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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8일 오전 5시, 한 학생이 위험천만한 학교 공사장 타워크레인에 올랐다. 중앙대학교 재학생 노영수(29·독어독문학과3)씨였다. 
 
두산그룹에 인수된 중앙대는 교육수월성을 이유로 경쟁력 있는 학과 육성과 유사·중복 학과 통합을 추진했고, 2010년 3월 18개 단과대학을 10개로, 77개 학과를 46개로 줄이는 구조조정안을 확정했다. 학생들은 구조조정안이 나온 뒤 천막농성과 단식농성을 벌이는 등 강하게 반발했지만, 중앙대는 4월 8일 이사회를 열어 단과대 통폐합과 모집단위 광역화를 뼈대로 한 구조조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노씨는 "학교 측의 일방적인 학과 구조조정에 반대한다"며 중앙대 연구개발센터 공사장 타워크레인을 6시간 동안 점거했다. 그는 결국 경찰에 연행됐다. 두산건설은 노씨를 고소했고 그는 업무방해로 1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사건 발생 5일 뒤 학교 측은 약 25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한 달 뒤엔 퇴학 처분을 더했다. 투쟁 과정에서 재단을 인수한 두산의 계열사로부터 두 차례나 고발을 당하기도 했다.

구조조정 반대를 주장하던 다른 두 명의 학생도 징계를 받았다. 김주식(27·철학과4)씨에게는 퇴학, 김창인(21·철학과2)씨에게는 무기정학 처분이 떨어졌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제22민사부는 지난 1월 21일 퇴학처분 등에 대한 무효확인 소송 판결문에서 이들 3명에 대해 학교가 지나친 징계를 내렸다며 무효 처분을 내렸다.

이에 학교 측은 지난 24일 상벌위원회를 열어 노씨에게 유기정학 14개월을, 김주식씨에게 무기정학을, 김창인씨에게 유기정학 18개월이라는 징계를 내렸다. 징계자들과 일부 학생들은 28일 오후 중앙대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심징계 결과가 법원 판결과 학생 징계자의 입장을 전혀 존중하지 못했다"며 "무책임하게 남용한 징계를 취소하고 총장이 직접 해명하고 사과하라"고 주장했다.

이 사건의 중심에 있는 노씨를 기자회견 다음날인 29일 오후,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 인근 건물 한 회의실에서 만났다. 그는 "금전적인 부담도 크지만 정신적인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털어놨다.
 
"벌금 150만 원·손해배상 청구 2500만 원... 학생 벼랑 끝으로 내몰아"
 

- 28일 유기정학 14개월 처분을 받았다.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솔직히 마음이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다. 그동안의 투쟁 과정을 떠올려 볼 때 충분히 예상했던 결과였기 때문이다. 사건이 벌어진 지 1년이 거의 다 됐지만 학교 측은 여전히 학생을 벼랑 끝으로 내몰려고만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다분히 감정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

- 이번 유기정학 처분 때문에 신변에 어떤 변화가 생겼나.
"당장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게 됐다. 이번 학기에 가까스로 복학해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28일부터 가지 못하게 됐다. 정학 기간은 소급 적용하지만 올 가을학기에야 다시 학교를 다닐 수 있다. 이번에 복학했던 김창인씨도 유기정학 처분을 받아 고스란히 몇 달을 더 쉬어야 한다. 법원의 퇴학 처분 무효 판결 취지가 무색하다."

- 그래도 전에 받았던 퇴학 처분과 비교하면 훨씬 가벼워진 것 아닌가.
"퇴학 처분은 비교 대상 자체가 될 수 없다. 법원 판결로 학교가 경솔한 판단으로 학생 징계권을 남용했다는 게 명백히 드러나지 않았나. 학교가 징계 당사자는 아니더라도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학생이나 구성원에게 유감 표명 정도는 한 뒤 심하지 않은 수위의 징계를 내렸어야 한다고 본다."

- 상대적으로 가벼운 징계로 학교에 다닐 수 있는 선에서 처분이 내려졌다면 어떻게 하려 했나.
"의미가 없는 가정일 뿐이지만 학교에 계속 다닐 수 있었다면 그냥 참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징계에 대해 흔쾌히 수긍하겠다는 게 아니라 처벌을 낮춰준 성의만큼은 인정하겠다는 거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 더 따질 시간도 없었다. 이번 학기에 빈자리가 없는 강의실을 보면서 학업에 열중해야 겠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오랜만에 복학해서 수업이 재미있었고 의욕도 넘쳤다. 다른 일을 생각할 시간 없이 학과 공부를 따라가기에도 바빴다. 그러나 학교의 무리한 징계에 의해 다시 투쟁 현장으로 내몰리게 됐다."

- 한 학기 더 쉬어간다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 않나.
"유기정학이 다가 아니라서 문제다. 이번 일과 관련해 재단을 인수한 두산으로부터 고소 1건·고발 2건을 당해 벌금이 150만 원이나 선고됐고, 학교로부터도 약 2500만 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를 받았다. 이건 대학생 개인이 감당하기엔 너무 어려운 일 아닌가. 사실상의 '전방위 징계', '탄압 융단폭격', '죄인 만들기 프로젝트'라고 본다. 정말 학교가 학생에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 그래도 불법 행위에 대한 처벌은 감당해야 할 텐데.
"잘못을 피할 생각은 없다. 불법 행위에 대한 죄는 달게 받을 것이다. 특히 타워크레인에 오른 일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다. 잘못인 줄 알면서, 처벌받을 것을 알면서 올라갔다. 당시 이 문제를 알릴 마땅한 방법도 없었거니와 학생들이 몽땅 끌려나가는 등 상황이 매우 나빴다. 지금도 똑같은 상황이 오면 그렇게 행동할 것 같다. 지금까지 학교 측과 재단을 인수한 두산은 잘못에 대한 적절한 처벌을 넘어선 무리한 일을 여러 번 시도했다. 그동안의 고소·고발 과정은 기업이 노동자를 옥죄는 방법과 너무도 비슷하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학교 측이 징계 철회할 때까지 투쟁"

- 지나치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는 언제였나.
"타워크레인에서 6시간 만에 내려와 경찰에 건조물침입으로 조사를 받은 지 30분 만에 두산건설 관계자가 고소장을 놓고 갔다. 학교에서 일어난 일인데 대기업 법무팀이 반나절 만에 신속하게 대처해 법대로 한 결과 업무방해가 더해져 벌금 100만 원을 선고받았다. 2010년 6월 1인 시위와 7월 삼보일배에 대한 고발 건도 집시법 위반으로 엮였다. 그중에 20장짜리 고발장이 날아왔던 1인 시위 건은 무혐의로 처리돼 무리한 시도였음이 드러나기도 했다. 2010년 7월에는 두산중공업 직원으로부터 '노영수 관련 동향 보고'라는 이름의 문건을 입수하는 등 사찰로 의심할 만한 일도 있었다. 학교의 손해배상 청구도 지나치긴 마찬가지다."

- 학교가 학생에게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경우가 흔치 않긴 하다.
"다행히 이 문제가 소송까지는 가지 않았으나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살아 있는 뇌관'이나 다름없다. 사건 발생 5일 뒤 학교 관계자로부터 6시간 동안 약 2500만 원의 손해가 났다며 밀실에서 손해배상 관련 문건을 받았다. 국책 사업에 반대하기 위해 보에 올라가서 만 하루를 점거한 사람도 3000만 원을 물었다고 한다. 내가 온종일 있었다면 6시간에 2500만 원으로 계산해 총 1억 원을 물어야 한다는 결론이 난다. 난 오전 5시에 올라가 오전 11시에 내려왔으니 공사를 온종일 방해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 진중권 전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겸임교수가 이번 일과 관련해 자신의 트위터에 "교수들, 자기들이 할 일을 학생들이 대신한 셈인데 돕기는커녕 두산의 앞잡이 노릇이나 하고 있다"고 비판했는데.
"학생들의 구명을 위해 노력한 교수들이 많기 때문에 싸잡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징계위원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하고 징계를 결정한 교수들에게는 큰 아쉬움이 남는다. 일전에 법원에서 무효 판결이 날만큼 적정 수준이 아닌 극단적인 결정이 나왔던 것도 대학이 기업화·권력화됐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번 결정도 비슷하지 않을까."

- 다른 대학교라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보나.
"있어도 이 정도로 심하지는 않을 것 같다. 대화나 설득으로 풀어보려는 시도가 먼저 있었을 것이고 양심적으로 판단해 징계가 결정됐을 거라 본다. 중앙대가 기업이라면 이해한다. 그러나 교육자와 학생이 사원은 아니듯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 대학에 무작정 기업 논리를 적용하면 안 된다."

- 주변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나.
"그동안 휴학이 잦아 선배보다는 후배가 많은데 대체로 지지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회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투쟁이 널리 알려졌고 큰 동정론도 일고 있다. 어떤 길이 올바른지는 이미 결정이 난 문제라고 본다. 평범한 대학생으로 지내고 싶었는데 상황이 이렇게까지 나빠질지는 정말 몰랐다. '사람이 미래다'라는 구호가 이젠 섬뜩하다."

-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계획인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학교 측이 징계를 철회할 때까지 투쟁할 생각이다. 그동안 투쟁 과정에 함께하면서 큰 힘이 된 두산 관련 노동조합·각종 단체 등과 연대해 자본 권력에 맞설 것이다. 그게 '세련된 탄압의 기술'에 대응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투쟁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일들이 참 많았는데 이걸 잘 정리하면 책 한 권 분량이 될 것 같다.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기록을 자세히 남길 생각이다."

태그:#노영수, #중앙대, #두산, #두산대, #징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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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동작구위원장. 전 스포츠2.0 프로야구 담당기자. 잡다한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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