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낯선, 어떤, 산수풍경>, 분도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어떤, 낯선' 한국화 개인전의 제목이다. 갤러리 안으로 들어가 보면 정말 '낯선'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빨간 자동차, 빨간 패러글라이더, 빨간 지붕, 노란 코끼리, 노란 소파...... 화가는 분명히 '산수풍경'이라고 했는데, 화법은 그렇다 하더라도 산도 아니고 물도 아닌 갖가지 사물들이 그림의 소재로 선택되어 화폭을 어지럽히고 있다.

어지럽힌다? 바꿔 말하면 <낯선, 어떤, 산수풍경>에 출품된 작품들이 실험적이라는 뜻이다. 출품작 중 '노란 소파가 있는 풍경' 같은 경우는 제목만 보아도 그렇다. 본디 서양 물건인 소파가 그것도 노란 색깔이라면 우리의 전통적 정서와는 거리가 멀다.

박병춘 작 <과수원이 있는 풍경>. 사진은 촬영했거나 스캔한 것이므로 실제 작품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하, 다른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박병춘 작 <과수원이 있는 풍경>. 사진은 촬영했거나 스캔한 것이므로 실제 작품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하, 다른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 정만진

관련사진보기



조용진과 배재영이 저술한 <한국화란 어떤 그림인가>를 보면 한국화는 '동양 전래의 재료와 용구를 사용'해서 '한국화적인 소재와 기법'으로 '한국적 정서를 표현해야 한다'는 대목이 있다. 그렇다면 분도갤러리에 전시된 노란 소파 그림은 한국화인가, 아닌가.

그렇다고 섣불리 판단을 할 필요는 없다. <한국화란 어떤 그림인가>의 저자들이 '재료, 용구, 소재, 기법, 그리고 예술관을 모두 충족한 그림은 말할 것도 없지만, 최소한 이 중에서 무엇 한 가지만이라도 한국적이라야 한국화라 할 수 있다'면서 '한국화 화가 자신이 전통적 산수를 새로운 방법으로 표현하고자 의도했다면 그것은 한국화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규정한 대목을 음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림의 작가가 누구인지 살펴보라는 주문을 받아들이자는 말이다.

<길이 있는 풍경>
 <길이 있는 풍경>
ⓒ 정만진

관련사진보기


'낯선, 어떤, 산수풍경'의 화백은 전통적인 우리 그림을 현대적으로 탈바꿈해내는 작업에 몰두해왔던 한국화가 박병춘 덕성여대 교수이다. 그의 최근 작업은 전통적 풍경 묘사 위에 엉뚱한 사물을 추가함으로써 산수화가 가지는 본연의 의미를 뒤틀어버리는 데에 흥미가 쏠려 있다. 흑백의 묵 그림으로 구현한 절벽 위에 빨간 패러글라이더가 '불쑥' 떠 있는 작품들은 작가의 그러한 실험성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두고 실험적 화풍으로 볼 수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전통적 산수화를 그리던 시대와는 달리 지금은 하늘에 패러글라이더가 실제로 떠 있는 세상이니까. 박병춘의 작품 앞에 선, 그림 애호가 아닌 일반인들이 빨갛고 노란 패러글라이더보다도 어쩌면 붓선을 수직으로 되풀이 그어 산세와 나무를 표현해낸 산수의 풍경을 더 낯설어할지도 모른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동양의 산수화와 서양의 풍경화가 가지는 차이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현실에 존재하지는 않지만 그런 곳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속의 비경(秘境) 산수를 표현하는 것이 동양의 산수화였고, 서양의 풍경화는 자연을 객관적으로 재현하는 데 중점을 두어왔다는 점에 착안한다면, 박병춘 화백의 파격은 분명히 실험적인 그림이다. 한적하고 아름다운 비경의 산수 속에 누군가가 노란 소파를 버려두고 간 것을 실제로 목격한 박 화백이 그것의 진경을 산수화적 기법으로 표현해 낸 작품이 바로 '노란 소파가 있는 풍경'이라는 해석이다.

이 부분에 대한 윤구홍 평론가의 말을 들어보자. 그는 작품 해설을 통해 "작가의 정신세계를 물질적인 화폭에 옮겨놓으며 가상의 공간을 반복적으로 생산하는 관념산수의 전통이 아닌, 실재하는 장소의 경관을 재현하는 진경산수의 방법에서 박 화백은 실험적 필선구사법을 결합하고 있다."면서 "이번 전시 또한 작가가 강원도의 외딴 산지를 돌아다니며 물색한 곳에서 붓으로 스케치한 작업에 기대고 있다."고 평가했다.

박병춘 화백의 <어떤, 낯선, 산수풍경>전은 6월 20일부터 7월 16일까지 열린다. 전시장인 분도갤러리는 대구시 중구 대백프라자 옆에 있다.

<노란 소파가 있는 풍경>
 <노란 소파가 있는 풍경>
ⓒ 정만진

관련사진보기



태그:#박병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