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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기는 2010년 4월 14일~6월 26일까지 중국 구이저우(貴州), 윈난(雲南), 스촨(四川: 동티벳), 북베트남, 북라오스를 배낭여행하며 연모하는 여인(女人) 어머님에게 부친 편지에 기초합니다. 현대적인 건물이나 관광지가 아닌 소수 민족이 사는 동네와 깊은 산골 오지를 다니며, 일기를 대신하여 적은 편지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따스한 사람을 만나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지난 편지를 차례로 연재 기록할 예정입니다... <기자말>
 

따오청 –샹그릴라, 내 마음의 해와 달

 

어머님, 열세 시간 버스를 타고 낯선 동네로 저녁 늦게 들어섰는데…. 아무도 저를 마중 나오지 않았습니다. 같은 버스에서 내린 4명의 중국여행자에게는 숙소에서 나온 호객꾼 아저씨들이 미녀처럼 예쁜 자기네들의 방을 보여주며, 자기네로 오라고 손짓합니다.

 

해는 져 어둑어둑하고, 바람은 불어 스산하고, 낯선 도시의 허름한 버스 정류장은 잠들려하고, 저는 길을 잃은 채 멈춰 서 있습니다. 그리고 소리치고 싶습니다. '저도 있다고요', '저도 방을 구하는 여행객입니다'라고. 하지만 잠시 나를 봐 달라는 듯이 서성이다, 배낭을 멘 채 정류장을 나와 홀로 잠자리를 구합니다.

 

문득 서글퍼집니다. 아무렇게나 길을 걷다, 간판이 큰 집에 들어섭니다. 덩치 좋은 주인아저씨는 사흘을 묵는다는 제 흥정에 흔쾌히 열쇠를 내어주십니다. 어머님, 여기는 샹그릴라로 가는 마지막 정거장, 따오청입니다.

 

 

어머님, 중덴(中甸)에서 따오청(稻城)으로 이어지는 길은, 어쩜 없는 길일는지 모릅니다. 이는 차마고도에도 나와 있지 않으며, 계곡을 따르는 길도 아닙니다. 중간에 샹청(香城)과 상투이라는 마을과 아주 조그마한 동네가 가뭄에 콩 나듯 보이긴 하지만 없는 길을 만들었다는 표현이 말을 듯합니다.

 

오전 7시, 중덴에서 열아홉 명의 손님을 태운 버스는 하루에 한 번 따오청으로 떠납니다. 버스는 계곡을 거슬러, 그리고 산을 돌아 돌아(윈난은 산과 계곡을 빼고는 이야기 할 수가 없는 마을입니다) 올라갑니다. 산을 오를 때는 아무도 살지 않는 산 속일 뿐입니다.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은 버스를 타고, 점심을 넘긴 오후 2시 즈음이 되어야 합니다. 중덴에서 약 120km 떨어진, 설산을 바라보며 산고개를 돌아서 내려오면 저 너머 설산이 흘러내린 물이 강이 되어 흐르는 곳에 이릅니다.

 

먼지가 자욱한 길을 내달려 온 버스는, 잠시 숨을 돌리며 몸을 훌훌 튼 다음 강물에 첨벙 뛰어들어 목욕을 합니다. 버스가 씻고 있는 찬물을 거슬러 올라가면 보일 듯 말 듯한 꼬맹이 세 명이 발가벗은 채 목욕을 하고, 그 너머에는 산기슭 아래 녹색 마을이 살고, 하얀 티벳집이 조용히 숨어 지냅니다.

 

산을 올려다보면, 삭막한 산마루에 하얀 눈이 솜이불처럼 내려와 있고 파란 하늘이 짙은 빛으로 물들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그 누구도 때묻지 않은 채 살아갈 듯합니다.

 

온 몸을 씻은 다음 다시 버스가 힘차게 내달리기 시작합니다. 버스가 강물을 따라 내려가면 산과 산 사이에 조그마한 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는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중덴과 따오청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아닐까 합니다. 마을을 벗어난 버스는 다시 지그재그로 고개를, 숨에 겨운 듯 벅차게 올라갑니다. 4000m의 고갯마루에 올라선 버스는, 아주 천천히 시간을 베어 먹는 야크들이 있는 초록빛 산장에 들어섭니다.

 

어머님, 구름 초원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면 '상투이'라는 마을이 나오는데, 그곳 들판엔 돌로 만든 집들이 성(城)처럼 서 있습니다. 바람은 성을 부셔버릴 듯이 불어오고, 티벳 아저씨는 검게 탄 얼굴에 선글라스를 끼고 허름한 가죽점퍼를 걸친 채 오토바이에 올라있습니다. 선글라스와 가죽이 이곳의 날씨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30여 분을 더 달리면 하얀 탑이 나오고, 다리 건너에 근대 도시가 보입니다. 근대 도시, 들판의 초원은 예전 모습이지만 이곳 따오청은 근대 도시의 모습을 지닌 채 무리지어 있습니다.

 

올 수 없을 듯한, 중덴에서 따오청에 이르는 열세 시간의 길을 지나왔습니다. 따오청에 내려서니 커다란 안도감이 제일 먼저 내려섭니다. 하지만 낯선 도시에 배낭을 풀고 나니, 다시 내일 일이 걱정입니다. 따오청에서 르와(日瓦-샹그릴라)로, 르와에서 야딩(亞丁)자연보호구의 공원으로 가야하는 머나먼 길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님, 여행을 하면, 수많은 걱정이 줄을 서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갈 것이며, 어디에서 잠 잘 것이며, 무엇을 먹을 것이며 등등. 하나의 걱정을 무너트리고 앞으로 한 발 나아가면 다른 걱정이 벽이 되어 제 앞에 서 있습니다. 그러면 전 온 몸으로 그 걱정과 맞서 싸우고 한 발 내딛지만, 그 앞엔 다시 다른 걱정이 서 있곤 합니다. 이런 벽(碧)이 일상처럼 내 앞에 놓여져 있습니다.

 

낯선 도시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 일찍 나서봅니다. 여기에서 110여 km 떨어진 르와 마을로 가는 길을 찾아야 하는데 버스정류장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머님, 어젯밤부터 품고 온 걱정을 배낭에 담은 채 걷다 봉고차가 지나가기에 얻어 탑니다.

 

생각보다 쉬이 버스를 잡았습니다. 지난밤의 걱정이 기우였음을 알게됩니다. 버스는 4000m 초원길을 달려, 꽁링쓰(貢岺寺)를 지나 르와-샹그릴라(香格里拉)에 닿았습니다. 하지만 르와에 왔다 하여 길이다 열린 것은 아닙니다. 이곳에서 다시 야딩까지 가야 하는데, 산을 너머야 하는 팔십리 길입니다.

 

어머님, 야딩은 3750m의 깊숙한 곳에 자리한, 한 해에 한 번 농사를 지으며 아주 평온하게 사는 티베트 마을입니다. 중국에서는 몇 안 되는 오지 가운데 한 곳일 듯합니다. 이곳의 오래된 이야기 가운데, 강꾸라는 마을에 가면 트레킹(걸어서 혹은 말 타고)으로 야딩 아래,  공원 들머리까지 갈 수 있다하여, 르와에서 2km 정도 떨어진 티베트 마을로 향했습니다.

 

마을은 깊은 계곡 너머에 자리했는데, 한참 보리타작을 한다고 어머니와 아버지, 할머니와 어린 아가씨, 모두들 들에 나와 있었고, 어미돼지는 너무 더운지 진흙탕에 벌러덩 누워 있었습니다.

 

마을 높은 곳에서 물이 줄줄 흘러내려(이 물은 신산 선내일의 눈이 내린 계곡 물입니다) 집들의 열기를 식혀주고 있었습니다. 할머니와 손자가 어느 담장 아래에 조용히 앉아 있습니다. 담장 아래로는 다시 차가운 물이 졸졸 흘러 다닙니다. 분명 산은 황폐하고 삭막한데, 물이 마을을 감싸고 있으며, 그 냇물로 인해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나무로 인하여 마을은 여유롭고 시원한 느낌을 안겨줍니다.

 

'야딩으로 간다'며 할머니 옆에 앉아 계신 아저씨에게 여쭈어 보니,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라 합니다. 즉슨 르와(샹그릴라현)에 들어간다고 들려주십니다. 분명 오래 전에는 강꾸라는 마을에서 걸어서 혹은 마을 타고 갈 수 있다고 들었는데, 내가 만난 마을 사람들은 모두 '르와'로 나가야 한다고 합니다. 먼지 폴폴 마셔가며 30분을 걸어왔는데, 다시 그 길을 돌아가야 한다는 게 막막해 어린아이 옆에 저 또한 주저 앉아버립니다.

 

가방에서 풍선을 꺼내 아이에게 건네니, 아이는 덜컥 겁부터 내며 두 손을 허리 뒤로 숨긴 뒤 할머니 품으로 파고듭니다. 간간이 중국의 오지를 다니다 보면 이런 낯선 풍경을 볼 수가 있는데… 아마도 낯선 사람을 만나지 못하여 어색하거나 두려워서가 아닐까 합니다.

 

분명 저는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날마다 세수도 하고, 수염도 깎고 다니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빙그레 말없이 웃으시며, 내가 건넨 사탕과 풍선을 다시 손자에게 건네주십니다. 낯선 동내에서 잠시 쉬었다 일어납니다.

 

어머님, 배낭여행을 하다 보면, 수 없이 길을 잃고 낯선 거리를 만나지만 저는 이 모든 것을 제 여행의 아름다움이라 생각합니다. 만약에 르와에서 야딩으로 곧장 갔으면 강꾸라는 조그맣지만 조용한 티베트 마을도 못 보았을 것이며, 아이의 눈빛도 기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모두가 아름다운 기억임을 저는 믿습니다.

 

어머님, 강꾸에서 티베트 청년을 만나, 시속 5km로 달리는 오토바이 뒤에 탔습니다. 걸어서 도저히 갈 수 없는 길이기에, 전 교통수단을 찾았고, 순박해 보이는 더벅머리 총각의 오토바이에 덜컥 올라탔습니다.

 

그는 순박하지만 오토바이는 낡아서인지, 느리게 산을 올라갑니다. 약 33km 정도 떨어졌다는 야딩에 가기 위해서는 산을 지그재그로 올라가는데, 청년은 산을 오른 다음 쉬어가자고 합니다. 오전과 점심 시간을 이용해 여기까지 오는 동안 길을 찾느라 시간이 많이 흘러, 괜스레 초조합니다.

 

지금 시각은 오후 4시, 오후 10시에 따오청에서 나와서는 오후 4시 즈음 야딩, 샹그릴라에 첫 발을 내딛습니다. 많은 이들이 돌아 나오는데, 저는 이제야 걸어 들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길 위에서 무수히 꿈꿔온 길을 저는 지금 걸어 들어가려 합니다.

 

2010. 06. 19 따오청(稻城)에서


태그:#중국, #동티벳, #따오청, #야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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