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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5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한 시위자가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포스터를 찢고 있다.
 지난 1월 25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한 시위자가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포스터를 찢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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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카이로 현지 시각), 무슬림형제단을 포함한 일부 반정부 단체들과 시민 대표들이 술레이만 부통령과 역사적인 첫 만남을 했다. 이집트 최대의 재야 정치 세력임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간 불법 단체로 낙인찍혔던 무슬림형제단과 이들을 핍박했던 독재정권의 수뇌부가 반정부 시위 이후 최초로 공식 회동을 한 것이다.

이후 술레이만 부통령은 회의 참석자들과 합의한 부분이라며 부통령실 명의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에 따르면 참석자들은 무바라크 대통령이 다음 선거에 나오지 않는 것과,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평화적으로 정권 이양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에 합의했다. 이를 위해 관련 법 조항을 바꾸는 것과 이집트의 치안과 안정을 위해 경찰력을 회복시킨다는 내용에도 참석자들은 동의했다.

또한, 성명서에서는 3월 첫째 주까지 헌법 수정 및 관련 일반 법조문 변경을 위해 사법부 및 정계에서 사람들을 모아 위원회를 설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외에 정부가 양심수를 즉시 석방하고, 언론 자유화를 추구할 것이며, 부패에 연루된 인물들을 처벌하겠다는 내용도 담겼다.

그러나 사회의 안보 상황에 따라 계엄령을 철폐하겠다는 조건이 내걸렸고, 이집트 내부의 일에 대해 외부로부터 이뤄지는 모든 형태의 간섭을 철저히 거부하겠다고 성명서는 밝히고 있다. 이는 이번 대화에 임하는 무바라크 정부의 진의가 무엇인지 의구심을 품게 했다.

반정부 세력과 무바라크 정권, 시위 격화 후 첫 회동

한편 반무바라크 시위대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는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엘바라데이는 이후 <CNN>과 한 인터뷰에서 "신뢰를 잃은 정부"와는 협상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엘바라데이는 "현재의 헌법은 철폐돼야 한다. 현재의 의회도 해산해야 한다. 이것들은 모두 독재정권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독재 헌법을 통해 우리가 민주주의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NBC>의 "미트 더 프레스(Meet the Press)"에서도 엘바라데이는 선거 및 다른 정치 일정을 준비하기 위해 3명으로 구성된 대통령 기구를 설치할 것을 주장했다. 엘바라데이는 "무바라크 대통령이 이집트를 떠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권력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무바라크 정권은 적법성을 상실했다. 무바라크는 정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 (…) 그리고 우리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1년의 이양기간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시위를 독려해 오다 이번 회동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집트 젊은이들은 무바라크 사퇴 및 1당 독재체제 철폐 등이 관철될 때까지 시위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또한 서방의 지지를 받고 있는 술레이만 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무슬림형제단의 가말 나사르 대변인은 "시위대의 열망이 성취되는 정치적 길이 마련될 때까지" 시위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와 <CNN>등도 타흐리르 광장에 모여 있는 이집트인 중 많은 이들이 이번 만남에 의심 어린 눈길을 보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CNN>은 "이것은 우리 같은 운동가들을 모욕하는 일이다. 혁명을 위해서 그들이 누구와 얘기를 했는가?"라며 술레이만과 대화를 나눈 것에 심한 불쾌감을 느낀다는 한 시위자의 말을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시위대의 일부가 술레이만을 지지하는 미국을 비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미국이 혁명을 지지한다면 그것이 미국에 득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지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것은 이집트의 문제다"라는 32세의 변호사 이슬람 로프티의 말을 통해 현장의 분위기를 전달했다.

일부 시위대 "무바라크 정권과 대화하는 건 운동가들에 대한 모욕"

6일 무슬림형제단을 비롯한 반정부 세력 대표와 대화한 이후, (이집트 국영방송의 설명에 따르면) "1월 25일 운동"을 대표한다는 젊은이 6명과 대화 중인 술레이만 부통령.
 6일 무슬림형제단을 비롯한 반정부 세력 대표와 대화한 이후, (이집트 국영방송의 설명에 따르면) "1월 25일 운동"을 대표한다는 젊은이 6명과 대화 중인 술레이만 부통령.
ⓒ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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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바라크 대통령의 거취와 관련해서는 술레이만 부통령은 물론 샤피크 총리와, 오바마 대통령의 명령으로 무바라크 대통령을 면담했던 프랭크 위스만 전 이집트 주재 미국 대사 등도 모두 무바라크가 계속 권좌에 머물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샤피크 총리는 6일 <CNN>과 한 전화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곳 이집트에서 그가 9월 말까지 임기를 채워야 한다고 주장한다"며, "그가 떠나기 전에 많은 것들이 해결돼야" 하고 "각하의 영도력이 몹시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술레이만 부통령은 6일 방송된 <ABC>의 "디스 위크(This Week)"에서 무바라크 대통령이 사임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지금 사임하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서 그는 "이 나라가 우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며 "누가 그를 대신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만남이 이뤄지기 전날인 5일, 뉴욕에서 화상 통화 방식으로 뮌헨안보회의에 참석한 위스너 전 대사도 무바라크 대통령의 리더십이 계속 유지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위스너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에 앞서 사전 조건들을 둘러싼 국가적인 동의가 필요하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그러한 변화를 헤쳐 나가기 위해 권좌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바로 같은 장소에서 클린턴 미국 국무부 장관은 위스너 전 대사와 달리, 술레이만 부통령이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치르기 위해 시위대 지도자들과 헌법 수정을 비롯한 모든 제반 사항을 논의할 수 있도록 무바라크 대통령이 나가줘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에 대해 크롤리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위스너 전 대사가 오늘 표명한 견해는 그 자신의 것이고, 그는 자신의 발언에 대해 미국 정부와 협의하지 않았다"며, 위스너 전 대사 발언의 파장을 축소시키려 했다.

이에 앞서 4일 미국 언론들은 복수의 백악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백악관이 9월 전까지 무바라크 대통령을 권력의 핵심부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그의 권한도 제한하도록 술레이만 부통령에게 사적인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무슬림형제단이 술레이만 부통령과 대화하는 자리에 참여했다는 소식을 알리는 <알 자지라> 영문 인터넷판.
 무슬림형제단이 술레이만 부통령과 대화하는 자리에 참여했다는 소식을 알리는 <알 자지라> 영문 인터넷판.
ⓒ <알 자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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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이집트 상황, 우왕좌왕하는 오바마 행정부

영국 <가디언>의 줄리엔 보저는 "무바라크 대통령에 대한 프랭크 위스너의 명백한 애정은 많은 혼동을 낳고 있다. (…) 카이로에서 막 돌아온 위스너는 무바라크를 (권좌에) 머물게 하기 위해 헌법을 이용한 주장을 펴고 있다"며, 위스너가 오바마 행정부와는 다른 의견을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미국 행정부 내에서 불협화음이 나오는 것에 대해, 4일 <뉴욕타임스>는 미국 행정부 관리의 말을 인용해 미국 정부가 이집트 정책의 목표를 근본적으로 수정하기보다는 빠르게 변해가는 현 상황에 대응하기에 급급하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또한 무바라크의 퇴진을 어느 정도의 속도로 밀어붙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미국 행정부 내에 이견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5일 <워싱턴포스트>는 이집트의 이번 위기 상황에서 미국의 운신의 폭이 극히 좁다고 지적했다. 즉, 미국 행정부 내 이견 표출 상황은 오랜 우방을 급하게 버리는 모양새를 취하지 않으면서도 이집트 시위대와 오바마 대통령이 모두 요구하는 적법한 개혁으로 가는 길을 서둘러 모색하는 가운데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5일 백악관은 바이든 부통령이 술레이만 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무바라크 반대 세력과 대화할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바이든 부통령은 "구체적인 개혁 의제와 명확한 시간표"를 요구했고, "이집트 정부가 개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이집트 국민과 반정부 세력에게 보여줄 수 있도록 즉각적인 단계를 밟아야 한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오바마 대통령도 아랍에미리트연합과 영국, 독일 등으로 전화를 해 "이집트 국민들의 열망을 대변하는 정부로 질서 있고 평화적으로 이양하는 작업을 지금 시작해야 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엘바라데이 전 IAEA 사무총장은 <CNN>과 한 인터뷰에서 무바라크 대통령을 현직에 그대로 둔 채 점진적인 이양을 하겠다는 미국의 계획은 성공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엘바라데이는 "무바라크는 떠나야 한다. 이것은 점점 감정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사람들이 그가 떠나는 것을 볼 필요가 있다는 것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뉴욕타임스>는 타흐리르 광장의 시위대가 무바라크 대통령이 권좌에 머무는 것은 물론 술레이만 부통령이 그를 대신하는 것에도 반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한 이집트 온라인 활동가가 "우리는 술레이만이 무바라크의 자리를 차지하길 원치 않는다. 우리는 이 정권 자체를 반대한다. 우리는 민간인 출신의 대통령을 원한다."라고 말한 것을 소개했다.

이집트 부통령 "우리는 결코 튀니지처럼 되지 않을 것"

한편, 술레이만 부통령은 3일 <ABC>와 한 인터뷰에서 "이집트는 결코 튀니지처럼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대통령은 투사"라며, 무바라크 대통령이 튀니지의 벤 알리 대통령처럼 망명하는 일은 결코 이집트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단언했다. 이날의 인터뷰는 서방 세계와 한 최초의 인터뷰로, 인터뷰 전날 타흐리르 광장에서는 무바라크 지지 시위대에 의한 심각한 유혈 사태가 발생했었다.

또한 6일의 회동 직후 술레이만 부통령은 <ABC>와 한 인터뷰에서 튀니지와 이집트, 요르단, 예멘 등에서 일어나는 시위에 모종의 배후 세력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이들이 젊은이들을 그렇게 몰고 있다"며, 그들이 믿는 민주주의는 그들의 생각이 아닌 외국에서 넘어온 것이라고 말했다.

6일, ABC의 "디스 위크(This Week)" 진행자인 크리스티앤 아만푸어와 인터뷰 중인 술레이만 부통령.
 6일, ABC의 "디스 위크(This Week)" 진행자인 크리스티앤 아만푸어와 인터뷰 중인 술레이만 부통령.
ⓒ A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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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집트, #무바라크, #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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