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대나무 이파리의 색깔이 생생하다. 초록이 싱그럽다. 초록빛깔이 마음을 잡는다. 삭풍이 몰아치고 있는 한 겨울이기에 더욱 더 새롭게 다가온다. 한 여름에 초록빛은 당연하다. 그러나 모두가 겨울잠을 자는 겨울의 경우는 그 느낌이 확연하게 다르다. 겨울의 심술에 지쳤다. 몸과 마음이 가라앉아 있다. 겨울의 찬 기운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에서 바라보는 대나무는 힘을 나게 한다. 힘이 샘솟게 한다. 대나무의 향은 싱그러움이다. 신선하다.

초록
▲ 대나무 초록
ⓒ 정기상

관련사진보기


유물전시관으로 향하는데, 초록의 대나무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백제의 향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미륵사지 유물전시관이다. 백제의 석탑은 해체복원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복원되어 있는 서탑이 반갑게 맞이해주고 있다. 3당 3탑의 독특한 형식을 가지고 있는 미륵사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향으로 흔적만을 남겨두고 있다. 유물 전시관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만난 대나무는 기분을 달라지게 만들었다. 공간이 백제의 향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어서 그런지, 대나무에게서 느끼게 되는 느낌이 완연하게 새롭기만 하였다.

유물 전시관 안으로 들어서니, 백제의 숨결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다양한 유물들이 보기 좋게 전시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마음을 잡는 유물은 기와 편이다. 묘한 미소를 띠고 있는 기와 한조각의 모습은 마음을 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그 미소는 백제인의 표정이란 생각이라고 하니, 더욱 더 애정이 간다. 천 년 전의 사람이지만, 아직도 생생한 채로 살아 있다. 백제인의 마음이 오늘의 내 가슴에 고스란히 전달된다고 생각하니, 그 감동이 사뭇 다르다. 그 분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추구하며 살았을까?

백제 인의
▲ 미소 백제 인의
ⓒ 정기상

관련사진보기


유물 하나하나가 새롭게 다가온다. 웃음을 짓는 마음으로 유물들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예사롭게 보이지가 않는다. 유물을 만든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니, 무엇 하나 소홀하게 대할 수가 없다. 그 것도 천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시간을 초월하여 교류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따뜻해진다. 유물을 통해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교감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흥분이 된다. 백제 인들이 나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이다.

유물에는 백제 인들의 향이 배어 있다. 평생을 하루 같이 갈고 닦은 솜씨의 정수가 바로 유물에 배어 있다. 그 유물을 만들 때 거쳐야 하였을 수많은 시행착오를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다. 백제 사람들은 자신을 숙성시켜 혼신의 힘을 다하여 만든 결과물이 바로 유물이다. 그러니 무엇 하나 소홀하게 대할 수가 있단 말인가? 비뚤어진 선 하나에 백제 인의 혼이 담겨 있다. 그러니 무엇 하나 대수롭게 보아 넘길 수가 없다. 백제 인이 전하고자 하는 의도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사람의
▲ 향 사람의
ⓒ 정기상

관련사진보기


유물을 남긴 백제 인들은 그 것을 통해 뭔가를 전하고자 하였을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세상을 향해 그들만의 독특한 향기를 내뿜고 싶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숙성을 통해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향을 만들었을 것이다. 만든 향을 통해 그들은 흔적을 남기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유물을 통해 그들만의 향을 남겨 놓았다. 천년 후의 후손에게까지 진한 흔적을 남기는데 성공하였다. 그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향을 만드는데 완벽한 성공을 한 것이다.

사람의 향. 사람은 누구나 흔적을 남긴다. 일상의 삶의 흔적들이 모이게 되면 향이 된다. 흔적이 향이 되기 위해서는 축적이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향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이 살아온 날들이 모아져서 시나브로 이루어질 수 있다. 일상이 모여서 인생이 되는 것처럼 사람의 향도 평생 동안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람의 향은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그 진하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행한 행실이 착한 사람에게서는 고운 향이 배어나고 악한 사람에게서는 추한 냄새가 나는 것이다.

살아온 날들을 돌아다본다. 살아가야 할 날보다 살아온 날들이 훨씬 더 길어진 시점에 서 있게 되니, 만감이 교차한다. 살아온 날들이 축적되어 있으니, 나에게서도 사람의 향이 배어난다. 고운 향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비릿한 냄새에 인상을 찌푸리게 된다. 싱그럽고 고운 향이 진하지 않은지 반성해본다. 한 겨울에 초록을 자랑하고 있는 대나무처럼 싱그럽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돌아다보게 된다. 한 겨울에 싱그러움을 자랑하고 있는 대나무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축적
▲ 싱그러운 향 축적
ⓒ 정기상

관련사진보기


사람의 향은 두 가지에 의해서 결정이 된다. 하나는 행한 행실이고 다른 하나는 자손이다. 행한 행실이란 살아온 흔적을 말한다. 선업을 쌓은 사람은 고운 향으로 축적이 되고 악업을 쌓은 사람은 역한 냄새가 날 뿐이다. 자손 또한 마찬가지다. 그 사람의 자손이 하는 행동을 보게 되면, 그 부모의 향을 금방 구분할 수 있다. 사람다운 행동을 하는 자손이라면 그 부모에게서는 보지 않아도 고은 향이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사람다운 행동을 하지 못한다면 그 부모에게서는 보지 않아도 추한 냄새가 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찬바람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한 겨울에 대나무의 초록빛에 반하였다. 백제 인의 향이 배어 있는 유물 전시관에서 사람의 향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달았다. 전시되어 있는 유물을 통해 백제 인의 향에 흠뻑 취하였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전해지는 백제 인의 숨결에 진한 감동을 받았다. 나 또한 그들처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을 것인지를 반성하였다. 대나무의 초록처럼 싱그러운 향을 내뿜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살아온 날은 어쩔 수 없다 할지라도, 살아갈 날만이라도 나만의 향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살아야겠다.


태그:#초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