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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8시 35분 인천공항 1층 B입국장. 항공기 도착 상황을 알리는 전광판의 표시 중 하나가 바뀌었다. 유혈 상황이 발생한 리비아를 탈출한 교민 238명을 태운 대한항공 특별 전세기 KE 9928 옆 글자가 '지연'에서 '도착'으로 바뀐 것이다.

 

가족을 애타게 기다리던 이들 사이에서 "왔어, 왔어!" 하는 말이 나왔다. 그러고 나서 입국장으로 몇몇 사람이 들어섰지만 이들은 리비아에서 오는 길이 아니었다. 그러자 공항 근무 요원들에게 "리비아에서 온 사람들은 언제 나오느냐"고 묻는 이도 있었다.

 

15분 후인 오후 8시 50분. 리비아에서 돌아오는 교민들이 하나둘 입국장으로 들어섰다. 따뜻하게 포옹하는 사람들, "고생 많았다"며 어깨를 토닥여주는 이들, 환하게 웃는 사람들 모습이 보였다.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고, "아빠다" 하며 달려가는 아이 모습도 눈에 띄었다. 취재진이 몰려들자 "이분들 나가실 수 있게 길을 내주세요"라고 요청하는 공항 근무 요원들의 목소리도 들렸다.

 

포옹, 눈물, 웃음... 만감 교차한 인천공항 입국장

 

둘째아들 이승만(35)씨를 기다리는 정기숙(61·충북 청주)씨는 입국장으로 들어오는 이들을 유심히 살폈다. "아들을 보려고 청주에서 오늘 모두 올라왔다"는 남편 이용운(63)씨와 큰며느리를 비롯한 정씨의 다른 가족들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아들 이씨의 모습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들 이씨는 트리폴리 외곽 마무라의 건설 현장에서 설계 일을 했다(신한건설 협력업체인 명승종합건축 소속). 리비아에서 일한 지 2년째인 아들을 정씨가 마지막으로 본 건 6개월 전. 리비아에서 정부와 시위대의 대치가 심해진 후 정씨는 아들 걱정에 매일 잠을 이루지 못했고 "텔레비전을 보기도 겁났다"고 말했다.

 

정씨는 아들이 귀국 비행기를 타기 직전 통화를 할 수 있었고, 덕분에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아들이 숙소에서 트리폴리 공항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지가 다시 걱정됐다고 한다. 정씨는 "그래도 회사에서 여러 가지로 배려해줘 아들이 무사히 올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정씨는 "우리 아들(승만씨)이 서른을 넘긴 지가 오래인데 장가를 아직 안 갔다"며 "아들 장가 보내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아들이 위험한 곳에 다시 가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라고 했다.

 

기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아들을 기다리는 엄마의 눈은 입국장으로 들어오는 이들을 살피고 있었다.

 

"트리폴리만큼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밤마다 총소리 들려"

 

"어머니, 저기요, 저기."

 

그렇게 다시 20분이 지난 오후 9시 10분, 정씨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도 기다리던 아들 이씨가 카트를 밀며 입국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가족들이 다가갔다.

 

"고생 많았다. 고생했어."

 

이씨는 "내가 있던 마무라는 트리폴리만큼 위험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덜 위험했다'는 그곳에서도 "밤마다 총소리를 들었고, 사람들의 비명 소리도 들려왔다"고 한다. 이씨는 숙소 바깥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씨 가족들과 함께 공항에서 이씨를 기다리던 이씨의 상사 김종구(42)씨는 "마무라 현지 숙소와 전화 연결은 되지 않았지만, 나중에 네이트온이 연결돼 그것으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현지인들 도움을 받아 트리폴리 공항으로 무사히 갈 수 있었다"던 이씨는 "트리폴리 공항은 아비규환 상태였다"고 말했다. 이씨는 그런 와중에도 "특별 전세기가 마련됐고, 대사관 직원들이 현지에서 열심히 도와준 덕분에 무사히 올 수 있었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씨의 표정에는 사지에서 느껴야 했던 긴장감이 여전히 남아 있는 듯했다. 이씨는 애타게 기다리던 가족들과 함께 고향집을 향해 떠났다.


태그:#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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