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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동아일보> 4면에 실린 <고령화 사회 '보살피는 손길' 인기···작년 취업자 절반 차지>라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들더군요. 뭐랄까. 여러 측면에서 접근해야 할 의료서비스 문제를 '일자리 창출'이 가져오는 장점만을 극대화시켰다는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 복합적인 사고가 필요한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시키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동아일보>가 어떤 취지에서 이런 시리즈 기사를 기획했는지 이해는 하지만 공감을 하기는 힘들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동아일보>의 기사는 고소득층의 의료서비스를 위한 기사였기 때문입니다.

민영 의료서비스 일자리 창출만 주목한 <동아일보>

동아일보 2011년 4월4일자 4면
▲ 동아일보 동아일보 2011년 4월4일자 4면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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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가 의료 서비스 산업을 일자리 창출의 블루오션으로 주목한 데에는 나름 근거가 있습니다. 의료 및 보건복지 분야의 신규 채용이 다른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활발하기 때문입니다.

<동아일보>가 몇 가지 사례를 들고 있는데요, 두 가지만 언급하겠습니다. 우선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건강관리서비스회사 '차움'을 한번 볼까요. 호텔과 병원, 고급헬스센터를 합쳐놓은 듯한 이곳은 차병원이 지난해 11월 '미래형 의료기관'이란 타이틀을 내걸고 문을 연 원스톱 건강관리서비스회사라고 합니다. 이곳이 개장하면서 새롭게 일자리를 찾은 사람은 200명이나 된다는 게 <동아일보>의 설명입니다.

경남 김해시 실버캐슬 요양병원도 있습니다. 이 병원은 최근 간호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영양사 등 여러 직종의 근무인력을 평균 15%가량 늘렸다고 합니다. 고령화 사회의 급속한 진행으로 요양병원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데다 병원 인력 규모와 질에 따라 정부의 인센티브가 제공되면서 이 분야의 일자리가 크게 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례를 근거로 <동아일보>는 "지난해 의료 보건복지 분야에서 22만 6000개의 일자리가 생겨나 지난해 전체 취업자 증가분(45만 5000명)의 절반 가까이에 이르렀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민간 의료서비스 고용의 질과 의료서비스 혜택은 외면 

이런 '긍정적 효과'를 부인할 순 없습니다. <동아일보>가 지적한 것처럼 "고령화 사회에서 '보살피는 손길'이 인기"를 끌면서 의료 서비스 산업이 일자리 블루오션이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의료 서비스 문제를 일자리 창출로만 바라볼 수 없다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습니다. 복합적인 사고가 필요한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동아일보 2011년 4월4일자 4면
▲ 동아일보 고령화 사회 의료서비스 기사 동아일보 2011년 4월4일자 4면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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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의 기사가 가진 문제점을 지적하기 전에 살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의료 서비스의 현실입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도 제기된 문제인데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이애주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한국 의료 서비스의 문제가 무엇인지 대략 알 수 있습니다. 간략히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 2008년 기준으로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연세세브란스병원 등 이른바 '빅4' 대형병원을 이용하는 암 환자의 46.7%가 소득 상위 20%라는 것 ▲ 이들 병원에서 한 해 동안 치료받은 19만 9853명의 암 환자 중 소득·재산 상위 10%에 해당하는 사람이 5만7794명(28.9%), 그 아래 상위 11~20%의 고소득층이 3만 5579명(17.8%)에 달하는 것 ▲ 반면 2008년 4대 대형병원을 이용한 암 환자들 중 하위 20% 저소득층의 이용률은 9.3%에 그쳤다는 겁니다.

이 통계가 말해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암 발병률이 더 높은 저소득층에게 대형병원의 문턱이 그만큼 높다는 것이죠. <경향신문>(2010년 10월 6일 자 3면)은 이 같은 내용을 전하면서 "의료 민영화가 되면 경제적 여유가 있는 환자만 대형병원을 이용할 수 있는 '의료 양극화' 우려가 이미 현실화되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의료 양극화 외면한 일자리 창출이 무슨 의미가 있나

4일 <동아일보> 기사의 가장 큰 문제는 '의료 양극화 문제'에 대한 조명이 없다는 점입니다. <동아일보>가 이 기사에서 언급한 의료 서비스의 실질적 혜택은 우리 사회 고소득층이 누릴 가능성이 거의 100%입니다. 이처럼 극소수 사람만이 혜택을 받는 민영 의료서비스 산업과 관련한 각종 법안을 국회가 제대로 된 논의없이 통과시키는 게 온당할까요.

경향신문 2010년 10월6일자 3면
▲ 2010년 국정감사 경향신문 2010년 10월6일자 3면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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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찬성과 반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야 할 그런 문제입니다. <동아일보>처럼 일자리 창출이라는 '하나의 시각만'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더구나 <동아일보>는 의료 서비스 산업 확대에 따른 일자리 창출 효과만 주목할 뿐 그 일자리의 질적인 측면, 즉 고용의 질에 대해선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우리 사회 극소수인 고소득층이 혜택을 보는 민영 의료서비스 산업 확대로 비정규직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대체 '그런' 의료서비스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회의나 비난이 터져 나오지 않을까요. 일자리 창출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고용의 질이라는 얘기인데 이 부분에 대해선 구체적인 언급이 없습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박은수 의원은 정부가 추진하려는 '건강관리서비스법'이 의료 민영화 정책의 일환 아니냐고 지적한 다음 이렇게 얘길 했습니다.

"의료서비스에서 건강관리서비스를 분리해 공공의 의무를 민간자본의 사업 수단으로 전락시킨 것은 의료 공공성을 후퇴시키고 의료비 증가를 야기할 것이다."

동아일보의 4일 자 기사가 좀 더 설득력을 갖추기 위해선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이 보강됐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하긴, 보강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요. 의료 양극화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곰도리의 수다닷컴'(http://pressgom.tistory.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태그:#동아일보, #의료서비스, #의료양극화, #대형병원, #의료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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