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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18일 오후 서울 세종로 미대사관앞에서 열린 북한인권단체연합 주최 '미국 오바마 대통령 환영 및 북한인권 적극행동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탈북자가 북한인권 상황을 알리는 퍼포먼스를 위해 북한군 복장을 하고 있다.
 2009년 11월 18일 오후 서울 세종로 미대사관앞에서 열린 북한인권단체연합 주최 '미국 오바마 대통령 환영 및 북한인권 적극행동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탈북자가 북한인권 상황을 알리는 퍼포먼스를 위해 북한군 복장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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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민주화한다는 것은 정당활동·의회활동·언론활동·시민운동·선거운동을 비롯한 사회 모든 영역에서 민주주의 구현을 의미한다. 건국 이후 한국의 많은 시민은 독재에 맞서 목숨 걸고 싸워 값진 사회민주화를 쟁취했다. 이 고귀한 자산은 한국사회뿐 아니라 민주화가 실현되지 못한 북한 사회에도 이루어져야 할 소중한 가치다.

한국사회에서 보수 세력은 북한 인권·민주화 운동을 유별나게 많이 벌인다. 북한 인권·민주화 운동은 보수세력의 독점적인 영역이 된 듯하다. 북한에서 인권환경이 나아지고 민주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데는 진보·보수 모두 이견이 없다. 그러나 방법론에서 진보와 보수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남한 보수세력, 북한 민주화 말할 자격 있나

남한 민주주의 발전 역사는 민주화를 이루기 위한 진보세력의 투쟁과 이를 억압하는 보수세력 탄압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승만 정권에서 박정희·전두환 정권까지 남한의 보수 권력집단은 진보의 민주화 투쟁을 폭력적으로 막았다. 이들은 정당 활동을 제약하고 사회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의 요구를 총칼로 탄압하며 "빨갱이" "공산 세력"으로 몰았다.

이런 '흑색선전'은 남한 보수 정권의 전통적인 통치 방식으로 굳어진 듯하다. 이명박 정부의 핵심 인사와 강력한 지지자들은 여전히 반대 세력을 "빨갱이" "종북좌파" "친북좌파"로 매도한다.

또 오늘날 보수세력은 과거 자신들의 반민주적 행태를 무마하려는 듯 이승만의 장기집권과 박정희·전두환 군부독재를 "북한 공산주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정당화한다.

반면 이들 중 일부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평화적인 남북관계를 위해 햇볕정책을 추진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여전히 '빨갱이의 수괴'로 묘사한다. 그뿐만 아니라, 4.19혁명 5.18광주민주화 운동, 6월항쟁을 "폭도들의 소요" "북한의 적화통일 노선에 의한 국가전복 기도"로 평가하기도 한다.

이렇게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가로막고 평가절하했던 보수세력이 오늘날 북한 민주화에 집착하는 현상은 참 아이러니하다. 남한 민주주의를 탄압하던 보수세력은 도대체 왜 북한 민주화에 집착할까? 보수세력이 북한 민주화를 실현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북한 민주화 운동의 주체인 북한 주민은 남한 보수세력의 이러한 열성적인 행동을 어떻게 평가하고 받아들일까?

비록 지금의 독재체제에 맞서 저항하고 있지 못하지만 북한의 많은 주민은 남한에서 어떤 세력이 민주화를 방해했는지 잘 알고 있다. 이들은 친일파, 매국노, 독재정권 지지자로서 남한의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던 보수세력이 북한의 민주화를 외치고 있다는 걸 알면 코웃음을 칠 것이다.

탈북자단체, 보수세력에 더는 이용되지 말아야

북한 민주화 운동의 주체는 당연히 북한 주민이다. 그 누구도 북한 사회의 민주화를 대신해줄 수 없다. 그런 시각에서, 현재 남한에 살고 있지만 북한 주민이었던 탈북자들은 북한 민주화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탈북자들이 북한 민주화 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것은 일종의 의무이기도 하다. 

북한 민주화 운동을 위해 탈북자들이 주체가 된 단체는 남한에 꽤 많다. 북한민주화 운동연합, 자유북한운동연합, 북한민주화 운동본부 등 그 수는 무려 20여 개 정도나 된다. 그러나 거의 모두가 보수성향의 단체들이다. 진보성향의 단체는 한 개도 없다. 탈북자들 속에서 진보적 시각이나 사상을 가진 사람은 설 자리가 없다. 소위 '왕따'를 당한다. 심지어 북한에서 지식층에 속했다고 자처하는 단체인 'NK 지식인연대'도 마찬가지다.

탈북자 사회를 진보와 보수로 분류해 이야기하면 어떤 이들은 '이간분자'나 심하면 '북한정권 스파이'로 묘사한다. 나는 모든 탈북자가 꼭 같은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북한식 사고'라고 말하고 싶다. 진보와 보수가 적절히 어울려야 진정 건전하고 민주화된 사회가 아니겠는가.

북한 민주화를 실현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탈북자는 다 북한식의 단일사상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또 다른 독재를 양산하는 일이자, 그 자체가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적 수양이 안 된 것이다.

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는 진보와 보수가 적절한 비율로 유지돼야 한다. 어느 한 쪽이 다수를 차지할 수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하나가 된다면 전체주의와 독재로 빠질 위험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탈북자 단체가 보수·우파적인 성격을 띠는 것은 건강한 탈북자 사회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북한 민주화 운동과 북한 인권운동을 전개하는 탈북자단체는 투철한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민주화를 위해 자신의 목숨도 기꺼이 바치며 항거했던 남한 민주열사들의 정신을 배워 북한 민주화를 위해 자신의 많은 것을 다 바치겠다는 투철한 의식과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 탈북자단체들은 이런 각오가 부족해 보인다.

그냥 맹목적으로 "김정일 정권 타도"만 주장할 뿐 구체적인 방법론이나 노선은 찾아볼 수 없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들이 무엇이 민주주의고, 민주화 운동인지 잘 모른 채 북한 민주화 운동을 밥벌이 직업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북한 민주화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물론 현 북한 정권은 민주화의 장애물이다. 하지만 김정일 정권 타도가 북한 민주화 운동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권이 무너진다고 저절로 민주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독재정권이 종식되고 미국 힘으로 정부가 수립된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등의 현실이 증명한다.

북한에서 민주화를 이루려면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군중을 키우고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탈북자들은 민주화를 이룩한 남한과 세계 각국 시민의 투쟁 경험을 북한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연구해야 한다.

특히 탈북자단체는 '북한 민주화' 간판을 내걸고 북한 압박을 강화하려는 보수세력의 숨은 의도에 말려들면 안 된다. 남한 민주화를 가로막았던 보수집단에게 무엇을 배워 북한에 전파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장기집권을 모색하다 시민항쟁으로 쫓겨난 이승만, 박정희·전두환 군사 독재자의 반민주 역사를 전파하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민주화 운동가를 "빨갱이"로 몰아 처벌한 논리와 기술을 북한에서 실천하겠다는 것인가?

북한에서 구현할 민주화 운동은 보수가 아닌 진보 진영에게 배워야 한다. 탈북자단체는  남한 시민이 피로 쟁취한 4.19혁명, 5.18광주 민주화운동, 6월항쟁의 정신과 자산을 배워야 한다.

진보세력, 북한 인권·민주화 운동에 적극 나서라

더불어 이제는 진보세력도 북한 인권·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진보가 진정으로 북한의 미래를 생각하고 민주화를 염원한다면 탈북자단체를 끌어안아야 한다. 탈북자단체를 더는 보수세력 품에 둬서는 안 된다.

김대중 정부는 햇볕정책을 추진하면서도 탈북자들을 전격적으로 수용했고, 노무현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이 반발할 것을 알면서도 베트남에 있는 탈북자 470여 명을 입국시킨 사례를 기억해야 한다.

탈북자단체와 그 단체를 책임지고 있는 이들은 철학과 소신 있게 북한 민주화 운동을 해야 한다. 보수나 진보의 어느 한 편에 설 게 아니라 양쪽의 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버려야 한다. 보수세력의 달콤한 유혹과 몇 푼의 지원금에 현혹되지 말아야 하고, 북한 인권·민주화운동에 소극적인 진보세력도 경계해야 한다.

북한 인권·민주화 운동은 외면할 수 없는 문제이자, 남북통일을 준비하는 모든 사람이 해결해야 하는 역사적 과제다. 정치권은 자신들 이익을 위해 북한 인권·민주화 운동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북한의 열악한 인권 문제는 반드시 개선돼야 하고, 민주화도 반드시 실현돼야 한다. 인권과 사회 민주화는 인류의 기본적인 가치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최승철 기자는 2003년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입니다.



태그:#북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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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북한)사람 입니다. 그래서 나는 조선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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