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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가 나빠도, 산을 올라야 해도, 가끔은 오해를 받아도 답사는 계속된다.
▲ 답사 일기가 나빠도, 산을 올라야 해도, 가끔은 오해를 받아도 답사는 계속된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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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답사, 남들은 자신이 좋아서 하는 것이니, 보람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공감하는 말이지만, 보람 이전에 어떤 사명감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할 듯하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한 사람에게라도 더 알리고자 하는 사명감과 우리 문화재의 온전한 보존을 위해 두 눈 부릅뜨고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아마 이런 것이 함께할 것이다.

우선 문화재답사라는 것이 그리 만만치가 않은 것은 시간과 경비의 조달이다. 시간은 틈을 내어 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만만치 않은 경비는 늘 발길을 무겁게 만든다. 답사지에 가서도 컴퓨터가 있는 숙소를 얻으려면 웃돈을 더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동하고, 먹고, 자고, 거기다가 음료라도 마시는 날에는 두둑하던 주머니가 곧잘 비어버린다.

답사를 하다 보면 가끔은 헛수고하는 일이 있다. 최근 지리산 천년송을 촬영하기 위해 찾아갔는데 오르는 길이 얼어 차량이 통제되었다. 그곳과 마애불을 찍기 위해 참으로 벼르고 또 별러 찾아간 길인데, 맥이 다 빠져버렸다.

산 길을 접어들었는데 갑자기 비를 만나는 경우도 있다. 인근에 커다란 바위라도 있으면, 조금이라도 비를 피할 수가 있어 다행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정말로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야만 한다.

날씨가 난감하게 만드는 경우는 한두 번이 아니다. 여름과 겨울에는 사전 준비를 하고 길을 나서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할 수없이 발길을 돌리지만 마음은 내내 씁쓸하다.

카메라가 비에 젖으면 낭패이기 때문에 비나 눈이 내리면, 카메라를 옷 안에 넣고 다녀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불룩 나온 배가 이상하게도 보이기도 한다. 이 때문에 몇 번인가는 불심검문을 받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가가 없는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이, 배에 무엇인가 불룩하니 이상할 수밖에.   

주민들의 신고정신은 가히 일품이다. 그런 날은 십중팔구 신분을 확인시켜주어야만 한다. 요즈음은 하도 돌아다니다 보니 많이 좋아진 셈이다. 그래도 중단을 할 수 없이 계속하는 것을 보면, 아마 천성적인 역마살이 맞구나 싶기도 하다. 일기도 사람들의 시선도, 온 산과 들판을 누비고 다니는 나를 어쩌지 못하는 것을 보면.

추위에 얼고 오해를 받아도 답사는 늘 즐겁다

답사를 하기 위해서는 가장 소중한 것이 건강이다
▲ 발 답사를 하기 위해서는 가장 소중한 것이 건강이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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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오늘 답사를 하면서 정말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바람이 불고 손도 시릴 정도의 날씨였지만, 하나라도 더 문화재를 소개하기 위해서다. 그들이 보던 보지 않던 나에게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저 제목만 보고 간다 해도, 언제가 그곳에 들러 '아! 옛날에 누가 이런 글을 쓴 것을 본 적이 있다'라는 생각만 해도 성공했다고 자부한다.

오늘 고택답사를 하는데, 어떤 분이 밖에서 쫓아 들어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면서 유심히 살펴본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집에 사시는 분이란다.

"듣는 사람은 기분 나쁘겠지만 저로서는 어쩔 수가 없어요."
"무슨 말씀이세요?"
"지난번에는 누군가가 조사를 한다고 와서 사진을 찍어 갔어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다음에 도둑을 맞았어요. 집안에 있던 고서들을 잊어버렸죠."

말씀을 들어보니 사진 찍겠다고 해서 보여주었는데 그다음에 그것을 도둑맞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같은 사람들도 다 그렇게 보일 수밖에. 명함을 드리고 나서 마저 사진촬영을 마쳤다. 이런 일이 한 두 번 아니기에 제일 조심하는 것이 바로 안채의 집안 촬영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괜히 집안을 찍고 나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싶지 않아서다. 그리고 집안의 귀중품을 찍겠다고 부탁하지도 않는다. 집안에 있는 것을 찍으면 좀 더 세세한 글을 쓸 수 있다. 하지만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얼마나 죄스러운 일인가. 내가 작고 소중한 것들을 촬영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답사를 하는 것은 문화재를 보호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자칫 남들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추운 날 다녀온 답사길. 그래도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듣고 왔으니 당분간은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될 듯하다. 그래서 추위에 얼고 오해를 받아도 답사는 늘 즐겁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답사, #건강, #일기, #오해,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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