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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전에 출품된 'Home & House' 중 한 작품. 사진을 찍은 것이므로 원작과 같을 수는 없다.
 초대전에 출품된 'Home & House' 중 한 작품. 사진을 찍은 것이므로 원작과 같을 수는 없다.
ⓒ 서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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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옥 화가의 여덟 번째 개인전이 지난 5월 21일부터 오는 6월 2일까지 갤러리 여울에서 열리고 있다. 팸플릿 표지에는 머리에 '개인전(Solo Exhibition)'을 얹은 제호 '서영옥 원풍경 초대전'이 큰 글자로 박혀 있고, 그 아래에 괄호로 묶인 'Home & House'가 작게 연서되어 있다. Home과 House를 나란히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개인전은 아마도 '집'에 대한 천착을 보여줄 것 같다.

우리말에서 '집'은 Home을 가리키기도 하고, House를 가리키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건축물 모두를 가리키는 총칭이기도 하다. 따라서 "집 태우고 바늘 줍는다"의 '집', "집 떠나면 개고생'의 '집', "집안의 명예를 지켜다오"의 '집', '집쟁이'의 '집'들은 모두 그 뜻이 서로 다르다.

Home & House, 39*139cm, 혼합재료, 2011년 작품
 Home & House, 39*139cm, 혼합재료, 2011년 작품
ⓒ 서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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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해마다 그렇게 해온 것처럼 한국방정환재단은 올해에도 OECD 국가들의 청소년 의식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의 54.4%가 '나의 행복에 가장 필요한 것'으로 '가족'을 꼽았고, 3.1%만 '돈'을 꼽았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가족보다(20.5%) 돈을(26%) 더 꼽았다. 비록 직접적으로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방정환재단은 기성세대와 정부를 향해 국가 차원의 대책 강구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Home은 우리말에서 일반적으로 '가정'을 뜻한다. 방정환재단의 설문조사에 등장하는 '가족'은 가정의 구성원을 지칭하는 어휘이다. 즉, Home은 가정을 뜻하면서 동시에 가족(Family)의 의미도 내포한다. 그렇다면, Home보다 Money(돈)가 더 좋다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의식구조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Home보다 Money가 더 좋다는 세상

이런 답답한 보도를 접하는 즈음, 서영옥의 'Home & House' 같은 전시회를 둘러보는 일은 마음의 평온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것은, 화가의 그림이 무엇보다도 '원풍경(原風景)'의 이미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덕분이다. 꿈 같기도 하고 동화 같기도 한 고운 배경색 속에 소품 같은 집들을 방목하듯 놓아두는 기법을 통해 House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우리네 Home의 원형이 깔끔하게 형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시장 입구에 비치되어 있는 'Home & House에 대한 단상'을 통해 화가의 말을 들어보자.

내 작업의 '집'은 삶의 다양한 뉘앙스를 품는다. 구체적
'Home & House', 35*50cm, 혼합재료, 2011년 작품
 'Home & House', 35*50cm, 혼합재료, 2011년 작품
ⓒ 서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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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상과 단순한 공간이면서도 내밀한 서사성, 그리고 본성과 원형, 본질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고향, 안식처, 관계 등을 생각한다. 때론 고향을 의미하고 꿈속에서처럼 치유나 어머니로도 대변된다. 동심으로부터 출발하고 꿈과 현실을 동반하기도 한다. 이것은 현대인들이 상실한 것들에 대한 환기이기도 하다.  

화가의 그림 속 집들은 하나같이 곱다. 현실의 주택들 주변도 저렇듯 이쁜 곳이 있을까 싶은, 곱디 고운 배경 속에 있으면서도 집들은 더욱 화사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 탓에, 그림의 가장 아랫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집들조차도 한결같이 세속 가운데에 붙박히지 않고 표표히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는 화가가 수도의 길로 들어서는 수도자의 출가(出家)를 '온갖 집착과 욕망과 갈등의 집으로부터 벗어남을 의미'한다고 해석한 결과로 보인다. 화가는 '집은 물질적 형상과 정신적 세계를 요하는 아이콘이 된다'고 했지만, 비록 결과의 오류가 될지라도 그림은 감상자에게 House보다 Home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아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한다.

그림 속 집의 형체들이 장난감처럼 보이는 것과, 한결같이 고운 톤으로 처리된 배경도 그렇게 그림이 읽히도록 하는 데에 크게 일조를 한다.

집이 작은 것은 동심의 세계를 표상한다. 동심의 근원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자 기댐이다. 아이들에게 집은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집이 바로 Home이다. 그림 속 집들이 장난감처럼 아담한 것은 House보다 Home을 소망하는 화가의 마음이 표상된 결과라는 말이다.

또, 자세히 보면 그림들의 배경도 그저 예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수선하고 복잡한 뉘앙스를, 숨길 듯 은은하게 드러내고 있다. 집들도 일견 불안정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전시회를 찾은 이들이 숲만 보고 나무를 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도 그를 탓할 수는 없다.

게다가 그들의 해석이 'Home은 House가 될 수 없는, 그러나 동행선상에서 갈 수밖에 없는 모순과 조화로 둘러싸인 우리의 삶, 그것은 곧 상생(相生)'이며 '원풍경'이라고 믿는 화가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어쩔 것인가. 그런 점에서, 행복은 Home(Family)보다 Money에 달렸다고 믿는 우리나라 청소년들과, 그들을 그렇게 키운 성인들에게 화가의 그림은 보여줄 만한 충분한 가치를 지녔다.

갤러리 여울의 서영옥 초대전 'Home & House' 팸플릿 표지
 갤러리 여울의 서영옥 초대전 'Home & House' 팸플릿 표지
ⓒ 서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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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난 2009년 7월, '집'을 주제로 한 사진전을 연 바 있다. 인간이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가(私家)의 가치가, 본인의 뜻과 아무 상관도 없이 자연스레 내포하게 되는 사회적 의미를 다룬 전시였다. 그래서 사진가가 아닌 화가의 눈에 비친 집은 어떤 것일까, 궁금해하면서 'Home & House전'을 찾았다. 필자의 사진전과는 전혀 다른, 집의 근원적 의미를 묻는 화가의 그림들은 'Home과 House의 관계'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현대인들은 지진보다 더 무서운 물신숭배의 광풍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집'이 흔들리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잠시 짬을 내어 대구시 수성동 롯데아파트 상가건물 2층에 있는 갤러리 여울을 찾아보는 일은 조금이나마 '생의 여유'가 될 것이다.


태그:#HOME, #HOUSE, #서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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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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