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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학생들도, 교사들도, 학부모도 정신없이 바쁘게 새 학기를 맞는다. 학기 초가 되면 이들과 더불어 바쁜 사람들이 또 있다. 바로 출판사 직원들이다. 새 학기가 되면 특히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수업시간에 쓸 부교재를 선정해야 하는데 참고자료로 쓰라고 각종 출판사에서 하루에 몇 번씩, 몇 수레씩 책을 교무실로 배달한다.

교무실을 출판사 재고 창고처럼 만들며 수북히 쌓인 부교재들(1)
 교무실을 출판사 재고 창고처럼 만들며 수북히 쌓인 부교재들(1)
ⓒ 김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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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무실을 출판사 재고 창고처럼 만들며 수북히 쌓인 부교재들(2)
 교무실을 출판사 재고 창고처럼 만들며 수북히 쌓인 부교재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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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재고 창고가 아니라 우리 학교 영어과 교무실이다. 각종 출판사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책을 수레로 싣고 와서 교무실에 명함과 함께 풀어놓고 간다. 며칠 만에 쌓인 게 이 정도이니 며칠 더 지나면 놓아둘 곳이 없을 정도이다. 몇 권이나 되나 세다가 금세 포기했다. 영어 과목 책만 이 정도이니 수학, 국어, 과학, 사회 같은 과목 책까지 포함하면 몇 권인지 알 수가 없다.

새책에게 자리를 내주고 복도로 밀려난 2010년 헌책들(1)
 새책에게 자리를 내주고 복도로 밀려난 2010년 헌책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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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에게 자리를 내주고 복도로 밀려난 2010년 헌책들(2)
 새책에게 자리를 내주고 복도로 밀려난 2010년 헌책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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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 온 책들은 벌써 헌책이 됐다. 사용할 책들은 이미 교사나 학생들이 모두 가져가고 교무실 한 켠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놓여져 있던 것을 복도에 내놓았다. 하도 양이 많아 스무 번 이상을 교무실을 들락날락 하면서 옮겨야 했다. 혹시 누구라도 필요하다고 하면 그들이 가져가고, 필요 없는 것들은 폐지가 되어 그 운명을 다할 처지에 놓인 것들이다. 과연 이들 중 몇이나 새 주인을 만날 수 있을까?

혹시 쓸만한 책이 없을까 하고 열심히 살펴보고 있는 학생들(1). 과연 이 중 몇 명이나 쓸만한 것을 건질 수 있을까?
 혹시 쓸만한 책이 없을까 하고 열심히 살펴보고 있는 학생들(1). 과연 이 중 몇 명이나 쓸만한 것을 건질 수 있을까?
ⓒ 김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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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쓸만한 책이 없을까 하고 열심히 살펴보고 있는 학생들(2) 이 친구는 한권이라도 건졌을까?
 혹시 쓸만한 책이 없을까 하고 열심히 살펴보고 있는 학생들(2) 이 친구는 한권이라도 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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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볼 수 있게, 해설 없이 만들어 주면 안 될까?

요즘 책 한 권 값이 7000원에서 1만 원 정도 한다. EBS 교재는 기본이고 여기에 각 과목마다 한두 권씩 수업용, 보충수업용, 자습용 교재를 사야 한다. 고등학생들의 한 학기 책값만 해도 교과서 대금을 제외하고 10만 원이 훌쩍 넘는다. 당연히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 책들을 내놓고 가져가도 된다고 하자,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이들이 달려든다. 혹시 쓸 만한 헌책이라도 구할 수 있을까 하고…. 이 장면을 보고 흐뭇하다고 웃어야 할지, 아니면 한숨과 함께 쓴웃음을 지어야 할지 망설여진다.

이 책들에는 대부분 빨간펜 정답, 파란펜 해설이 달려있다. 교사들이 학생 나누어주지 못하도록 바뀐 것이라는 설도 있지만 확인할 수는 없다. 어쨌든 이 많은 책들 답 안 써 놨으면 책값 부담되는 학생들 그냥 나누어줄텐데....
 이 책들에는 대부분 빨간펜 정답, 파란펜 해설이 달려있다. 교사들이 학생 나누어주지 못하도록 바뀐 것이라는 설도 있지만 확인할 수는 없다. 어쨌든 이 많은 책들 답 안 써 놨으면 책값 부담되는 학생들 그냥 나누어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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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오는 책들은 거의 대부분 겉표지에 "교사용", "연구용", "강의용"이라고 쓰인 인장 또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책장을 넘겨보면 문제 아래에 빨간색 또는 파란색으로 정답과 함께 해설을 적어 놓았다. 길게 풀어서 쓰자면 '학생들 주지 말라'는 의미로 읽힌다.

이전에는 학생들이 선생님 책을 보지 못했다고 하는데 요즘엔 선생님이 없으면 학생들이 자기 책처럼(혹시나 시험문제 같은 것 표시해놓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선생님 책을 넘겨본다. 정답과 해설이 쓰인 강의용 교재라는 것을 알면 선생님에게 장난으로 "우~" 하고 야유를 보낸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에는 교사용 교재를 들고 수업에 들어가는 교사는 거의 없다.

정답과 해설을 모두 써 놓았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는 소용이 없다. 학생에게 공짜로 못 주게 하려고 이렇게 바꿨다는 설(?)도 있다. 그런데 정답과 해설을 써 놓지 않은 책들이 가끔 있다. 출판사에서 교사용을 따로 만들지 않았거나, 가끔은 판매용이 잘못 배달오기도 하는 것이다. 선생님들은 이런 책을 무척 좋아한다. 이런 책을 골라서 형편 어려운 학생들에게 주는 선생님들이 있다. 가능하면 교사용이라는 표식을 지우고…. 오늘도 "여기 있는 책 가져가도 돼요? 기초 학생들이 볼 만한 영어 책 없어요?"하고 묻는 착한(?) 교사들이 책장을 기웃거린다.

이렇게 학기 초마다, 방학 때마다 전국 3천여 고등학교로 수백 권씩 배달되는 책의 양은 엄청날 것이다. 교무실을 출판사 재고 창고로 만들며 먼지 덮어쓰게 하지 말고, 아예 출판사에서 학생들도 볼 수 있게 파란색, 빨간색 해설 없이 그냥 만들어주면 안 될까? 아니면 보지도 않는 교사들 말고 학생들에게 장학사업으로 기증하는 것도 괜찮고…. 그것도 아니면 이런 거 갖다주지 말고 그만큼 책값이라도 내리든지…. 해마다 3월이면 드는 생각이다.


태그:#부교재, #교무실, #빨간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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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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