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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의 연기, 그 자리에 김주원이 있었다
 진심의 연기, 그 자리에 김주원이 있었다
ⓒ 곽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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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오후 3시 5분. 국립발레단 연습실. 한 '줄리엣'의 연기가 기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고혹적이고 은유로운 매혹의 연기는 이내 공간을 감동으로 장악해 나갔다. 젊고 강렬한 '로미오'(이동훈)와 짝을 맞춘, 완숙한 줄리엣의 연기는, 첫 연습이 가져다주는 낯섦 속에서도 빛을 냈다. 아름다웠다.

한 동작, 한 동작을 예술로 승화시키려는 줄리엣 발레리나의 노력, 그녀의 연기 속에는 불꽃 같은 무엇이 담겨 있었다. 지켜보는 객(客)의 눈에 파란이 일었다. 끊임없는 춤에 대한 갈망, 시간과 싸우는 발레리나의 열정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진심과 함께, 그녀가 다가왔다. 대한민국 발레의 자부심, 김주원 발레리나(34, 국립발레단).

김주원 발레리나 "14년 세월, 나는 계속 변해왔던 것 같다"

"반가워요. 김주원입니다."

대한민국 발레의 자부심과의 첫 만남. 짧지만, 선명한 음성이 가슴에 와닿았다. 1998년 김주원 발레리나는 국립발레단 <해적>의 주연으로 혜성같이 등장했다. 풍부한 표현력을 지닌 그녀의 등장은 새로운 스타를 찾던 발레계에 단비와 같은 소식이었다. 첫 주연을 맡은 이후 이어진 14년의 발레 인생. 그녀는 한결 같았다. 감동의 연기를 펼치는 독보적인 발레리나였다.

국립발레단에서 만난 김주원 발레리나
 국립발레단에서 만난 김주원 발레리나
ⓒ 이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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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긴 시간 동안, 국립발레단 주연 발레리나로 무대와 함께 했던 김주원 발레리나. 긴장과 싸우며 끊임없이 예술을 갈구했던 그녀의 '춤' 인생은, 듣는 이의 마음에 특별한 전율을 전해주기 충분했다. 2011년, 김주원 발레리나는 국립발레단의 상징처럼 <지젤>, <왕자호동>등에서 맹활약하며 주연 발레리나로 연기를 펼치고 있다. 그 한결같음의 비결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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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한결같은 활약을 펼치는 비결이 궁금합니다. 그때의 연기와 지금을 비교해 본다면요?" 

"처음 국립발레단에 입단해 첫 주연을 맡았을 때의 저와 지금의 저는 당연히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제가 국립발레단에 들어온 지 14년이 다 됐네요. 그 시간에는 제 세월이 녹아 있어요. 그래서 그때의 김주원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이 있고, 할 수 없었던 것이 있을 거예요. 지금 여전히 관객들이 절 지켜봐 준다는 것은 계속 변화해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알지 못했던 경험이 쌓였다고 생각해요."

과거와 비교해 경험이 쌓였을 것이라고 말하는 김주원 발레리나. 수없는 공연을 치렀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을 법했다. 하지만 그녀는 특별히 잘하거나 못한 공연은 없었다고 말한다.

"한 번 한 번, 올려진 무대마다 공을 들였습니다. 물론 관객분은 어떤 공연에 대해 별로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지만, 저는 순간에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가 없어요. 공연이 끝나고, 휴식은 예술 일을 하는 지인들과 제 발레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이에요."

그녀는 매 공연에 여운을 남기지 않았다. 공연 후, 지인들과 자신의 연기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작품에 대한 마지막 재마저 뜨겁게 산화시켰기에…

"사실, 저는 특별한 슬럼프가 없어요. (연기로 인해) 스트레스 받고 힘들 때면 더 춤을 춥니다. 더 해봐요… 어려움이나 슬럼프가 극복될 정도로!"

발레에 온 열정을 쏟는 것, 그리고 후회를 남기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은 김주원 발레리나가 지난 긴 시간 특별한 슬럼프를 겪지 않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발레 인생 최대의 위기 족저근막염, 사망 선고 같았다"

김주원에게 찾아왔던 족저근막염 부상, 그녀는 끊임없는 재활 훈련을 통해 무대에 복귀했다
 김주원에게 찾아왔던 족저근막염 부상, 그녀는 끊임없는 재활 훈련을 통해 무대에 복귀했다
ⓒ 이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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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그녀에게, 지난 2005년에 찾아온 부상은 발레 인생 최대의 위기였었다. 춤을 출 때 심한 통증이 밀려온 것이다. 불안감에 찾은 병원에서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이 떨어졌다. 족저근막염. 통증을 수반하는 이 질환은 수많은 무용가, 운동 선수들의 꿈을 놓게 만드는 것으로 악명을 떨치는 질환이다. 김주원도 고통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심한 통증에 제대로 춤을 출 수 없었다. 토슈즈를 신기조차 버거웠다. 하지만 수술과 재활 모두 큰 희망을 걸 수 없는 상태였다. 그녀는 당시의 순간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절망이었어요. 춤을 추는 한 가지 꿈 밖에 없던 제게, (그것은) 사형선고 같았으니까요. 언어를 앗아간 것과 같았죠. 다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었고, 어떻게든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만 가졌었습니다. 수술 대신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재활운동에만 매달렸어요. 춤을 5개월 동안 안 췄는데. 극장 쪽으론 도저히 못 오겠더라고요. 너무 슬플 것 같아서. 그때 제 소원은 아프지 않고 무대에 서는 거였어요."

그녀의 연기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이겨낸 산물이다
 그녀의 연기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이겨낸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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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발레리나의 발레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지만, 포기 대신 재활에 매진했다. 희망을 놓치 않았다. 다행히 그 열정은 작은 기적을 만들어 냈다. 긴 재활 끝에 족저근막염의 통증이 씻긴 듯이 사라진 것이다.

고된 재활훈련과 발레를 포기하지 못했던 김주원, 그녀는 무대로  돌아왔다. 김주원 발레리나는 아픈 만큼 성숙해 있었다. 고통을 자양분 삼은 그녀의 연기는 내면적으로 더욱 깊어졌다. 김주원은 발레 한동작 한동작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표현을 갈구하는 노력파다. 예술적 표현을 위한 그녀의 노력은 치열했다.

"리허설이 힘든 이유가 동작 하나하나에 의미부여가 안 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연습에서 의미 없이 시선을 두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에요. 왜 여기서 아라베스크(다리를 드는 동작)를 해야 할까, 이런 고민이 있어요. <백조의 호수>, <지젤>, <돈키호테>, 그리고 <로미오 줄리엣>의 아라베스크는 전부 달라요. 그렇기에 처음부터 하나하나 만들어가야 해요. 정립을 시키는 일이 고되요.(웃음)"

부상을 딛었던 그 해의 연기가 빛났다. 2006년. 김주원 발레리나가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 최고여성무용수상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발레계의 아카데미상이라 할 수 있는 '브누아 드 라당스'의 수상은 그녀가 고통과의 기나긴 싸움에서 승리했음을 의미했다.

<로미오와줄리엣>의 줄리엣의 연기 연습중인 김주원 발레리나
 <로미오와줄리엣>의 줄리엣의 연기 연습중인 김주원 발레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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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뚫고, 빛의 연기를 선사한 김주원. 그런 그녀가 생각하는 훌륭한 춤은 어떤 것일까? '어떤 춤이 좋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묻자, 김주원 발레리나는 간소한 대답 대신 유년 시절의 특별한 경험에 대해 말해준다.

"제 유학시절(러시아) 이야기를 들려 드릴게요. 한 지역에 유명, 비유명 화가 그림을 내다 파는 곳이 있는데, 보러 간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림을 보는데 (이상하게) 저는 유명 화가들보다 유명하지 않는 화가 그림이 더 맘에 들 때가 많았어요.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같이 동행했던 박물관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니가 볼 때 감동하는 그림, 좋게 생각되는 예술이 좋은 거다. 너에게 있어 진심이 느껴지는 면 그자체로 좋은 것'이라고, "

김주원 발레리나는 말을 이었다.

"제가 생각하는 진짜 춤은 관객들이 볼 때 감동적이라고 생각하고, 진심으로 이해를 하는 춤이라고 믿어요. 단순한 음계를 치면서도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감동 연주처럼, 그런 진심이 담긴 춤이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댄싱 위드 더 스타> 발전된 춤 위한 조언자 되고 싶다"

토슈즈를 신고있는 김주원 발레리나
 토슈즈를 신고있는 김주원 발레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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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김주원 발레리나는 최근 발레계에 불고 있는 콩쿨 열풍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발레는 예술의 영역이지, 경쟁의 대상이 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 보면 콩쿨에 혈안이 되어 있어요. 저는 콩쿨을 싫어해요. 콩쿨의 등수를 매기는 순간 예술을 잊게 되니까요. 좀 더 중요한 게 뭔지 지도하는 선생님들이 아셨으면 좋겠어요. 당장 앞서있고,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춤을 춰나가는 과정에서, 뭔가 중요한 의미를 깨달아야겠죠. 유명한 발레학교에서는 주요 발레리나를 콩쿨에 내보내지 않아요. 그런 의미에서 콩쿨보다 발레학교가 필요한 것 같아요"

최근 김주원 발레리나는 무용에 대한 비평이 많아졌다. 얼마 전,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는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의 쇼트 프로그램 '지젤'에 대한 극찬을 하기도 했다. 같은 곡을 연기한 다른 해외 피겨 선수들의 안무와는 예술적으로 다른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칭찬 속에는 지젤 발레리나로서의 날카로운 비평이 담겨있는 듯 보였다. 김주원 발레리나는 피겨여왕 '지젤'의 어떤 부분에 주목했던 것일까.

무대 위에서 빛나는 발레리나, 김주원
 무대 위에서 빛나는 발레리나, 김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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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말했던 춤의 중요한 부분은 테크닉을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테크닉은 우선 기본이 돼야겠죠. 테크닉 이면의 진심이라는 게 중요해요. 이것은 어떤 척, 예를 들어 친절한 척 같은 겉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에요. 관객과의 소통. 음악과의 소통이 진짜 담겨야 진심이 되는 것이니까요. 어떤 결과적인 포즈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슬픈 척이 아니라 진짜 괴로워하고 진짜 지젤이 돼서 우는 것, 그 역할 자체가 되는 것이죠." 

발전된 춤에 대한 조언자가 되고 싶다는 김주원 발레리나, 그녀는 현재, MBC <댄싱 위드 더 스타>(금요일 오후 9시 50분)에서 심사위원으로도 활약 중이다. 각 분야 명사들의 춤을 평가하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 분명 흥미로운 도전임에 틀림없다.  

"<댄싱 위드 더 스타> 심사위원 활동은 재밌어요. (웃음) 제가 댄스 뮤지컬을 했었던 게 인연이 됐어요. 하지만 조심스러운 면이 있는 게 사실이에요. 한 가지 전제해야 될 것이. 이 도전이 그 분들의 삶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춤에 대한 평가라는 점을 알아 두셨으면 좋겠어요. 사실, 처음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어 심사숙고했었지만, 발전된 춤을 위한 조언자가 되고 싶어서 하게 되었습니다."

김주원 발레리나는 좋은 춤에는 '진심'이 깃들었다고 말한다
 김주원 발레리나는 좋은 춤에는 '진심'이 깃들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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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발레리나는 이 프로그램에서 진심이 깃든 춤을 봤다고 말한다. 바로 연기자 김영철씨의 춤이었다.

"지난 방송에서 김영철씨가 우승을 했어요. 모든 분들의 눈시울을 붉게 만든 가슴 찡한 춤이었어요. 춤에 스토리를 입혔어요. 아빠가 딸을 결혼 보내는 이야기의 왈츠, 춤을 보며 저희 아버지 생각도 나고,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했어요. 다들 코끝이 찡했죠. 이처럼 진심이 담긴 춤은 다른 이의 마음을 움직여요. 출연자 분들, 모두들 열심히 하시더라고요. 인대가 늘어난 적도 여러번이고요… 사실 이제, 방송이 생방송으로 진행돼 이미지 걱정도 되지만,(웃음) 악역이 되더라도 더 나은 발전에 도움이 될만한 조언을 아끼지 않겠어요."  

피겨 여왕 김연아, 연기자 김영철. 세기의 발레리나 김주원을 감동시킨 그들의 춤에는 모두 '진심'이 깃들어 있었다. 김주원 발레리나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그 좋은 춤을 추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냐고, 들려온 답은 뻔했다. 하지만 김주원이기에 그 답변에는 이상한 힘이 있었다.

"절 돌이켜보면, 노력한 만큼 늘었어요. 재능은 중요치 않아요. 물론 누가 갖지 못한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으면 좋겠죠. 하지만 그런 것만 가지고는 결국 누굴 흉내내는 것에 불과해져요. 모든 게 노력이었어요. 자신이 노력한 만큼 공들인 만큼 무대에서 나옵니다."

음악은 악기가 도구이듯, 발레는 몸이 악기라고 말하는 김주원 발레리나. 그녀는 '연기 생명이 짧은 발레'에 불꽃같은 연기를 선보이기 위해, 오늘도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진심이 깃듯, 춤의 무대는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자리에 김주원이 있었다.


태그:#김주원, #발레리나, #국립발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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