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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기본은 공동체와 동고동락에 있다. 훌륭한 집에서는 누구든 특권 의식을 느끼지 않으며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다. 독식하는 사람도 없고 천대받는 아이도 없다. 다른 형제를 얕보지 않으며 그를 밟고 이득을 취하지 않는다. 약한 형제를 무시하거나 억압하지 않는다. 이런 좋은 집에서는 모든 구성원이 동등하고, 서로 배려하며, 협력 속에서 함께 일한다. 이런 '국민의 집'은 오늘날 우리가 안은 특권 상류층과 저변 계층의 사회경제적 격차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스웨덴은 유감스럽게도 좋은 집이 못된다. 정치적으로는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면서도 사회는 계급적 격차가 심화하고 있으며 국가 경제는 소수 특권층에 의해 좌우된다.  이런 사회적 격차를 없애고 좋은 '국민의 집'을 건설하기 위해 사회적 돌봄 정책과 경제적 균등 정책이 요구된다. 또한, 기업 경영에서 정당한 지분이 지급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정치뿐 아니라 모든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진보 정치인의 입을 통해 나왔음 직한 위의 내용은 1928년 페르 알빈 한손이 스웨덴 국회에서 '국민의 집'이라는 제목으로 연설한 것 중 일부다. 이후 '국민의 집'은 스웨덴 사민당이 추구하는 사회상의 상징적 개념으로 자리를 잡았고 오늘날까지 복지국가 스웨덴을 일컫는 별칭이 되었다.

 

말이야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누구나가 소외당하지 않고 동등한 권리를 추구하는 사회를 만들고자 그들은 사회 전반의 개혁을 지치지 않고 꾸준히 추진해왔고, 이에 걸맞은 여러 제도가 차곡차곡 쌓이면서 오늘의 '보편적 복지'를 이루게 된 동력이 되었다.

 

스웨덴을 지금 우리 사회와 비교하는 것은 너무 동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구 한쪽에서 이미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이 있고, 이것이 순전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회경제구조와 정치 시스템 때문이라면 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요즘 유행인 '복지'의 실현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생각하면 우선 열 발짝 앞서 있는 국가들의 역사와 제도들을 들여다보는 것이 가장 쉬울 것 같다.

 

일찍이 스웨덴으로 유학을 갔다가 국내정치상황 때문에 돌아오지 못하고 그곳에 눌러앉게 된 저자 신필균 씨는 공직생활을 거치면서 한국과 다른 그들의 사회를 깊숙이 경험하고 체계적인 자료도 축적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스웨덴의 오늘이 있기까지 그들의 정치역사로 시작해서 '국민의 집'이라 불릴만한 온갖 사회정책들의 사례를 들어 분석하고 한국과 비교한다. 이에 더해 그들의 문화적 성정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담아 도대체 어떻게 협의의 방향을 잡고 힘없는 이들을 배려하는 문화를 정착할 수 있었는지를 들여다본다.

 

우리와는 차이를 보이는 정부의 체계를 통해 유연하면서도 단호하게 지방분권화에 이르게 된 과정, "모든 아이는 모두의 국가가 기른다"는 철학을 근간으로 한 아동정책, 늘어가는 노인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는 노인정책을 살펴본다.

 

그리고 장애인을 소외하지 않고 대한 완전한 평등을 실현하는지 알아보면서, 의회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주요 공직자의 절반을 보장받는 여성정책과 입시에서 벗어난 교육정책, 모든 국가가 선망의 대상으로 보는 보건의료정책 등을 꼼꼼하게 살핀다.

 

선진국들이라고 피해갈 수 없는 논란의 중심에 있는 주택정책과 노동정책은 충분히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따라잡을 수 있을만한 상식적인 내용을 기술하고 있어 지금 우리 상황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게 한다. 물론 문화와 교육 등의 배경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녹색과 우리의 녹색이 어쩌면 이렇게 다를 수 있는지 한탄하게 하는 환경정책. 자진해서 이산화탄소를 낮추고 에너지 자립을 통해 모든 원전을 폐기할 것을 공약하는 정치인이 있는 나라. 이를 위해 자연과 사람이 하나임을 모든 국민이 공유할 수 있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는 대목은 뼈아프다.

 

이 책은 웬만하면 읽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듯하다. 지나치게 상식적인 내용이 지금 한국의 상황과 겹치면서 심하게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그 강도는 더해지며 차라리 모르는 것이 속 편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급진세력, 선동세력, 포퓰리즘이라고 몰아붙이는 정치인들이 '주류'인 우리로서는, 도대체 진짜 '평등'과 누구나가 자기 권리를 제대로 주장할 수 있는 사회는 언제쯤 이루어질 수 있을지 답답하기만 하다.

 

그래도 꿈틀거려야 한다. 부족하지만 알아가면서 우리 손잡고. 이 땅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하고 차별받지 않는 장애인, 여성, 노인, 아동의 꿈을 실현하고자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에게 그들이 수십 년 동안 이루어낸 것들은 훌륭한 본보기가 될 수 있을 듯하다.

덧붙이는 글 | <복지국가 스웨덴>(신필균 씀, 후마니타스 펴냄, 2011년, 17000원)


복지국가 스웨덴 - 국민의 집으로 가는길

신필균 지음, 후마니타스(2011)


태그:#복지국가스웨덴, #스웨덴알기, #스웨덴교육, #정신건강을 걱정한다면 이 책은 읽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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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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