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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로 하버드의 어두운 이면을 다룬 다큐멘터리 <베리타스,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을 만든 신은정 감독.
 세계 최초로 하버드의 어두운 이면을 다룬 다큐멘터리 <베리타스,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을 만든 신은정 감독.
ⓒ 최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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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대학 하버드. 하버드의 어두운 역사를 정면으로 고발하는 다큐멘터리가 세계 최초로 제작됐다. 제목은 <베리타스,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 미국의 대표적 지성인 노엄 촘스키 교수는 이 다큐멘터리 제작 소식을 접하고 "매우 흥미로운 소재"라며 큰 관심을 표현했다. 촘스키 교수는 이 다큐멘터리의 주요한 인터뷰이 중 한 사람이다.

놀랍게도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이는 한국인이다. 신은정 감독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신 감독은 2005년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살고 있다. <신좌파의 상상력> 저자인 조지 카치아피카스 교수가 그의 남편이다.

2일 광주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난 신 감독은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하버드라는 보이지 않는 제국의 실체를 밝혀보고 싶었다"고 했다. 하버드가 2차 세계대전 후 냉전시대에 어떻게 미국의 이익에 철저히 복무했는지, 신자유주의의 등장 이후 하버드가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 등을 역사적 사건과 함께 고발하고 있다.

신 감독은 "하버드의 학자들이 개입했던 주요 정책들이 늘 옳았던 것은 아닌데 그들은 단 한 번도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진 적 없다"며 "오늘날 교육의 목적이 왜곡된 것도 하버드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신 감독은 하버드의 정체성을 "미국의 지배계층이 필요로 하는 지적 노동을 수행하는 기구"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하버드의 학자들이 미국 정부 입맛에 맞게 정책을 마사지해 주고 그 대가로 신분과 지위 상승을 꾀하며 지식인의 책무를 망각해왔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신 감독은 이 다큐멘터리를 5·18항쟁 31주년 맞춰 상영을 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오는 11일 광주에서 첫 상영회를 여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일엔 제주에서, 26일엔 서울에서 무료 상영할 예정이다. 이 무료 상영회는 오마이뉴스 10만인 클럽이 함께 한다.

다음은 인터뷰 일문일답.

한국 정치인이라면 하버드에 꼭 인사와야 한다?

다큐멘터리 제작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신은정 감독.
 다큐멘터리 제작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신은정 감독.
ⓒ 최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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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버드를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된 배경은.

"처음 미국 가서 어떤 작업을 첫 다큐멘터리의 주제로 할까 고민했다. 그런데 어느날 부지불식간에 하버드가 떠올랐다. 스스로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내가 하버드 섬머 스쿨에서 영어공부를 했다. 또 남편인 조지 카치아피카스 교수가 하버드 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를 지낸 이력으로 하버드가 주최하는 여러 행사에 자주 가게 되었다.

잘못 알고 있었던 이미지의 베일이 벗겨져가는 과정이었다. 하버드가 섬머 스쿨이나 하버드를 극찬하는 진보적 인사의 비디오를 틀어주면서 은근히 자신들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학문자유 수호에 앞장서왔는가 강조하더라. 

또 한 가지 이해 안 됐던 게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대선 후보로 한참 거론될 때 하버드에 강연하러 왔다. 고건 전 총리도 대선 후보 거론되면서 하버드를 다녀가더라. 조지에게 이 얘길 했더니 "한국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하버드에 인사 와야지"하며 웃었다. 하버드는 단순한 대학이 아닌 전 세계 정치인들의 쇼 무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2006년 조지의 논문 주제가 5·18항쟁에 미국이 어떻게 개입했는가였는데 1980년 5월 22일 백악관 엘리트들의 회의에서 20사단의 광주 투입을 승인하는 결정이 나온다. 그래서 하버드로 대표되는 미국의 엘리트 지식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결정을 하고, 이들이 어떤 교육을 통해 무슨 이데올로기를 양산하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세계를 지배하는 하버드라는 보이지 않는 제국의 실체를 밝혀보고 싶었다."

- 다큐멘터리의 주요 내용을 소개해 달라.
"큰 흐름은 하버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주요한 역사적 사건을 따라가는 것이다. 하버드가 부자들의 대학으로서 학생들이 파업진압에 동원된 사건, 하버드가 인종주의의 근원지화되면서 우생학을 어떻게 촉진시키고 이것이 나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고발한다. 또 남성중심 대학이었던 하버드가 여성을 어떻게 소외시켰는지, 2차 대전 후 냉전시대에 하버드가 미국 정부에 필요한 어떤 역할들을 했는지를 담고 있다.

특히 CIA의 전신인 OSS요원들이 하버드를 비롯한 미 대학들의 지역학 연구소를 어떻게 확장시켰고 이들이 전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추적했다. 또 하버드 출신 외교압력단체들의 행태와 신자유주의가 등장하면서 하버드 대학이 어떻게 변했으며 하버드가 러시아경제개혁에 어떻게 개입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도 하는 내용도 있다. 또 2008년 미국 금융위기에 대한 하버드 책임과 1000여 명 노동자를 정리해고한 하버드의 추악한 면도 담았다."

하버드는 왜 진보적인 학자들을 해고하지 않을까

- 노엄 촘스키 교수 등 많은 인터뷰에 응해준 석학들이 많다.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고 결정한 이후 인터뷰를 할 많은 분들에게 연락을 했다. 그 분들 중 가장 빨리 대답을 준 분이 촘스키 교수였다. 하루도 안 돼 답장이 왔다. 촘스키 교수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라며 큰 관심을 나타냈다. 촘스키 교수는 <냉전과 대학>이라는 책에 글을 썼는데 냉전시대 미국 대학들이 미 제국주의의 어떻게 부속물이 되었는지 고발하는 책이다. 이것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계셨다."

- 다큐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지식인의 책무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베트남전이 과거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베트남전에 찬동하고 복무했던 학자들이, 이라크에 가서 효율적 고문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학자들이 학자적 양심과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심판 받은 적 없고 책임진 적 없기 때문이다. 하버드 학생운동 조직의 의장을 지낸 마이클 엔세라의 발언이 인상적이었다. '학자들은 자신들이 만든 정책을 합리화시키고 정당화시키려 하지만 그것이 이끌어낸 결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데 하버드 학자들은 늘 자유로웠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학자들이 정부 입맛에 맞게 정책을 마사지 해준 다음 그 대가로 신분과 지위 상승을 꾀하며 지식인의 책무를 망각해왔기 때문이다.

진정한 역사의식, 인간에 대한 애정 없는 자들이 지식인이라는 외피를 뒤집어썼을 때 결과는 참담할 수밖에 없다. 이 시기 고등교육의 목표가 무엇인가? 20세기는 고등교육 급속히 확장된 세기였다. 20세기는 교육의 세기였지만 교육의 목적이 힘과 자본을 좇는 네트워커를 양산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교육의 목적과 목표가 왜곡된 것은 하버드의 책임이 크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무도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화두처럼 내 스스로도 진정한 교육목적이 무엇인지 의문을 가져보고 생각해보고 싶었다."

- 인터뷰했던 이 중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누구였나.
"리처드 레빈스 하버드 의학대학원 과학자다. 하버드 내에 있는 몇 명 안 되는 진보적 과학자 중 한 분이다. 그는 하버드를 가장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가 말하길 '내가 진보성향이라고 하버드로부터 해고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버드 이사회 등 하버드의 주요 논의기구들이 주요정책을 결정할 땐 결코 나를 부르지 않는다'. 하버드가 왜 그를 데리고 있겠나? 하버드의 명예를 자랑하기 위해서다. '우린 이런 진보적 학자도 있다'...

하버드의 정체성을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배계층은 세상을 자기 입맛에 맞게 조정하기 위해 지식이 필요하고, 지식인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식인들에겐 최대한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학문적 다양성은 하버드의 구색 맞추기일 뿐이다. 하버드는 미국의 지배계층이 필요로 하는 지적 노동을 수행하는 기구다. 양비론으로 가다보면 문제점을 놓치는데 리처드 레빈슨은 하버드 정체성의 핵심을 잘 짚어줬다."

하버드를 다룬 다큐멘터리 <베리타스,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 포스터.
 하버드를 다룬 다큐멘터리 <베리타스,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 포스터.
ⓒ 푸른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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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의 하버드 집착, 세계에서도 드문 일"

- 조지 카치아피카스는 남편이자 협력자다.
"이 다큐멘터리에 대한 아이디어는 떠올랐지만 제작에 대한 자신이 없어 접었다. 그런데 조지가 '이런 기획은 처음이다, 당신은 할 수 있으니 해보라'고 용기를 줬다. 그리고 자료와 인물, 방대한 역사적 사실과 사건에 대해 풍부하게 설명해줬다. 그는 내가 인터뷰한 여러 사람 중에서 60년대와 70년대 미국 학생운동 성장과 쇠락의 과정을 가장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통찰력있는 사람이었다."

- 하버드가 어둔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하버드라는 이름이 가진 브랜드 가치가 높기 때문일 것이다. 하버드라는 극소수의 강력한 네트워크에 진입하고 나면 신분 상승이 보장될 것이란 기대치가 높다. 하버드의 학자들은 늘 승승장구했다. 하버드의 학자들이 개입했던 주요 정책들이 늘 옳았던 것은 아닌데 그들은 단 한 번도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진 적 없다. 그 때마다 늘어놓았던 하버드의 변명은 '학문의 자유'였다.

하버드 케네디스쿨에선 미국의 전·현직 고위관료들이 강연을 한다. 하버드 케네디스쿨은 펜타곤(미 국방성)과 국가안보 엘리트들의 평생교육원이랄 수 있다. 케네디스쿨 이벤트에 가면 군인들이 유독 많다. 황당했다. 대학이 아닌 ROTC 행사장 같았다. 9.11이후 이라크 파병 군인들에게 하버드가 특례제도를 주고 있어서 펜타곤의 고급장교로 입문할 이들이 많이 간다. 케네디스쿨은 펜타곤의 지원을 가장 많이 받고 있다. 하지만 하버드는 영악하다. 이라크전 논란이 한창일 때 하버드는 미 정부 정책을 합리화하는 일만 하지 않는다. 이를 비판하는 컨퍼런스도 연다. 하버드는 정확히 봐야 한다. 거대한 빙산을 한 면만 보고 평가해선 안 된다. 국제관계 속에서 하버드를 봐야 제대로 볼 수 있다. 하버드 출신자들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할 것인지 미리 앞서볼 필요가 있다."

- 한국에서조차 하버드는 최고로 선호하는 대학이다.
"요즘은 덜하지만 1960년대에는 하버드가 세계의 중심이라는 의식이 팽배했었다. 에드워드 베이커 전 하버드 옌칭연구소 부소장은 '한국 사람들의 하버드에 대한 집착은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일'이라며 '심하다'고 꼬집을 정도다. 근래 미국에선 하버드만은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버클리대는 공공정책, 하버드는 로스쿨이 좋다는 식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대학에 서열을 매기기 때문에 하버드면 무조건 최고로 좋은 줄 알고 있는 것 같다. 대학 서열화의 슬픈 자화상이라고 본다."

- 관객들에게 미리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하버드가 명문대학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하버드에게 이런 면도 있다는 점을 인정하며 함께 보셨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베리타스,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 오마이뉴스 10만인 클럽과 함께 무료상영합니다. 지금까지 확정된 상영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상영을 원하는 지역이나 단체는 이메일 ljb@ohmynews.com으로 연락주세요.

* 광주 상영
- 일시 : 11일 수요일 저녁 7시 30분
- 장소 :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 다목적홀
- 프로그램 : 상영 후 가수 인디언 수니 공연, 감독과의 대화
- 주최 : 광주 새사연, 오마이뉴스 10만인 클럽

* 제주 상영
- 일시 : 20일 금요일 저녁 7시
- 장소 : 교육문화카페 '자람'
- 프로그램 : 상영 후 가수 인디언 수니 공연, 감독과의 대화, 감독과 함께 제주생태기행
- 주최 : 사회적 기업 제주생태관광, 교육문화카페 '자람', 오마이뉴스 10만인 클럽

* 서울 상영
- 일시 : 26일 목요일 저녁 7시 30분
- 장소 : 성미산극장
- 프로그램 : 상영 후 가수 인디언 수니 공연, 감독과의 대화
- 주최 : 성미산 공동체, 오마이뉴스 10만인 클럽



태그:#하버드, #펜타곤, #미국, #다큐멘터리, #C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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