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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 5대 명산인 능가산(楞伽山) 기슭 내소사(來蘇寺)를 오랜만에 찾았다. 손가락을 꼽아보니까 25년 만이었다. 처음 방문 때도 겨울이었는데, 왜 '능가산'이라고 했는지 일행 모두가 궁금해했고, 능(棱)과 릉(楞)을 놓고 토론을 벌이기도 했었다.

 

지난 주말(12일), 군산에서 변산반도로 향하는 들녘에는 회색으로 변한 벼 그루터기만 남아 있었고, 앙상한 가지가 숲을 이룬 내변산 줄기는 겨울이 깊어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듯했다. 오르막길로 접어드니까 넓게 펼쳐진 곰소만의 바다가 눈이 시리도록 반짝이는 게 꼭 은비늘을 뿌려놓은 것 같았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빠져나오니까 허름한 모자를 눌러쓴 아저씨가 가을에 수확하고 남은 콩 나뭇가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한가로운 농촌풍경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는데 활활 타오르는 불길은 매운 연기에 눈물을 흘려가며 쥐불놀이를 하던 추억을 떠오르게 했다.

 

유서 깊은 고찰, '능가산 내소사'... 진입로엔 울창한 전나무 숲길

 

 

능가산(424m) 내소사는 전북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에 위치한 유서 깊은 고찰이다. 내소사를 '능가산 내소사'로 부르는 까닭은 '동국여지승람'에 변산을 '능가산으로 영주산으로도 불린다'는 기록을 따르기 때문이란다.

 

내소사는 '여기에 들어오시는 분은 모든 일이 소생되게 하여 주십시오'라는 해구 두타 스님의 원력에 의해 백제 무왕 34년(633)에 창건되었고, 오랜 세월에 걸쳐 중건 중수를 거듭하였다.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된 건물을 인조 때 청민 선사가 중창하였으며, 인조 11년(1633)에 대웅보전을 인조 18년(1640)에는 설선당과 요사를 중건하였다. (내소사 팸플릿)

 

자연과의 조화를 잘 간직하고 있는 내소사에는 조각과 형태가 빼어난 고려동종, 법화경 절본사본, 영산회 괘불탱 등이 있다. 지방문화재로는 삼층석탑, 설선당과 요사가 있으며, 기타 유물로는 봉래루, 금동여래좌상, 감지금니화엄경 등이 경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내소사 입구에서 만난 해설사 유란(24)씨는 전나무 숲길이 단순한 관광 차원을 넘어 건강도 함께 챙기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시각적인 아름다움은 물론 맑은 공기를 마음껏 흡입할 수 있어 신진대사활동을 원활하게 해주고 스트레스도 해소시켜 준다는 것.

 

유 해설사는 "내소사 전나무 숲길은 4계절의 변화에 따라 그 아름다움과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최적의 여건을 갖추고 있다"면서 싹이 돋기 시작하는 봄, 푸르름을 선사하는 여름, 단풍 터널이 장관인 가을, 적설량이 많은 부안 내소사의 겨울 풍광을 소개했다.

 

일주문 앞의 고목들은 내소사가 천 년 고찰임을 말해주는 듯했다. 일주문을 지나니 울창한 전나무 숲길이 펼쳐졌다. 하늘을 뚫을 듯 치솟은 전나무들은 승천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700여 그루의 전나무들 나이는 110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전나무 숲길은 천왕문에 이르기까지 약 600m 이어지는데 침엽수 특유의 맑은 향내음에 속세의 찌든 때가 모두 씻겨내려는 것 같았으며 숲길을 걸으면서 사색에 빠져보는 것도 좋고, 데이트 코스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봉래루 기둥엔 소원 적힌 쪽지가 '주렁주렁'

 

전나무 숲길을 한참 걷다 보면 확 트인 공간을 만나는데 그곳에서부터는 벚나무 길이 이어지고 끝에는 사찰의 출입구인 사천왕문 건물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곳 전나무 숲길이 끝나는 다리에서 바라보는 내소사 전경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사천왕문에 들어서니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편하게 한다는 동방지국천왕, 선·악을 살펴 죄지은 자를 벌로 다스린다는 서방광목천왕, 중생의 이익을 증대시켜준다는 남방증장천왕, 어둠에서 방황하는 중생을 제도한다는 북방다문천왕 등이 고개를 절로 숙이게 했다

 

사천왕문에서는 내소사에서 가장 뛰어난 풍광을 만날 수 있다. 눈앞에 천 년 고목(느티나무)이 우뚝 서있고, 뒤로는 내소사 전각들과 뒤편의 능가산이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사천왕문 서쪽에는 작은 연못이 있고, 그 너머 언덕에는 부도전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천왕문을 지나면 내소사 경내 대웅전 앞마당으로 들어가는 봉래루가 보인다. 봉래루는 조선 태종 때 자연석을 초석으로 하여 건립한 2층 누각의 맞배지붕 건축물을 말하는데, 무채색이지만 무게가 있었으며 고풍스럽게 느껴졌다.

 

봉래루 기둥에는 사람들이 소원을 적어 걸어놓은 색색의 쪽지들이 매달려 있었는데. 신혼으로 보이는 20대 커플이 무슨 내용을 적을지 상의하고 고민하면서 정성스럽게 쪽지를 매다는 모습은 질투를 느낄 정도로 행복해 보였다.

 

내소사에는 특이하게 법당이 아닌 건물로서 문화재로 지정받은 설선당과 요사채가 있는데, 두 개의 건물은 하나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금은 스님들이 기거하고 있다고 한다. 조선 인조 때 세워진 건물로 대웅전 앞마당 동쪽에 자리하고 있다. 

 

쇠못 하나 쓰지 않고 지은 '내소사 경내 대웅보전'

 

경건한 마음으로 봉래루 밑 계단을 오르면 내소사 가람건축의 정점을 이루는 대웅보전(보물 제291호)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대웅보전은 쇠못을 하나도 쓰지 않고 나무를 깎아 끼워 맞추는 결구 기법으로 조성된 게 특징이라고. 

 

인조 11년(1633)에 건립된 대웅보전은 높게 쌓은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3각, 단층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공포는 외 3출목, 내 5출목, 살미 끝이 심한 양서형이고 살미에 연봉형이 조각되어 있다. 

 

관세음보살이 파랑새로 화현(化現)하여 단청을 했다는 전설이 담긴 대웅보전은 화려하면서도 담백한 목조건물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었는데, 연꽃과 수련으로 장식된 화사한 꽃살문과 뒤로 길게 이어지는 능가산 봉우리들의 조화는 일품이었다.

 

수많은 목재로 화려하게 결구된 공포와 대들보, 천장의 각종 문양으로 가득한 법당 안에는 3존불(우: 보현보살좌상, 본존: 석가여래좌상, 좌: 문수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후불벽화는 '백의 관음보살좌상'으로 국내 제일이라고 한다.

 

 

정면의 분합, 사분합 창호에는 연화, 국화, 모란화 등의 꽃문양이 사실적으로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들보 위 눈을 부릅뜬 용이 물고기 한 마리를 물고 있는데, 이는 물고기를 안락한 곳으로 옮겨주려는 자비를 상징한다고.

 

대웅보전은 원래 화려한 단청으로 채색되어 있었으나 수백 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비바람에 씻겨나가 발가벗겨진 나뭇결을 드러내놓고 있었다. 그래도 본연의 나무색은 친근감과 세월의 깊이를 더욱 느끼게 했다. 부처의 은은한 미소처럼. 

 

능가산 내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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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종안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능가산 내소사, #전나무 숲길, #대웅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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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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