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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우리나라는 병영 구타로 모두가 곤혹을 치뤘다. 물 폭탄과 무상급식과 한진중공업사태 때문에 잠시 그것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듯 하다. 하지만 군대가 존재하는 한 그 병영 구타는 언제든 다시 수면 위에 떠오를 것이다.

 

나도 경기도 연천군 삼곳리에서 전방 철책근무를 서다가 고참한테 얻어 맞은 적이 있다. 제 시간에 맞춰 완전무장을 못 했다며 군화발로 무릎이 까인 게 그것이었다. 그때 맞은 후유증을 지금도 앓고 있어서 '그 고참'을 생각하면 이가 갈린다. 병영구타는 내게 추억이나 향수가 될 수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병영구타를 막는 길은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군대를 아예 없애는 게 그것.

 

그렇게 이야기하면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할지 모르겠다. '빈대 잡자고 초가를 태우겠느냐'고. 군대가 없어지면 누가 우리나라를 지키겠냐며 비난할지 모르겠다. 북한이 쳐들어오면 누가 막겠느냐고, 국제사회에 어려움을 당한 나라들을 위해 우리의 평화유지군은 또 어떻게 보내겠느냐며, 따져 물을지 모르겠다.

 

아다치 리키야가 쓴 <군대를 버린 나라>는 코스타리카 사람들이 맞이한 '적극적'인 평화이야기다. 그 나라는 그야말로 군대를 없앴다. 굳이 내가 '적극적'이라고 말한 것은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할 때 그들 국민들은 대부분 반대 의사를 내비쳤고, 그곳의 대통령이 미국을 지지할 때 한 대학생이 나서서 자국 대통령의 태도를 비정상적이라 여겨 법원에 제소하여 승소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처럼 그 나라가 국제사회에 평화를 위한 목소리를 내기까지, 자국 내부에서는 어떻게 평화체제를 구축해왔는지 이 책은 낱낱이 보여준다.

 

그들은 어떻게 군대를 폐기했을까? 사실 코스타리카가 스페인 지배체제로부터 독립한 것도 '아닌 밤에 홍두깨' 격이었다고 한다. 1821년에 과테말라가 스페인과 싸워 독립을 쟁취할 무렵, 그 나라도 덩달아서 독립을 한 게 그것이다. 1838년에는 중남미 연방에서 탈퇴했고, 그 뒤 1940년대에는 격동의 시대를 맞이했다고 한다. 부유층의 공화당과 빈곤층의 공산주의 인민전위당, 그리고 독자권력을 가진 가톨릭교회가 서로 상충한 게 그것이다.

 

1948년에 시행된 대통령 선거에서는 사회적 혼란과 내전을 불러왔는데, 그 틈을 비집고  나선 농장주가 있었으니 호세 피게레스 페레르(Jose Figueres Ferrer)가 그였다고 한다. 그는 과테말라의 아레발로 대통령과 '카리브 협정'을 체결하여 중앙아메리카와 카리브 지역의 독재정권을 차례로 무너뜨릴 심사였다고 한다. 결국 그런 과정으로 정권은 장악했지만 내전으로 2천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하여, 그 돌파구를 위해 '병영을 박물관으로 바꿉시다'는 전 국민적인 제언을 했다고 한다. 1949년 11월 7일, 새 헌법 반포와 함께 '항구적 조직으로서 군대는 금지한다'는 조항이 시행되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역사에 '만약에'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런 '만약에'가 제기된다면 재밌는 상상들을 할 수 있다. 만일 전두환 소장이 정권을 잡은 뒤에 정권 연장의 아름다운 승인을 얻기 위해 피게레스처럼 군대 폐지를 선언했다면 어땠을까? 아니, 그 이전의 일본군 출신으로서 '전투력 불유지' 내용이 들어 있는 일본의 '평화헌법'에 대해 알고 있었을 박정희가 권좌에 오른 뒤에 군대를 폐지하고 평화헌법 조항을 넣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냉전 체제에서 미국의 눈치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들에게 밉게 보였다가는 권좌에서 쉽게 물러났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러나 그때 그런 조치를 취했다면 오고 오는 세대에, 아니 전 세계적으로 추앙받는 인물이 되지 않았을까. 사실 코스타리카도 그 당시 미국의 견제와 압력을 받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미국과 국제사회에 호소하고 설득하여 군대를 폐지해 냈던 것이다.

 

그런데 아다치는 그 정도만 알고 있으면 코스타리카를 아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저 표층적으로만 알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좀 더 심층적으로 그 나라를 알기 위해, 그는 일본 돈 100만 앤을 모은 뒤, 1991년 1월 직장에 사표를 내고 코스타리카로 날아가 2년 동안 그곳의 대학원에서 공부하며 깊이 있게 그 나라를 파헤치게 된다. 그 나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자세와 양식과 관습과 문화와 정치와 경제와 외교 등 전반적인 것들을 훑고 다닌 게 그것이다.

 

그가 코스타리카에 파고들어 면면히 알게 된 건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그 나라야말로 민주주의 꽃을 피우고 있는 나라라는 걸 깨닫게 된다. 그곳의 대통령은 경호원도 하나 없이 소탈한 복장으로 산책을 즐기면서 다니고 있고, 국회 방청객엔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고, 국회 심의 법안과 의사록에 관한 정보도 누구나 쉽게 입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게 그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들의 교도소엔 콘크리트로 된 담도 없을뿐더러, 교도소 내의 수감자가 자신의 파트너를 만나 '밀회'를 나눌 수 있도록 '사랑의 방'도 마련해 놓고 있고, 보험료 납부와 상관없이 국립병원에서는 돈 없이도 진찰과 치료를 받을 수 있고, 초등학교 놀이터를 그 학교 교장이 자기 주차장으로 삼는 것에 대해 아이들이 '놀이할 권리'를 내세워 그 학교 교장을 제소하여 승소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코스타리카였던 것이다.

 

더욱이 해발고도 1400-1800미터에 위치하고 있는 '몬테베르데'는 전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열대 운무림'을 펼쳐 보인다고 한다. 숲은 그만큼 울창하고, 바다 속은 그만큼 깊고 맑은 곳이 그곳이라는 것이다. 그곳에 있는 수목들 연령도 보통 100년은 넘는 것들이라고 한다. 그만큼 코스타리카는 자연과 숲과 생태계를 위해 정책적으로 보호 관리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에코투어리즘으로 얼마나 많은 관광수입을 거둬들일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순수하고 소박한 생활과 인생을 좋다고 인식한다. 아등바등 하지 않고 '고만고만한 것이 좋다'는 삶의 태도를 추구한다. 이를 위해서 군대는 불필요하며, 오히려 군대란 과대한 욕망의 표현이기도 하므로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일찍이 대통령 비서관이 내게 가르쳐 준 '고만고만한 것'과 '군비 폐기'는 여기에서 사상적으로 연결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푸라 비다'(Pura vida/ Pure life)야 말로 코스타리카에서 가장 소중한 것으로 인식되는 심층 문화라고도 말할 수 있다."(201쪽)

 

군대가 없는 나라 코스타리카. 단순한 그 표층 아래에 어떤 심층이 깊게 자리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곳의 민주주의는 우리나라처럼 단순한 말이나 겉치레에만 그치는 게 아니었다. 그들이 추구하고 있는 민주주의는 인권과 자연 환경과 자유 등 다양한 분야가 한데 어우러져 시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그들처럼 군대를 없애려면, 병영구타를 없애려면, 민주주의를 '적극적'으로 시행하도록 모두가 한데 뜻을 모아야 하지 않을까?


군대를 버린 나라 - 코스타리카 사람들의 평화 이야기

아다치 리키야 지음, 설배환 옮김, 검둥소(2011)


태그:#코스타리카, #군대를 버린 나라, #푸라 비다, #카리브 협정, #피게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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