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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슬쩍슬쩍 내리다 꼬리를 감춘 일요일(10일) 아침, 더벅머리 총각이 한기를 느끼는지 어깨를 움츠리고 사무실 밖에 앉아 있었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요. 무거운 것을 들 때마다 주저앉고 싶어요. 일을 시작하면 조금 나아지긴 하는데,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손발이 뻣뻣해서 무거워진 몸을 세우기도 힘들어요. 이젠 정말 일을 못하겠어요."

작업장 안전교육에 앞서 설문조사를 하고 있다.
▲ 이주노동자 산업안전교육 작업장 안전교육에 앞서 설문조사를 하고 있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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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온 지 2년 반이 넘은 수얀또는 허리통증을 호소하며, 용접 일을 하던 회사에서 퇴사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회사에서 외국인들을 담당하는 현장 관리자는 "이 일이 원래 용접하면서 쇠를 들고 날라서 힘든 일이에요. 좀 아프다고 회사 그만둔다고 할 때마다 그러라고 하면, 이런데 일할 사람 없어요. 지금도 외국인 두 명이 허리가 아프다고 수요일마다 침 맞으러 다니고 있고, 5월이면 근로계약 만기되는 외국인이 세 명이나 있는 마당에, 그 친구 회사 그만둔다고 하는데 어림없는 소리에요" 하며 역정을 냈다.

수얀또가 허리통증을 호소하며 근무처 변경을 요구한 지는 벌써 여섯 달이 넘었다. 작년 9월부터 통증을 느껴, 사장 동생이라는 현장 담당자와 같이 병원에 가서 진료도 받고, 통증 완호를 위한 주사도 맞아 왔다.

그동안 수얀또를 진료해 왔던 신경외과의 이OO씨는 "엑스레이상으로 보면 선천적으로 척추가 약한 척추분리증을 앓고 있는 사람입니다. 허리뼈의 염좌와 긴장으로 인한 요추부 통증이 있을 수 있습니다"라며 본인이 꾸준히 잘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수얀또 본인은 물론이고 진료를 했던 의사뿐만 아니라, 회사 담당자까지도 수얀또가 허리 통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과, 계속 일을 한다면 허리에 상당한 무리가 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측에서 수얀또의 퇴사를 반대하는 것은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때문이다. 이 법에 따르면, 사측의 동의가 없으면 이주노동자는 퇴사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지난달 말부터 수얀또는 허리 통증이 심해져서 더 이상 일을 못하겠다는 판단에 따라 '의사진단서'를 갖고 근무처변경을 허락해 줄 것을 고용노동부 인천북부고용센터에 요청했다. 그러나 고용센터 담당 직원은 "의사진단서 한 장만 갖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못한다고 말할 수 없다. 진단서에 그 일을 못한다고 적혀 있어야 (고용센터 직권으로) 근무처변경이 가능하다"며 수얀또에게 회사로 돌아갈 것을 종용했다.

환자 본인이 허리를 잘 관리하라는 말에는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 분명히 있을텐데도, 고용센터 직원은 수얀또의 고통에 대해 '나 몰라라' 했다.

수얀또는 더 이상 일을 못하겠다는 사실을 누차 말했지만, 아무도 수얀또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회사 담당자는 처음에는 사장의 동의가 있으면 퇴사 처리를 해 주겠다고 하다가, 고용센터에서 직권처리를 하지 않는 것을 보고 태도를 바꿨다.

"그 친구, 작년에 근로계약 연장할 때 월급 올려 달라고 해서 올려줬는데, 또 월급 올려 달라고 그러는 거예요. 여기 일이 원래 힘들고 허리가 아픈 일인데, 자꾸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럴 거 아니에요. 편의를 봐 주고 쉬게 해 줬으면 됐지, 이제라도 일 안 하면 이탈신고 해야지, 뭐"

그러나 수얀또의 말은 달랐다.

"작년 시월에 월급 올려달라고 한 건, 근로계약이 끝날 때였어요. 회사를 옮기고 싶었지만, 조금 더 올려 준다고 해서 참고 일해 보자고 생각했었어요. 고향에서 집을 짓기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그때부터 점점 더 아프기 시작했어요. 아프지도 않은데 아프다고 하면 돈도 못 버는데, 왜 그렇게 해요. 아파도 참으면서 일한 지 여섯 달이 됐어요. 도와주세요."

산업안전교육은 노동자 건강과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교육이긴 하나, 산업현장에서 일방적으로 무시되기 십상이다.
▲ 산업안전교육장 산업안전교육은 노동자 건강과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교육이긴 하나, 산업현장에서 일방적으로 무시되기 십상이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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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얀또가 도와달라고 한 건, 아픈 허리에도 불구하고 회사로 돌아가지 않으면 회사에서 이탈신고를 할 것이고, 자신은 어쩔 수없이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되기 때문이었다. 고용노동부 외국인력 정책과에서는 지난 3월 14일부터 '5일 이상 사업주의 근무지시 불이행, 근무해태 등 사업주의 귀책사유 없을 경우, 소재지를 알고 있더라도 무단결근으로 간주하고, 이를 이탈로 처리'하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수얀또처럼 허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2주 가까이 일을 하지 않으면, 사측에서는 이탈신고를 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선천적으로 허리가 약했던 스물여섯 청년은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하고 싶지만, 지금은 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런 청년에게 대한민국은 일을 하지 못하면 '불법'이라는 딱지를 붙이려 하고 있다.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파도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고, 죽어라 일만 하기를 강요당하는 노예 아닌 노예 신세가 돼 버린 수얀또는 지금 자신의 억울함을 풀 방법을 찾아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태그:#이주노동자, #노예, #근무처변경, #근로계약, #고용노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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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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