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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농장에 있는 기도방. 이 기도방은 이슬람 신자들이 한푼 두푼 모아 마련한 공간으로 이곳에 모여 기도를 하고 있다.
 부평농장에 있는 기도방. 이 기도방은 이슬람 신자들이 한푼 두푼 모아 마련한 공간으로 이곳에 모여 기도를 하고 있다.
ⓒ 한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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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의 단속을 피하려던 베트남 출신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찐 꽁 꾸안(35)이 건물 2층에서 떨어져 숨졌다. 그때도 이주노동자들의 종교적 행위를 막지는 않았다. 이슬람인이 모여 기도하는 기도방(무살라)에서 이주노동자를 잡아갈 수 있느냐. 과연 대한민국에 종교의 자유가 있는 거냐"

121주년 노동절인 1일, 인천 부평농장에서 만난 '노동자의 집' 이금희 수녀는 인천출입국관리소가 지난달 23일 실시한 불법체류 이주노동자 단속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부평농장은 과거 한센병 환자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던 지역으로 인천가족공원(옛 부평공동묘지) 바로 옆에 붙어있다. 낡은 공장 건물들과 저층 주택들이 밀집돼있는 곳으로, 90년대 이후 이른바 '마찌꼬바(영세공장)' 형태의 공장들이 100여개 이상 있다.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를 포함해 이주노동자 수백명이 일하고 있다.

4월 23일, 부평농장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주말 특근을 마치고 동료와 함께 기도방을 가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먼저 기도방에 도착한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단속반이 나와서 이브깔람이 잡혀갔다. 오지 말라."

부평농장에서 만난 방글라데시 출신의 야곱(가명·40)씨는 지난 4월 23일 오후 8시 20분경 동료 휴먼씨 등과 함께 기도방으로 가려다가 친구의 이 같은 전화를 받고 황급히 숙소로 들어가 불을 끄고 문을 걸어 잠근채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을 죽였다. 야곱씨는 불법 체류 노동자였기 때문이다.

야곱씨와 그의 동료들 말을 종합하면, 인천출입국관리소는 지난달 23일 오후부터 이주노동자들이 밀집한 간석시장, 부평3거리 주변 등지에서 단속을 실시했다. 이후 오후 8시께 부평농장으로 들이닥쳐 무차별적으로 단속했다. 이들은 이슬람인이 예배를 보는 기도방 안까지 들어와 불법 체류자를 잡아갔다.

공장 2층에 위치한 기도방은 이슬람 신자들이 한푼 두푼 모아 전세금 700만 원으로 마련한 예배소다. 컴컴한 기도방의 불을 켜자 카펫 같은 바닥과 아랍어 책들, 그리고 기도 시간을 알 수 있는 시간표가 전부였다. 이슬람인들은 하루 다섯 번 예배를 보는데, 보통 저녁시간은 모여서 함께 예배를 본다. 부평농장 기도방은 저녁시간에 15명에서 20명 정도가 함께 기도를 하고 있다.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은 다음날인 일요일에도 기도방이 있는 건물에 들어와 화장실과 주방까지 확인했으나 기도방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오후 10시 30분까지 불 켜진 공장들을 동의 없이 그냥 들어가고 상가 등지에서 이주노동자로 보이는 사람들을 무조건 단속했다. 단속반원들은 불법 체류자가 아님이 확인된 이주노동자는 풀어주고, 6명을 불법체류자로 체포했다.

이날 단속으로 인해 기도방을 찾는 발길이 뚝 끊겼다. 야곱씨의 친구 야둘싸딸(방그라데시)씨는 기도방 출입을 끊고 거처도 다른 곳으로 옮겼다. 기자와 만나기로 한 야둘싸딸씨는 만남 장소로 나오지 않고, 야곱씨를 통해 미안함을 전했다.
   
"최소한 종교 활동공간은 보호해줘야"

어느덧 100만명 이상의 외국인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이중엔 불법체류 노동자도 상당하다. 이들에 대한 출입국관리소의 단속이 인권침해 등으로 인해 논란이 되고 있다.<사진출처ㆍ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어느덧 100만명 이상의 외국인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이중엔 불법체류 노동자도 상당하다. 이들에 대한 출입국관리소의 단속이 인권침해 등으로 인해 논란이 되고 있다.<사진출처ㆍ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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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집' 이금희 수녀는 "올해 초에 이주노동자인권센터 등의 인권단체들이 인천출입국관리 소장과 면담을 했다. 당시 소장은 야간 단속 자제를 약속했다. 솔직히 기도방은 이 동네 사람들이나 경찰 등이 다 아는 곳이다. 암묵적으로 기도방은 손을 대지 않았다"고 그동안의 상황을 들려줬다.

이어 "기도방은 성원은 아니지만 그들(이슬람 신자)이 기도하는 곳으로 종교 활동공간이다. 이슬람인들이 더 이상 기도방을 가지 못한다. 불법 체류자들이 3D업종에 종사하면서 한푼 두푼 모아 마련한 기도방을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그들의 종교 활동을 차단한 것과 다르지 않다"며 "합법 비합법 할 것 없이 외국인을 무조건 끌고 가서, 이 동네 외국인노동자 대다수가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생겨 밖에도 잘 안 나간다"고 현재 분위기를 전했다.

목회자로 한국에 와서 부평농장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자킬씨는 "일하는 시간도 아니고, 기도방에서 사람을 잡아간 것은 마음이 걸린다. (한국) 공장에서 일하면 한국에도 도움을 주고, 우리도 돈을 벌 수 있는데…"라고 한 뒤 "기도방은 우리들의 소중한 공간"이라고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인천출입국관리소 관계자는 "그날 함께 단속에 나갔지만 그곳이 기도방인지는 전혀 몰랐다. 일반 사람이 알 수 없는 공간이다. 종교시설이라는 표시가 있었다면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요즘 단속은 주로 제보에 의한 것으로 불법 체류로 한 달에 100여 명 정도를 단속한다"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평신문(http://bpnews.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기도방, #불법체류, #출입국관리소, #노동자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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