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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엔 안 나왔지만 오른쪽엔 공사가 한창이다.
▲ 돌곶이습지의 모습, 사진엔 안 나왔지만 오른쪽엔 공사가 한창이다.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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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니는 파주자유학교가 있는 출판단지는 옛날에는 무지 넓은 습지라고 했다. 하지만 그 습지를 매립하고 만든 것이 출판단지고 지금은 그 넓은 습지의 흔적이 출판단지 옆에 조그맣게 남아 있다. 현재 돌곶이습지라고 부르는 이 습지는 내가 작년 6월에 이곳에서 천연기념물 205호이자 멸종위기종 1급 노랑부리저어새와 저어새를 발견하고 나서 돌곶이습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불과 3년 전인 내가 중학교 1학년일 때만 해도 이곳은 넓은 갈대밭과 사람이 직접 들어가 자연을 느낄 수 있었던 생태학습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나마 남아 있던 돌곶이습지도 언제서인가부터 롯데명품아울렛과 출판단지 2단지를 만들겠다고 매립을 하고 공사를 하고 있다. 포크레인과 덤프트럭이 쉬지 않고 움직이고 다니며 야간에는 빛도 환하게 비추어 놓는다. 나는 이 습지를 두 번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돌곶이습지의 모습을 기록하기 위하여 시간이 날 때마다 돌곶이습지를 찾았다.

철새들의 잠자리

오리들이 잠을 자러 모이고 있다.
 오리들이 잠을 자러 모이고 있다.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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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대폭설이 오고 나서 며칠 뒤에 돌곶이습지를 찾았다. 길에 눈이 많이 쌓여 있어 걷기가 힘들었지만 돌곶이습지에 있는 공사장에도 눈이 많이 쌓이긴 마찬가지인지 눈이 심하게 내린 날로부터 며칠은 공사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2010년 마지막 날 12월 31일날 오후 5시쯤 해가 저물어가며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어디선가 무수히 많은 기러기 떼들이 날아왔다. 그러고는 차례차례 돌곶이습지에 내려왔는데 몇 분간 그렇게 계속 끊임없이 기러기들이 찾아왔다. 돌곶이습지는 순식간에 물반새반이 되었다. 정말 장관이었다.

기러기들이 날아오고 나서 그 다음에는 오리 떼들이 날아왔다. 오리와 기러기는 뭉쳐 살지 않고 따로따로 움직이나보다. 방금 전에 왔었던 기러기 떼처럼 오리들도 몇 분간 끊임없이 계속 날아왔다. 그리고 모두 물 위에 앉아 한 곳에 모여 잠을 자는 모습을 확인했다.

돌곶이습지는 이 곳 철새들의 잠자리였던 것이다. 나는 이날 이 후 이곳을 제2의 주남저수지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잠을 자고 있는 철새들.
 잠을 자고 있는 철새들.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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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신 몸들이 왜 이런 곳에...

나는 2010년 겨울에 이 돌곶이습지를 기록하면서 아주 귀한 새들을 발견했다. 바로 재두루미와 노랑부리저어새이다. 천연기념물 203호이며 멸종위기종 2급인 재두루미와 천연기념물 205호이며 멸종위기종 1급인 노랑부리저어새는 같은 겨울철새이지만 서로 다른 시기에 관찰되었다.

돌곶이습지를 찾은 재두루미
 돌곶이습지를 찾은 재두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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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두루미는 2010년 11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한 마리가 발견되었다. 소리에 예민한 재두루미가 이런 시끄러운 공사장 근처에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재두루미는 주로 습지 한가운데에서 활동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재두루미는 갑자기 덤프트럭이 달리는 공사장 길 위로 걸어 올라갔다. 재두루미는 마치 1인 시위를 하듯 그곳에 서 있다가 달려오는 자동차를 피해 날아갔다.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돌곶이습지의 노랑부리저어새들.
 돌곶이습지의 노랑부리저어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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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두루미가 떠나고 12월 말 돌곶이습지에서 노랑부리저어새 5마리가 발견되었다. 노랑부리저어새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관찰되었고, 1월 20일 노랑부리저어새가 최대 6마리로 늘어난 것을 확인했다.

이렇게 귀한 새들이 찾아오는 것은 돌곶이습지는 아직 완전히 망가지지 않은 습지라는 중요한 증거이다.

오리 3마리가 죽어 있어... 설마 AI?

AI로 죽은걸로 보이는 흰뺨검둥오리
 AI로 죽은걸로 보이는 흰뺨검둥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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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부리저어새가 6마리로 늘어난 걸 확인한 1월 20일 돌곶이습지 얼음 판 위에 얼어 있는 흰뺨검둥오리 시체 3개를 발견했다. 나는 그 오리들의 사진을 찍고 '아마추어탐조동호연합'이라고 하는 카페에 글을 올려 그 곳 전문가인 김동현 선생님께 A.I 인지 아닌지 물어봤다. (AI란 조류인플루엔자를 뜻하는 말이다. 조류독감이라고 하기도 한다.)

김동현 선생님은 오리시체 사진을 보시고는 가금독감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다음날 1월 21일인 오늘, 생태강의를 들으러 고양환경운동연합에 갔더니 어른들은 어제 내가 본 오리 3마리가 죽은 거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계셨다.

나는 단순히 오리 3마리가 죽은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한 것보다 심각한 얘기인 듯했다. 고양환경운동연합의 박평수 집행위원장님은 파주시청에 신고절차를 밟겠다고 하셨고 파주시청에서 내게 연락이 올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이런... 양심없는 아저씨들!

불법 낚시꾼들.
 불법 낚시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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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태강의가 끝나고 바로 다시 돌곶이 습지를 찾았다. 돌곶이습지에는 새는 없고 뭔가를 줍고 있는 아저씨 2명이 있었다. 파주시청에서 온 공무원들이 흰뺨검둥오리 시체를 수거해가는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투망으로 물고기를 잡고 있는 아저씨들이었다.

나는 몰래 이 아저씨들을 찍은 후, 박평수 위원장님께 연락을 했다. 박평수 위원장님은 물고기 잡는 것이 불법이라면서 파주시청에 연락해서 사람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근데 이 아저씨 두 분이 귀가 어찌나 밝으신지 나를 쳐다보더니 잡아놓은 물고기와 투망을 들고 다른 자리로 피했다. 그러고는 어느 한 구석에 무언가를 숨기더니 슬그머니 돌곶이습지를 떠났다.

그리고 잠시 뒤에 돌곶이습지를 찾은 초등학교 교사인 아저씨 한 분과 박평수 위원장님과 같이 돌곶이습지를 돌아다니며 죽은 오리들을 찾다가 아까 물고기 잡던 아저씨들이 숨겨놓은 무언가가 궁금해서 아까 뭔가 숨겨놓은 장소에 가보니 빨간 통 안에 고여 있는 물과 함께 무지무지 많은 물고기들이 잡혀 있었다. 물에 살얼음까지 낀 걸 보니 오랫동안 상습적으로 해온 것으로 보인다. 우린 그 물고기들을 돌곶이습지에 다시 풀어주었다.

필드스코프로 죽은 오리 숫자 세어보니...

물가에 둥둥 떠있는 시체는 들어갈수 없어 건질수없다
▲ 죽은오리를 수거해가는 공무원 아저씨 물가에 둥둥 떠있는 시체는 들어갈수 없어 건질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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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교사 아저씨와 필드스코프라고 하는 탐조전용 망원경으로 죽은 오리를 세어보니 총 42마리가 발견되었다. 충격이었다. 모두 42마리를 찾긴 했지만 더 있을 확률이 높다. 문제는 2차감염이다.

파주시청에서 온 공무원 아저씨가 흰뺨검둥오리 시체 3개를 수거 해 가긴 했지만 아직 수거하지 못한 시체들이 많다. 그 많은 시체 중 어떤 오리 시체는 이미 무언가에게 먹힌 흔적이 있고 어떤 오리 시체는 까마귀와 재갈매기나 괭이갈매기가 뜯어먹고 있었다.

박평수 위원장님이 저 오리 뜯어먹은 녀석들은 다 죽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식으로라면 순식간에 많은 새들이 사라지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뉴스에서만 보던 AI를 직접 경험하고 눈으로 보자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알았다. 하지만 나는 AI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르니 내가 발견한 사실들을 어른들에게 알려줄 뿐이었다.

AI로 죽은걸로 보이는 청둥오리
 AI로 죽은걸로 보이는 청둥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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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돌곶이습지에서 죽은 오리를 찾으면서 내 마음을 너무나 슬프게 만든 녀석이 있었다. 내가 카메라가방을 풀숲에 두고 와서 카메라가방을 가지러 가니 바로 앞에 흰뺨검둥오리가 물 속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나의 깜짝스러운 등장에 놀란 녀석은 평소처럼 날아가려고 날갯짓을 해봤지만 몇 발자국 앞으로 가긴 했으나 하늘 위로 뜨지는 못했다. 녀석은 매우 다급한 표정으로 발을 열심히 저으면서 나의 시야에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녀석은 기름기가 많은 오리에도 불구하고 물에 점점 가라앉으면서 헤엄을 쳐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나는 녀석의 행동을 보고 슬프면서도 녀석에게 너무나 미안해서 카메라 가방을 들고 얼른 그 자리를 떠났다.

도망가지 못 하는 흰뺨검둥오리. 물에 가라앉고 있어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도망가지 못 하는 흰뺨검둥오리. 물에 가라앉고 있어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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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현장에 나오신 박평수 위원장님은 이 오리들이 AI로 죽었을 확률이 매우 크다고 했다. 이미 파주 어디에선 AI발령이 났다고 했으며, 이곳 새들의 먹이터이던 돌곶이습지를 롯데명품아울렛을 세우겠다고 공사하면서부터 새들의 먹이가 부족해졌고 따라서 충분한 먹이공급을 하지 못한 새들의 건강도 나빠지고 면역력도 약해져 AI에 걸렸을 것이라고 추정하신다고 하셨다.

이런 AI 때문에 어쩌면 노랑부리저어새도 감염 됐을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원래 노랑부리저어새는 부리를 물에 넣고 휘- 휘- 저으며 돌아다니는데, 부리를 젓는 힘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AI는 덩치가 큰 새들보다 흰뺨검둥오리 같은 오리들이 잘 걸리는 것 같다. 노랑부리저어새가 제발 무사했으면 좋겠다.

돌곶이습지의 노랑부리저어새들
 돌곶이습지의 노랑부리저어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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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아픈 일이다. 구제역이든 AI든 다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대재앙이라고 생각한다. 이 재앙이 하루빨리 없어지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올해 고등학생 되는 중3 학생입니다. 조류학자 또는 그 비슷한 것이 되는 게 꿈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태그:#돌곶이습지, #조류인플루엔자, #고양환경운동연합, #출판단지, #롯데명품아울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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