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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총장들의 여러 얼굴을 봤다. 제자들의 고통에 아랑곳하지 않는 탐욕스러운 얼굴이 가장 두드러졌다. "

10일 오전 국회에서 만난 안민석 민주당 의원은 전날 열린 민주당 지도부와 12개 대학총장들의 대학등록금 문제 간담회를 지켜본 소회를 이렇게 전했다. 17대 국회 후반기에 이어 18대 국회까지 6년째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민주당 간사)으로 이 문제를 다뤄온 그는 민주당의 '반값등록금 및 고등교육개혁 특위'위원 자격으로 이 간담회에 참석했다.

안민석 민주당 의원. (자료사진)
 안민석 민주당 의원. (자료사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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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담회에서 연세대, 이화여대 등 11개 사립대 총장들과 국립대인 전남대 총장은 공통적으로 "(쓰고 남은 등록금과 정부 보조금, 기부금 등을 모은) 적립금을 등록금 인하를 위해서는 쓸 수 없다"고 했다. 2009년 현재 2년제 이상 사립재단의 적립금 규모는 10조 원을 넘어섰으나, 사립재단들은 이 돈은 등록금 인하를 위해서가 아니라 첨단건물 건설 등 대학 내 투자용으로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대 교수 출신인 안 의원은 "교육의 질 강화에 여러 요소가 있는데 그 중 시설 개선은 일부일 뿐"이라며 "이 때문에 적립금을 등록금 인하에 쓸 수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등록금 문제 방치에 대한 책임도 인정했다. "대학과 학생의 문제로만 치부하고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립대 등록금 인상률은 2006년 10.0%로 최고치였고, 사립대는 2007년에 6.9%였다. 반면 현 정부 집권 이후인 2009년에는 사립대와 국립대 등록금인상률은 각각 0.6%와 0.5%였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등록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안 의원은 "2009년, 금융위기로 인해 대학이 등록금을 동결한 게 반영됐을 뿐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많이 올랐다"면서도 "2002년 국공립대 등록금 자율화를 통해 전체 대학 등록금이 모두 인상되는 등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등록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고 시인했다.

'반값등록금 문제'를 당 쇄신의 핵심으로 내걸어 이 문제를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시키고 등록금 촛불을 주도하고 있는 한대련(21세기한국대학생연합) 의장을 만나는 등 이 문제를 전면에 내걸고 있는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에게는 "이 문제를 해결하면 18대에서 가장 사랑 받는 정치인이 될 테지만, 해결하지 못하면 정계 은퇴를 각오해야 할 것이고 쪽박을 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등록금 문제에 대한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는 "우리는 분명하게 대학등록금 인하가 핵심"이라며 "등록금 인하 및 2012년 전면추진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등록금 반값 촛불 시위'의 영향"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안 의원과 나눈 일문일답 전문이다.

"등록금 문제, 여야 모두 책임 느껴야"

- 등록금이 왜 이렇게 비싼가.
"1990년대 후반 이후, 대학들이 외형적 몸집 불리기 경쟁을 하면서 등록금을 굉장히 많이 올렸다. 이 과정에서 민간재원에 지나치게 의존했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등록금 관리를 제대로 못한 측면도 있다. 2002년, 국공립대 등록금 자율화를 통해 전체 대학 등록금이 모두 인상됐다. 당시 정부는 등록금을 대학과 학생의 문제로만 치부하고 개입하지 않았다. 변명을 하자면, 2000년대 정부가 사립학교 문제를 건드린 상황에서 등록금까지 개입했다면 사립대와 보수 언론에서 난리를 쳤을 것이다. 별 문제의식 없이 반값 등록금 정책을 불쑥 꺼내놓고 헤매고 있는 정부 여당도 역시 책임이 있다. 이 문제는 여야 모두 책임을 느껴야 한다."

- 실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때 등록금이 더 많이 올랐다.
"현 정부에서도 2008년까지는 많이 올랐다. 2009년에는 2008년 말 발생한 경제위기 때문에 대학들이 자발적으로 등록금을 동결했다. 2010년에는 2008·2009년에 대학생·시민단체·야당이 연대해서 등록금 인하에 나서자, 정부는 반값 등록금 실현이 어려운 상황에서 등록금이 더 오르면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대학의 옆구리를 찔러 더 오르지 못하게 한 것이다."

- 반값 등록금 해법,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
"이제까지 여야 모두 장학금 혜택을 얼마나 늘리냐는 경쟁을 해왔다. 그러나 등록금을 해결하려면 치솟은 것부터 깎아야 한다. 등록금을 깎고 대학의 결손 부분을 국가가 재정 보전해 주고, 추가로 대학생들의 장학금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손학규, 촛불 집회 때 대학생의 거르지 않은 목소리 처음 들어"

- 민주당이 국가장학금제도에서 등록금인하 쪽으로 방향을 바꾼 것은 촛불 집회 때문인가.
"지난 일요일 손학규 대표의 '단계적 접근' 발언은 1월 이후 민주당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그런데 지난 6일 촛불집회에서 대학생들이 손 대표에게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다른 게 뭐냐'고 문제제기를 했다. 이를 통해 손 대표가 '바뀌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본다. 대학생들과 간담회는 여러 차례 했지만 거르지 않은 목소리는 집회에서 처음으로 들은 것이다. 촛불집회가 터닝 포인트가 됐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6일 오후 서울 광화문 KT앞에서 열린 한대련 주최 '반값등록금 실현 촛불집회'에 참석해서 연설을 하고 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6일 오후 서울 광화문 KT앞에서 열린 한대련 주최 '반값등록금 실현 촛불집회'에 참석해서 연설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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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 대표 방향 선회에 대해 당 내에서 포퓰리즘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무상급식의 경우 '좌파 정치, 포퓰리즘 정책'을 이유로 반대가 있었다. 그러나 결국 국민들의 요구에 의해 무상급식이 실현되고 있지 않나. 특권층을 배불리게 하고 특혜를 주는 게 아니라 국민들의 고통을 해결해 주는 포퓰리즘이라면 지지할 수 있다고 본다."

- 본인은 '등록금 액수 상한제'를 내놨다.
"등록금 인상률 상한제는 이미 오른 등록금은 인정하고 사후에 통제하자는 것인데 이래서는 등록금을 잡을 수 없다. 사회적으로 합당한 금액만큼 등록금을 매기자는 '등록금 액수 상한제'를 하면 사립대는 현재의 30% 정도, 국립대는 20% 정도 등록금이 인하되는 효과가 있다."

"등록금 문제는 신자유주의 가치를 포기하냐의 문제"

- 반값 등록금이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공약이냐를 놓고 청와대에서는 다른 소리를 한다.
"2007년도에 이주호 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반값 등록금을 네이밍했다. 이명박 후보 대선 캠프에서는 특위까지 구성했다. 그동안 약속한 게 공약집에 없다고 공약을 안 한 거냐."

-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반값 등록금을 쇄신의 핵심으로 꺼내고, (장학금 제도가 아닌) 등록금 인하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는 것 같다.
"바람직한 일이다. 현재 사회적 공감대는 '등록금은 대학의 자율에 맡긴다'라는 패러다임에서 '정부가 고등교육에 재정을 지원하고 관여해야 한다'는 쪽으로 변화됐다. 수도권 의원들은 내년 선거를 걱정하며 등록금 문제를 풀고 싶겠지만 당내 보수파들이 과연 마음을 바꿀까. 당내 의원 간 지역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 등록금 문제는 신자유주의 가치를 포기하냐의 문제로 한나라당의 정체성과 관련된 것이다. 오늘 집회에서 국민의 관심과 호응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한나라당의 입장이 결정될 것으로 본다."

- 황우여 원내대표가 박자은 한대련 의장을 만나는 등 굉장히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면 황 대표는 18대에서 가장 사랑 받는 정치인이 될 테지만, 해결하지 못하면 정치 은퇴를 각오해야 할 것이고 쪽박을 차게 될 것이다. 그런데 내가 지난 3년간 교과위에서 지켜본 황 원내대표는 합리적 보수주의자일 뿐 큰 문제를 풀어갈 결기가 부족하다. 청와대는 물론 당내 이견도 조율이 안 되고 있다. 황 대표가 반값 등록금 뇌관을 건드렸는데 우려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 현 시점에서 등록금 문제 해결방안에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다른 점은 뭔가.
"우리는 분명하게 대학등록금 인하가 핵심이다."

"대학 총장과의 간담회에서 '탐욕스러운 이기주의' 봤다"

- 12개 대학총장들과 민주당 지도부가 만나 나눈 대화를 보면, 총장들은 정부지원은 요구하면서도 적립금은 건드리지 못한다고 했다.
"대학총장들의 여러 얼굴을 봤다. 제자들의 고통에 아랑곳하지 않는 탐욕스러운 얼굴이 가장 두드러졌다. 국가가 도와주면 등록금 인하하겠다는 얘기는 누가 못하나. 대학들은 '국가 지원이 확대돼야 하지만 대학이 투명하게 운영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반성한다'고 말하기를 기대했는데…. 전체 예산의 20% 가량 되는 뻥튀기 예산의 상당부분이 적립금으로 넘어왔는데 이런 부분을 인정해야 한다."

- 밝혀진 적립금이 10조 원 정도인데 등록금 인하에 쓰면 대학 내 투자를 못한다고 한다.
"교육의 질 강화에 여러 요소가 있는데 그 중 시설 개선은 일부일 뿐이다. 이 때문에 적립금을 등록금 인하에 쓸 수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변명으로 일관하며 재정 지원만 확대해달라고 하면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 정부의 대학지원을 GDP 0.6% 에서 1%로 늘리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인가.
"GDP의 1%는 6조~7조 원 정도 된다. 현재 전체 등록금 규모가 15조 원에 조금 못 미친다. 반값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는 재원이 마련되는 것이다. 1차적으로는 대통령의 가치와 인식, 철학이 중요하다.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무조건 반값 등록금 이행하겠다고 하면 안 되겠나."

"한 명이 교육부 장관 10년 할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 돼야"

- 사학의 부정부패, 부실이 계속 제기됐는데 이게 등록금에 영향을 미쳐왔다.
"반값 등록금 관련된 법안을 통과 시키면서 사학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문제도 병행돼야 한다. 법으로 하면 된다. 우리 당에서 대학 적립금 상한선을 정하고 적립금 내역을 명시하는 법안도 내놨다."

- 사학에 재정지원은 어떤 방식으로 할 생각인가.
"정부 지원을 위해선 현재 대학에 교부금을 못 주게 돼있는 고등교육법 개정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대학 운영예산도 정부가 지원하면서 이를 근거로 사립대학에 대한 관리·감독을 할 수 있다. 결국 재정 지원의 전제는 대학이 투명하게 자금을 운용한다는 것에 있다. 사립대학도 이를 반대할 명분이 없다."

- 대학 못 가서 취직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할 거냐.
"비싼 등록금은 높은 대학 진학률, 학력 차별, 고용 문제가 연결돼 있다. 이것의 끝에 교육 개혁이 있다. 이걸 다 풀 수 있는 사회적 협의 기구를 만들어 10년 동안 한 명의 교육부 장관에게 이 문제를 총괄하게 했으면 한다. 대통령 후보자에게 이것을 약속하도록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면 된다. 어제 한 대학 총장이 '자신이 8년 6개월 동안 총장을 맡았는데 교육부 장관이 14명 바뀌었다'고 하더라. 교육 수장이 1년도 안 돼서 바뀌는 상황에서는 슈퍼맨이 와도 우리나라 교육을 못 바꾼다. 핀란드 교육개혁이 성공한 큰 요인 중 하나다."


태그:#반값 등록금, #안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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