 농성장이 훤히 보였다. 들킬 위험이 커 보였다. 난 어쩔 수 없이 화장실로 향했다.

햇볕이 비추기 시작했다. 농성장 앞을 지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일부는 기이한 것을 구경이라도 하듯이 농성장을 훑어봤다. 농성장 주변에 걸린 펼침막을 유심히 읽는 사람도 있었다. 

농성장 안에 들어선 나는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동물원 우리에 갇힌 동물이 된 것 같았다. "저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농성장 밖에서 유유히 걷던 내 일상이 그리워졌다. 나도 어제까진 농성장 밖에서 활보하던 '사람'이었는데. 

점심시간이 되자 농성장 앞은 사람들로 붐볐다. 농성장을 취재하던 다른 기자들도 식사하러 갔다. 내가 '단식'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니 위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러던 순간 팀장에게서 염장을 지르는 문자 메시지가 왔다.

"지금 뭐가 가장 먹고 싶어?"
"고기."
"무슨 고기?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아님 불고기? 닭매운탕? 족발? 보쌈?"

그 문자 메시지 때문에 배고픔이 더 심해졌다.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지글지글 구워지는 삼겹살이 떠올랐다. 팀장에게서 또다른 문자 메시지가 왔다.

"넌 삭발투쟁할래 단식투쟁할래 선택하라고 하면 어느 거 선택할 거야?"

아무리 배고파도 '빡빡머리'를 하고 다닐 수는 없었다. 특히 배고픔은 단식 기간에만 해당되지만, 삭발의 후유증은 투쟁 기간 이상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답장을 보냈다.

"단식이요. 제 미모는 소중하니까요."

배고픈 건 사실이었지만 견딜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입 속에 침이 흥건히 차지도 않았다. 그래도 허기가 지고 기운이 빠져갔다. '농성장 안이 외롭다'는 마음의 허기까지 더해졌다.

오후가 되자 기력이 딸리기 시작했다. 이틀 동안 세 시간밖에 못 잔 데다 끼니까지 거르니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기사에 오탈자와 비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기사 내용도 취재 현장을 충분히 담지 못했다.

선배 기자는 '정신 차리라'고 호되게 혼내고 싶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내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게 느껴졌는지 깊은 한숨만 내쉬었다.

슬슬 억울한 감정이 치올랐다. 나름 정신 차리려고 노력하는데도 잘 안 됐다. 덥진 않지만 습한 날씨 때문에 빨리 지쳤다. "단식보다 농성이 더 힘들어요"라던 심상정 전 대표의 말이 떠올랐다. 가만히 굶고만 있으면 덜 힘들 텐데, 에너지를 써야 하니 힘들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더 읽을 책이 없었으면 좋겠다"

10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29일째 단식농성을 벌이는 진보신당 심상정 상임고문이 탁상에 올려져 있는 책들을 보여주며 "단식농성 중 한 시민이 허영만의 <식객>을 선물로 줘서 읽었는데 잔인한 선물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10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29일째 단식농성을 벌이는 진보신당 심상정 상임고문이 탁상에 올려져 있는 책들을 보여주며 "단식농성 중 한 시민이 허영만의 <식객>을 선물로 줘서 읽었는데 잔인한 선물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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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14기 이주영 인턴기자가 지난 10일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29일째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등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진보신당 노회찬을 찾아 농성 중 읽고 있는 책들에 대해 질문을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14기 이주영 인턴기자가 지난 10일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29일째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등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진보신당 노회찬을 찾아 농성 중 읽고 있는 책들에 대해 질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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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 일이야. 저 사람들 29일이나 굶은 거야? 그런데도 살아있어?"
"저런 거 왜 하는지 이해가 안 돼. 굶는다고 달라지나."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에 농성장 앞에서 한 커플의 대화 내용을 들었다. 다시 농성장 안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으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정말 단식농성 자체가 힘을 가지고 있을까.

또 그들은 왜 단식농성을 선택한 걸까. 두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봤다. 그들의 답은 "힘이 없기 때문"이었다. 권력과 같은 힘이 없는 세상의 소수자에게는 이런 단식과 같은 '원초적 몸부림'이 유일한 힘이었다.

실제로 2차 희망버스 이후 두 사람이 단식농성을 하면서, 주춤했던 한진중공업 사태가 다시 여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찾아왔고, 국회 청문회도 열리게 됐다. 숨었던 조남호 회장도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책들 다 읽은 후엔 어떤 책을 읽으실 예정입니까?"

심상정 전 대표가 농성장에서 읽는 책을 취재하면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여기서 더 읽을 책이 없었으면 좋겠는데(웃음)."

사실 두 사람도 단식농성이 하루빨리 끝나길 바랐다는 걸 알았다. 그것은 한진중공업 사태가 해결됐음을 뜻할 것이다.

11일 오후 덕수궁 대한문 앞을 다시 찾았다. 그 자리에 심상정, 노회찬 전 대표는 없었다. 이날 단식농성을 끝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자리엔 또 하나의 역사가 새겨져 있었다. 30일간의 단식농성을 통해 한진중공업 사태의 해결을 호소하던 두 진보정치인의 '투쟁'이 오롯이 기록돼 있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촉구하며 30일째 단식농성을 벌여온 진보신당 심상정 상임고문이 11일 혈압과 맥박에 이상을 보여 병원으로 후송되고 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촉구하며 30일째 단식농성을 벌여온 진보신당 심상정 상임고문이 11일 혈압과 맥박에 이상을 보여 병원으로 후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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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주영 기자는 14기 <오마이뉴스>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태그:#한진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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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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