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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서 연락이 왔다. 이름도 무시무시한 '강도 상해'라는 죄목으로 그 아이가 체포되었으니 급히 재학증명서와 생활기록부 사본을 보내란다. 교사 경력 20년이 넘는 나에게도 '강도상해'는 충격이다. 돌아보면, 그 아이가 이 학교에 처음 왔을 때부터 사건은 이미 시작된 듯싶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면 소재지 공립인문계 고등학교로서 갈수록 학생 수가 줄어들고 있다. 우리 사회의 엄청난 경쟁 구조 속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열악한 조건의 학교다. 나는 2010년부터 이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회과 교사다.  

 

사실 이런 지역사회가 중심이 되는 학교에서는 지역 분위기가 학교 분위기를 크게 좌우한다. 지역 주민 대다수가 이 학교 졸업생이고 또 학생들 대부분은 그들의 자녀이다. 그래서 학교의 일이 지역의 일이 되는 사례가 많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올해 우리 학교에 입학한 신입생 규모는 대한민국 농촌 분위기를 반영하듯 한 반 모집에 그쳤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의 학력은 예년보다 많이 떨어졌고, 학기 초부터 크고 작은 사건으로 지역사회와 학교를 어지럽게 했다. 사건이라야 절도가 큰 죄이고 나머지는 어른에게 욕설한다든지, 혹은 폭행 사건에 휘말리는 정도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강도상해'이니 학교 선생님들도 크게 걱정하고 있다. 

 

고교생이 강도상해라니... 시골 학교 교사는 괴롭습니다

 

강도상해를 저지른 그 아이는 작년에 시 지역에서 실업계 고교에 진학했다가 중도 포기하고 올해 3월 말에 전입해 온 복학생이다. 이래저래 신경이 쓰였는데, 나의 걱정은 얼마 되지 않아 현실로 나타났다. 흡연으로 심심찮게 적발이 되더니 4월에는 젊은 여교사 수업시간에 노골적인 수업거부까지 하며 여러 선생님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줬다. 

 

그 아이가 며칠씩 결석하는 날에는 오히려 선생님들이 "그 반 수업분위기가 좋다"고 농담 아닌 농담을 할 정도로 그 아이는 학교와 점점 멀어졌다. 작년 휴학 중에 저지른 절도 탓에 경찰에 입건되어 보호관찰처분을 받은 그 아이에게 학교에서 오전을 넘기는 건 참으로 힘든 일처럼 보였다. 

 

'강도상해' 전화를 받은 날이 금요일(10일)이라 주말을 보내고 다시 경찰에 전화해 보았더니 구속되어 검찰에 송치된 상태라 했다. 앞에 저지른 사건도 있으니 이번에는 쉽게 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불길한 생각도 든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대한민국 농촌의 현실과 거기에 있는 학교, 특히 고등학교를 생각해 본다. 나도 농촌 출신이고 농촌 고등학교를 졸업해 지방 국립대를 졸업한 뒤 교사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 학교에서 교사가 되고자 하는 아이는 없다. 대학 진학도 어렵고 설사 진학해서도 임용고시라는 큰 산이 있기 때문이다. 또 공부에 뜻이 없는 학생이 상대적으로 많다 보니 정작 공부하려는 학생들은 선의의 피해를 입는다. 성적이나 형편상 도시로 나가지 못했지만, 공부하고자 하는 아이들의 마음은 여러 가지 일로 늘 상처받는다.

 

우리 학교 작년 대학 입시 결과를 보면 2011년 현재 농촌 학교의 실정을 잘 알 수 있다. 졸업생 47명 중 지방 국립대에 4명, 교대에 한 명 입학하고, 20여 명은 지방 사립대학(2년제 포함)에 갔다. 초라한 성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의 가장 큰 배경은 고등학교 신입생의 학력 수준인데, 여기에는 대한민국 공교육의 문제가 제법 많이 관련되어 있다. 중학생은 내신 성적으로 고등학교에 가니 인근 시 지역 중학생들과 이곳 면 지역 학생들의 학력차이는 수치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면 지역 중학교 1등이나 시 지역 중학교 1등이나 모두 1등급이니 일단은 기회균등이요, 평등의 실현이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는 모든 것이 달라진다. 면 지역 1등은 시 지역 고교에 진학하면 대부분 중하위권으로 추락하고, 그렇게 추락한 아이들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는다. 그나마도 시 지역으로 갈 수 있는 성적의 학생들은 어떤 측면에서는 행복한 것이다. 이마저 어려운 아이들은 농촌학교 아니면 실업계로 진학한다. 이들 중 공부를 해보려는 아이들이 있지만, 여러 가지 상황이 녹녹치 않다.

 

모두가 관심 갖는 반값 등록금... 왜 시골 학교에는 눈 감나요

 

이런 힘든 아이들을 3년 동안 가르쳐 다시 시 지역의 아이들과 대입 경쟁을 하도록 하는 게 면 지역 학교 선생님들의 주요 임무다. 농촌 학교 살리기의 첨병은 교사가 맡지만, 지원 등이 약해 농촌학교의 회생은 언제나 구호로만 그칠 공산이 크다.

 

최근 많이 거론되는 '공정사회론' 측면에서 보면, 농촌 지역은 공정한 사회에서 한참 떨어져 있다. 공정한 사회의 기초는 기회의 균등인데, 지금 농촌 현실에 이를 적용하는 건 뭔가 어색하다.

 

지난 몇십 년 동안 진행된 도시화의 후유증으로 농촌의 경제적 여건은 이미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그래서 농촌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분노를 조금씩 갖고 있다. 이런저런 지원이 많지만 현실적 차원이 아닌 생색내기에 가깝다. 농촌의 근간은 농업인데 이미 농업에 대한 정책은 퇴행적이며 후진적이다. 이 상황에서 아이들은 학교에 다닌다.

 

힘든 현실을 눈감고 오직 공부에 매진할 수 있을 만큼 우리 아이들은 강하지 못하다. 도시의 유혹은 곳곳에 널려 있다. 이것이 과연 공정한가? 농촌에서 태어난 아이들, 이미 균등한 기회에서 벗어나 있다. 그 아이들이 계속 불평등한 교육 여건에 노출되고, 그것이 심화하여 나타난 병리 현상이 위에서 말한 범죄와 탈선이다. 물론 이는 농촌만의 문제는 아니다.

 

도시 빈민들 역시 이런 문제로 고통 받고 있다. 이 문제를 타파해야 할 최후의 보루인 교육에서 우리는 이미 공정성을 잃었다. 평등은 애당초 없다.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공정사회 이론에서 말하는 상대적인 기회의 균등이 교육에서 실현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입시제도와 교육 여건은 반드시 수정돼야 한다. 

 

<오마이뉴스>에서 2011년 6월 13일 기사 <'날로' 먹는 '판사 엄마'한테 지기 싫어서 학생들에게 거짓 강요...전 나쁜 교사입니다>를 읽었다. 학생들의 '스펙'과 대학 입학에 영향을 주는 모의재판을 둘러싼 논란과 특혜, 그리고 교사의 고민이 담긴 기사다. 하지만 이 기사는 농촌의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다. 마치 동화에 존재하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농촌 학교에서는 기사에 나오는 학생과 교사 사이의 그런 대화는 고사하고, 학교라는 것 자체를 버거워하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나도 이곳에서 근무 기한 5년을 채우면 도시 학교로 가 위 기사에 나오는 '똑똑한 아이들'을 가르치고 거기서 교사의 양심을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2011년 현재 우리의 교육은 똑똑하고 명석한 아이들을 위한 전유물이 아니라, 농촌 학교 아이들 같은 약자에게도 균등한 기회를 부여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학생들이 '스펙' 걱정?... 시골 아이들은 학교 자체를 버거워합니다

 

반값 등록금이 사회적 이슈가 되어 연일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그러나 반값 등록금의 문제는 대학 진학 후의 문제다. 그렇다면 이것이 과연 이 나라 대다수 사람의 문제일까?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약 20%가 사는 농촌학교의 초중등 교육의 심각한 불평등, 불균형 문제는 왜 전국적인 의제가 되지 못할까?

 

지역적 불균형으로 빚어지는 문제에서 시작해 부모의 지위나 재력에 따른 불균형은 이미 그 도를 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 불평등과 불균형이 그대로 유지되고 굳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무너져 가는 농촌의 현실을 실감하는 도시 사람은 많지 않다. 많은 언론이 농촌을 장밋빛으로 그리고 있고 도시 사람들은 농촌의 현실보다는 장밋빛 허상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노령화의 시작점과 끝점은 농촌이다. 인구 공동화로 빚어지는 노동력 부족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현재 농촌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농촌에 있는 초중고는 학교 본연의 임무를 실천하기도, 학교를 유지하기도 어렵다. 오늘날의 농촌 학교는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위한 학교가 아닌, 교사들의 자리와 지역민의 이해관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존속시켜야 되는 기관으로 전락한 듯하다.

 

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된 그 아이는 기소가 확정되면 아마도 재판을 받게 될 것이고 학생이면 마땅히 받아야 하는 보호에서 멀어질 것이다. <오마이뉴스> 13일 자 기사를 쓴 선생님이 느낀 양심과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이 고민의 무게는 어떻게 다른 걸까?


태그:#농촌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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