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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유적과 함께하는 '2011 겨울 만주기행' 여섯째 날(1월 15일)은 홍범도 장군 유적지를 끝으로 항일 유적지 답사를 마치고, 함경북도 남양시와 중국 도문시를 연결하는 '도문대교'에 들렀다가 중국에서 다섯 번째 큰 도시 심양(선양)으로 이동했다.

우리가 타고 갈 기차 출발시각은 오후 4시 13분. 중국은 기차역에서도 짐 검사를 하기 때문에 출발 1시간 전까지 나가야 한다. 그러나 인구 15만의 도문이 시발역이고, 표도 단체로 사놓아 서두를 게 없었다. 남는 시간을 이용해서 재래시장과 시내관광도 할 수 있었다.

빙당고를 값을 계산하는 인솔자 김두현씨(오른쪽). 만주에는 거리 곳곳에 ‘빙당고’ 손수레가 있었습니다.
 빙당고를 값을 계산하는 인솔자 김두현씨(오른쪽). 만주에는 거리 곳곳에 ‘빙당고’ 손수레가 있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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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을 둘러보고 역에 도착하니 오후 3시 40분이었다. 인솔자가 길가의 '빙당고' 수레를 발견하고 달려가더니 한 무더기를 사다가 나눠주었다. 추운 날씨에도 작은 사고 하나 없이 항일 유적지 답사를 마쳐주어 고맙다는 인사라고 했다.

처음 맛본 빙당고는 이름대로 얼린 과자였다. 딸기나 앵두 모양의 얼음과자를 대나무 꼬챙이에 꿰어 파는 빙당고는 그 옛날 영화관에서 사 먹던 땅콩처럼 별미였다. 새콤달콤한 맛에 얼음이 아삭아삭 씹히는 느낌은 먹는 재미까지 더해주었다.

도문역 검표구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승객들.
 도문역 검표구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승객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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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표 시간이 되어 대기실로 들어가니 승객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심양이나 하얼빈역과 달리 차분했다. 짐 검사도 복잡하지 않았다. 작년 8월 하얼빈 역에서 밀고 당기며 검색대를 통과하다 기차표를 잃어버렸던 악몽이 떠올라 쓴웃음이 지어지기도 했다.

박영희 시인이 도문에서 심양까지는 1000km가 넘는 거리라며 내일(16일) 아침 8시 넘어서나 도착할 거라고 했다. 일행들은 그렇게 먼 거리냐며 놀라워했고, 학생들은 심양-하얼빈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린다고 즐거워하며 작은 탄성을 터뜨렸다.

탑승 경험이 몇 차례 되는데도 가슴은 여전히 설렜다. 어려서부터 나돌아다니기 좋아했고, 버스로 2~4시간 걸리는 친척집에 갈 때도 오늘은 누구를 만날까? 기대하며 즐겼다. 그런 나에게 16시간 넘게 달리는 침대 열차는 최고의 낭만이요, 여행의 백미였다.

심양-하얼빈 기차표(상)와 도문-심양 기차표(하). 겨울에 만주에서 기차표를 구입할 때는 에어컨 설치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좋을 듯싶습니다.
 심양-하얼빈 기차표(상)와 도문-심양 기차표(하). 겨울에 만주에서 기차표를 구입할 때는 에어컨 설치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좋을 듯싶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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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솔자가 기차표를 나눠주었다. 11호 차 6인실 침대(잉워:硬臥) 7호 1층이었다. 잉워는 4인실 롼워(軟臥)와 달리 침대가 딱딱하고 자리도 불편하다. 그래도 기차에서 날을 샌다는 그 자체가 좋았다. 침대에 눕기만 해도 그동안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풀릴 것 같았다.

기차표를 이리저리 만져보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첫날(1월10일) 심양에서 하얼빈 가는 차표에는 잉워 앞에 한자로 '신공주(新空週)'라 적혀 있고, 요금도 139위안이었다. 그런데 그보다 먼 거리임에도 요금이 131위안이었고, 잉워 앞에 아무런 표시가 없었다.

좌석 종류를 말하는 잉워에 붙는 '신공주(新空週)'는 객실에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다는 표시였다. 겨울에 무슨 에어컨 타령이냐고 하겠지만, 바꿔 생각하면 소음이 적고 난방도 그만큼 잘 된다는 뜻과 같기 때문이었다. 

박 시인은 열차 내에 좀도둑(소매치기)이 있을지 모르니 여권과 지갑을 잘 챙기라고 당부했다. 공안(철도경찰)이 수시로 순찰을 하지만, 지갑은 먹잇감이나 다름없다는 것. 음료수나 라면 사 먹을 필요한 돈만 호주머니에 넣어두는 것도 지혜라고 말했다.

가장 좋은 술안주는 항일 유적지 답사 소감

도문-심양 K7374 열차.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었는데요. 한국의 70년대 특급열차를 떠오르게 했습니다.
 도문-심양 K7374 열차.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었는데요. 한국의 70년대 특급열차를 떠오르게 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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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행 기차는 오후 4시 13분 도문역 플랫폼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기차가 제 속력을 내기 시작하면서 짐 정리를 대충 마쳤다. 날이 어두워지자 박 시인과 인솔자가 있는 자리로 모여 도문시장에서 사온 과일과 컵라면 등을 먹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박 시인은 심양에 도착하면 민박집에서 아침을 먹고 낮에는 특별한 스케줄 없이 자유시간을 준다며 청나라 거리와 오애시장 등 둘러볼 곳 몇 군데를 추천했다. 만주 기행 마지막 날을 혼자 다니면서 밥도 사 먹고 쇼핑도 한다니, 호기심이 동했다.    

기차여행을 하면서 술이 빠질 수 없었다. 도수가 높아 조금씩 따라 마셨는데, 맛보다는 그윽한 향이 좋았다. 건포와 과일이 안주로 나왔다. 그래도 가장 좋은 술안주는 항일 유적지를 답사하면서 느낀 소감이었다. 하얼빈 송화강의 빙등축제와 도문대교 전망대에서 북녘을 바라볼 때 심정도 화제로 올랐다.

대화의 폭이 넓어지면서 북한 주민들의 어려운 생활상과 김일성, 김정일 부자 세습체제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대북 식량 지원과 천안함(2010년 3월26일) 사건, 북한의 연평도 포격(2010년 11월23일)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사람이 여럿이니 보는 눈과 생각이 다를 수밖에. 

독립군의 항일 무장투쟁 유적지와 일제의 대학살 현장, 두만강 넘어 북한을 바라보며 느꼈던 감정 등을 격의 없이 토론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민족의 자존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조선족 동포들의 생활상을 얘기하는 가운데 만주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카메라를 보며 포즈를 취한 학생들. 그들은 생각보다 만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카메라를 보며 포즈를 취한 학생들. 그들은 생각보다 만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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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서 일어나 기차가 출발하기 전부터 즐거워하던 학생들을 찾았다. 그들의 만주 기행 소감을 듣기 위해서였다. 무릎을 맞대고 재잘거리던 학생들(이루리, 박준근, 박지혜, 양다희, 양다영, 김기범)은 카메라를 보더니 활짝 웃으며 손가락으로 V자를 그려 보였다.
 
만주에서 며칠 지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게 무엇이었느냐고 물었더니 하나같이 화장실을 얘기했고 두 번째로 음식을 꼽았다. 입맛에 맞지 않았다는 것. 항일 유적지는 '봉오동 전적지'와 '청산리 전적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하얼빈역 순이었다.

대학 3학년 이루리 학생(여)은 얼음조각 전시장 하얼빈 빙등제와 청산리 전투 유적지를 꼽았고, 중학교에 다니는 박준근 학생(남)은 처음 보는 기차역의 검색대와 침대칸의 장단점을 지적하면서 김일성 사진이 들어 있는 서적을 구입했어야 하는데 후회된다고 말했다. 

"기차역에도 공항처럼 검색대가 있는 게 독특했어요. 중국 사정상 테러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으로 보였어요. 침대차는 좋긴 한데 오가면서 툭툭 건들고, 너무 좁아요. 중국 사람들이 우리를 흘겨보는 눈이 부담스럽고 쫌 무서워요. 그래도 재미있어요. 그리고 중국에 도착하던 첫날, 심양 서점에서 봤던 북한 만화가 지금도 생각나요. 참 신기했거든요. 김일성을 신적인 존재로 만드는 책은 무서웠고요. 그래도 그 책을 한 권 샀어야 하는 건데 후회됩니다."

학생들에게는 여러 의견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며칠을 함께 지내면서 생각이 하나가 되어 있었기 때문. 언니나 동생이 소감을 말하면 웃음과 박수로 동조했고, "그래요. 그래!"로 호응했다. 북한 주민의 식량 원조 문제를 놓고도 의견이 갈리는 어른들과 다른 모습이 부럽기까지 했다.

따뜻한 솜이불처럼 느껴졌던 만주의 '아침 햇살'

학생들과 대화를 마치고 하룻밤 안식처인 침대로 돌아왔다. 그러나 침대는 생각처럼 안식처가 아니었다. 춥고 외로웠기 때문. 일행들과 술을 마시고 학생들과 대화를 할 때는 몰랐는데 허전함이 밀려왔다. 기차 바퀴의 경쾌한 마찰음도 허전해진 마음을 달래주지 못했다. 시계를 보니 11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들녘의 무성한 잡초와 빽빽한 숲을 떠오르게 하는 성에꽃.
 들녘의 무성한 잡초와 빽빽한 숲을 떠오르게 하는 성에꽃.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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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되니까 주위 물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유리창에 활짝 핀 성에꽃도 그때야 보였다. 옷을 벗고 침대에 누우니까 피로가 풀리기는커녕 추위가 몰려왔다. 출입문 옆이어서 더 추웠다. 코 고는 소리에, 상층 승객이 올라가면서 허벅지를 밟으니까 짜증까지 났다.

돌아오는 기차는 최악이었다. 매케한 연기가 객실까지 들어왔고, 연기를 따라 들어온 찬바람은 황소바람이 되어 오싹오싹하게 했다. 벗었던 옷을 다시 껴입었지만 신통치 않았다. 모두 소등을 해서 객실이 캄캄하니까 더 외롭고 쓸쓸했다.

다른 때는 통로의 의자에 앉아 칠흑 같은 창밖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기기도 하고, 아이처럼 화장실에 들락거리기도 했다. 그런데 꼼짝도 하기 싫었다. '여행이 아니라 고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편해야 낭만도 있고 성에도 꽃으로 보이는 것 같아 쓴웃음이 지어졌다.

심양을 한 시간 정도 남겨놓은 지역에서 만났던 아침 햇살.
 심양을 한 시간 정도 남겨놓은 지역에서 만났던 아침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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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만 벗고 침대에서 뒤척이기를 몇 차례. 어렵게 잠들었다가 눈을 뜨니 창밖이 붉은색을 띠면서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들어오는 만주의 아침 햇살이 솜이불처럼 따뜻하게 느껴졌다. 기다리던 손님이 찾아온 것처럼 반가웠다.

내릴 시간이 되어 배낭을 정리하는데 "히터도 들어오지 않고, 추워서 얼어 죽는 줄 알았어요!" 소리가 들려왔다. 박준근 학생이었다. 나 혼자만 고생한 줄 알았는데, 웃음이 나왔다. 심양역에 도착하니 아침 8시 25분. 맨몸으로 긴 터널을 빠져나온 기분이었다.

민박집에 도착하니 TV에서는 이날(16일) 심양의 아침 기온은 영하 29도이고, 한국 서울은 영하 17.5도까지 내려갔으며 이러한 강추위가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2011년 1월10일부터 17일까지 항일유적과 함께 하는 겨울 만주기행을 다녀왔습니다.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만주 침대열차, #추위, #도문,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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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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