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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적한 솔로 씻은 슬리퍼는 얼룩얼룩 때가 잘 지지 않았다.
▲ 넓적할 솔 넓적한 솔로 씻은 슬리퍼는 얼룩얼룩 때가 잘 지지 않았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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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이다 보니 아파트처럼 깔끔하게 해놓고 사는 것은 포기하고 산 지 오래다. 아마도 그래서 우리 가족은 아파트보다 시골집을 좋아할 게다. 깔끔하지 않아도 별로 표도 나지 않고, 청소를 한 번쯤 하지 않아도 그게 그거라서 말이다. 우리는 "우리 집이 생태적이라서 그렇다"며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다른 집처럼 화장실이 완전히 실내에 있으면 슬리퍼도 더럽혀질 일 별로 없겠지만, 우리 집은 사정이 다르다. 집 지붕 밑에 자리 잡고 있으니 실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옛날 군불 때던 부엌을 지나 화장실로 가는 구조이니 실외라고도 할 수 있다. 옛날 부엌 공간은 연탄보일러가 있고, 연탄이 있다.

그러다 보니 화장실용 슬리퍼가 깨끗할 수가 없다. 화장실용 슬리퍼가 눈에 밟혔다. 으레 그 슬리퍼는 지저분한 게 당연하다고 살다가 오늘따라 왠지 씻고 싶어졌다. 어쩌다 오늘 생전 안 하던 짓을 한 게다.

화장실에 있는 넓적한 솔을 꺼내들었다. 자발적으로 시작한 것이니 대충하지 않게 되었다. 비누를 칠해 빡빡 문질렀다. 있는 힘껏 문질렀다. 그렇게 문질렀는데, 얼룩이 지지 않았다.

'그 참, 뭐 가 문제일까?'

길쭉한 솔로 씻은 슬리퍼는 비교적 깨끗하게 때가 빠졌다.
▲ 길쭉한 솔 길쭉한 솔로 씻은 슬리퍼는 비교적 깨끗하게 때가 빠졌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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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을 하던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길쭉한 솔이었다. 뭐라도 시도해야 할 거 같은 맘이 이유였다. 이렇게 둥글고 넓적한 솔로도 잘 안 씻어 지는 걸 조금 약해 보이는 그 솔이 해낼 거라는 확신은 없었다.

비누칠을 해서 역시 빡빡 문질렀다. 그런데 신기하다. 좀 전 솔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때가 쑥쑥 지워진다. 희한하다. 무슨 마법을 부리는 것 같았다. 좀 전 솔로 씻으면서 고생만 들입다 했던 것을 보상이라도 하듯 신나게 씻었다.

이유가 뭘까.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난 걸까. 얼핏 보기에 처음 솔은 슬리퍼와 닿는 면적도 많고, 솔 이빨이 강해서 때를 잘 벗겨 낼 거 같고, 씻을 때 소리도 더 크게 빡빡 나는데. 그에 반해 길쭉한 솔은 넓적한 솔과 모든 게 반대다. 외관으로 봐서는 넓적한 솔이 왠지 더 잘 씻어낼 거 같아 보인다.

자세히 보니 솔의 모 차이였다. 넓적한 솔은 모가 딱딱하고 뾰족하여 때를 잘 벗겨낼 거 같지만, 솔 모 사이의 간격이 넓다. 반면 길쭉한 솔은 넓적한 솔보다 부드러우나 솔 모 사이가 촘촘했다.

순간 스쳐간 말들. 넓적한 솔은 '빈 수레가 요란하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를 생각게 했다. 길쭉한 솔은 '외유내강, 인자무적' 등을 생각나게 했다. 으레 그런 줄 알았던 슬리퍼를 씻으니 새것처럼 깨끗한 걸 보니 생각만 조금 바꾸면 세상이 달라지더라는 말도 생각이 난다. 나도 나지. 슬리퍼 씻으며 별 생각을 다하고 있다.

두 솔의 모양을 보니 이해할 듯 하다. 강하나 넓직한 솔 모와 부드러우나 촘촘한 솔 모의 차이였던 게다.
▲ 두 솔 두 솔의 모양을 보니 이해할 듯 하다. 강하나 넓직한 솔 모와 부드러우나 촘촘한 솔 모의 차이였던 게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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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넓적한 솔과 길쭉한 솔의 상표가 뭔지 브랜드가 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관심도 없다. 다만, 내가 살림하면서 발견한 하나의 지혜라 나누고 싶을 뿐이다. 지혜라고 붙이기 뭐하다면 정보라고 해둬도 좋다. 주부 여러분, 이왕 솔 살 거면 길쭉한 이 솔로 사세요.


태그:#더아모의집, #송상호,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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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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