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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옥진이의 결혼식날. 늦을까 봐 부랴부랴 뛰었다
 내 친구 옥진이의 결혼식날. 늦을까 봐 부랴부랴 뛰었다
ⓒ 곽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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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날처럼 모니터를 앞에 두고 기사를 정리하고 있는데, 이제 막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정신없을 친구가 대뜸 말을 걸어 나에게 한소리를 한다. 결혼식 날 폐백까지 촬영하느라, 혼자 밥 먹는 모습을 본 모양이다.

"야, 그날 커플도 탄생했건만 넌 대체 뭐 한 거야? 예쁜 친구 있으면 끼어서 같이 먹지!"
"에고, 그러게. 마음에 드는 사람 있으면, 우리 식사 같이 할까요? 했어야 하는데!"

그 말에 친구가 웃는다.

"이런, 진성! 그건 너무 유치해! 일단 아무 말 없이 앉아야지. 냅킨 좀 집어 달란 식의 사소한 부탁으로 눈 마주치고 말을 튼 후에 이런 저런 대화의 물꼬를 터야 자연스럽지!"
"아! 맞다 맞다!"

여전한 내 연애사부, 왠지 마음이 좋다. 결혼 후에도 변치 않는 우정이라니 든든하다.

내 연애사부 결혼하다!

결혼식, 밝게 웃고 있는 옥진이와 지인 김지은(26)씨!
 결혼식, 밝게 웃고 있는 옥진이와 지인 김지은(26)씨!
ⓒ 곽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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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서울 왕십리의 한 예식장에 가는 내 발걸음이 총총 분주했다. 세상에 몇 명 없는 내 '절친'의 결혼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젊은 날에 처음으로 초대받은 친구의 결혼, 게다가 결혼식 사진 촬영을 해달라는 부탁까지 받았기에, 늦으면 안 된다는 조급함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1시 30분에 시작한다는 결혼식이 1시간이나 남았었지만, 마음이 괜히 바빴다. 체감 속도론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우사인 볼트'가 되어, 달리고 또 달렸다.

'헉, 헉 에고 힘들다. 드디어 도착했네.'

주말 오후라 햇살은 뜨겁고, 예식장 엘리베이터는 사람들로 넘쳐났지만, 햇볕과 씨름하고, 사람 숲을 탈출한 끝에 간신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2011년 6월11일, 1시30분. 햇살이 눈부시게 밝은 날에 내 친구가 결혼을 한다. 신랑, 신부 알림판에 적힌 그의 이름에서 그 사실을 실감한다. 친한 친구의 결혼… 그 이유 하나로, 빛나는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옥진아! 나왔어. 으악, 나. 완전 늦을 뻔했어!"

신부 대기석에서 동생과 웃고 있는 친구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옥진이와 그녀의 동생 문가을씨, 인어공주 포즈를 취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옥진이와 그녀의 동생 문가을씨, 인어공주 포즈를 취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곽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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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진성아. 반가워. 올라오느라 수고했어. 정말 정말 고마워."

친구도 웃으며 답을 준다. 친구의 밝은  목소리에서 결혼을 앞둔 들뜸이 그대로 느껴졌다.

내 친구 옥진이. 그와의 인연은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린 동네 친구도, 학교 친구도 아니었지만, 서로 친구가 될 운명이었던지 한 대기업이 주최한 파티에서 우연히 알게 된 후, 급 친해졌다.

"진성아, 그때 생각나? 그렇게 친해진 것 진짜 신기하다."
"그러게, 나 그때 너 섬 마을 아이인지도 몰랐다니깐, 태생이 강남 여잔(?) 줄 알았어."

옥진이와 가끔 만나면 이런 이야기를 하곤 한다. 20대에 누군가와 마음을 터놓고 친해지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처음에 봤을 때는, 이렇게 친해질지 정말 상상도 못했다. 인상만 보고 '깐깐한 사람이겠다'정도로 생각해 거리를 두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계속 만나본 이 친구, 내 못난 편견을 와장창 깨는 사람이었다. 진국이란 표현이 잘 어울리는, 다른 이의 고민을 친절히 들어주는 따뜻한 인격의 친구였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어느덧 내 인생의 고민들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절친이 되었다.

특히 답이 없을 것 같은 젊은 날의 고민, '연애' 문제에서 그는 내 나침반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잡다한 연애관련 서적을 바이블 삼아 대처하고 있던 내게, "그런 공식은 별로 소용없어. 여자는 경우의 수가 많은 종족이라고. 이렇게 한 후에 이런 반응을 보이면 이렇게 해봐. 서로 호감이 있는 사이라고 했으니까 분명 효과 있을 거야. 전혀 그런 반응이 없으면 널 연애 대상자로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니 포기하고"라고 던진 조언, 마치 '적벽대전'의 제갈량의 묘수 같은 것이었다.

옥진이의 결혼식, 신부 입장 순서
 옥진이의 결혼식, 신부 입장 순서
ⓒ 곽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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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조언에 용기를 얻고 다음날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했던 나, 그 뒤 행복한 만남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 날부터 옥진이는 내게 제갈공명 뺨치는 연애 사부, 옥갈공명이 되었다. 옥갈량이란 별명에 친구는 활짝 웃었다.

그 뒤, 우리는 서로 인생의 조언을 해주는 참 바른 '우정'을 이어왔다. 인생에서 내 편의 중요성을 그 친구를 보며 배워갔다. 젊음 시절 같은 편이 있다는 사실은 가슴 든든한 일이었다.

시인이 꿈인 친구, '시집'은 가는 게 아니라 내는 거랬건만...

예식장에 도착한 뒤, 나는 숨 돌릴 틈도 없이, 카메라를 꺼내 기념촬영을 시작했다. 다른 친구의 결혼이었으면 이런 번거로운 촬영 일을 맡는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친구이기에, 정말 소중한 친구이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다.

친구 옥진이의 꿈은 시인이 되는 것이다. 글재주가 뛰어난 친구이기에 분명 언젠가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친구가 시집을 가고 싶다고 했을 때, 장난스레 이런 말을 해줬던 기억이 있다.

선남 선녀, 문옥진, 김길수씨.
 선남 선녀, 문옥진, 김길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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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시집은 가는 게 아니라! 내는 게 먼저야! 빨리 시인돼서 한턱 쏴!"

그 말에 "맞다, 맞다"며 웃었던 친구. 그 기억이 새롭다. 그렇게 시집은 가는 게 아니라 내는 거랬건만, 친구는 이 빛나는 여름, 행복한 결혼식을 올린다. 하지만 아쉬움은 없을 것 같다. 정말, 백마 탄 왕자님 같은, 멋진 사람이랑 인연을 이었기 때문이다.

내 연애사부 옥진이의 신랑 김길수(33)씨는, 같은 남자가 보기에도 훈남인 사람이었다. 친구와 틈틈이 나눴던 대화에서 들은 신랑의 이야기는 '세상에, 저런 멋진 남자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단했다. 직업, 외모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한다는 점에서 그랬다.

"신랑, 신부는 서로 사랑하고…"

주례 선생님의 따뜻한 말 속에 결혼식은 아름답게 진행됐다. 선남선녀의 결혼식이었기에, 보는 내내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비단 친구인 내 마음이 이런데, 양가 부모님들의 마음은 얼마나 따뜻할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특히 옥진이 어머니의 마음이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사임당 어머니와 섬마을 5남매, 결혼식이 더욱 빛났던 이유

옥진이네 아버지(문현욱), 어머니(황강순).
 옥진이네 아버지(문현욱), 어머니(황강순).
ⓒ 곽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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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마을에서 자식 5남매를 똑똑하고 따뜻하게 키워낸 뿌듯함이 어머니께 있을 것 같았다.  한번은 친구 옥진이와 대화하다가 낌짝 놀랐던 적이 있다. 어머니(황강순, 52)가 TV에 출연한다고 깜짝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다. 

나중에 알아보니, 옥진이네 가족은 특이한 삶의 이력을 지니고 있었다. 섬마을(도초섬) 5남매가 열심히 공부해 좋은 결실을 맺어, 다른 사람들의 귀감이 됐다. 그래서 한 방송사의 아침 프로그램에 옥진이네 어머니가 자녀 교육법과 관련해 출연을 하기로 한 것이다. 세상에, 내 친구 어머니가 '현대판 신사임당'이셨다니,

"옥진아, 그걸 왜 이제 말해! 어머니 인터뷰 좀 시켜줘!"
"엥? 너가 안 물어봤잖아! 우리 엄마, 서울이 너무 멀어, 다시는 못 가시겠다는데?"
"아…그럼 내가 갈까?"
"엥? 갈수 있겠어? 우리 집 배타고 한참 들어가야 하는데. 도초섬이야!"
"윽, 나 배 멀미 할텐데…"
"그럼 나중에 내 결혼식 때 인터뷰 해!"

거리 때문에, 배 멀미 때문에 못했던 인터뷰, 친구의 결혼식에서 그렇게 인터뷰 하고 싶었던 어머니를 앞에 두고도, 차마 인터뷰를 하지 못했다. 결혼식의 행복한 기분을 혹여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마음속으로만, '이런 좋은 친구를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할 뿐이었다.      

옥진이의 개성 넘치는 3동생.  가을, 진아, 가영씨.
 옥진이의 개성 넘치는 3동생. 가을, 진아, 가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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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진이의 개성만점 3동생들의 축하 공연
 옥진이의 개성만점 3동생들의 축하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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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결혼식의 백미는 옥진이의 동생들 3자매가 축하 공연을 하는 것이었다. 개성 넘치는 3자매, 문가을(26, 순천향병원 인턴의사), 문진아(23, 광주교대4). 문가영(20, 서울대 영문과2)과 섬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남동생 문성진(17, 도초고)을 보니 괜히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언니, 결혼 축하해! 이제 동생들은 내가 지킨다." (문가을)
"형부, 우리 언니 행복하게 만들어 주실꺼죵!" (문진아)
"언닌 이제 내조의 여왕!" (문가영)

축가 막간을 이용한 3자매의 멘트에 하객들이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행복한 결혼식, 나도 이런 결혼식을 꿈꾼다

결혼식 부케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결혼식 부케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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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옥진이의 행복한 결혼식...... 나도 저런 결혼식을 꿈꾸게 된다!
 내 친구 옥진이의 행복한 결혼식...... 나도 저런 결혼식을 꿈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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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즐거운 기분 속에 결혼식은 새로운 출발을 알리며 끝이 나고 있었다. 친구들의 박수 속에 부케는 하늘 높이 날아올랐고, 이제 결혼의 설렘은 다른 사람의 몫이 되었다. '연애사부' 옥진이의 기분 좋은 결혼식 앞에서, 문득, 나도 저런 행복한 결혼식의 주인공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 모쪼록 우리 사부(?)님의 행복한 날들을 바래본다.

나도 얼른, 내 연애사부가 "굿!"이라고 할 만큼, 좋은 사람을 만나야겠다. 여름날 내 소중한 친구의 결혼식은 그런 자극을 줬다. 열심히 내 짝을 찾다보면, 언젠가 내 연애사부의 훈남 만큼 멋진 '훈녀'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태그:#연애사부, #결혼, #문옥진, #김길수, #옥갈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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