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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아! 일어나서 학교 가야지!"

"네~~지금 일어나려고 하고 있어요."

 

이렇게 대답하고도 한참이다. 난 몇 분의 여유를 주고 나서 다시 깨운다. 머릿속에는 이것저것 생각이 많다. 여름이가 작년에 지각을 몇 번 했었다. 알람을 맞춰 놓지 않아 작은 아이 푸름이 때문에 잠을 설친 내가 제 시간에 일어나지 못한 것이다. 1학년이라 그래도 많이 너그러울 때였다. 나 자신도, 또 담임선생님도. 그런데 이제는 한 학년이 올라 2학년이 되었다. 조금 더 자랐으니 조금 더 잘해야 할 일이다.

 

"얼른 일어나라니까. 학교에 늦어!"

"엄마, 기지개 한번만 하고~."

 

여름이는 이렇게 힘들게 일어나 화장실에 가서도 한참을 나오지 않는다. 뭐하고 있나 살짝 살펴보면 변기에 앉아 아직 깨지 않은 잠과 싸우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면 나는 또 참지 못하고 빨리 하라며 재촉한다. 잠을 푹 재운다고 많이 재워도 늘 아침은 똑같다. 아직 두 돌이 되지 않은 푸름이는 새벽부터 팔팔한데, 여름이는 반대다. '둘이 바뀌면 딱 좋을 텐데' 싶다. 우리의 아침은 이렇게 시작된다.

 

요즘 여름이는 짜증과 신경질이 많아졌다. 내가 사근사근 물어도 퉁명스럽게 대답하기 일쑤다. 어쩔 땐 아무리 어린 딸이지만 나도 상처를 받는다. 오죽 했으면 내가 이웃 사람들에게 아이 키우며 이렇게 힘든 적은 처음이라고 까지 말할까. 그러면 모두들 한결같이, 여름이 정도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이까짓 걸 가지고 뭘 그러느냐고,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이야기 한다. 세상에! 난 너무 힘든데, 이제부터 시작이라니!

 

그렇다고, 이대로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요즘 아이들이 빨라서 사춘기가 일찍 온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원인이 없지는 않을 터이다. 우리 여름이를 힘들게 하는 일이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바로 여름이를 귀찮게 하는 동생 푸름이다.     

 

여름이는 푸름이때문에 많은 걸 양보한다. 푸름이가 떼를 쓰면 난 시끄러워서 일단 말이 통하는 여름이에게 양보를 하라고 이야기 한다. 주고 싶지 않은 물건도 어쩔 수 없이 줬을 것이고, 제가 더 먹고 싶은 음식도 모두 푸름이에게 먼저 줬을 것이다. 그러면서 마음 속으로 얼마나 많이 상처를 받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여름이는 종종 나에게 "엄마는, 푸름이만 좋아하지"라고 이야기 하며 서운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 다른 사람들이 물으면 "동생이 있어서 싫다"고 대답하기도 한다. 이렇게까지 되기 전에 내가 더 신경을 썼으면 좋았을 텐데 싶다. 역시 아이를 키우는 일은 너무 힘든 일이다.

 

더 늦기 전에 여름이의 마음을 조금 더 헤아리고 더 이상 마음이 아프지 않게 서로 통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여름이의 글쓰기 공책이 다 되어 새로 바꾸어야 했다. 나는 여름이가 좋아할 만한 예쁜 공책을 한 권 사왔다. 그리고 앞 표지에 짧은 편지글을 썼다. 

 

집에 돌아온 여름이에게 공책을 내미니, 무슨 공책이냐며 묻는다. 글쓰기 공책을 다 써서 새로 사왔다고 주니, 예쁜 공책을 받은 것으로 이미 기뻐한다. 공책을 열어 보더니 내가 쓴 편지를 다 읽은 모양이다. 갑자기 여름이가 엉엉 소리를 내며 한없이 한없이 울었다. 너무 놀라서 왜 우느냐고 물었다. 

 

"엄마, 나 너무 감동 받아서 우는 거예요. 난 엄마가 푸름이만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엄마 편지를 보니 엄마가 내 생각도 하고 있는데, 난 그것도 모르고 속상해 했어요. 그래서 엄마한테 화도 많이 내고… 엉엉 엄마~~~~."

 

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울고 있는 여름이를 한참 동안 꼭 안아 주었다. 질투의 화신 푸름이의 방해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날 밤 난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내 화장대 거울에 예쁘게 붙여 놓은 편지를. 엄마 편지에 감동했다는 여름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그런 내용의 편지였다. 완전히 다는 아니겠지만, 여름이가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게 되어 다행이다. 이렇게 아홉살 여름이는 조금씩 조금씩 자라고 있다. 여름이가 흘린 만큼은 아니지만, 사실 나도 찔끔 눈물을 흘렸다.

덧붙이는 글 | 마음은 늘 여름이에게 잘해야지 하면서도 떼쓰는 푸름이에게 더 관대해 지는 이유가 뭘까요?  오래도록 하던 일을 이월에 정리하고 온전히 아이들과 함께 한지 이제 두 달이 되어 가네요.  힘들면서도 기쁜 일상입니다.


태그:#동생, #여름,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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