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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 뒤로 국민들의 불안과 한숨이 깊어질 즈음 모처럼 전국적인 웃음을 선사한 이가 있으니 바로 YTN 돌발영상 '보온병 폭탄'의 주인공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이다. 

 

안 대표는 소위 말하는 인터넷 동네북이 됐고, 인터넷 세상에는 국경이 없는지라 '보온병 동영상'은 영국·독일·러시아 등 해외언론에도 소개됐다. 그의 연평도 행적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가히 G20 의장국으로서 높아진 대한민국의 국격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만하다.

 

각종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를 차지하고 정치에 전혀 무관심한 기자의 후배까지도 "안상수 대표라는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올 만큼 그는 유명해졌다. 일각에선 '개그맨 뺨치는 정치인'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그가 처음으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탔던 일은 1987년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것이었다.  

 

박종철 고문치사 물고문 증거 확보한 검사... 인권위 출범에도 앞장

 

안 대표가 서울지방검찰 형사2부에서 검사로 재직하던 시절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주임검사를 맡았던 일은 그가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린 계기가 됐고 정치인으로 부상하는 데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87년 5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경찰의 사건 축소·조작' 폭로 뒤 이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검찰까지도 사건 은폐·축소에 대한 지탄을 받았다. 그러나 이후 청문회 등을 통해 박씨의 시신을 화장하려 했던 경찰에 맞서 부검을 실시, 물고문 증거를 확보한 것을 두고 안 검사는 인정을 받게 됐다. 

 

춘천지검으로 전보된 안 검사는 87년 9월 검찰에 사표를 내고 변호사가 됐고 10여 년간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다. 그런 경력 때문인지 그는 지난 2001년 16대 국회에서 국가인권위원회를 출범시키는 일에 앞장서기도 했다.

 

안 대표는 1999년 '옷로비 사건'에서 청문회스타로 널리 알려졌고, 17대 국회에서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맡아 정권탈환에 앞장섰다. 18대 국회에서 또다시 원내대표를 맡았고 지난 7월 전당대회에선 명실상부한 당 대표최고위원에 당선됐다.

 

민주화에 대한 공로도 있고, 변호사나 정치활동을 통해 인권활동에 기여해왔으며 5선 의원이 돼 국회의장이 되겠다는 꿈을 가진 안 대표가 불에 그을린 보온병 2개로 인해 온 국민의 패러디 대상이 되고 비웃음을 산 일은 그의 향후 정치행보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봉은사 외압, 병역기피 의혹에도 당 대표 당선 '악재 극복의 귀재'

 

안 대표의 한 측근은 안 대표의 근황에 대해 "심기가 많이 불편하신 것이 사실이지만, 주변에선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며 "지금까지도 많은 악재들을 잘 넘겨오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사실 18대 국회 들어와 안 대표는 연이은 악재에도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해낸 경험이 있다. 악재는 그가 두 번째 원내대표를 지내면서 잇달아 터졌다.

 

여중생 납치살해 사건에 대해 온 국민이 분노했던 지난 3월, 당시 원내대표였던 안 대표는 성폭력 범죄의 만연을 좌파교육의 탓으로 돌리는 발언을 해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같은 달엔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과 관련해 안 대표가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불거지지도 했다. 안 대표가 원내대표를 지내던 2009년 11월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을 만나 '현 정권에 저렇게 비판적인 강남의 부자 절 주지를 그냥 놔둬서 되겠느냐'고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을 겨냥한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폭로된 것. 폭로 직후 안 대표는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문제의 장소에 있었던 김영국씨가 관련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당 대표에 도전할 계획이었던 안 대표에게 봉은사 외압 폭로는 치명적인 것이었고, 7월 14일 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던 한나라당 내에서도 '새 당 대표로 안상수를 뽑는 것은 불교계에 선전포고하는 것과 같다'는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몇 달 동안 '봉은사 외압'을 부인하고 관련 언급을 회피했던 안 대표는 급기야 명진 스님에게 사과를 하기에 이른다. 안 대표는 6월 21일 "지난해 11월의 일이라 자세히 기억하기 어렵지만 내용이 사실이라면 명진 스님과 봉은사 신도들께 심려를 끼쳐 매우 유감"이라며 사실상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도 악재는 터졌다. 안 대표가 병역을 필하지 않은 것이 그냥 건강상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기피 의혹이 크다는 점이었다. 징병검사 기피 2차례, 입영연기 2차례, 행방불명을 이유로 입영 통지 불가 등의 사유가 고의로 병역을 기피한 흔적 아니냐는 것. 

 

당시 붙은 별명이 '행불 안상수'인데, 안 대표는 행방불명에 대해 '절에 들어가 사법시험 공부를 하고 있었다'면서 자신이 사시합격 뒤 군 법무관으로 입대했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퇴교당했다면서 '문제없는 군 면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안상수가 당 대표가 되면 병역기피당이 된다'는 상대 후보들의 공세에도 안 대표는 전당대회 1위로 당 대표에 선출되기에 이른다. 좌파발언, 봉은사 외압, 병역기피 의혹 등 잇달아 터진 각종 의혹에도 친이계의 결집을 이뤄내 당당히 당 대표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과연 '보온병'도 뛰어넘고 국회의장 꿈 이룰까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밝혀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한국의 인권신장에 공헌한 안 대표가 이번 '보온병 폭탄'으로 전국민적 비웃음을 사게 된 것은 단순히 안 대표의 연평도 행적 한가지 일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봉은사 외압의혹으로 지탄을 받은 바 있고, 개인 사정이야 어찌됐든 간에 군대를 안 간 여당 대표가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강경발언을 해대다가 터진 일이기에 비웃음의 강도가 증폭된 것은 아닐까. 고운 사람 미운 데 없고 미운 사람 고운 데 없듯이.

 

안 대표는 국회의장직을 맡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안 대표의 꿈이 이뤄지려면 19대 총선에서 당선되는 게 필수적인데, 지금의 여론 상황에선 그가 과연 이 관문을 통과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그러나 지금까지 수많은 역경을 헤치고 목표를 이뤄낸 바 있는 안 대표이기에 어떤 방법으로 이 역경을 이겨나갈지 주목된다.


태그:#안상수, #보온병 폭탄, #인권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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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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