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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쓰는 폰이 너무 구닥다리라 어디 내놓기가 창피하단 말이야! 자기, 알아? 요즘 자모회 나가도 스마트폰 없는 사람이 나밖에 없는 거? 큼지막한 화면을 손가락으로 쓱 문지르는 게 얼마나 폼 나는지… 트위턴가 뭔가 하는 것으로 친구도 사귄다는데, 이번에 하나 사면 안 될까? 아잉…"

"나 원 참, 당신은 마음가짐은 창피하지 않고 모양새만 창피한가 보지? 스마트폰 쓰면 사람이 스마트해진다던?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을 대세라고 따라가는 것처럼 어리석은 게 없어…"

"그래, 나 어리석다. 어쩔래? 자기는 얼마나 잘나서… 자기는 스마트폰을 안 써서 그렇게 스마트한가 보지?"

"스마트폰만 생기면 트위터나 페북 친구가 막 생기는 걸로 착각하나 본데, 그것 관리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야. 또 스마트폰 잘 모르고 마구 쓰다보면 요금도 장난 아니거든. 기본적으로 데이터 이용료가 포함된 35니 45니 하는 정액요금제 자체가 비싸단 말이야."

씩씩거리는 아내의 항변에 잘난 척은 혼자 다 했지만, 스마트폰의 유혹은 정말 나도 참기 힘들다. 17년 이상 써온 011번호 고수하느라 오늘도 바늘로 허벅지 찔러가며 참는 이 심정을 아내는 아는지 모르는지…. (관련기사 - 011 이용자 그냥 좀 놔두세요)

어느 날 갑자기 에어컨이 공짜로 생긴다면?

옵티머스원
 옵티머스원
ⓒ L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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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그렇게 스마트폰의 욕구를 접은 줄로만 생각하고 대충 넘어간 것이 화근이었나 보다. 2주 전 어느 날, 아내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홈쇼핑 보고 있는데, 스마트폰으로 번호이동하면 노트북이나 벽걸이 에어컨 중 하나를 준대. 가입비는 물론 한 푼도 안 내고 무료로 가입하고 24개월만 유지하면 된다는데…."

아리따운 쇼핑 호스트가 "7년 전에 에어컨 구매 시 김치냉장고를 사은품으로 준 기획 이후 다시 찾아온 최고의 기회"라고 꼬드기니 누군들 눈이 멀지 않으랴. 아내는 이미 눈이 휙 돌아가 거의 숨이 넘어갈 지경이다.

스마트폰 보조금 문제가 한동안 떠들썩했지만 나와는 전혀 무관한 일인 줄로만 알았는데, 결국 에어컨 앞에 나도 그만 공범이 되고 말았다. 귀신에 씌었을까? 나까지 판단력이 점점 흐려진다.

방송 중인 제품을 인터넷 쇼핑몰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해 보니 옵티머스원 기종에 45요금제를 24개월 유지 시 정말로 에어컨을 주는 것이었다. 가입비, 유심비 완전면제에 게다가 에어컨 설치비까지 무료란다.

두 아들에게 평소 "더위쯤은 참을 수 있는 게 진정한 남자"라며 끝까지 에어컨은 들여 놓지 않았는데, 유난히 더위가 빨리 찾아온 올해 후회를 하고 있던 터였다. 아담한 벽걸이 에어컨 하나 있어도 좋겠다 싶었는데, 딱 그 제품을 준다는 것이다. 또, 어차피 아내도 지금 폰을 바꿀 시기가 왔고, 이왕이면 공짜 폰이었으면 했고… 결국 대세는 스마트폰으로 기울고 만 것이다. 

해상도와 디자인 감수하고 '스마트폰' 존재감에 만족?

마침내 아내의 스마트폰이 도착했다. 생각보다 해상도가 썩 좋지 않고 화면크기도 작았지만 아내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까짓 것 2년만 눈 딱 감고 쓴다고 생각하니 그리 손해 보는 것도 아니다 싶었다. 명색이 스마트폰인데, 기능이나 디자인보다는 시대에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게 목표라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거실벽을 차지한 아담한 벽걸이 에어컨. 사은품이라기 보다는 내 돈 주고 내가 산 격이다.
 거실벽을 차지한 아담한 벽걸이 에어컨. 사은품이라기 보다는 내 돈 주고 내가 산 격이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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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벽걸이 에어컨도 1주일 만에 도착하여 배관과 앵글 설치 경비 등 8만 원만 부담했다. 이제 금년 여름은 에어컨 바람을 만끽하며 매달 통화 시간이 200분만 넘지 않는다면 24개월간 4만5000원(부가세별도)만 내면 되는 거다. (24개월×4만5000원+부가세10%= 118만8000원+@)

국내 이동통신 가입자가 5000만 명을 넘어 포화상태에 이른 지금, 이제는 이통사 간 스마트폰 가입자 쟁탈전이 가열되고 있었다. 이게 바로 한대 팔면 마진만 70만 원에 이른다는 말로만 듣던 '퇴근폰'일까? 아마도 홈쇼핑에 고액의 수수료율까지 부담하면서 수천 대는 팔았을 텐데, 도대체 얼마를 보조받기에 이러는 걸까?(관련기사 - "퇴근폰? 100대에 1대꼴... 손님에게 못할 짓" )

'골동품' 재고처리 차원에서 내놓은 땡처리 불과 

내 휴대폰 번호는 011-6OO-6OOO다. 큼지막한 터치 화면에 손가락만 살짝 눌러도 인터넷까지 연결되는 똑똑한 스마트폰의 첨단 기능도, 이 번호로는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다.
 내 휴대폰 번호는 011-6OO-6OOO다. 큼지막한 터치 화면에 손가락만 살짝 눌러도 인터넷까지 연결되는 똑똑한 스마트폰의 첨단 기능도, 이 번호로는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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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에어컨 사은품은 상당히 매력적인 조건이란 말인가. 아니면, 먼저 큰돈 내고 사는 사람들이 바보였을까? 인근 대리점에서 내막을 알아봤다.

"헉, 옵티머스원이요? 하하, 그게 언제적 스마트폰인데요? 결코 좋은 조건이 아닙니다. 결국은 요즘 사용하지 않는 기계 쓰는 보답으로 에어컨을 준다고 보면 되는 거죠.

이동통신사 보조금과 고객님의 요금으로 에어컨 값을 지불하고도 남아요. 45요금제면 에어컨을 장기 할부로 사셨다고 보시면 됩니다.

재고처리 차원에서 거저 팔려고 내놓는 땡처리인 셈이죠. 매장에서는 옵티머스원은 이미 골동품인데요? 지나가던 O도 무시하는 폰인데요, 뭘."

에어컨 사은품이 가능한 것도 제조사와 이통사들이 지급하는 과도한 보조금 때문이란다. 지난해 출시되어 유행이 지난 보급형 스마트폰을 재고처리차원에서 '공짜폰'도 모자라 수십만 원대 경품까지 얹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경품도 에어컨부터 시작하여 LCD TV, 내비게이션, 상품권 등 나날이 다양해진다고 한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다. 결국 에어컨은 확실하고 주효한 '미끼'였다. 무늬만 스마트폰인 한물간 구닥다리 폰을 덥석 받아 문 아내, 결국 내 돈 내고 내가 에어컨 산거다. 털썩, 역시 세상에 믿을 사람은 나밖에 없다.

공공장소에서 전화 받을 때 조금 창피한 거 빼고는 별문제 없이 잘 쓰고 있으니, 나라도 끝까지 버텨볼까? 


태그:#스마트폰, #에어컨, #보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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