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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 들어서 각 지방마다 지방색이 강한 독창적인 탑들을 많이 조성했다. 서천군 비인면 성북리에 183에 소재한 보물 제224호는 고려시대의 탑으로, 옛 백제 영토인 부여 정림사지에 조성한 국보 제9호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같은 양식을 모방하고 있다. 이 성북리의 탑은 고려 석탑 중 가장 충실한 형태로 조성한 탑이기도 하다.

 

4매의 판석을 깔고 그 위에 기단부를 쌓고, 기단부 위에 몸돌을 올려쌓은 형태이다. 이는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같은 목조건축의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고 하겠다. 기단부와 몸돌의 모서리에는 양 우주를 새기고, 그 기둥 사이를 판석으로 세워 마감을 하였다. 이 우주는 일층 몸돌은 따로 돌을 세워, 네 큼직한 네모 난 돌기둥을 세워놓은 듯하다.

 

백제탑의 형태를 닮은 고려석탑

 

탑신의 1층 몸돌은 네 모서리에 큼직한 돌기둥을 세웠다. 그리고 그 기둥 사이에는 면석을 다듬어 세운 형태이다. 몸돌을 기단에서처럼 기둥과 벽을 따로 마련하여 세워 놓았는데, 각 면의 모습이 위는 좁고 아래는 넓어 사다리꼴을 하고 있다. 2, 3층 몸돌은 1층에 비해 높이와 너비가 지나치게 축소가 된 형태이다.

 

몸돌 위로는 지붕돌을 얹기 전에 지붕받침을 2단 올려놓았다. 그 모습이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많이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여러 조각의 판석을 올려 지붕돌을 받침돌을 삼았다. 1층 몸돌의 양편 기둥이 밑으로는 기단을 누르고 있으며, 위로는 지붕받침돌을 이고 있어 마치 관을 쓰고 있는 모양이다.

 

 

지붕돌은 사방의 추녀가 위로 치켜져 올라 날아갈 듯한 형상이다. 지붕돌은 얇고 넓으며 느린 경사를 이룬다. 상륜부에는 머리장식 받침인 노반 형태의 크고 작은 돌이 겹쳐 얹혀 있다. 맨 위에는 네모난 돌을 올려놓아, 전체적인 세부양식이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모방하려한 흔적이 보인다.

 

석탑의 전파과정을 알아볼 수 있는 자료 

 

몸돌은 1층은 여러 장의 석재를 사용했으나, 2층 이상은 한 장의 석재를 이용해 조성하였다. 지붕돌 역시 1층은 세 장, 2, 3층은 두 장, 그리고 4층의 지붕돌은 한 장의 석재를 이용하였다. 현재 지붕돌은 4층까지만 남아있는 형태이다. 이 탑은 오층석탑답게 그 높이가 6.2m에 이르고 있다.  

 

 

서천 비인의 성복리 오층석탑은 몸돌에 비해 지나치게 큰 지붕돌과, 1층에 비해 규모가 갑자기 줄어든 2층 이상의 몸돌 등으로 인해 균형이 깨지고 있다. 얼핏 보면 위로 올라가면서 지나치게 줄어드는 탑의 모습이 조금은 불안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백제계 석탑양식의 지방 분포에 따라, 어떻게 전파가 되었는가를 알 수 있는 탑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태그:#비인 오층석탑, #보물, #서천군, #고려, #정림사지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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