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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2일 새벽 백기완 선생. 박종철 열사 아버님인 박정기님, 문정현 신부님, 홍세화 선생을 뵙고 '날라리 외부세력' 등 수많은 희망의 전달자들과 부산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아래 섰습니다.

 

그 순간의 감격을 뭐라 표현해야 할까요. 우리는 촛불을 들었고, 노래를 했고, 시낭송과 어르신들의 우렁찬 깨우침의 말과 투쟁의 현장에서 끝내 이기고 돌아온 자랑스러운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울고 웃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희망의 실체를 만들어낸 것이지요. 

 

어느 연예인이 "자고 일어났더니 유명해졌더라"고 했던가요? '희망버스'를 타고 김진숙 동지를 만나고 돌아온 우리는 건물을 무단 침입한 폭력적인 사람들로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한 일이라곤, 절망의 산을 넘어 희망으로 함께 사는 들판에 다다를 날을 꿈꾸며 35미터 고공 크레인에서 치커리를 가꾸는 이에게 "미안하다. 이제 당신이 안전하게 내려올 '희망사다리' 우리가 만들겠다"는 마음을 전한 것뿐인데 말이지요. 김진숙 동지의 말이 가슴에 오래 남아 공명줄을 울립니다.

 

"저는 우리 조합원들이 혁명적 투지로 무장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지키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6개월 전까지 살아왔던 삶을 지켜주고 싶은 것뿐입니다. 저녁이면 땀냄새 풍기며 집에 돌아가 새끼들 끼고 저녁 먹고 여러분들이 오늘까지 누려왔던 그 소박한 일상들을 지켜내고 싶은 것뿐입니다.

 

술만 먹으면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 이름을 부르며 우는 저 못나빠진 사람들. 가슴 속 맺힌 한을 이제 그만 풀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8년을 냉방에서 살았던 저의 죄책감도 이제는 좀 덜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

 

땀흘려 일하고 "땀냄새 풍기며 돌아가 새끼들 끼고 저녁 먹"는 소박한 일상을 지켜주고 싶다는 바람. 술만 먹으면 죽어간 동지들의 이름을 부르며 우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맺힌 한, 김주익 열사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8년을 냉방에서 살았다는 김진숙 동지의 무거운 짐을 우리가 나눠질 때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정규직이 내일의 비정규직이 되고 오늘의 비정규직이 내일의 해고 노동자가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면 우리는 함께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혼자 꾸는 꿈은 꿈일 뿐이지만 여럿이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지요?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지만 기쁨과 희망은 나누면 나눌수록 커진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우리는 김진숙 동지가 안전하게 크레인에서 내려올 수 있도록 한 계단씩 책임져 주겠느냐는 물음에 모두 '그러겠노라' 힘차게 대답했습니다. 우리 서로가 서로에게 희망과 연대의 사다리가 되어준다면  "아빠 힘내세요"라고 노래하던 어린이들에게 아빠를 돌려줄 수 있습니다. 우는 아내에게 남편을 그들의 가정을 되돌려줄 수 있습니다.

 

우리 다시는 "지켜주지 못해서 죄송합니다"라는 참담하고 부끄러운 고백을 되풀이하지 맙시다. 희망버스에 희망을 가득 담아 가지고 가서 '희망의 계단'을 만들어줍시다. 다시 희망의 연대가 필요하다면 저는 기꺼이 희망버스를 타겠습니다. 여러분도 동행해주시겠습니까?

 

절망을 넘어 희망을!, 죽음을 넘어 부활의 새 삶을! 사람만이 희망이다! 연대만이 힘이다!

 

 

김진숙 동지 6월 12일 인사말 전문

살다보니 이런 날이 오긴 왔군요. 이런 해방감들이 얼마만입니까.

 

8년 전 김주익이 한 달 넘게 봉쇄된 공장이 마침내 뚫려 사람들이 이 85호 크레인 밑에 모이던날 그 소 같은 사람이 울었습니다. 그랬던 사람을 우리는 끝내 못지켰습니다.

 

어제 용역들에게 공장문들이 차례차례 무너지는 걸 보면서 볼트 한가마니를 올렸습니다. 저 혼자 남게 되더라도 끝까지 싸울 생각이었습니다. 많이 보고 싶었고 애타게 기다린 만큼 만나는 일이 힘들었습니다. 제가 오작교가 되어 등허리가 다 벗겨지더라도 우리 조합원들과 여러분들 꼭 만나게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 조합원들 많이 다치고 귀때기 새파란 용역아이들한테 내동댕이 쳐지고 짓밟히는 걸 전 여기서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습니다. 6개월을 집에도 못가고 불면의 밤들을 술로 견디며 깨진 어항에서 흘러나온 금붕어처럼 숨을 헐떡거리던 저 사람들에게 우리가 외롭지 않음을 우리의 싸움이 정당한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고 싶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조합원들 한번 봐주십시오. 평생 일한 직장에서 아무 잘못 없이 쫓겨난 사람들입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퇴거압력에 손해배상 가압류에 경찰서 몇 번씩 불려 다니고 가족들 성화까지 견뎌가며 여기까지 온 사람들입니다. 저 지친 어깨에 가족들 생계를 걸머지고 밤엔 절망으로 쓰러지고 아침이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희망을 찾아 기를 쓰고 버텨온 사람들입니다.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가 목숨 던져 지켜낸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나를 버린다 해도 나는 저들을 버릴수 없는 이유가 백가지도 넘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우리 조합원들이 혁명적 투지로 무장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지키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6개월 전까지 살아왔던 삶을 지켜주고 싶은 것뿐입니다. 저녁이면 땀 냄새 풍기며 집에 돌아가 새끼들 끼고 저녁 먹고 여러분들이 오늘까지 누려왔던 그 소박한 일상들을 지켜내고 싶은 것뿐입니다.

 

술만 먹으면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 이름을 부르며 우는 저 못나빠진 사람들. 가슴 속 맺힌 한을 이제 그만 풀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8년을 냉방에서 살았던 저의 죄책감도 이제는 좀 덜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이 85호 크레인을 생각하셨다면 이제부터는 우리 조합원들을 기억해주십시오. 2003년 그 모질었던 장례투쟁의 와중에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현서, 다림의 애비, 고지훈, 김갑렬을 기억해주십시오. 짤린 동생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함께 싸우는 최승철을 기억해주십시오. 말기암으로 언제 운명하실지 모르는 아버지보다 동료를 지키기 위해 농성장을 지키는 박태준을 기억해주십시오. 비해고자임에도 이 크레인을 지키고 있는 한상철, 안형백을 기억해주십시오.

 

정리해고로 무너지고 용역깡패에게 짓밟힌 저 사람들을... 조남호가 버리고, 언론이 버리고, 정치가 버린 저 사람들을 함께 지켜주십시오.

 

백기완 선생님, 문정현 신부님, 박창수 동지 아버님, 박종철 동지 아버님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을 만큼 뜨겁게 고마운 여러분. 제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비틀거릴 때마다 천수보살의 손으로 제 등을 받쳐주신 여러분. 꼭 이기겠습니다. 157일 아닌 1570일을 견뎌서라도 반드시 이기겠습니다.

 

쓰러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 여기까지 왔던 그 마음 그대로, 아흔 아홉 번 쓰러져도 결코 무릎 꿇을 수 없었던 그 마음 그대로, 굳건히 지켜내겠습니다.

 

기륭전자 동지들이 버텨왔듯이, 쌍차동지들이, 유성동지들이 버텨가고 있듯이, 그렇게 꿋꿋히 견뎌 나가겠습니다.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에게 감염된 인사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덧붙이는 글 | 자발적인 시민들의 순수한 응원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집단적인 노조의 움직임처럼 보도하는 언론도 유감입니다. 김진숙이 뭐하는 사람인지도 몰랐던 페이스북 친구들도 많았고, 순수한 시민 응원자들이 대부분이었거든요.


태그:#희망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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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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