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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행진을 하는 참가자들
▲ 자전거 행진 자전거 행진을 하는 참가자들
ⓒ 전쟁없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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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많은 사람이 알지는 못하지만, 5월 15일은 WRI(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가 1981년에 정한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 팔레스타인 민중을 죽이는 것을 거부하는 이스라엘 병역거부자들에 연대하기 위한 집회를 주한이스라엘대사관 앞에서 하는 것을 시작으로 병역거부자의 날 행사를 치러왔다.

2009년에는 한국이 '초점국가'가 돼 전 세계 병역거부자들과 평화활동가들이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올해는 한국에서 병역거부운동이 시작된 지 10년이 되는 해라서 특별히 국방부에서 헌법재판소를 거쳐 대학로까지 자전거 행진을 하고, 마로니에 공원에서 다른 평화단체들과 함께 캠페인을 하는 행사가 열렸다.

자전거 행진에 참여하기 위해 자전거를 빌려 타고 서울 용산구에 있는 국방부 앞으로 갔다. 모여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처음 보는 사람들이다. 병역거부운동 10년 동안 사람들도 많이 바뀌었다. 10년 전 병역거부를 했던 20대 젊은이들은 그동안 감옥에 다녀오고 서른을 넘겨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북한 어린이 돕기 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고, 가난한 동네에서 지역공동체에 헌신하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직장에 다니는 사람도 있고,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하는 사람도 있고, 집 짓는 일을 배워 목수가 된 사람도 있다. '전과자'라서 공무원이 되거나 대기업에 취직하는 길은 막혀 있지만, 저마다 자기 처지에서 평화를 일구기 위해 열심히들 살고 있다.

경기도 파주에서 참가한 내가 가장 멀리서 온 줄 알았는데, 경기도 남양주에서 온 분도 있고, 대전에서 아침에 올라와 자전거를 빌려 타고 오신 분도 있다. 국방부 앞에서 행진을 시작하는 이유는, 해방 후 1만5천 명이, 2011년 지금도 900여 명이 병역거부로 감옥에 갇혀있는 데에 국방부가 가장 큰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 정문 앞에서 자전거행진을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바닥에 누워 온몸으로 'PEACE(평화)'라는 글자를 그렸다.

자전거 행진 참가자들이 온몸으로 '平和(평화)'라는 글자를 만들고 있다.
▲ 헌법 재판소앞 퍼포먼스 자전거 행진 참가자들이 온몸으로 '平和(평화)'라는 글자를 만들고 있다.
ⓒ 이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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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병역거부자의 날 행사 제목인 "너의 평화가 나를 부를 때"라는 글귀가 쓰여진 깃발을 펄럭이며 자전거 행진은 국방부를 떠나 헌법재판소로 향했다. 헌법재판소에는 현재 병역법에 대한 위헌법률제청 신청이 접수돼 있다. 다른 대안을 마련하지 않은 채 병역거부자들을 감옥에 보내는 현행 병역법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느냐는 물음에 헌법재판소가 판단을 내려야 한다.

같은 내용의 위헌법률제청 신청에 대해 이미 헌법재판소는 2005년에 병역법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린 적이 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병역법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도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고 국회에서 법률로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도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가는 일이 멈추질 않자 다시 위헌법률제청이 이어졌고, 헌법재판소는 병역거부자들과 국방부를 불러 한차례 심문을 했다. 헌법재판소에서 아주 전향적인 판결이 내려지기를 기원하면서 참가자들은 이번에는 온몸으로 '平和(평화)'라는 글자를 만들었다.

길바닥에 누워 온몸으로 쓴 '평화'

마지막 목적지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는 '평화난장'이 열렸다. 병역거부자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평화단체들이 저마다 주제를 가지고 캠페인을 벌이며 시민들을 만났다. '전쟁없는세상'에서는 병역거부자의 날을 맞아 감옥에 갇혀있는 병역거부자들에게 엽서를 쓰는 행사를 했다. 버마 도서관을 후원하는 장터도 열렸고, 죽음의 비라 부르는 집속탄을 금지하기 위한 캠페인도 열렸다.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아바타'를 만드는 곳도 있었다. 사람 모양 아바타에 메시지를 쓰면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전달되나 보다. 나도 얼른 가서 하나 썼다.

"해군기지는 대체 뭐에 쓰는 물건인가요?"

정말이지 세상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 군사기지라고 생각한다. 2년 전에 제주도 여행가서 들른 강정마을은 정말 아름다웠는데, 해군기지를 만들기 위해 그 아름다운 마을을 없애다니, 절대로 안 될 말이다.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공연하는 가수 '시와'와 구경하는 시민들.
▲ 평화난장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공연하는 가수 '시와'와 구경하는 시민들.
ⓒ 전쟁없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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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에공원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은행나무 그늘에는 중앙무대가 있어 다양한 공연이 열렸다. 멋진 랩으로 평화난장 시작을 알린 래퍼 '한낱'과 '팽이' 다음으로 가수 '시와'가 노래를 했다. 시와는 평택미군기지 이전반대 촛불문화제 때 병역거부운동 단체들과 인연을 맺은 뒤, 병역거부자의 날 행사에서도 여러 번 노래를 불렀다.

내가 병역거부로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시와 노래가 그렇게 듣고 싶었다. 친구한테 가사라도 편지로 써 보내 달래서, 멜로디가 기억나지 않는 부분은 멋대로 곡을 지어 노래를 불렀다. 비폭력 직접행동이 있는 곳은 어디든 달려가는 가수 '조약골'은 마치 나 들으라는 듯이 내가 좋아하는 노래만 골라서 불렀다. 권정생 선생님이 쓴 시에 곡을 붙인 <애국자 없는 세상>, 문정현 신부님의 말에 곡을 붙인 <평화가 무엇이냐>들을 나도 따라 열창했다.

마지막 무대는 밴드 '멍구스틱'이 장식했다. 멍구스틱 노래는 언제나 신나고 기분 좋아진다. 길 가던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구경했다.

공연 중간중간에 여러 사람들이 나와 이야기를 했는데, 최근에 병역거부를 하고 감옥에 갈 날을 기다리고 있는 이준규씨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이준규씨는 기간제 교사 시절 아이들에게 했던 말을 들려줬다.

"약한 건 나쁜 게 아니고 우는 건 창피한 게 아니다."

남다른 굳센 신념이나, 감옥을 견딜 수 있을 강한 의지를 가져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없어서, 자기보다 약한 것들에 폭력을 휘두르는 가해자가 될 수 없어서 병역거부를 선택한 내 친구들이 생각났다. 감옥에 가 있는 친구들에게 나도 편지 한 통 띄워야겠다. 울보 친구들이 감옥 안에서 펑펑 울 편지 한 통 써야겠다.


태그:#양심적 병역거부, #병역거부, #자전거 행진, #병역거부자의 날, #평화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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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를 하면서 평화를 알게 되고, 평화주의자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출판노동자를 거쳐 다시 평화운동 단체 활동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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