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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강풀(본명 강도영)이 3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10만인클럽 특강에서 '만화로 세상 보기 강풀과의 문화 데이트'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만화가 강풀(본명 강도영)이 3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10만인클럽 특강에서 '만화로 세상 보기 강풀과의 문화 데이트'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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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Ɵ'(th)발음의 원조 방송인 노홍철씨. 짧은 혀에서 나오는 조금 모자란 발음을 매력으로 승화시킨 노씨지만, 그보다 더 격한 발음으로 "고맙듭(Ɵ)니다"를 연발하는 '마성의 매력'을 가진 남자가 있다. 그는 얼마 전 MBC 인기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출연해 노씨 앞에서도 전혀 주눅이 들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스스로를 '74%의 순정을 유지하는 순정남'이라고 소개하지만 일부에게는 '좌빨 작가'로 불리는 남자. 웹툰 1세대인 그는 데뷔 10년 만에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우뚝 섰다. 영화사들이 그의 작품 판권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할 정도다. 매 작품마다 흥행에 성공하며 연재일마다 독자들을 컴퓨터 앞에 꼼짝없이 묶어 놓는 웹툰 작가 강풀(본명 강도영, 37)이 바로 그 주인공인다.

그는 지난 1월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당신의 모든 순간>(당모순)의 연재를 마쳤지만 최근 더욱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의 원작을 영화화한 <그대를 사랑합니다>(그대사)가 관객 50만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하고 있어 여기저기 인터뷰가 몰려들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지난 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를 찾았다. '10만인클럽' 37번째 특강 '만화로 세상보기, 강풀과의 문화데이트'에는 100여 명의 참가자 몰려 자리를 가득 채웠고 강연이 아닌 흡사 '팬미팅' 같은 분위기였다.

강풀도 "딱딱한 거는 싫다, 편하게 하자"며 강연을 30분 만에 종결했다. 10만인클럽 특강이그렇게 일찍 끝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돌발적인 상황에 주최 측도 당황했지만, 역시 강풀은 최고의 인기 만화가였다. 그 뒤로 1시간이 넘게 참가자들의 질문이 쏟아졌고 특강은 어느 때보다 많은 웃음이 쏟아졌다.

강풀은 이날 "차기작은 밤에 혼자 보기 힘들 정도로 무서운 공포 만화를 그리고 싶다"며 "한 여자를 귀신이 집요하게 쫓아다니는 이야기"라고 예고했다. 또 자신이 '좌파 만화가'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난 좌파가 아니다"라며 "고민을 많이 해봤지만 우측으로 쏠린 사람들이 보기에 좌측에 있는 것일 뿐, 난 가운데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재미를 빼고 그린 만화는 <26년>뿐... <당모순>은 오해다"

3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10만인클럽 특강 '만화로 세상 보기 강풀과의 문화 데이트'에서 수강생들이 만화가 강풀(본명 강도영)의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3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10만인클럽 특강 '만화로 세상 보기 강풀과의 문화 데이트'에서 수강생들이 만화가 강풀(본명 강도영)의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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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풀이 대학시절 총학생회 간부를 하다가 만화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유명하다. 그는 94학번으로 상지대 총학생회에 몸담으면서 학생들이 대자보에 무관심한 학생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 만화대자보를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 그린 만화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대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이후 민중만화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했고, 지금은 "만화 그리는 게 너무 좋아져서, 이제는 안 그릴 수 없는" 사람이 됐다. 평범한 일상을 배경으로 하고 소시민들의 이야기를 주로 그린 그의 작품은 이런 민중적 뿌리에서 묻어난 것이다. 결국 그런 역사 때문에 그에게 '좌파 만화가'라는 딱지를 붙이는 사람들이 생겨났지만.

강풀은 짧은 강연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데 할애했다. 그는 "2002년에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였고, 그 뒤로 전교조, 딴지일보, 참여연대에서도 활동했으니까 그걸 보고 좌파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며 "하지만 그런 활동이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생각에서 한 것이지 좌파였기 때문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한때는 노빠(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자) 만화가라는 소리도 들었다"며 "실제로 노사모 활동을 하기는 했지만 노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탈퇴했다"고 밝혔다. 강풀은 "탄핵사태 때도 만화를 그렸고, 그 후로 무슨 만화를 그려도 그런(노빠라는) 식의 해석이 따라다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그분을 정말 존경하고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가장 가슴 아픈 일로 마음에 담고 있다"며 "한때는 내가 왜 '노빠'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몰랐지만 지금은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를 '좌파'니, '노빠'니 나누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고, 이제는 신경 쓰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강풀은 항상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이런저런 논란을 겪어왔다. 그의 최근 작품 <당모순>에서도 유독 노란색이 많이 쓰여 논란이 됐다. 그는 "<당모순>도 그렇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건 오해"라며 "만화의 재미를 거스르면서까지 그런 의미를 담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만화를 재미에 목적을 두고 그리지 다른 생각은 하지 않는다"라며 "다만 <26년>에만 다른 목적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정치이야기 많이 해야 한다"

그의 작품 <26년>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희생자들의 자녀들이 모여 당시 끔찍한 학살을 일으켰던 장본인을 암살하려 한다는 내용이다.

그는 "2003년 누군가가 '통장에 29만 원 밖에 없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 사흘 동안 꼬박 시나리오만 썼다"며 "용서하고 화해하자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그런다고 그때의 본질이 잊혀서는 안 된다. 나보다 어린 학생들이 그 일을 기억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26년>이 나간 이후에 상당한 협박이 있을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며 "그런 게 있어 은근히 화제가 되길 바랐지만 없었고, 말로 담지 못할 욕을 하는 전화는 몇 통 받았다"고 전했다. 

"믿기 어렵겠지만 난 크리스천이다. 예전부터 꼭 만화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두 개 있었는데, '어린예수'에 대한 것과 바로 <26년>이다. 내가 만화를 그리는 건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재능)라고 생각한다. 그 재능을 가지고 <26년>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23년>으로 썼다가 2년 동안 겁이 나서 하지 못했다. 결국 결혼을 앞두고 '결혼하면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리게 됐다. 큰 협박은 없었다. 잘못돼서 소송이 걸리면 얼마나 내야 하는지, 일본으로 튈 생각도 하고 준비도 해놨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강풀의 <26년>은 <29년>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제작될 뻔했으나 최종 촬영 돌입 단계에서 엎어지고 말았다. 당시 출연배우와 감독, 스텝까지 모두 섭외된 상태에서 제작이 중단돼 정치적인 외압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강풀은 자신에게 쓰인 편견에도 앞으로도 사회적 이야기를 담은 작품을 계속 그릴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 사회적 이야기는 교수님이나 정치인쯤 되는 뭔가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술자리에서 한나라당 비판하면 '네가 뭘 안다고 그러냐'하는 식이다. 하지만 정치만큼 우리 일상과 밀접한 게 없다. 정치를 잘 못해 전셋값이 오르고 등록금이 오른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정치 이야기를 많이 해야 하고, 나는 그걸 만화로 그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대사>는 할머니가 내게 준 선물"

만화가 강풀(본명 강도영)이 3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10만인클럽 특강에서 '만화로 세상 보기 강풀과의 문화 데이트'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만화가 강풀(본명 강도영)이 3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10만인클럽 특강에서 '만화로 세상 보기 강풀과의 문화 데이트'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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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풀은 강연을 시작하면서 "딱딱한 건 싫다"고 했지만 30여 분 진행된 그의 이야기는 온통 '딱딱' 했다. 그것도 강연의 전략이었을까? 강연 동안 궁금증의 갈증을 참던 참가자들은 질의응답 시간이 시작되자 질문을 쏟아냈고, 강풀도 입고 있던 가죽점퍼를 벗었다. 진정 본격적인 '강풀 뜯어보기' 시간이 된 것.

다음은 강풀과 강연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처음에는 혼자서 하는 작업이었다가 이제는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작업으로 커 가는 단계인데 회사를 세워 기업화할 생각은 없나?
"작년에 회사를 만들었다. 만화 <이끼>의 윤태호 작가와 양영순 작가와 함께 회사를 설립했고, 웹툰과 만화가 좀 더 소비되는 콘텐츠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현재 상영 중인 <그대사>에 대해 이야기해달라. 어떻게 노인의 사랑이야기를 그리게 됐나?
"<그대사>는 본래 계획에 없던 만화다. 집이 어렵게 살다가 부모님과 할머니를 모시고 살게 됐는데 할머니가 너무 좋아졌다. 지금 연세가 97세신데, '할머니도 여자구나', '똑같이 설레고, 좋아하고, 질투하고 하는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노인로맨스'를 해보고 싶었다. 할머니가 연세가 많으셔 감기로 돌아가실 뻔했는데, 그전에 선물로 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리고 보니 내가 할머니께 선물한 게 아니라 할머니가 나에게 준 선물이더라."

- 작품에 보면 영화같이 연출한 장면이 많다. 영화 흥행에 많이 실패했었는데 본인이 직접 해봐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나?
"영화 연출제의를 몇 번 받았는데 거절했다. 만약 한다면 영화보다 연극 연출을 하고 싶다. 그것도 공포연극, 실제 상황이라고 느낄 정도의 무서운 호러연극을 해보고 싶다."

반전 맞추는 댓글은? "친구 동원해 밀어버린다"

- <26년>이 영화화 될 계획이었지만 엎어졌다. 정권이 바뀌고 사회 분위기가 달라지면 다시 제작할 의향이 있는지, 또 장편만 하고 있는데 예전처럼 단편을 그려보고 싶지는 않은지 묻고 싶다.
"계약기간이 지났지만 <26년>의 판권을 회수하지 않고 있다. 영화사분들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알기 때문에 기회가 되면 다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 같은 단편만화를 그리지는 않을 것 같다. 처음 연재를 시작할 때 10편의 장편 만화를 그리는 게 목표였는데 지금은 20편 정도를 그리고 싶다. 남은 힘을 쏟아서 최대한 장편 만화를 하려고 한다."

- 먼저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노량진에서 자취를 하며 재수를 했는데 다 그만두려고 하다가 우연히 <바보>를 봤다. 강풀 작가가 누군 줄도 모르고 봤는데 소외된 사람들을 다룬 내용이 큰 힘이 됐다. 그 덕에 재수생활을 잘 마칠 수 있었다. 궁금한 것은 등장인물들의 역할이 치밀하게 짜여 있는데 즉흥적으로 부여하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계획하는지 궁금하다.
"작업을 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대사까지 다 써놓고 시작한다. 만화에 소시민이거나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건 나의 어릴 적 환경 때문인 것 같다. 집이 정말 가난하고 어려웠다. 아버지가 개척교회 목사님이셨는데, 2년 전에 은퇴하셨다. 개척교회의 목사는 정말 생활이 어렵다. 나 자신이 어려운 생활을 해봤기 때문에, 낮은 곳을 향한 정서가 남아 있다. 지금이야 잘 먹고 잘 살지만 그걸 잊지 않으려고 한다. 형편은 어려웠지만 환경은 좋았다. 사랑 많이 받고 자랐다."

- 영화나 소설을 좋아하신다고 했는데, 좋아하는 작품과 감독, 소설과 작가는 누구인지, 또 본인의 작품을 연출했으면 하는 감독이 있다면?
"나의 최고 영화는 <영웅본색>이다. 주윤발이 죽을 때 같이 울었다. 외국의 영화감독은 제임스 캐머런이 좋다. 좋아하는 소설은 중국 작가 김용의 <영웅문>. 한국 감독은 류승완 감독을 좋아한다. 류 감독의 작품이 흥행은 들쑥날쑥 했지만 다 재밌고 내 취향에 맞았다. 내 작품의 연출을 맞는다면 류 감독이 했으면 좋겠다. 특히 <타이밍> 같은 작품."

- 작품을 보면 막판에 반전 스토리가 많은데 댓글에 그 반전을 맞춰버리는 독자들이 있지 않나? 그러면 기분이 어떤가?
"독자들하고 머리싸움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가 알아차리면 열 받는 건 있다. 결말을 맞춰버린 댓글이 있으면 친구들한테 문자를 보내 댓글을 대거 달아 그 댓글을 밀어버린 적이 있다. 기분 안 좋은 건 어쩔 수 없지 않을까? '~한 1인' 놀이를 해서 그 댓글을 사라지게 만든다."

"마감 지킨다는 약속은 못 한다, 앞으로도 못 지킬 것"

만화가 강풀(본명 강도영).
 만화가 강풀(본명 강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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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님께서 양평에 '강풀펜션'을 운영하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가끔 손님이 많고 하면 일손도 돕고 하나?
"고맙다. 내 입으로 이야기하기 어려웠는데 홍보할 기회가 생겼다. 아버지께서 전원생활이 꿈이었다. 어느 날 가보니 아버지가 간판을 '강풀펜션'이라고 지어 놨다. 검색창에 '강풀펜션' 치면 나오니 많이 애용해 달라. 예약은 많지 않다. 목사님을 하셔서 그런지 처음에는 '커플은 안 된다', '주민증 검사를 하겠다', '주일은 쉬겠다'고 하셨다. 펜션 열자마자 망할 뻔했다. 일이 많으면 내려가서 돕기도 한다."

- 마감 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독자들의 피를 말리는데 본인이 생각하는 마감의 마지노선은 몇 시인가? 만약 목요일 연재라면 밤 11시 59분에 올려도 된다고 생각하나?
"잘못했습니다. 다른 것은 자부하지 못하는데 마감이 개판인 것만은 정말 자부한다. 연재 늦게 올린다고 올라오는 악플은 악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늦은 건 내 잘못이니까. 개인적인 마감의 마지노선은 오후 3시다. 화장실도 안 가고 마감할 때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도 마감을 잘 지키겠다는 말은 할 수 없다. 계속 어길 것이다. 하지만 이번 <당모순>은 마감을 어긴 적이 없다. 노력은 계속하지만 장담은 못한다는 말이다."

- 차기 작품의 제목과 자세한 소개를 부탁한다.
"제목은 아직 안 나왔지만 이야기는 거의 다 나왔다. <당모순>은 100% 순정만화였기 때문에 이번에는 호러를 하고 싶다. 거두절미하고 제대로 무서운 만화다. 한 여자를 귀신이 계속 괴롭히는 이야기이다. 밤에 못 볼 정도로 무서운 만화가 될 것 같다. 제목은 정해지는 데로 트위터에 올리겠다."


태그:#강풀, #그대를 사랑합니다, #그대사, #26년, #무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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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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