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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원전 사고가 단 한건도 없었다고?'의 기사에 대해 한국수력원자력 영광원전본부(이하 한수원)는 <오마이뉴스>에 '한국수력원자력 영광원자력본부에서 알려 드립니다'라는 반박 기사를 올렸다. 그동안 보내왔던 반박 내용을 포함해 내가 답변할 부분은 딱 한 가지. 바로 원전에 대한 '사고' 개념이다.

 

환경운동연합에서 표현하고 있는 일반적인 사고 개념을 적용한 것에 대해 한수원에서는 "원전 '사고'라는 표현은 INES '분류에 따라 종사자 및 주변주민에 방사선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므로 '고장'이 정확한 표현입니다"라며 '국제 원자력 사고·고장 등급(INES)'에 관련된 내용을 나열했다. 하지만 한수원의 <오마이뉴스>에 올린 반박 기사에는 그동안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소에서 어떤 '고장'이 있었는지는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 원전 사고가 단 한건도 없었다고?' 기사에서 문제가 된 한수원의 홍보 게시판에서도 마찬가지로 고장사례는 물론이고 '원전사고'에 대한 국제 기준조차 밝히지 않고 있다. 단지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소 안전사고는 0%입니다. 30년 전 처음 가동한 지금까지 방사선 누출 사고를 포함한 안전사고가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라고만 표현하고 있다.(국제원전 사고·고장 기준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고' 개념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원전안전운영정보시스템(OPSI 이하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의 자료에 의하면 국내 원자력발전소에서 최근 10년간 발생한 사고·고장 사례만 해도 183건(시운전 중 발생한 사고·고장 포함)에 이른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에서는 고장 사례를 나열할 때도 '사고·고장'으로 표기하고 있다. 하지만 한수원의 홍보 게시판에는 분명 '사고·고장'을 적용하지 않고 있다. '고장' 문구를 쏙 빼놓고 '사고'만을 내세워 '무사고'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왜 '고장'을 제외시켜 놓고 '무사고'만을 강조한 것일까? 한국원자력기술연구원과 같은 원전 전문기관에서 일반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사고·고장'을 적용하게 되면 지난 30년 동안 발생했던 불편한 진실, '고장사례'를 밝혀야 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우리나라 원전 사고·고장 사례 지난 10년간 183건

 

우리나라는 1993년부터 '국제 원자력 사고·고장 등급(INES : International Nuclear Event Scale)'을 따르고 있다. INES는 원자력관계시설에서 발생한 사건의 안전성 중요도에 따라 8등급으로 나눠 놓고 있는데 0등급에서 3등급까지는 '고장', 4등급에서 7등급까지는 사고로 보고 있다.

 

0등급은 '경미한 고장', 1등급은 '운전제한 범위를 벗어난 상태'. 2등급은 '방사성물질에 의한 소내 상당량 오염 및 심층방어의 상당 수준 열화'. 3등급은 '방사성 물질의 소량 외부방출 원자로 노심의 상당 수준이 손상'된 사건을 말하고 있다.

 

원전 사고·고장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사고 개념과 다르다. 핵발전소가 가지고 있는 위험성을 감안한다면 그 어떤 사고개념보다 엄중하게 적용해야 함에도 '사고'에 대한 개념을 경미한 접촉사고도 사고라 부르는 '자동차 사고 개념'보다 너그럽게 적용하고 있다.

 

'국제 원자력 사고·고장 등급'(INES) 기준에 따르면 89년 스페인 반델로스 원전 화재조차 3등급으로 분류되어 있다. 자동차 접촉 사고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험성을 내포한 사건'임에도 '사고'가 아닌 '고장'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한수원 홍보 게시판처럼 말한다면 스페인 반델로스 원전화재 또한 '단 한 건의 사고'가 없는 것으로 처리된다.

 

그렇다면 '사고 등급'은 어떤 사건들을 말하고 있을까? 79년 미국 스리마일 섬에서 발생한 원전사고(5등급. 원전주변 주민들 10만 명 대피)나 86년 구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대형참사(7등급)와 같은 사건을 '사고'라 규정짓고 있다.

 

하지만 기기 오작동이 원인이 되었던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와 원전 종사자들이 간단한 실험을 하다가 부주의로 인해 원자로가 녹아 버린 체르노빌원전 사고가 그렇듯이 대형사고는 사소한 고장과 부주의로 시작된다. 아무리 경미한 0등급의 고장이라 해도 핵발전소의 고장은 그 어떤 시설물에서의 고장보다 심각한 사건으로 다뤄야 할 것이다.

 

한수원, 고장 사례 언급 않고 '무사고'만 강조

 

우리나라 원전의 안전성을 강조해 오고 있는 한수원이 홍보 게시판에 그 위험천만한 단초가 될 '고장 사례'조차 밝히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30년 동안 단 한 건의 안전사고가 없었다'라는 식으로 안전성만을 강조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전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일반 성인들이나 어린아이들에게 핵발전소는 무조건 안전한 것으로 인식시켜 결국은 핵발전소 건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동안 언론에서는 원자력 발전소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고·고장'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인터넷 검색결과 '원자력 발전소 사고'라 표현하고 있는 기사를 찾아낼 수 있었다.

 

"지난해 12월 전남 영광원전 5호기 방사능 누출사고 실태조사 결과 원전 사업자인 한국수

력원자력㈜의 안전 불감증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국내에서 가장 많은 6기의 원전이 위치한 영광지역에서 1986년 첫 상업운전 이후 지금까지 각종 사고로 40여 차례 가동이 중단돼 안전성에 대한 불안감이 갈수록 높아가고 있다.

 

▽방사능 누출사고=지난해 12월22일 영광원전 5호기 터빈건물 집수조(集水槽)에서 방사능에 오염된 냉각수가 유출된 사고에 대해 실태조사를 벌여온 한국 원자력안전기술원은 최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기술원측은 "사고 당시 방사선 감지기가 경보를 울렸지만 원전측은 감지기가 고장 난 것으로 생각해 이를 교체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다 5일간 방사능에 오염된 물 3500t을 그대로 바다에 흘려보냈다"고 밝혔다.

 

또 그동안 오염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관리대상에서 제외한 곳이 방사능에 오염됐을 뿐 아니라 근무자들이 이 사실을 모른 채 방사능에 오염된 물을 그대로 마신 사실도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기술원 관계자는 "오염된 물을 마신 4명과 근무자를 상대로 전신 계측을 했으나 다행히 방사능은 검출되지 않았다"며 "이번 사고는 전혀 의심하지 못했던 곳에서 방사성 물질이 아무런 관리도 없이 외부로 유출됐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말했다. ('영광원전 실태조사... 한전불감증 위험수위'-동아일보 2004년 3월 2일자)

 

동아일보 2004년 기사에는 분명히 원전 사고로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동아일보>가 한수원에서 말하는 '고장'을 '사고'로 보도한 시점은 이명박 정부 이전이다. 원전을 녹색성장으로 보는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고부터는 보수 언론에서 '사고'는 물론이고 '사고·고장'이라 표현한 기사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원자력기술원 자료에 보면 사고·고장 사례가 2008~2010년까지 시운전 중 발생한 사고·고장을 포함, 39건이 발생했음에도 원전 사고·고장에 대해 제대로 보도하고 있는 기사 또한 찾아보기 힘들다.

 

원전 사고·고장 보도, 이명박 정부 이전과 이후 다르네

 

대부분의 보수 언론들은 한수원의 표현 방식 그대로 '우리나라에서는 30년 동안 단 한 건의 원전 사고가 없다'라는 식으로 원전 홍보에 충실하고 있었다. (한수원이 내놓은'2010년 원자력발전 백서'에 보면 '다양한 언론홍보 노력에 힘입어 2009년도 언론보도 기사 중 우호보도와 사실성 보도 비율이 96%에 이르렀고 비판성 보도는 5% 미만을 기록했다'고 자랑하고 있다).

 

'윤 원장은 "우리 원전은 IAEA와 미국의 안전지침에 맞춰 만든 데다 그동안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며 "IAEA가 3년마다 각 나라의 원전을 평가하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안전이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고 밝혔다.("UAE도 한국원전 안전성 보고 선택, 佛대통령 '비교하자' 주장 어이없어" - <동아사이언스> 2010-03-19)

 

'이 대통령은 '한·말레이시아 비즈니스 포럼' 기조연설을 통해 "한국은 지난 32년간 원전을 운영하면서 단 한 건의 사고가 없었으며 원전 이용률이 세계 최고인 92% 수준에 달한다"고 강조했다'.- (원전·석유 탐사·방산 등 전방위 협력 확대 나집 총리 "한국형 원전에 관심" <한국경제> 2010-12-10)

 

<매일경제>는 다음과 같이 고장 사례를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가 각종 고장으로 인해 불시 정지 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산업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20개 원전에서 발생한 불시 고장정지 사건은 모두 8건으로 집계됐습니다. 원자력발전소의 고장정지는 1990년까지 연평균 6,7건이었지만 2003년 11건으로 늘어난 이후 매년 10건에서 12건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원전 고장정지 급증...상반기 8건' - <매일 경제> 2007-07-22)

 

하지만 <매일경제>의 기사 내용과는 달리 <머니투데이>에서는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이재환 이사장 인터뷰 기사에서 '불시 정지한 사례'조차 단 한건도 없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동안 원자력에 대해 상당수 국민들은 우려감을 보여 왔다. 핵폐기물, 방사선 노출 등 안정성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나타난 '거부반응'이었다. 국내에서 단 한 차례의 원전사고도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 '핵은 위험하다'는 막연한 인식 탓에 원자력은 한동안 '찬밥' 대접을 받아야 했다.

 

"원자력발전 31년 역사에서 운전 중 기기고장이나 인적요인에 의해 발전소가 불시에 정지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원전수출 경쟁..최고기술+홍보 노하우면 충분"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이재환 이사장 인터뷰 기사 중에서 - <머니투데이> 2010-07-23)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에서 밝히고 있듯이 지난 10년 동안(2001~2010년)에 183건의 '고장사례'(시운전중 발생한 사고고장 포함)가 있었음에도 <신동아> 기사에서는 '여러 차례'로 축소보도 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INES('국제원자력 사고·고장 등급 체계')가 도입된 이래 한국에서 발생한 가장 심각한 사건은 단 한 번 있었던 '등급 2'의 일반 고장이다. 그리고 '등급 1'의 단순 고장이 8번 있었고, 안전상 중요하지 않은 경미한 고장(등급 0)은 여러 차례 있었다'. (탄생 30년, 한국 원자력발전 현주소 - <신동아> 2008-06-25)

 

위험성 축소하고 안전성만 강조하는 원전홍보는 '폭력'

 

인터넷 검색 결과 '원전사고고장 불감증'에 걸려 있는 원전만능주의의 표본 기사는 <신동아>의 '韓·日·佛 원자력 삼국지'(2008년 01월 25일) 였다. 한국이 일본, 프랑스와 함께 원전 건설에서 세계 최첨단을 달리고 있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는 이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자동차산업은 숱한 인명 사고를 겪으면서 더욱 안전하고 우수한 차를 생산하는 쪽으로 발전해왔다.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고 해서 자동차산업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비유해서 말하면 오스트리아와 미국 스웨덴 이탈리아는 자동차 사고에 놀라 자동차 개발을 포기한 나라이다."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사고

1986년 4월 26일 우크라이나의 키예프 북쪽 104km에 있는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제4호 원자로에서 방사능이 누출되었던 세계 최대의 참사.

 

사고는 수차례에 걸친 수증기·수소·화학 폭발을 수반하였다. 그 결과 2명의 작업자가 그 자리에서 죽고, 원자로 건물 위쪽이 무너졌으며, 크레인이 떨어져서 노심(爐心)을 파괴하였다.

 

발생한 화재의 소화 작업에 나선 종업원·소방원의 대부분이 심각한 방사선 상해(傷害)를 입었으며, 7월 말까지 29명이 사망하고, 원자로 주변 30km 이내에 사는 주민 9만 2000명은 모두 강제 이주되었다.

 

그 뒤에도 6년간 발전소 해체작업에 동원된 노동자 5,722명과 이 지역에서 소개된 민간인 2,510명이 사망하였고, 43만 명이 암, 기형아 출산 등 각종 후유증을 앓고 있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여기서 말하는 오스트리아와 미국 스웨덴 이탈리아 등은 미국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사고 등급5 10만 명 대피)와 체르노빌 원전사고(원전 최대 참사 7등급) 여파로 핵발전소 건설을 포기한 나라들이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같은 '핵발전소 사고'가 '자동차 사고'에 불과한데 국민의 거센 반핵 저항을 이겨내지 못하고 핵발전소 건설을 포기한 어리석은 나라들이라는 것이다.

 

자동차 산업과 함께 그동안 있었던 숱한 자동차 인명 사고만큼이나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났다면 인류는 이미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을 것이다.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같은 끔찍한 사고를 '자동차 사고에 놀란 것'으로 비유하고 있는 것은 핵폭탄만큼이나 끔찍한 논리다. 핵 만능주의자들은 '핵의 평화적 이용'을 운운하고 있지만 이 논리에는 생명과 평화는 없다. 사람도 없다.

 

핵발전소에 대한 이러한 사고 개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대형사고의 단초가 될 수 있는 핵발전소의 '고장'은 전혀 안중에도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원전은 체르노빌 원전 보다는 그 안전성이 보장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어떤 시설물이든 완벽한 것은 없다. 그 어떤 사소한 고장이라도 대형 사고의 단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핵발전소에 대한 그 위험성을 축소 은폐해 가며 안전성만을 강조하는 원전홍보는 일종의 '폭력'이다. 특히 어린아이들이나 핵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그 폭력적인 '홍보 방사선'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덧붙이는 글 | 핵 만능주의자들은 '원전 르네상스'를 부르짖어 가며 우리나라 원전은 해가 거듭될수록 그 안전성이 보장되어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2010년 9월 17일) 신고리 1호기에서 2등급에 해당하는 '시운전중 원자로 냉각재의 원자로건물 살수'라는 심각한 사건이 발생했다.


태그:#원전사고 등급, #한수원과 보수신문, #체르노빌원전사고와 자동차 사고, #원전사고 안전불감증, #무피판적인 원전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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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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