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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고지서를 바라보고 있는 내 기분은 영 찜찜하다. 작은 우유 12개를 마셨는데, 고지서엔 13만200원을 내라고 나와 있다. 지금 상황에선 내가 돈을 내지 않아도, 그렇다고 낸다고 해도 마음이 개운하지 못할 것만 같다.

180ml 우유 12개에 130,200원인 우유고지서
▲ 우유고지서 180ml 우유 12개에 130,200원인 우유고지서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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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값이 13만200원이 나온 데는 물론 이유가 있다. 얼마 전까지 나는 A사의 우유를 배달시켜 먹었다. 꼬박 1년 7개월 정도를 빠지지 않고 마셨다. 1년 7개월 전 우유를 처음 신청할 때는 대리점에서 선물로 교자상을 줬다. 선물을 준다는데 싫을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마실 우유라면 선물을 받고 마시는 게 좋을 터였다.

선물을 주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공짜로 주는 것은 아니고, 일정한 기간 동안 일정량의 우유를 마셔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그 조건을 충족시킨 나는 몇 가지의 선물을 선택할 수 있었고, 그 중에 가장 필요했던 교자상을 얻고 우유를 마시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한 달 전쯤 정해 놓았던 기간이 종료됐다. 사실 그냥 지나 갔어도 모를 뻔했는데, 정직하게도 그 우유대리점에서 연락이 왔다. 계속해서 우유를 먹으면 다시 선물을 주겠다는 이야기였다. 딱히 다른 우유로 바꿀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그러마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며칠이 지났다. 별로 생각이 없어서였는지 잊고 있었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얼른 선물을 고르라는 것이었다. 그날은 마침 길에서 소위 '판촉'을 한다고 했다. 지나는 길에 들르면 선물을 직접 볼 수 있으니 잊지말고 꼭 들르라고 했다. 

나는 바람도 쏘일 겸 아이를 데리고 '판촉' 장소로 찾아갔다. 그곳에는 다양한 선물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그 중에서 두 개의 선물을 고를 수 있다고 했다. 그대신 내가 배달해 먹는 우유를 2년간 먹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아이들을 위해 우유를 계속 마실 계획이었기 때문에 그러마 하고 선물을 골랐다. 딱히 필요한 것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일단 골라야 하니 이것저것 살펴보았다. 

뽀로로가 타고 있는 장난감 비행기
▲ 사은품 장난감 뽀로로가 타고 있는 장난감 비행기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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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은품으로 받은 것과 똑같은, 현재 판매되고 있는 인터넷 쇼핑몰의 장난감
▲ 인터넷 쇼핑몰의 장난감 사은품으로 받은 것과 똑같은, 현재 판매되고 있는 인터넷 쇼핑몰의 장난감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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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은품으로 받은 뚝배기
▲ 사은품 뚝배기 사은품으로 받은 뚝배기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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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은품으로 받은 것과 똑같은, 현재 인터넷에서 판매되고 있는 뚝배기
▲ 인터넷 쇼핑몰의 뚝배기 사은품으로 받은 것과 똑같은, 현재 인터넷에서 판매되고 있는 뚝배기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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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이미 뽀로로가 타고 있는 커다란 비행기를 골랐다. 마트에서 본 적이 있는 비행기다. 한참을 고민끝에 다른 하나로 뚝배기를 골랐다. 크기가 다른 뚝배기 두 개가 한 세트였는데, 한 개만 필요했던 나는 인심좋게 그 중 한 개를 언니에게 주었다. 그렇게 선물까지 고르고 난 후 우유 신청서를 작성했다. 거기에는  만약 중간에 우유를 중지시키면 위약금을 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그때까지도 몰랐다. 그것이 이렇게 찜찜하게 나에게 부담을 줄 것이란 것을.

며칠 전 외출을 하고 들어오던 나는 또다른 우유의 '판촉'을 보게 되었다. 평소 관심을 갖고 있었던 B사 우유였다. 지금 마시고 있는 A사의 우유보다 더 좋다고 생각 되어 살짝 후회하고 있던 터였다. A사 우유를 그만 마시고 B사 우유로 바꾸고 싶지만 2년 동안 마시겠다 하고 선물까지 받아 놓은 상태라 갈등이 됐다. 중간에 우유를 끊게 되면 분명히 위약금을 내야 한다고 했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그래도 건강이 우선이지 싶어 B사 우유를 먹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위약금을 내더라도 A사 우유는 그만 먹어야 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장난감 비행기와 뚝배기 두 개인데 위약금이라고 해봐야 얼마나 나올까 싶은 마음도 있었다. A사 대리점에 전화를 걸었다. 우유를 그만 먹어야 겠으니 배달을 끊겠다고 했다. 그러자 대리점에선 역시 위약금 이야기를 꺼냈다. 알았다고 하며 위약금이 얼마냐고 물었다. 위약금은 선물 한 개당 6만 원씩, 자그마치 12만 원이나 된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깜짝 놀랐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받은 선물 중 마트에서도 흔히 보는 아이 장난감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3만 원 정도면 구매가 가능하고, 뚝배기 역시 인터넷 쇼핑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3만 원이 채 못되는 가격이다. 선물 두 개를 합해봐야 6만 원도 되지 않는데, 두 배나 되는 12만 원을 내라니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선물을 챙기고 위약금을 내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 가져가서 잘 쓰고 있는 물건에 대해서는 대가를 지불할 마음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그리고 심지어 중간에 계약을 어겨서 미안한 마음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너무하다 싶은 생각에 '위약금이 너무 비싼 거 아니냐'고 물었다. 대리점에서는 위약금은 '정해진 금액'이라고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길게 나누어 봐야 똑같은 이야기를 서로 반복할 게 뻔했다.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기분이 나쁜 일이다.


태그:#우유, #판촉물,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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