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

 

그러나 이번 일본 대지진은 그 반복되는 역사가 절대 희극만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혹자들은 이번 지진을 150년마다 혹은 1천년마다 한 번씩 오는 지진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어쨌든 처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번 일본 대지진은 일본 열도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아무리 대비에 철저했던 일본인이었지만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아직까지도 전체적인 피해 규모조차 예측할 수 없는 일본 대지진.

 

다행히 후쿠오카 원전의 방사선 유출 위기가 한 고비를 넘기게 되면서 일본 사회는 이제 본격적인 복구 움직임을 보일 태세다. 물론 아직까지도 피해 지역에는 수많은 피난민들이 모여 있으며, 어디서부터 복구를 해야 할지 암담한 상황이다. 하지만 어느 일본 할아버지의 말마따나 예전에도 그랬듯이 또 재건하면 된다는 것이 현재 일본인들의 마음일 것이다.

 

비록 직접 가서 도와주지는 못하지만 일본인들이 어서 대지진의 아픈 기억을 딛고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 그러나 이와 함께 걱정되는 것은 과연 이번 대지진이 일본 사회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냐는 점이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이번 사건이 일본 사회를 극우화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이다.

 

일본 대지진과 우경화의 가능성

 

우리는 자연재해든, 경제적 위기든 대재앙이 휩쓸고 간 사회가 극우화되는 사례를 역사를 통해 수없이 봐왔다. 당장 일본의 예를 들어 보자.

 

일본 사회는 1923년 관동대지진을 계기로 극우화의 길로 들어섰다. 일본 민주주의의 시작이라고 일컫는 다이쇼 시대가 관동대지진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파시즘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진 다음날 일본 정부는 지진으로 흉흉해진 민심을 잡기 위해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약을 집어넣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고 닥치는 대로 조선인을 죽였다. 정부는 이를 구실로 계엄령을 선포했고, 경제를 세우겠다며 만주 정벌에 나섦으로써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일반 대중들의 교육 수준이 정부의 선동을 믿을 만큼 낮지 않고, 또 그때보다 국제사회가 더욱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홀로 극우화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 일본 사회가 평화헌법을 만들던 전후와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최근 일본 사회는 우경화되고 있었던 중이었다. 소위 '잃어버린 10'을 거치면서 많은 일본인들이 군대를 가질 수 있는 '정상국가'에 대해 논의를 하기 시작했고, 과거 식민지 지배에 관한 기록을 고쳐 나가기 시작했었다. 이 때문에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이 많은 부분 다투지 않았던가.

 

그런데 일본 대지진이 일어났다.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 일본 대지진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 우선 일본 정부는 이번 대지진을 빌미로 자위대의 증강을 이야기할 것이며, 현재 여당인 민주당 대신 훨씬 오른쪽에 선 자민당의 집권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그리고 자민당이 집권하게 된다면 극우파들 역시 그 세력을 확장시킬 것이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대지진의 복구가 생각보다 여의치 않으면 일본 사회가 또 다시 내부적으로 혹은 외부적으로 공적을 만들어, 이를 희생양 삼아 사회를 규합하려 들지 않을까? 그것이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역사적 궤적 아니던가. 이는 결국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한반도에게 있어 큰 위기가 될 것이며,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

 

일본 사회의 또 다른 가능성

 

과연 일본은 이번 대지진을 계기로 우경화될 것인가?

 

그러나 그 대답이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그 답을 1995117일에 일어났던 고베 대지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당시 일본은 고베 대지진으로 인해 6300여 명이 사망하고 1400억 달러의 피해를 낸 바 있다. 물론 이번 대지진에 비할 바 안 되지만, 어쨌든 당시 고베 대지진은 일본 지진관측 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으로서 일본 사회를 뒤흔들어 놓았었다.

 

그 어느 때보다 힘든 90년대를 지내고 있던 일본에 닥친 시련. 그러나 일본 사회는 이 지진을 계기로 우경화되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 일본 사회에는 이 지진을 계기로 '다문화공생'이라는 말이 보급되기 시작되었다고 한다. 지진으로 인해 행정체계가 마비되자 약 300만 명에 달하는 일본 국민들이 자원봉사자로 재해지역으로 들어가 도움을 주었고 그 속에서 서로의 소중함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대지진 역시 일본 사회의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이다. 앞에 서술한 바와 같이 대지진으로 인해 사회가 우경화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사회 구성원들이 연대를 통해 사회를 이루고 있는 다양한 존재에 대해 깨달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일본과 가장 가까운 우리 사회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 극우화라는 것이 결국 자아와 타자를 나누어 타자를 적대시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일본 외부에 있는 우리가 얼마나 성심 성의껏 그들을 돕고 연대하는지에 따라 그 사회의 시각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구호의 손길이 그들과 계속 함께 한다면 어찌 그 사회가 극우화될 수 있으며 파시즘화 되겠는가.

 

이쯤 되면 찔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수많은 일본 사람들이 보든 말든 일본 대지진을 선정적으로 보도하면서 우리 한반도는 괜찮으니까 안심하라고 마냥 떠드는 사람들과, 일본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천벌을 받은 거라고 되도 않는 말을 하는 사람들. 결국 일본의 극우화를 부추기고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자들은 그들이다.

 

부디 많은 이들이 나서서 일본인들에게 이웃 나라의 손길이 얼마나 따스한지를, 세계적인 연대의 힘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려주시길 바란다. 힘내라 일본!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일본 대지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