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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모든 순간:1~4권>(재미주의 펴냄)은 최근 영화로 제작됐고, 드라마로도 제작 중인 <그대를 사랑합니다>에 이은 강풀 순정만화다.

강풀 만화에 대해 새삼스럽게 무얼 설명하랴. <그대를 사랑합니다> 영화 포스터에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란 표현이 있는데,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강풀 만화니까'라는 사실만으로 읽는 독자가 많은 것 같은데 말이다.

2012년 새해를 불과 몇 분 앞둔 서울 종로.

강풀-<당신의 모든 순간> 1권 겉그림
 강풀-<당신의 모든 순간> 1권 겉그림
ⓒ 재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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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각 주변에는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자 몰려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원헌도 그 중 한 사람. 원헌은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진선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싶어 친한 친구들까지 불렀는데, 진선이 끝내 나타나지 않자 새해를 맞아 들뜬 사람들 속을 쓸쓸하게 빠져나온다.

원헌이 종로를 빠져나오기 직전에 괴상한 일이 터지고 만다. 아무도 모르게 스멀스멀 스며든 바이러스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감염, 좀비가 되어 누군가를 물고, 그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를 물고…. 그렇게 감염, 감염…. 삽시간에 종로는 좀비들의 세상이 되고 만다.

그런데 이는 종로의 일만이 아니다. 이미 아무도 모르게 사람들이 하나둘씩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던 것. 종로에 난리가 났다는 방송 속보를 본 주선은 원헌이 걱정되어 택시를 타고 가던 중 좀비로 변한 택시기사에게 물리고 만다.

강풀의 좀비 순정만화 <당신의 모든 순간>

형이 밤 노동을 나간 후 쓸쓸하게 혼자 집에서 TV를 통해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새해를 맞이하던 정욱도 TV 속보에 놀라 형이 걱정되어 집을 나서지만 형을 찾지 못하고 돌아온다. "어떻게든 새벽에는 집으로 돌아올게"라는 똑같은 말을 여러 차례 남긴 채 형은 끝내 돌아오지 않는다.

강풀-<당신의 모든 순간> 2권 겉그림
 강풀-<당신의 모든 순간> 2권 겉그림
ⓒ 재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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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온통 좀비 세상이다. 거리는 물론, 아파트 놀이터와 현관, 심지어는 계단이며 문 앞까지 온통 좀비가 점령한지라 집밖을 한 발짝도 나서지 못한다. 여차하면 좀비에게 물려 좀비로 변할 판이다. 물리지 않아도 좀비가 될지도 모를 만큼 세상은 온통 병균투성이인데, 정부는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한다.

그렇게 몇 달. 전기와 물도 끊긴 지 오래. 아직 감염되지 않은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은 부정기적으로 어쩌다 배급되는, 목구멍에 겨우 풀칠이나 하며 근근이 버텨야 할 정도로 부족하게 배급되는 구호물품 상자에 의지해 살아간다.

어느 날 정욱은 맞은편 동 아파트 사람들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생존자는 겨우 두 사람뿐이라 배급 상자는 두 개뿐인데 실은 세 사람이 살고 있었던 것. 한 사람의 존재를 숨길 수밖에 없는 이유를 눈치를 챈 정욱은 배급을 지휘하는 사람이 친구인지라 다소 넉넉한 자신의 식량을 덜어 그들에게 전할 방법을 찾는다.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지…? 형은 좀비니까… 내가 아는 하비의 습성… 마지막 기억대로 결국 집에 돌아왔는데… 난 형을 어떻게 대해야 하지…? 뇌가 녹는 병…. 마지막 기억만을 기억하는 좀비…. 형의 마지막 기억이 집에 돌아와야 한다는 거였어…. 어? 어떻게 된 거야? 불빛을 안 보고 날 보고 있어…?!!!  형은 좀비야. 형의 기억은 집으로 돌아오는 것뿐, 그거 하나밖에 없어. 마지막 기억은 어떻게 생기는 걸까…? 형의 마지막 기억은 집으로 들어오겠다는 것에서 멈췄다. 그리고… 그 기억을 끊임없이 반복하여 마지막 기억에 따라 결국 집에 돌아오고야 말았다. 만약… 내가 좀비가 된다면… 만약 나라면…내 마지막 기억은 뭐가 되면 좋을까….-<당신의 모든 순간> 중에서

강풀-<당신의 모든 순간> 3권 겉그림
 강풀-<당신의 모든 순간> 3권 겉그림
ⓒ 재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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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은편 아파트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려고 좀비들을 주의 깊게 살피면서 정욱은 좀비의 약점을 알게 된다. 빛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물은 좀비를 썩게 한다는 것, 그래서 물을 무서워한다는 것, 이제 그들은 힘이 많이 빠져 계단 오를 힘도 없다는 것.

그렇게 정욱과 주선의 만남은 시작된다. 둘은 서로에게 사람이란 존재, 그 유일한 소중함이다. 서로를 통해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그런. 와중에 수많은 좀비 무리에서 형을 발견하여 불빛으로 유인하여 집으로 데리고 와 며칠 동안 함께 지낸다. 그리고 형의 눈에 글썽이는 눈물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들으며 비로소 좀비에 대해 알게 된다.

좀비들에게도 건강한 인간이었을 때의 감정이 남아 있다는 것을. 그래서 이미 좀비로 변해버린 형이 자신을 알아보고 울었다는 것을. 형은 집으로 돌아올 수 있어 안심하며 죽었다는 것을.

그리고 아파트 놀이터에서 한 손을 들고 하염없이 서 있는 어린 꼬마 좀비는 "엄마 손을 절대 놓아선 안 된다"는 엄마의 말만을 기억하며 엄마의 손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좀비들은 주택가에만 몰려들잖아요. 처음에는 사람들을 공격하려고 몰려온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렇다고 보기엔 저들은 항상 너무 서성거렸죠. 좀비들은 왜 매일 밤이면 울어 댈까요? 좀비들은 왜 밤마다 문을 두드려 댈까요? 좀비들은 왜 매일 밤마다 건물로 들어오려고 할까요?…형의 마지막 기억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었죠. 형이 결국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그날 밤 내가 불을 켰기 때문이었어요. 어쩌면 형은 집에 올 때까지 죽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요? 이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아파트를 서성이는 이유. 밤마다 문을 두들겨대는 이유.

하지만…아파트…온통 다 똑같은 성냥갑 같은 집들…저들은 집을 못 찾아서 서성이는 게 아닐까요? 어둡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문을 두드리는 건 아닐까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해요. 어디를 가건, 어느 곳에 있건 결국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죠. 생각해보면 모든 사람의 모든 종착지는 집이었어요. 누구를 만나러 가건, 먼 여행을 가건…마지막엔 집으로 돌아와요. 저들도…저들도 사람이에요. 저 사람들도 귀가하는 사람들이에요. 도와주고 싶어요." -<당신의 모든 순간> 중에서

정욱은 어린 꼬마 좀비를 데려다 주선과 함께 보살핀다. 그리고 빈집과 좀비들 사이를 떠돌며 사진 속 얼굴들을 찾아 그들을 집으로 데려다 뉘어준다. 사랑했던 가족들과 살았던, 그들의 마지막 기억인, 그토록 돌아오고 싶었던 그들의 집에서 삶을 멈출 수 있도록.

마지막 기억으로 뭐가 남으면 좋을까

대략 줄거리만 소개했다. 아마도 10분의 1정도? <당신의 모든 순간>은 이런 줄거리보다는 온통 좀비로 변한 세상에 살아남은 주인공들이 자신들도 마지막을 향하고 있음을 잘 알면서도 순간 사랑하고, 순간 후회하고, 한순간도 희망을 놓지 않는 그 순간순간들이 썩 의미 있는 그런 만화다.

'만약 나라면… 내 마지막 기억은 뭐가 되면 좋을까.'

특별한 의미로 남은 정욱의 독백이다.

강풀-<당신의 모든 순간> 4권 겉그림
 강풀-<당신의 모든 순간> 4권 겉그림
ⓒ 재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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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선의 부모가 좀비에게 물린 딸이 좀비가 되는 것을 막으려고 상처를 빨아내다가 좀비가 된 것도 모자라 딸에게 옮길까 걱정하며 집을 나가 좀비들 속으로 사라지는 부분, 좀비가 되어버린 엄마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꼬마 좀비의 눈가에 맺힌 눈물, 원헌의 지고지순 순정한 사랑 등 의미 있고 감동을 주는 부분들이 많다.

이외에도 원인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사람들은 온통 좀비가 되어 가는데 여전히 싸움만 하는 국회의원들, 2012년의 종말론과 달리 우려했던 세상의 종말은 오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종말을 맞았다는 것, 좀비들이 집을 쉽게 찾지 못하고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성냥갑처럼 비슷비슷한 아파트이기 때문 등과 같은 부분들은 의미가 남다르게 읽혔다.

정신없이 치솟기만 하는 물가 등 2011년이 너무 힘들어서 2012년 새해를 앞두고 좀비가 되어버린, 미쳐버린 사람들 이야기가 더욱 쓰리게 와 닿았나 보다. 만화에 앞서 작가 인터뷰가 실렸다. 그중 일부만 소개하면.

-만화 <당신의 모든 순간>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나요?
"좀비물들을 많이 보면서 뭔가 색다른 좀비 이야기를 써 보고 싶었어요. 좀비도 사람으로 보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라는 관점을 이야기해 보고 싶었지요. 뭐랄까, 좀 한국적인 좀비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순정만화 시즌 5로 생각 중인 이야기가 있다면 살짝 귀띔해 주세요! 순정만화는 앞으로 몇 시즌까지 준비 중이신가요?
"전혀 다른 두 가지 이야기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의 사랑이야기, 혹은 성인들의 불륜. 둘 중에 어떤 이야기를 할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다. 매해 호러물과 순정물을 번갈아서 작업하고 있는데요. <당모순>('당신의 모든 순간'을 작가는 이렇게 부른다)을 보통 호러물로 보는 시선이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명백히 순정물이라고 봅니다. 순정물을 했으니 다음에는 호러물을 그릴 차례입니다. 지금은 온통 호러물 생각뿐."

덧붙이는 글 | <당신의 모든 순간>1~4권|강풀|재미주의| 2011-04-27 /4권 세트가격:38,400원 (각권 12000원)



당신의 모든 순간 1~4 세트 - 전4권

강풀 글 그림, 재미주의(2011)


태그:#좀비, #강풀, #그대를 사랑합니다, #만화, #재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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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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