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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경포호 인근에 자리잡고 있는 보물 제183호 해운정
▲ 해운정 강릉시 경포호 인근에 자리잡고 있는 보물 제183호 해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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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시내를 벗어나 경포로 나가는 길목에 보면, 좌측에 초당 두붓집들이 몇 채가 보인다. 그 두붓집들 사이에 보면, 낮은 구릉위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정자 한 채가 있다. 바로 보물 제183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해운정(海雲亭)'이다. 해운정은 말 그대로 바다와 구름(물안개)을 볼 수 있는 정자라는 뜻으로 붙인 명칭인 듯하다. 

해운정은 조선 상류주택의 별당 건물이다. 처마를 높여 경포호를 보기에 막힘이 없게 하였고, 그 높임처마가 해운정의 전체적인 건축미를 돋보이게 만든다. 해운정은 조선 중종 25년인 1530년에, 어촌 심언광이 강원도 관찰사로 있을 때 지은 정자이다. 이 정자는 강릉지방의 현존하는 옛 건조물로서는 오죽헌 다음으로 오래 된 건물이다.

강릉을 찾아갈때마다 들려보는 해운정. 그 아름다움은 어느 정자와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 해운정 강릉을 찾아갈때마다 들려보는 해운정. 그 아름다움은 어느 정자와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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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정은 3단의 축대 위에 조성하였다. 시원한 바람과 경포호의 풍광을 보기 좋도록 높여놓았다
▲ 축대 해운정은 3단의 축대 위에 조성하였다. 시원한 바람과 경포호의 풍광을 보기 좋도록 높여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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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를 자주 찾는 이유

해운정은 벌써 10여 차례나 들려보았다. 이렇게 해운정을 많이 들리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이다. 나는 일 년이면 70여일을 현장을 다니면서 문화재 답사를 한다. 그렇게 답사를 하는 중에도 들렸던 길을 다시 지나칠 때면, 반드시 거쳤던 문화재를 다시 둘러보고는 한다. 물론 한 번 들린 곳을 다시 찾는 시간이면, 더 많은 곳을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몇 번이고 다시 찾아가는 것은, 단순히 문화재를 소개만 하겠다는 생각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화재를 다시 들리면서 자료를 만들어 두는 것은, 그동안 문화재에 이상은 생기지 않았는지. 혹은 문화재가 사라지거나 훼손이 되지는 않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함이다. 그렇게 조사를 하면서, 비교, 분석해 글을 쓰는 것이 바로 올바른 문화재 답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경호어촌은 중종 32년인 1537년 명의 사신인 정사 공용경이 쓴 글씨이다
▲ 경호어촌 경호어촌은 중종 32년인 1537년 명의 사신인 정사 공용경이 쓴 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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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소정은 사신으로 온 부사 오희맹의 글씨이다
▲ 해운소정 해운소정은 사신으로 온 부사 오희맹의 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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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인가 처음 찾았을 때는 정말로 어이가 없었다. 명색이 보물인데 뒤편에는 누군가 담배꽁초를 잔뜩 버려놓았고, 빈 담배 갑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거기다가 불에 끄슬린 자국이며 온통 여기저기 훼손된 모습들이, 도저히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 모습에 마음 아픈 글을 올렸고, 얼마 후에 다시 가보니 말끔히 수리가 되고 사람이 지키고 있었다.  

다시 찾은 해운정, 그 기품 있는 모습  

해운정을 지은 심언광 선생은 조선 중종 2년인 1507년에 진사가 된 후, 여러 벼슬을 두루 거친 분으로 문장에도 뛰어났다. 이곳에 와서 묵으면서도 수많은 사람들과 교류를 한 것으로 보인다. 정자 안에는 권진응, 율곡 이이 등의 글들이 걸려있다. 해운정이란 현판은 우암 송시열의 글씨이다.

정자 안 대천에는 수많은 편액들이 걸려있다. 그 중에는 율곡 이이의 글씨도 있다
▲ 편액 정자 안 대천에는 수많은 편액들이 걸려있다. 그 중에는 율곡 이이의 글씨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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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정의 현판 글씨는 우암 송시열릐 글씨이다
▲ 해운정 해운정의 현판 글씨는 우암 송시열릐 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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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은 소박하지만, 안은 세련된 장식으로 조각을 한 해운정. 1월 29일 찾아간 해운정은 한 겨울의 찬바람에도 그렇게 기품 있는 모습으로 객을 맞이한다. 해운정은 3단의 장대석으로 쌓은 축대 위에 남향으로 지었다.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팔작집이다. 해운정을 바라보고 좌측으로 한 칸은 온돌방으로 드렸으며, 우측 두 칸은 대청으로 꾸몄다. 대청 전면에는 네 짝의 문을 달아 모두 열 수 있게 하였다. 경포호의 운치를 바라보기 위함이다. 이 문짝을 열어 위로 올려달면, 경포호에서 부는 바람을 맞을 수가 있다.

볼수록 아름다운 해운정

해운정은 건물 주위에는 툇마루를 돌려놓았다. 처음에는 굴뚝조차 없었으나, 지금은 양편에 연도를 뺀 낮은 굴뚝을 올려 운치를 더했다. 온돌방은 가운데를 막아 앞 뒤 두 개의 방을 만들었다. 불을 때는 아궁이는 정자 뒤편에 두었다. 대청과 방 사이의 문짝은 앞뒤 방이 다르게 하여, 비례감이 맞게 하였다. 

천정에도 목조각을 올려 뛰어난 미를 자랑하고 있다
▲ 천정 천정에도 목조각을 올려 뛰어난 미를 자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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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 목조각의 네 귀퉁이에는 연꽃을 조각하여 올렸다
▲ 연꽃 천정 목조각의 네 귀퉁이에는 연꽃을 조각하여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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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에서 들어가는 방문은 아래 위방의 문을 다르게 했다
▲ 문 대청에서 들어가는 방문은 아래 위방의 문을 다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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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 안으로 들어가 천정을 보면 나무로 조각을 하여 천정에 달았다. 네 귀퉁이에는 연꽃을 조각하여 매달아 놓았다. 연꽃은 꽃이 천정에 매달려, 그 줄기가 나와 휘어지게 했다. 그런 것 하나에서도 미적 감각이 뛰어난 정자이다. 대청 뒤편 벽에는 '경호어촌(鏡湖漁村)'이라는 편액과 '해운소정(海雲小亭)'이라고 쓴 편액이 걸려있다.

경호어촌은 중종 32년인 1537년 명의 사신인 정사 공용경이 쓴 글씨이며, 해운소정은 부사 오희맹이 쓴 글이다. 이렇게 많은 시인묵객들이 찾아들었던 해운정. 한 겨울 바람을 맞으며, 잔가지를 흔들고 있는 뒤편의 몇 그루 노송이 해운정의 풍광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사철 언제 찾아가도 늘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 있는 해운정. 강릉 땅을 밟을 때마다 찾아가는 해운정은, 늘 그렇게 고고한 자태를 내보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뷰에도 일부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해운정, #보물 제183호, #강릉, #심언광, #경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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