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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그들은 왜 패배했을까?

 

MB정부가 들어서면서 가장 힘을 기울였던 일중의 하나는 4대강 사업이 아니라 잃어버린 10년 되찾기였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공공연히 언론에서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표현하였고 그들은 앞선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거나 개악하는데 많은 힘을 기울였다. 즉, 실용정부로 인해서 대한민국 헌정사상 민주적으로 출범한 진보정부의 가치가 부정당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에게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게 함으로써 잃어버린 10년 정체성 만들기에 동참해버린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또한 공공연히 앞서의 정부를 무능한 정부라고 말하는데 암묵적으로 동의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혹자는 이에 대한 대답으로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개인주의와 보수화를 지적할지도 모른다. 진보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던 국민들이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보내면서 보다 보수적으로 변모하고 또 보다 개인주의적으로 돌변했다는 것이다. 허나 이러한 진단은 신빙성이 떨어져 보인다. 왜냐하면 2008년 이후 국민들 사이에서 반 MB정서가 확대되고 있으며 이는 특히 젊은 20~30대층에서 극심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는 반MB연대라는 이름으로 진보정치에게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즉, 국민이 보수화된 것은 아니란 말이다. 가장 보수적이라고 거론되던 20대조차 MB정부에 대한 불만을 공공연히 표출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답일까? 조국은 <진보집권 플랜>에서 이에 대한 답으로 진보정치가 그간 민생문제에 대한 어떤 청사진도 제시하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즉, 진보가 밥 먹여준다는 사실을 입증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반면 그동안 보수는 밥 먹여주는 문제에 집중했다. 2008년 18대 국회의원 선거의 한나라당 승리는 결국 뉴타운 공약이 먹혀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반값등록금과 같은 대안도 한나라당이 제안하니 IMF 이후 먹고 살기 팍팍해진 살벌한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들에게는 무엇보다 매력적인 제안으로 보였다는 것이다.

 

2002년 대학에 들어간 나는 이러한 조국의 지적에 적극 동의한다. 그 해, 나는 이른바 운동권이라 불리는 동아리에 가입했고 학생운동에 열을 올리고 있는 선배들을 많이 만났다. 그리고 내가 느낀 것은 그들이 낡았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신자유주의 시대였다. 등록금이 빚으로 떠넘겨지고 대학생이라고 할지라도 알바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지식의 상아탑이라는 대학 깊숙이까지 들어와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만드는 시대였다.

 

그런데도 그들은 여전히 NL이니 PD니 하고 있었고 미군 철수를 주장하였고 의식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이념교육을 실시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당연한 것이었다. 그들 역시 그들의 선배로부터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익혔으니 그렇게 행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고 사는 문제에 봉착한 나는 결코 그들이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보수적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나는 양쪽 어디에서도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2000년대 이후 20대 혹은 30대가 느끼는 정치란 그렇게 무(無)매력적인 것이었다.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 혹은 아무 상관없는 것, 그런 세대에게 민주시민으로서의 의무나 책임만을 강조하는 정치참여 독려는 오히려 정치와 더 멀어지게 하는 무엇이었다. 그것이 우리사회 진보의 한계였다. 1987년까지 혹은 그 이후에도 절차적 민주주의를 성립하는 것에만 몰두한 나머지 김대중-노무현 정권이후 표면적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되자 어떤 담론을 만들 것인지 충분히 논의하지 못했고 지니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진보는 10년이나 정권을 잡았지만 매우 허무하게 무너져버렸다.

 

그렇다면 진보는 다시 집권할 수 있을까?

 

2010년 6.2 지방선거는 세상에 울림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생각했던 20대가 움직였고 그들은 선거라는 숭고한 행사가 아니라 선거라는 하나의 놀이를 발견한 것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그들의 대부분은 기꺼이 야권연대에 표를 던졌다. 물론 30대도 40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경계해야 할 것은 그것은 반MB나 MB정권타도에 던진 표였지, 진보정치 자체에 준 표는 아니었다. 즉, 진보정치가 매력적이고 그들이 잘해서 준 표가 아니라는 말이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그놈이 그놈이고 마음에 안 들기는 매일반이란 소리가 나오는 것은 일부의 헛소리가 아니라 진실로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태는 몇몇 진보적 인사들에게 조급증과 위기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민란이니 연대니 하는 집권을 위한 움직임이 최근 들어 많이 감지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진보정부를 경험했던 많은 사람들은 단순히' 판을 갈아야 합니다'만으로는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아니 거기에 매력을 느끼더라도 제대로 된 설계없이 찾은 정권은 허무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 2002년 내가 학생운동에 학을 뗀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조국은 말한다. 세밀화 된 그리고 진보만의 색깔이 있는 설계도를 그려야 한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는 아주 공을 들여 몇 가지 민생문제에서 진보정권만이 가질 수 있는 청사진을 그려낸다.

 

사회경제, 교육, 남북문제에 이르기까지 조국의 시간은 다양하다. 그리고 이는 또한 386세대의 자기 성찰이자 다짐의 성격이 강하다. 아직 20대인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곳곳에서 그러한 성찰을 만났다. 386세대의 이중성에 대한 반성, 386세대 정치인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386세대에 관한 이야기 등등

 

어찌되었건 그의 설계도는 제법 탄탄하다. 진보정치인들에게 권하고 싶을 만큼 말이다. 그리고 희망적이기도 하다. 아, 그런 사회라면 살아봄 직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쩌면 그 점에서 아직 진보는 늦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무상급식 공약에 많은 국민들이 호응했던 것처럼 진실로 민생과 관련된 공약들을 내놓는다면 정치물갈이가 아니라 진보정치가 희망이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준다면 또 한 번 진보정치는 정권을 창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말 몇 마디로 싸우고 야권 연대라는 이름 앞에서 눈치싸움, 기득권 싸움을 할 것이 아니라 진실로 격이 다른 진보정책을 내놓는다면 가능할 것이다.

 

조국이 내놓은 설계도는 냉정하게 말해 간혹 실현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이 드는 부분도 있고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있다. 허나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게 문제이다. 매력적이라는 것, 진보정치의 매력이 정치판 물갈이가 아닌 설계도에 있어야 함도 그 때문이다. 물갈이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진보정치가 매력적이어서 좋아서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현 진보정치인들 앞에 놓인 숙제일 것이다.

 

오연호가 찜한 조국은 어떨까?

 

최근 조국의 인기는 꽤나 상승하고 있는 듯하다. 심지어 조국현상이라고도 한다. 그의 칼럼이나 그의 행보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조국교수는 정치인이 될 생각이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어떨까? 소위 말해 정치적으로 조국이 가지는 브랜드 가치는 있을까? 라는 것이다.

 

서울대 법대 교수라는 사회적 직함, 젊은 처자들도 인정하는 잘생긴 외모, 게다가 몇몇 저서와 칼럼에서 익히 보아본 논리적인 글 솜씨, 게다가 가정적이며 자상하다는 풍모까지…. 원조 엄친아라고까지 불리는 그는 꽤나 매력적이다. 게다가 그의 집권플랜을 읽고 있자면 왜 오연호가 조국을 찜했는가? 단박에 알 수 있다.

 

사실 진보정치 혹은 진보적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몇 없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대중에게 새로움을 주지는 않는다. 익숙하다. 유시민, 진중권으로 대표되는 진보논객의 라인 역시 솔직히 말하면 새로운 얼굴을 갈망중이다. 그 와중에 보인 조국은 실로 새로운 캐릭터이긴 하다. 이전의 진보지식인들처럼 글로서 대중과 소통하고 있으나 그들이 가지고 있던 저돌적이며 때로는 폭력적이기까지 해서 아연질색하게 만들었던 단점이 없다. 확실히 유시민-진중권에 비해 조국은 부드럽다. 쉽게 말하면 대중에게 어필하기 쉽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우리는 이른바 조국 현상이 이해가되기도 한다. 끊임없이 정치인 조국으로서의 의사를 묻는 질문이 그에게 당도하는 이유도 수긍이 된다. 조국이 정치인이 될 의사가 없다면 진보정치인들은 그에게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또 생기는 셈이다. 이 조국 현상의 근거가 무엇인지 말이다. 그것이 현 진보정치인에 대한 대중의 기대이자 혹은 타박일지도 모른다. "이런 인물을 좀 보내 달라"는 아우성일지도 모른다. 확실히 그는 매력적이다. 그에 대해 잘 모르던 내 대학동기 녀석이 카카오 톡으로 조국 앓이를 고백할 만큼…….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에 중복게재됩니다.


태그:#서평, #진보집권플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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