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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소년(Easter boys)'시리즈 2011. 2전시장(일부)
 '부활절소년(Easter boys)'시리즈 2011. 2전시장(일부)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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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신문로에 있는 성곡미술관(관장 김인숙)은 2010년 문제작 김영헌의 '깨진 꿈(Broken Dream)'과 박화영의 '쿠바(CUBA)'에 이어 중진작가 손정은의 '명명할 수 없는 풍경'展을 3월 13일까지 선보인다. 작가란 당대사회의 고정관념을 깨는 교란자(trickster)라는 면에서 그런 역량을 충분히 발휘한 돋보이는 전시다.

손정은(1969~) 작가소개
[학력] 1998년 미국 매릴랜드 인스티튜트 컬리지 오브 아트, 조소과, 석사 1995년 이화여자대학교'조형예술대학 대학원, 조소과, 석사 1992년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조소과, 학사 [직업] 현대 경희대학교 미술대학 부교수(조소전공)

[개인전] 2011년 '명명할 수 없는 풍경'(성곡미술관) 서울. 2008년 '외설적인 사랑-사라진 비밀', (갤러리 쿤스트 독) 서울. 2004년 '복락원-Please Don't Leave Me'(가모 갤러리) 서울. 2003년 '복락원'(포스코미술관) 서울. 2000년 '달의 정원 : 손정은 설치 퍼포먼스'(대안공간루프) 서울. 2000년 '달의 정원'(문예진흥원 미술회관 제1전시장) 서울. 1998년 '몽상의 집'(데커 갤러리) 매릴랜드, 미국

20세기를 돌이켜보면 제국주의가 낳은 세계대전과 이념대립이 낳은 냉전체제로 나눌 수 있는데 이는 결국. 피를 물든 남성위주의 죽임의 문화였다. 그래서 1990년대는 구소련과 동구사회권이 무너졌고 21세기에 와선 신자유주의도 무너져간다. 여전히 마초이즘이 맹위를 떨치지만 생태평화주의를 근간으로 한 여성주의가 대세인데 그런 정신이 작품마다 묻어있다.

이번전은 3막 심리극으로 구성되었다. 1막(3층)은 남녀의 대립과 갈등을 엿볼 수 있는 가상여행이고 2막(2층)은 여성이 왜곡된 남성을 꽃물로 물들이는 사랑의 혁명이고 3막(1층)은 남녀가 갈등과 대립을 넘어 용서와 포용으로 가는 화합의 마당이다.

성속(聖俗)이 교차하는 가상여행

'외설적인 사랑' 복합매체(박제한 꽃과 생물, 엿, 꽃물드로잉, 선풍기, 센서, 철제가구) 가변크기 2007-2011. 3전시장입구
 '외설적인 사랑' 복합매체(박제한 꽃과 생물, 엿, 꽃물드로잉, 선풍기, 센서, 철제가구) 가변크기 2007-2011. 3전시장입구
ⓒ 성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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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에 해당하는 3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위 임신한 가상의 여성에 보듯 마치 관객이 여성의 자궁 속으로 들어가 생명이 잉태하는 그 오묘하고 신비한 과정을 본다고 할까. 아니면 포르말린용액에 담긴 끈적끈적한 물체는 자궁에서 만나는 뒤틀린 남근이나 그도 아니면 기성의 왜곡된 권력과 규율을 극복하기 위해 숨겨둔 비축물로 볼 수도 있다.

하여간 인간의 원초적 본능과 에로틱한 욕망과 모태 신앙적 상상력이 용해된 가운데 성속(聖俗)이 뒤섞여 있고 고통과 쾌락, 상처와 치유, 과거와 기억, 향기와 악취 등이 교차하는 것 같다. 어쨌든 이 혼란한 설치미술은 이번 전의 제목처럼 '명명할 수 없는 풍경'이다.

무의식세계가 펼쳐진 것 같은 3층 전시장

'외설적인 사랑' 복합매체 설치(박제한 꽃과 생물, 엿, 꽃물드로잉, 선풍기, 센서, 철제가구 등), 가변크기 2007-2011. 3층전시장
 '외설적인 사랑' 복합매체 설치(박제한 꽃과 생물, 엿, 꽃물드로잉, 선풍기, 센서, 철제가구 등), 가변크기 2007-2011. 3층전시장
ⓒ 성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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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성(性)문제가 대두하는데 이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난제다. 그 심연의 세계는 복잡 미묘한 것들이 얽히고설켜있다. 정신분석에서는 리비도라는 개념 속에 설명하지만 여기선 생명의 잉태자로 남성보다 더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여성의 입장에서 경험하게 되는 소외, 억압, 불안 같은 상흔의 파편들을 무의식적으로 여기에 펼쳐놓은 것 같다.

또한 함께 설치된 선풍기와 센서는 이 생체실험실 같은 멜랑콜리한 분위기 속에서 관객에게 언어화하거나 형상화할 수 없는 부분에 새 바람과 호흡을 불어넣어 시각만이 아닌 오감으로 작품을 감상해 보라는 적극적인 의미로 해석된다.

남녀성기가 전시된 진기한 풍경

'외설적인 사랑(그 남자의 초상)'시리즈 엿 2010. '영원한 여성' 비누 사진 2007. 3층전시장
 '외설적인 사랑(그 남자의 초상)'시리즈 엿 2010. '영원한 여성' 비누 사진 2007. 3층전시장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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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전시장에서 또한 남녀성기가 노골적으로 형상화돼 있다. 재료는 재밌게도 초와 엿이다. 남성 성기는 작가의 입으로 만들어 이빨자국도 선명하다. 성적쾌락도 연상되지만 토하는 것 같은 역겨움도 또한 '엿 먹어라'식의 남성에 대한 조롱도 담겨 있다.

쿠르베의 '세상의 근원'도 그랬지만 현대미술을 위기에서 구한 뒤샹의 '변기'도 결국은 여성 성기를 그린 것이다. 비디오아트를 창시한 백남준의 'TV 첼로'도 마찬가지다. 작년에 서거한 세계적 거장 루이스 부르주아(1911-2010)에게 남성 성기는 그의 전유물이었다. 동양의 산수화는 남녀성기를 자연에 빗댄 것으로 동서양이 다르지 않다.

여기에 남성 성기의 우월성을 풍자한 김민정 시인의 '젖이라는 이름의 좆'을 소개한다.

네게 좆이 있다면 / 내겐 젖이 있다 / 그러니 과시하지 마라 / 유치하다면 / 시작은 다 너로부터 비롯함일지니 / 어쨌거나 우리 쥐면 한 손이라는 공통점 / 어쨌거나 우리 빨면 한 입이라는 공통점 / 어쨌거나 우리 썰면 한 접시라는 공통점 […] 두 짝의 가슴 / 두 짝의 불알

남성을 사랑의 포로로 만드는 여성적 상상력

'부활절소년(Easter boys)'시리즈 2011. 결박된 채 순교자적 자세로 여성의 힘을 받는다
 '부활절소년(Easter boys)'시리즈 2011. 결박된 채 순교자적 자세로 여성의 힘을 받는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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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막이 전시된 2층을 올라가면 붉은 사진으로 물들어있다. 남성을 길들이는 방식으로 남성의 몸을 천천히 오랫동안 분홍빛으로 붉게 꽃물을 들이는 것인가. 작가는 피와 젖 같은 여성의 몸에서 나오는 분비물이야말로 성스러운 매개물로 보는 것 같다. 그래서인가 그 붉은 색이 우리 눈에 자극적이지 않고 오히려 온화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여기서는 남성용 포르노그래프에서 흔히 보는 것과 달리 남성의 몸이 대상화된다. 남성이 오히려 범죄자나 포로처럼 손이 묶여있다. 일종의 남녀역할 바꾸긴데 가히 그 발상이 기막히다. 남성에 대한 복수극이라기 보단 남성을 제대로 다시 태어난다는 가설이다.

왜곡된 남성성을 원초적 여성성으로 순화

'부활절소년(Easter boys)'시리즈 2011
 '부활절소년(Easter boys)'시리즈 2011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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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또한 남성의 위세를 통쾌하게 뒤집어 놓는 가상놀이이거나 아니면 왜곡된 남성성을 원초적 여성성에 의해 순화시키려는 의도인지 모른다. 여성의 타고난 배려와 보살핌으로 남성주의가 빚은 강박증과 그로 인해 유발되는 모순과 이중성을 치유하는 과정 말이다.

그래서 이렇게 남성의 힘 빼기의 한 상징으로 남성을 붕대와 거즈로 꽁꽁 묶여 보지도, 듣지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게 한 것 아닌가. 왜냐하면 남성 스스로 가부장제도에 갇혀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기에 이런 조치를 취했다는 메시지인가 보다. 

남녀화합을 위한 대전제

'혀가 잘린 여인들의 노래' 채색한 석고 도자기 아시바 18×29×16cm 2010. 1전시장(일부)
 '혀가 잘린 여인들의 노래' 채색한 석고 도자기 아시바 18×29×16cm 2010. 1전시장(일부)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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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막은 남녀가 갈등을 극복하고 화해로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대전제가 있다. 즉 남성사회가 틀어막은 여성의 입을 열어줘야 하는 것이다. 입은 말을 하고 밥을 먹고 사랑을 표현하는 도구로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삶 속에서 구현하는 시발점이다.

'혀가 잘린 여인들의 노래'라는 제목에서 보듯 여성의 입이 사회적 억압으로 인간의 본능인 표현의 자유가 봉쇄되면 거기에서 남녀관계는 파탄에 이른다. 남성적 일방형 언어를 해체하고 인터넷시대에 맞게 여성적 쌍방형 언어로 바꿔야 한다는 메시지다.

남녀의 정음정양, 상호주체관계

'당신이 거주하는 장소' 성곡미술관 1전시장 2011. 프로이트가 언급한 남녀성기를 닮은 설치물들로 음양조화 정남정녀의 세계를 선보이다
 '당신이 거주하는 장소' 성곡미술관 1전시장 2011. 프로이트가 언급한 남녀성기를 닮은 설치물들로 음양조화 정남정녀의 세계를 선보이다
ⓒ 성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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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를 보면 남녀성기를 은유하는 물체가 짝을 지어 놓여있다. 여성의 아름다움과 남성의 힘이 만나 상생하며 그 생명력이 최대로 꽃피우게 되는 세상을 뜻하리라. 작가도 이런 세계를 "[…] 당신의 버림받은 비천한 몸을 / 부드럽게 감싸 안을 것이다 // 사라진 비밀 / 잊혀진 기억 // 하늘로 용솟음치는 황홀한 정액" 같은 자작시에 남겼다.

정음정양(正陰正陽)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그 말대로 남녀가 주종관계가 아니라 상호주체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폭력성을 유발하는 남성위주의 사랑은 들어갈 틈이 없어진다. 그러면서 여성은 사랑의 힘으로 남성을 구할 수 있는 특별한 존재가 거듭난다는 뜻이 되지 않겠는가.

여성의 자궁은 남성의 영원한 고향인가

'베일을 쓴 아버지의 초상' 사진 125×210cm 2011. 최대한 발기된 남근과 함께 최대로 발현된 여근의 모습도 보여준다
 '베일을 쓴 아버지의 초상' 사진 125×210cm 2011. 최대한 발기된 남근과 함께 최대로 발현된 여근의 모습도 보여준다
ⓒ 성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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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을 보니 백남준이 1962년 독일 비스바덴에서 "살아있는 암 고래의 질 속으로 들어가라"고 마구 외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게 동서양의 통섭을 뜻한 건진 몰라도 여성의 자궁은 남성이 돌아갈 영원히 고향이라는 뜻으로 들리니 참으로 기분이 묘하다.

어쨌든 여기 3막에선 남성에 대한 원망과 증오를 넘어 여성의 상처로 남성의 아픔까지도 품어내는 상생의 단계에 도달한다. 남녀의 에로스가 커다란 에너지로 바꿔 이 세상이 더 아름답게 풍요롭고 만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 숨어있는 것 같다.

이렇게 작가의 3막 심리극은 창녀(막달레나)마리아와 처녀마리아를 넘어 성녀마리아로도 변모되는 변증법적으로 막을 내린다. 성모의 몸을 통해 예수가 잉태하듯 인간적 욕망과 관능까지도 품는 모성으로 인간이 총체적으로 구원된다는 뜻인가. 하여간 우리 모두는 죽으면 결국 지모신(地母神) 즉 어머니의 자궁으로 돌아가는 존재가 아닌가.

덧붙이는 글 | 성곡미술관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2가 1-101 전화 02) 737-7650 www.sungkokmuseum.com



태그:#손정은, #여성주의(페미니즘), #정음정양, #무의식세계, #성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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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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