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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플러싱 코리아빌리지 내 열린공간에서 28일부터 내달 3일까지(현지 시간) '박재동과 함께 하는 쿨투라 뉴욕 러브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시사만화가 박재동의 손바닥 아트전'이 열리고 있는 가운데, 한 관람객이 박재동 화백의 '낙서 예술' 작품들을 보고 있다.
 미국 뉴욕 플러싱 코리아빌리지 내 열린공간에서 28일부터 내달 3일까지(현지 시간) '박재동과 함께 하는 쿨투라 뉴욕 러브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시사만화가 박재동의 손바닥 아트전'이 열리고 있는 가운데, 한 관람객이 박재동 화백의 '낙서 예술' 작품들을 보고 있다.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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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서 잠들었을 때 승무원이 놓고 간 안내문을 이마에 붙인 아저씨가 막 잠에서 깬 표정으로 침을 흘리며 "벌써 다 왔나?" 한다. 카페 이름이 인쇄된 휴지에서는 종업원이 주문을 확인하고 있다. 대리운전 홍보전단지, 잡지에 실린 화장품 광고, 초콜릿 포장지, 운전면허학원 홍보스티커, 택배 전표 등에도 어김없이 뭔가 그려져 있다. 식당 영수증이나 홍보스티커에는 그날 맛있게 먹은 음식을 그려 넣었다.

또 다른 카드영수증 한 편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놓고 "어떤 종이에나 그리는 화가"라고 설명했다. 이른바 '박재동의 낙서 예술'이다. 배우 송승헌은 코와 턱 밑에 긴 수염을 길렀다. 여성의 하이힐 굽에 깔려서 고통스러워하는 아저씨가 있는가 하면,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여성 모델의 가슴 안쪽에서 살짝 얼굴을 내밀고 있는 엉큼한 아저씨도 있다. 그제야 전시회장에 어울릴법한 앙다문 입술은 미소를 머금기 시작하고, 꼭 끼워졌던 팔짱도 스르르 풀어진다. 그리고 머릿속에 두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시사만화가 박재동이 왜 이런 '낙서'를 전시하지?", "아, 나도 어렸을 때 이런 장난 많이 했는데."

'시사만화가 박재동'?... "난 재벌 딸이야!" VS "난 비정규직인데"

미국 뉴욕 플러싱 코리아빌리지 내 열린공간에서는 28일부터 내달 3일까지(현지 시간) '박재동과 함께 하는 쿨투라 뉴욕 러브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시사만화가 박재동의 손바닥 아트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장 입구 옆에 전시된 '낙서예술'을 통해 이미 무장해제를 당한 관람객은 작은 엽서 크기의 '손바닥 아트' 앞에서 자신과 닮은 우리 이웃의 다양한 얼굴을 만날 수 있다. '아이고, 재동아! 너는 늙지 마래이', 주름살 깊게 팬 할머니의 따뜻한 미소가 있고, 도장 파는 아저씨, 막차를 기다리는 아가씨의 뒷모습이 있다. 노량진 과일장수 김기봉씨가 있고, 또 다른 김 사장님도 있고, 밤 11시 넘어 피곤한 몸을 지하철 난간에 기댄 채 졸고 있는 직장인도 있다.

그리스 아테네의 한 골목시장에서 만난 농부의 얼굴이 있고, 동료 화가의 노래하는 모습이 있고, 탑골공원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중절모를 쓴 95살 노인도 앉아있다. 옹기종기 모여앉아 놀고 있는 '도토리 같은 세 아이'가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한 여인이 있고, 노량진 육교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상인들이 있다. '겁 없이' 박재동 화백의 얼굴을 그려준 미술학원 강사 옆에는 배우 윤정희씨가 "멋있는 조각가가 빚듯 인생을 아름답게 살고 싶어요"라고 속삭이고 있다.

박재동 화백은 미국 뉴욕 플러싱 코리아빌리지 내 열린공간에서 28일부터 내달 3일까지(현지 시간) '시사만화가 박재동의 손바닥 아트전'을 열고 있다.
 박재동 화백은 미국 뉴욕 플러싱 코리아빌리지 내 열린공간에서 28일부터 내달 3일까지(현지 시간) '시사만화가 박재동의 손바닥 아트전'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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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오후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전시장 한 켠에서 박재동 화백(58.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은 손바닥만 한 스케치북 위에 또 누군가를 그리고 있었다. 30여 년 전 미국으로 건너와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다는 75세 노인이 주인공이다. 박 화백과 마주 앉은 노인은 "주로 한인들만 상대하다보니 영어를 한마디도 못한다"며 해맑게 웃었다. 사실 박 화백이 그 노인을 그리는 데는 2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노인을 인터뷰하는 데는 30분 이상이 소요됐다. 작품 속에 단순히 얼굴 형태만 담는 게 아니라 그 노인의 삶까지 담기 위한 작업인 셈이다.

"제 그림은 손바닥만 하지만 그 안에 여러 가지 사연이 담겨있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살고 있구나' 그런 소통이랄까, 미주 동포들과 대화를 해보자는 뜻에서 (작품들을) 가져왔다. 해외 전시는 처음이다. 내 그림 자체에 글이 많다. 한글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전달이 안 되는 작품이 절반 이상이다. 하지만 한인들이 보면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1988년부터 8년간 '한겨레그림판'을 통해 쏟아낸 그의 작품에는 무소불위의 권력자였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이 수시로 등장했고, 대기업, 검·경, 안기부(현 국정원), 국회의원 등도 성역이 될 수 없었다. 민주주의, 남북화해, 환경, 노동, 인권 등 소위 우리 사회에서 '진보'라고 여겨지는 가치들이 그의 주된 작품 소재였다. 부정한 권력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해학은 독자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했다. 그래서 '시사만화가 박재동'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이번 전시회가 다소 낯설 수 있다.

"시사만화를 했던 게 오래 전인데, 아직도 '시사만화가 박재동'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어떤 점에서는 그 때 강렬한 인상을 줬다는 것이고, 또 달리 보면 그 뒤로 내가 다른 강렬한 성과를 못 보여줬다는 뜻일 게다. 

라디오를 통해 행사 광고를 들은 동포 중에는 내 이름을 아예 모르는 사람도 있고, '이름은 들어봤네'하는 사람도 있다. 한겨레신문 독자 중에 찾아오시는 분도 계시더라. 이번 전시에서는 정치적인 것은 거의 뺐다. 그냥 보통 삶의 이야기들을 한 번 느껴보자는 콘셉트다. 어떤 강력한 메시지를 주려는 것이 아니다. 일상의 소중함 같은 것이다. 그런 속에 사회에 대한 풍자나 메시지가 살짝 살짝 숨어있다."

실제 그냥 '낙서'라고 보기에는 심상치 않은 '작품'들이 여럿 있었다. 영화 '캐리비언의 해적' 홍보포스터에는 해골이 두른 붉은 두건 위에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잡지에서 의류 광고를 하고 있는 두 남녀의 배 위에도 작은 글씨로 뭔가 적혀있다. 여성 모델의 배꼽 옆에는 '난 재벌 딸이야', 남성 모델의 배꼽 옆에는 '난 비정규직인데'.

지난 28일 미국 뉴욕 플러싱 코리아빌리지 내 열린공간에서 '박재동과 함께 하는 쿨투라 뉴욕 러브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열린 '시사만화가 박재동이 들려주는 인생 스케치' 모습. 박재동 화백은 이날 강연에서 어렸을 때 그렸던 그림과 시사만화가 시절 '한겨레그림판'에 그렸던 만평을 소개했다.
 지난 28일 미국 뉴욕 플러싱 코리아빌리지 내 열린공간에서 '박재동과 함께 하는 쿨투라 뉴욕 러브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열린 '시사만화가 박재동이 들려주는 인생 스케치' 모습. 박재동 화백은 이날 강연에서 어렸을 때 그렸던 그림과 시사만화가 시절 '한겨레그림판'에 그렸던 만평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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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동 화백이 교육청에서 일하는 까닭은?

박재동 화백이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1996년 '한겨레그림판'을 떠난 이후 보여준 행보는 시사만화가로서의 냉철한 분석, 비판이 아니라 실천적인 행동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위한 TV 광고 작업에 자청해서 뛰어든 것이다. 이른 새벽, 노동자·아줌마·어린학생들이 함께 손수레를 밀고 산동네를 힘겹게 오르고 있는데, 마지막에 노 후보가 손수레의 운전사로 등장하는 장면은 '국민후보'로서의 이미지를 각인시켰고, 노 후보의 대중적 인기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박 화백은 "사람이 물에 빠졌는데 카메라로 그걸 찍을 것이냐, 버리고 뛰어들어 목숨부터 구할 것이냐의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시사만화가로서 내 위치를 지키면서 비판과 격려를 견지할 것인가, 아니면, 이 시대에 새로운 세상을 열어 가는데 조금 더 적극적으로 도와줄 것인가, 고민을 많이 했다"며 "이 역사의 흐름에서 이(개혁세력의) 물줄기를 돕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지난해 교육감 선거에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후보를 돕고 나섰다. 곽 후보의 홍보물에는 박 화백의 그림이 실렸고, 그를 지지하는 학계·예술계 인사 명단에도 박 화백의 이름이 실렸다. 그는 현재 서울시교육청 혁신학교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불행한 시기는 중학교 2학년 때 시험점수가 떨어진 성적표를 받았을 때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성적 위주의 교육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고, 내 성격도 왜곡 시켰다. 성적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비인간적이다. 성적이 나쁘다고 인간 취급을 하지 않고, 또 그것을 당연시해야 하는 사회는 굴욕적이다. 그런 불행감을 가진 아이들이 자살까지 하게 된다. 공부를 잘 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으로 구별되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 교육운동을 하고 있다."

미국 뉴욕 플러싱 코리아빌리지 내 열린공간에서는 28일부터 내달 3일까지(현지 시간) '박재동과 함께 하는 쿨투라 뉴욕 러브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시사만화가 박재동의 손바닥 아트전'이 열리고 있다. 영화 '캐리비언의 해적' 홍보포스터에는 해골이 두른 붉은 두건 위에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박재동 화백은 "진정성을 가진 낙서는 소중한 예술 작품"이라고 말했다.
 미국 뉴욕 플러싱 코리아빌리지 내 열린공간에서는 28일부터 내달 3일까지(현지 시간) '박재동과 함께 하는 쿨투라 뉴욕 러브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시사만화가 박재동의 손바닥 아트전'이 열리고 있다. 영화 '캐리비언의 해적' 홍보포스터에는 해골이 두른 붉은 두건 위에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박재동 화백은 "진정성을 가진 낙서는 소중한 예술 작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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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난해 상지대 비리재단 문제와 관련 '상지 오누이와 상지 괴담'이라는 만평을 그려 응원했고, 최근 이주여성 등 다문화 가정을 위해서도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정부가 직접 나서 해고노동자 문제를 해결하라"며 '해고노동자 문제해결을 위한 문화예술인 공동행동'에도 참여했다. 특히 지난해 4월 '스폰서 검사' 파문 당시, 박 화백이 1993년 그렸던 '검찰 코꿰기' 만평이 다시금 화제가 됐다. 당시 일부 누리꾼들은 '시사만화가 박재동'의 컴백을 주문하기도 했다.

"나도 그런 생각이(시사만화가로 돌아갈 생각이) 울컥울컥 들 때가 많다. 그러나 나는 이미 애니메이션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시사만화가로 돌아가면 완전히 거기에 심취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한다.

애니메이션을 하는 한, 시사만화가로의 컴백은 어렵다. (만약 지금 시사만화가라면?) 엄청나게 할 일이 많을 것 같다. 지금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는 어떻게 되고 있나? 회사측은 어떤 입장인가? 4대강 문제도 꾸준히 지적되어야 할 문제이고, 언론 문제도 마찬가지다. 

후배들이 잘 하고 있다. 정권에 대해서 이렇게 강력하게 저항하고 풍자하고 비판하는 사례를 세계에서도 찾기 힘들다. 외국 시사만화가들이 놀란다. 우리나라 시사만화가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 결속력이 강하다. 지금은 후퇴했지만, 어차피 진보적인 방향으로 돌아온다고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한때 후퇴했지만, 도도한 물결이 있기 때문에 계속 후퇴할 수는 없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낙서도 예술이 될 수 있다"

박 화백은 애니메이션과 함께 그가 해야 할 '시대적 과업(?)'으로 예술의 권력 분산 운동을 제시했다. 예술은 예술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창조 활동을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손바닥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조지 워싱턴은 모두가 왕을 하려고 할 때 자신은 왕이 안 되겠다고 선포했다. 주권이 군주가 아니라 일반 민중에게 있다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고 열어젖힌 것이다. 그 힘이 지금의 미국을 만들지 않았을까? 예술에 있어서도 주권이 예술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에게 있다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뉴욕에 현대적인 작품들이 많지만, 내 작품이 매우 첨단을 걷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손바닥 그림은 누구든 그릴 수 있다. 예술가만 창조하고 다른 사람은 보고 즐기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창조하는 작가로서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운동을 하고 싶다. 그런 점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낙서, 심심풀이로 하는 것이지만, 그것도 애정을 갖고 진솔하게 한다면 소중한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 마치 소수의 기자에게 기사를 쓸 수 있는 독점적인 권력이 주어지면 정보가 왜곡될 수 있기 때문에 시민기자들이 생겨난 것과 같은 이치다. 누구나 창조를 즐길 수 있어야 하고, 못 그리든 잘 그리든 그것을 즐기자는 것이다."

박재동 화백과의 인터뷰는 그의 '초상화 싸인'을 받기 위해 줄 지어 있는 관람객 때문에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곧바로 붓펜을 빼들고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한 그는 끊임없이 대화를 하면서 그 사람의 삶까지 그림에 살려낸다. 지금까지 그가 그린 인물은 몇 명이나 될까? 그도 너무 많아 모른단다. 다만, "우리나라 사람들 다 그리고 싶다. 인물이 참 흥미롭다"며 빙그레 웃는다.

박 화백은 이번 전시회 외에도 내달 3일까지 센트럴파크와 뉴욕 JFK공항 등에서 1분 내에 그린 인물 퀵드로잉을 판매한다. 이번 쿨투라 페스티벌의 수익금은 문화예술가를 꿈꾸는 뉴욕 한인 3세를 위한 장학금 등에 쓰일 예정이다.

미국 뉴욕 플러싱 코리아빌리지 내 열린공간에서는 28일부터 내달 3일까지(현지 시간) '박재동과 함께 하는 쿨투라 뉴욕 러브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시사만화가 박재동의 손바닥 아트전'이 열리고 있다. '겁 없이' 박재동 화백의 얼굴을 그려준 미술학원 강사의 그림(왼쪽)과 배우 윤정희씨가 "멋있는 조각가가 빚듯 인생을 아름답게 살고 싶어요"라고 말하고 있는 그림.
 미국 뉴욕 플러싱 코리아빌리지 내 열린공간에서는 28일부터 내달 3일까지(현지 시간) '박재동과 함께 하는 쿨투라 뉴욕 러브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시사만화가 박재동의 손바닥 아트전'이 열리고 있다. '겁 없이' 박재동 화백의 얼굴을 그려준 미술학원 강사의 그림(왼쪽)과 배우 윤정희씨가 "멋있는 조각가가 빚듯 인생을 아름답게 살고 싶어요"라고 말하고 있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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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박재동, #시사만화가, #뉴욕 전시회, #손바닥 그림,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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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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