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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온 국민이 속은 셈이 됐다. 국민라면으로 신뢰를 받아왔던 농심 '신라면'의 추락은 한 순간이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신라면 블랙'이다. 지난 4월 '설렁탕 한 그릇에 맞먹는 영양이 들어있다'면서 농심이 야심 차게 내놓았던 '신라면 블랙'을 두고, 27일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식적으로 "허위, 과장"이라고 밝혔다.

특히, 공정위는 이날 '신라면 블랙'과 시중 일반라면의 영양가를 구체적으로 비교해 놓고, "일반 라면 값보다 2배 이상 높지만, (일반 라면보다) 영양가는 10%정도 높은데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품질에 비해 값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이같은 사실 등을 발표하면서, 농심에 대해 "공정거래의 저해성 정도가 매우 크다"고 판단했다. 이어 회사 쪽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억5500만 원을 부과했다. 하지만, '신라면 블랙'의 허위광고 등에 비해 과징금 규모가 너무 적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신라면 블랙' 시장에 나오자마자, 칼들이 댄 공정위

지난 4월 12일 국내 라면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농심은 '신라면 블랙'이라는 이른바 프리미엄 제품을 내놨다. 대표적인 서민 먹거리였던 라면에도, 이른바 고급화 바람이 불어닥친 것이었다. 값도 라면 하나에 1300~1400원이었다. 기존 '신라면'에 비하면 거의 2배에 달했다.

농심이 지난 4월 출시한 '신라면 블랙'의 표시광고 내용.
 농심이 지난 4월 출시한 '신라면 블랙'의 표시광고 내용.
ⓒ 농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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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쪽은 신문 등 언론매체에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신라면 25주년 기념으로'라는 이름으로 "우골(牛骨)을 듬뿍 함유해서, 원기회복에 좋다"거나 "설렁탕 한 그릇의 영양이 담겨있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탄수화물과 지방, 단백질의 비율을 가리키면서 "완전식품에 가까운 식품"이라고까지 했다.

대형마트에서 당장 소비자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정부의 물가안정에 눈치보는 기업들이 편법적으로 값을 올렸다"는 비판부터 "라면에도 새로운 프리미엄바람으로 선택이 다양해졌다"는 의견까지 논란이 일었다. 한 중앙일간지는 미식가 등과 함께, 직접 시식해 맛을 비교한 기사를 싣기도 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올 들어 '물가 파수꾼'으로 앞장서온 공정위가 앞장섰다. '신라면 블랙'의 광고 내용이 사실인지, 직접 조사하겠다는 것이다. 공정위가 특정 먹거리 제품에 대한 이같은 조사는 매우 이례적이었다. 게다가 시장에 제품이 나온지 10여일 만이었다.

고혈압 유발하는 나트륨이 많고, '완전식품에 가깝다'는 것도 '허위'

결과적으로, 정부가 내놓은 '신라면 블랙'의 평가는 농심이 그동안 주장해 온 것을 거의 다 뒤집었다. 설렁탕 한 그릇과 비교한 영양가 수치에선, 실제 설렁탕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수치였다. 탄수화물은 78%, 단백질은 72%, 철분은 4% 수준에 불과했다.

신라면블래과 설렁탕 한그릇의 영양가 비교.
 신라면블래과 설렁탕 한그릇의 영양가 비교.
ⓒ 공정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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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진 공정위 소비자정책과장은 "비만 때문에 과다한 섭취를 경계하는 지방이 신라면 블랙에는 설렁탕에 비해 3.3배에 달했다"고 말했다. 이어 나트륨의 함양도 설렁탕에 비해 신라면 블랙이 1.2배 많았다는 것이다. 나트륨은 많이 먹을 경우 고혈압이나 뇌졸중 등 각종 질환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신라면 블랙은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의 비율이 가장 완벽한 균형을 이룬 완전식품"이라는 농심 주장도 허위라는 것이 공정위 판단이다.

최 과장은 "신라면 블랙의 경우 한 개에 들어 있는 나트륨의 양이 1930밀리그램으로 성인 나트륨 1일 적정섭취량의 97%에 달할 정도로 많이 들어있다"면서 "이를 완전식품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만약 신라면 블랙이 완전식품에 가까운 식품이라면, 기존 신라면 뿐 아니라 설렁탕, 비빔밥 등 대부분 식품이 완전식품에 가까운 식품이 된다"고 덧붙였다.

진라면과 비교했더니, 영양은 10% 더 높은데 값은 2배

공정위는 이같은 평가 결과를 내놓으면서, 농심에 대해 "공정거래 저해성 정도가 매우 크다"고 밝혔다. 특히 신라면 블랙의 소비자 값이 1300~1400원으로 일반 라면의 2배에 달한 점을 지적하면서, 상대적으로 영양가는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 공정위의 해석이다.

신라면 블랙과 진라면(오뚜기)의 영양가 비교
 신라면 블랙과 진라면(오뚜기)의 영양가 비교
ⓒ 공정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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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공정위가 이날 내놓은 신라면 블랙과 오뚜기의 '진라면'의 영양가 분석을 보면, 탄수화물이나 단백질, 지방, 칼슘 등에서 신라면 블랙이 약 10%정도 더 높을 뿐이었다. 게다가 기존 일반 '신라면'보다 품질이 좋아진 것에 비해 값이 더 높게 책정됐다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공정위는 이날 농심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억5500만 원을 부과했다. 과징금 산출 근거를 묻는 질문에, 최 과장은 "공정거래의 저해 정도에 따라, 과징금의 규모가 정해진다"면서 "부과 기준에 따라 매출액의 2%이내로 할수 있으며, 신라면 블랙의 경우 0.9%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말했다.

지난 4월12일에 출시된 신라면 블랙은 지난 두 달여 동안 160억 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다. 매출액만 따지면 최대 3억2000만 원까지 과징금을 매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공정위는 스스로 '공정거래 저해 정도가 매우 크다'고 해놓고도, 최대 부과 기준의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과징금을 매겼다. 과징금 규모 등 처벌이 너무 미약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태그:#신라면 블랙, #공정위, #설렁탕, #진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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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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