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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의 망월동
▲ 망월동 국립묘지 2003년의 망월동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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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광주민주화운동 31주년을 맞아 인터넷이 시끄럽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첫 해를 제외하고 3년 연속 기념식에 불참했기 때문이다.

물론 바쁜 업무 때문이겠지만, 많은 네티즌은 대통령의 후보시절 '광주사태' 발언이나 망월동 국립묘지에서의 파안대소 사진 등을 떠올리며 이 대통령의 불참이 고의가 아니냐며 의심하고 있다. 조국 교수의 말마따나 "5.18 기념식에 가면 돌을 맞을 것 같아서, 혹은 5.18을 폭도의 준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불참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억울할 것이다. 대한민국 민주화의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자로서 대통령은 분명히 나름대로 5.18을 기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5.18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어찌 일개 대기업 CEO가 대통령을 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우리의 '각하'는 뭐든지 해봐서 잘 알고 계신 그런 분이다. 비록 1980년 5.18 광주 현장에는 없었지만, 64년 6.3 한일회담 반대 운동에 참여했던 전력으로 미루어 5.18 당시 국가 공권력에게 피해를 본 분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왜 기념식에 나오지 않았을까? 아마도 작년 그리고 재작년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부터 사람들의 안 좋은 눈길을 받았으니 어찌 광주행 발걸음이 편하겠나. 참석하자니 겸연쩍고, 불참하자니 역시 찝찝하고.

그래서 여기 나의 사례를 들어 대통령에게 그 해결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내가 처음 망월동 국립묘지에 가게 된 연유를 알게 된다면 대통령도 그 방법에 솔깃하지 않을까?

우연히 만난 식당 사장님의 '큰 가르침'

때는 바야흐로 1998년 7월,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었다. 난 친구와 함께 전 년에 이어 두 번째 전국 일주를 하는 중이었는데, 당시 우리는 월출산 종주에 이어 전남 화순 운주사를 찾아갔다. 전 학기 역사학 수업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운주사의 천불천탑 전설을 알았는데, 그 민중의 꿈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광주에서도 버스를 타고 2시간 더 들어가야 했던 운주사. 그래도 지금이야 와불로 꽤 유명하지만 당시만 해도 운주사는 인적이 드문 사찰로서 관광객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우리는 조용한 산사를 느낄 수 있었고, 그 속에서 천불천탑을 채 세우지 못한 채 미완의 꿈만 남기고 간 선인들의 아쉬움을 되새길 수 있었다.

2004년의 운주사 와불
▲ 운주사 와불 2004년의 운주사 와불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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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다음 목적지 구례로 가려면 광주까지 나가야 했는데, 워낙 인적이 드문 동네라 버스를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했다. '어쩌지? 이러다가 구례는커녕 광주 여관방에서 잠을 청하는 거 아니야?'하며 다소 불안했다.

결국 우리는 '히치하이크'를 하기로 했고, 다행히 광주행 갤로퍼 한 대를 얻어 탈 수 있었다. 차에는 30대 후반, 40대 초로 보이는 여성 두 분이 타고 있었는데, 한 분은 광주의 '상무정'이라는 오리고깃집 사장이었고, 또 한 분은 전문대 피부미용과 교수였다. 조용한 운주사가 좋아 두 분이 가끔 들른다고 했다.

그렇게 광주로 가는 길. 갑자기 상무정 사장님께서 정색하며 물었다.

"학생들, 광주 망월동은 가봤어요?"
"망월동묘역이요? 아니요, 아직···."
"광주에 오면 그래도 5.18 망월동묘역부터 참배하는 게 광주에 대한 예의 아닌가? 게다가 역사를 공부한다면서."
"......"      

부끄러웠다. 광주에 와서 이런 소리를 들을 줄이야.      

난 그때까지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잘 알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1978년생 97학번이라 예전 선배들만큼은 아니었지만, 중학교 때부터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아 어릴 때부터 5.18을 책으로 접했다. 또 당시 경찰관이었던 아버지에게 국가의 5.18 광주 통제 이야기를 들었고, 성당에서 그날의 끔찍한 사진을 보고 온 어머니의 모습도 기억난다.     

그러나 '잘 알고 있다'는 나의 믿음은 상무정 사장님의 일갈과 함께 깨지고 말았다. 사장님의 핀잔으로 내가 알고 있던 5.18은 책에서나 볼 수 있는 '박제'였음을 깨달았다. 5.18을 글로 배운 이의 한계를 깨달았던 그때의 그 충격이란.      

순간 얼어버린 우리의 표정이 안쓰러워서일까? 상무정 사장님은 광주에 도착해서 자신의 식당으로 우리를 데려가 푸짐한 저녁상을 차려주셨고, 특별한 계획이 없으면 하룻밤 묵어도 좋다는 호의를 베풀어주셨다. 그녀는 우리 같은 학생들이 5.18을 제대로 알고 세상에 알려야 한다며 도리어 부탁까지 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상무정 사장님의 열정. 그 모습에 5.18 당시 공동체를 이뤘던 광주시민의 모습이 겹쳤다. 이런 광주를 겪지 않고 그동안 5.18을 안다고 떠들었던 내가 부끄러웠다. 그리고 또 고마웠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5.18국립묘지를 찾아 영령들의 영정을 모셔놓은 '유영봉안소'에서 파안대소를 하고 있다. 그는 유독 5.18과 관련된 가벼운 행동과 언사로 질타를 많이 받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5.18국립묘지를 찾아 영령들의 영정을 모셔놓은 '유영봉안소'에서 파안대소를 하고 있다. 그는 유독 5.18과 관련된 가벼운 행동과 언사로 질타를 많이 받았다.
ⓒ 김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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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계획을 수정해 여행의 마지막 날 망월동 공동묘지(그때까지도 국립묘지가 아니었다)를 참배하려고 일부러 광주에 들렀다. 많은 비가 쏟아지던 그날. 난 5.18 영령들에게 당신들의 희생을 너무 가볍게 보았음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다. 그리고 이 땅에 민주주의가 살아 있는 한 당신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걸 영원히 잊지 않겠노라고 약속했다. 
   
그 뒤로 망월동은 내가 광주에 가면 으레 들르는 코스가 되었다. 그것이 광주에 대한 예의이자 도리였다. 이제 난 두 아이의 아빠로서 녀석들이 걸을 때가 되면 손을 잡고 망월동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우리의 아프지만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르쳐 주리라.      

"이명박 대통령님, 상무정 사장님 꼭 만나세요"

나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 이명박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5.18기념식 불참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깨닫게 해 주는 일이다. 상무정 사장님의 일갈이 내게 죽비가 되었듯이 MB에게 필요한 건 쓴소리다.        

그러나 이 중요한 임무를 언론에만 맡길 수 없다. 이미 대통령이 접할 수 있는 보수 언론의 논조는 정해져 있다. 그렇다고 대통령에게 직접 인터넷을 보라고도 할 수 없을 터. 지금 이 대통령에게는 욕을 먹더라도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대통령의 분노를 사더라도 꿋꿋이 자신의 소신을 밝힐 수 있는 사람.  

물론 이런 사람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좋아하는 이 대통령의 굳은 의지 앞에서 과연 누가 입바른 소리를 할 수 있겠는가.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에 갇혀 국민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이명박 대통령. 차라리 지금이라도 광주 상무정 사장님을 찾아 가시라. 그리고 호된 꾸지람을 들으시라. 그러면 내가 그랬듯 이 대통령도 망월동에 갈 수밖에 없고, 그를 계기로 국민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님, 제발 좀..."        

참, 이 기회를 빌려 다시 광주 상무정 사장님께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시간이 되면 꼭 찾아뵙겠습니다.


태그:#망월동,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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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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